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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썰매 개척자 강광배

“미친 듯 썰매 위해 살았고 원 없이 이뤘다”

  • | 이영미 스포츠 전문기자

한국 썰매 개척자 강광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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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 강사 출신

강광배 교수는 루지, 스켈레톤, 봅슬레이로 동계올림픽 썰매 전 종목에 출전한 최초의 선수로 IOC 박물관에 기록되어 있다. [동아DB]

강광배 교수는 루지, 스켈레톤, 봅슬레이로 동계올림픽 썰매 전 종목에 출전한 최초의 선수로 IOC 박물관에 기록되어 있다. [동아DB]

강 교수가 썰매 종목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처음엔 썰매가 아닌 스키를 탔다고 들었는데, 사실인가. 

“스키를 처음 접한 건 1991년 무주리조트에서였다. 당시 스키는 부의 상징이었다. 자동차 위에 스키 캐리어를 달고 다니면 부자라고 생각하던 시기였다. 하계스포츠는 88서울올림픽을 통해 발전했지만 동계스포츠는 환경이 너무 열악했다.” 

무주리조트에서 스키를 처음 접했다는 건 직접 탔다는 의미인가. 

“직접 타긴 했지만 무주리조트에 간 건 아르바이트 때문이었다. 처음엔 일부러 스키를 멀리했다. 뭐랄까. 부의 상징과도 같은 스키는 나랑 맞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르바이트생들은 스키를 공짜로 탈 수 있었고 선배들이 일과 마치고 스키장으로 향했는데 난 일부러 마음에 두질 않았다. 어느 날 우연히 식당에서 고등학교 친구를 만났다. 그는 근사한 스키복을 입은 채 스키를 메고 나타났다. 그의 모습과 아르바이트 복장을 한 내가 오버랩되면서 묘한 감정이 생기더라. ‘저놈도 타는데 나라고 못 탈 이유가 있을까?’ 싶었다. 그렇게 해서 스키장을 찾은 것이다.” 

처음 타본 스키, 어떤 느낌이 들었나.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스포츠라고 생각할 만큼 엄청난 스릴과 속도감을 만끽할 수 있었다. 리프트 운영이 마감된 후에는 정상까지 스키를 들고 걸어서 올라갔다. 주위에서 독종이라고 하더라. 스키 선수로도 활약했다. 전북 대회에서 1등을 차지한 후 도 대표로도 뛰