2017년 3월호

新東亞 | 초대석

“원천기술 강화, 미래기술 선점으로 커넥티드카 시대 준비”

‘소프트웨어 강국론’ 펼치는 서상범 ㈜페르세우스 대표

  • 최호열 기자 | eypapa@donga.com

    입력2017-02-28 12:0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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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나라를 IT강국이라고 한다. 물론 컴퓨터, 휴대전화, 디지털TV는 가장 잘 만들지만 정작 이 기기를 구성하는 하드웨어의 두뇌인 CPU를 다루는 핵심 소프트웨어 원천기술은 거의 없다. 우리 IT산업도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중심이 바뀌어야 한다. IT업계에서 서상범 페르세우스 대표를 주목하는 이유다.
    페르세우스는 지난해 12월 설립된, 이제 갓 태어난 신생 벤처기업이다. 그런데 벌써부터 IT업계와 벤처투자사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순전히 서상범(53) 대표의 능력에 대한 기대치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전산학 박사 출신인 서 대표는 2003년 삼성전자 소프트웨어센터 수석연구원으로 입사해 삼성전자 상무, 플랫폼 솔루션 랩(Lab)장 등을 역임하며 소프트웨어 발전을 이끌어왔다.

    그는 삼성전자에서 가상화(Virt- ualization) 기술인 젠암(XEN ARM)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자동차와 스마트폰 등의 핵심 CPU(컴퓨터 중앙처리장치)인 ARM CPU를 기반으로 보안에 중점을 둔 가상화 소프트웨어 아키텍처 설계, 스마트폰 모바일 결제 시스템의 보안 운영체제(OS) 소프트웨어 개발, 멀티코어 소프트웨어 플랫폼 개발 등을 주도했다.

    “주로 소프트웨어 분야의 선행연구를 했다. 지금 당장 제품에 적용할 기술이 아니라 최소 5년 뒤에 적용될 기술을 먼저 연구개발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와이파이는 1997년경에 이미 개발됐다. 당시만 해도 유선인터넷 초창기여서 전송이 느려지고 끊기는 게 다반사여서 동영상 한 편 전송받으려면 한나절씩 걸렸다. HD화질의 동영상을 보내는 건 아예 불가능했다. 그런 시절에 이미 주위 채널의 간섭을 극복하며 데이터를 빠르게 전송하는 고성능 무선 네트워크 운영체제를 연구하고 개발한 것이다.”

    ▼ 삼성전자에 입사해 처음 한 연구가 무엇인가.

    “지금 널리 사용되고 있는, 삼성페이처럼 스마트폰으로 안전하게 결제하는 기술이었다. 2005년 당시만 해도 스마트폰 자체가 존재하지 않던 시절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스마트폰 시대가 열릴 것이라 예측하고 연구한 것이다.”





    선도자(first mover)가 돼라

    ▼ 소프트웨어 연구에 몸담으면서 느낀 게 있다면.

    “흔히 세상이 스마트해진다고 말한다. 소프트웨어가 점점 발전하기 때문이다. 하드웨어 자체가 똑똑해지는 것은 한계가 있다. 기기가 똑똑해지고 향상됐다는 것은 소프트웨어 기능이 업데이트됐다는 이야기다. 이젠 소프트웨어 발전이 하드웨어 발전을 이끄는 시대라 할 수 있다. 삼성전자의 하드웨어 경쟁력은 세계 1등이다.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더 높여야 한다. 물론 처음 입사할 때에 비하면 지금은 소프트웨어 개발 인력이 많이 늘었다. 이건희 회장이 미래를 정확히 내다보고 투자했기 때문이다. 양적으로 풍부해졌으니 이제 질적으로 고도화할 차례가 아닐까 싶다.”

    ▼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산업의 현실은 어떤가.

    “양적 성장과 함께 질적 성장도 중요하다. 개발도상국은 선진국이 만든 것을 똑같이 만들면서 따라가는 수준이어도 된다. 하지만 선진국이 되면 남이 만든 적 없는 신제품과 신시장을 만드는 ‘선도자(first mover)’가 돼야 한다. 기술을 선도하려면 기술의 이론적 성장도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CPU 등을 제어하는 핵심 소프트웨어(예를 들면 가상화, 운영체제, 컴파일러 등) 원천기술에 대한 연구 개발과 이론적 밑바탕이 부족하다. 이 부분에 대한 투자와 노력이 필요하다.”

    ▼ 부족한 근본적 이유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일 수 있는데, 우선 우리나라는 원천기술에 대한 큰 시장이 없다. 시장이 있어야 수요자를 만족시키기 위해 기업이 학계에 연구를 지원한다. CPU 및 해당 OS 소프트웨어만 해도 금융 관련 컴퓨터는 IBM이, 일반 개인 컴퓨터는 인텔이, 스마트폰은 최근 일본 소프트뱅크가 인수한 영국의 ARM사가 원천기술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런 분야를 연구하려 해도 지원하겠다는 회사가 없고, 지원하는 회사가 없으니 연구하려는 학생이나 전문가가 나오기 힘들다.”

    ▼ 해결 방안이 있나.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 프로젝트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 프로젝트는 그 기술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개인 자격으로 자발적으로 참여해 인터넷상에서 정보를 교환하고 함께 개발하는 것이다. OS 소프트웨어인 리눅스가 대표적인 예다. 지금도 세계적으로 수만 건의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우리나라에 관련 인프라가 없는 분야의 기술인 경우 정말 도움이 된다. 참고로, 그렇게 해서 완성된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개인이 제품화, 상업화해도 된다.”


    Xen ARM

    서 대표는 2005년 참여한 젠(Xen)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 프로젝트와 2008년 주도한 ‘젠암(Xen ARM)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 프로젝트’에 대해 길게 설명했다.

    “젠은 세계 최대의 가상화 소프트웨어 개발 오픈 소스 프로젝트다. 케임브리지대 전산과 동문이 서버(Sever)용 인텔 x86 CPU 가상화 젠 소프트웨어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내가 자동차/스마트폰용 ARM CPU 가상화 젠암 소프트웨어 설계와 프로젝트를 주도했다.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컴퓨터는 하드웨어에서 OS가 하나만 구동된다. 그런데 젠은 하나의 하드웨어에서 여러 개의 OS를 동시에 구동할 수 있다. 컴퓨터 한 대로 ‘윈도’ ‘안드로이드’ ‘매킨토시’ ‘리눅스’ 등 서로 다른 OS에서 작동하는 앱들을 동시에 작업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디자이너들은 그동안 디자인 작업을 위한 매킨토시 컴퓨터와 일반용 윈도 컴퓨터 두 대를 켜고 번갈아가며 사용해야 했다. 젠암을 설치하면 컴퓨터 한 대로 다 해결된다.”

    ▼ 지금도 비슷한 소프트웨어가 있지 않나.

    “있기는 한데, 그건 하나의 OS에서 다른 OS를 구동하는 것이 주 기능이라 보안 문제 등에서 근본적인 해결이 안 된다.”

    ▼ 보안 문제에서 젠암(Xen ARM)의 장점은 무엇인가.

    “젠암은 가상화 기술과 보안 기술을 융합해 아키텍처가 설계돼 하나의 하드웨어에서 여러 개의 OS를 동시에 안전하게 구동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한 컴퓨터에서 e메일도 사용하고 인터넷뱅킹도 한다. 바이러스 중에는 내 모니터 화면이 해커 모니터에 그대로 뜨게 하는 해커프로그램도 있다. 만약 해커가 e메일을 통해 이 바이러스를 침투시켰다면 인터넷뱅킹을 할 때 은행계좌, 비밀번호는 물론 보안카드 번호까지 다 유출된다. 하지만 젠암 프로그램을 사용하면 한 컴퓨터를 사용하더라도 e메일은 A, 인터넷뱅킹은 B라는 서로 다른 OS에서 작동하기 때문에 e메일을 통해 바이러스가 침투했다 하더라도 인터넷뱅킹 화면이 해커 화면에 뜨지 않는다.

    스마트폰도 마찬가지다. 스마트폰은 무선인터넷이라 네트워크가 열려 있고, 앱도 자유롭게 내려받을 수 있는 개방형이어서 보안이 뚫릴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일부 기업과 기관에서는 보안을 위해 업무 전용 스마트폰을 따로 지급한다. 직원들이 스마트폰을 2대씩 들고 다녀야 한다. 젠암을 활용해 스마트폰에 OS를 두 개 설치하면 휴대전화 두 대를 사용하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



    커넥티드카와 보안 문제

    ▼ 사물인터넷(Iot) 시대가 되면서 스마트TV 등 가전제품과 자동차도 보안 문제가 심각해질 전망이다.

    “정보통신기술과 자동차를 연결해 양방향 인터넷, 모바일 서비스 등이 가능한 커넥티드카(Connected Car) 시대가 곧 온다. 외부에서 원격으로 시동을 걸거나 히터 등을 켜고, 날씨와 뉴스 등의 정보를 운전자가 실시간으로 받아보고, 영상이나 음악 등 각종 콘텐츠를 실시간으로 이용하며, 음성으로 내비게이션을 조종하고 전화를 거는 기능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이미 휴대전화와 자동차를 연결해 e메일을 확인하고, 문자메시지를 음성으로 읽어주는 자동차 광고가 나오고 있다. 무선인터넷과 연결되면 당연히 해킹 위험이 생긴다. 영화에서처럼 내가 운전하고 있는 자동차가 내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고 외부에서 누군가가 내 자동차를 조종할 수 있게 된다. 2020년이면 커넥티드카가 본격적으로 대중화할 전망이다. 걷잡을 수 없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

    ▼ 젠암 소프트웨어가 지금 나와 있나.

    “필요한 사람은 인터넷에서 내려받아 사용할 수 있다. 내가 주도해 연구한 게 스마트폰 같은 스몰 디바이스용 소프트웨어다. 특히 스몰 디바이스용은 CPU나 메모리 용량이 상대적으로 작고, 배터리 용량 등 풀어야 할 문제가 많다. 물론 이런 문제는 다 해결된 상태다.”

    ▼ 스몰 디바이스에 주력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내가 삼성전자 소속이었고, 삼성전자는 휴대전화를 잘 만드는 회사였기 때문에 2005년 당시 다음 세대라 할 수 있는 스마트폰에 들어갈 가상화 기술에 관심을 가졌다.”



    70여 개 국제 특허권 보유

    ▼ 정보가 모두 공개돼 있는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로 창업을 한다는 게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소프트웨어 정보가 모두 공개돼 있긴 하지만, 스몰 디바이스용 젠암은 내가 주도해 개발했기 때문에 거의 유일하게 나만이 이 프로그램 전체를 파악하고 있다. 다른 사람이 기본부터 전체를 다 이해하려면 시간이 한참 걸린다. 더구나 이 프로그램은 CPU 구조를 정확히 알지 못하면 재설계를 하거나 업데이트를 하는 게 불가능하다. 내가 계속 기여해 미래 기기에 적합한 구조로 진화시키려 한다.

    또한, 삼성전자에 있으면서 이 프로그램을 스마트폰에 적용, 구동해내는 기술에 대한 국제 특허를 내가 많이 등록했다. 참고로 젠암 가상화 기술 개발 전까지 삼성전자의 가상화 관련 기술 특허가 없었지만, 2013년 미국 특허 등록 수 기준으로 볼 때, 삼성전자가 젠암 기반 스마트폰 특허로 세계 톱10 안에 드는 가상화 기술 역량을 보유하게 됐다.”

    그는 지난 10년간 가상화 기술 관련 국제 특허 50여 개를 포함해 70여 개 국제 특허를 등록했다. 그뿐만 아니라 현재 40여 개 특허가 미국 특허국에 출원된 상태다.

    ▼ 그래도 안정된 직장을 나와 창업을 결심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오픈 소스 프로그램 사업화에 성공한 사례가 없다. 그걸 내가 해보고 싶었다. 2, 3년 후면 스마트폰과 자동차에서 수요가 충분할 것 같다는 확신도 있고. 젠암(Xen ARM)을 미래 세계에 기여할 수 있게 잘 성장시켜보고 싶다.”

    ▼ 2, 3년 후 열릴 시장을 내다보고 ㈜페르세우스를 설립한 것은 시기적으로 빠른 것 아닌가.

    “3년 후 시장을 선점하려면 기술적 복잡도가 높은 가상화 기술을, 자동차등의 제품에 효율적으로 적용하고 양산 능력을 갖추기 위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그래야 늦지 않다. 그 시대가 더 빨리 올 수도 있다. 올해 안에 기본 모델 개발을 끝낼 계획이다.”

    페르세우스(Perseus)는 메두사를 처치하고, 바다의 괴물 크라켄의 공격으로부터 아르고스국과 안드로메다 공주를 구했다. 서 대표는 신화 속 페르세우스처럼 커넥티드카 시대에 자동차와 승객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며 회사 이름을 정한 이유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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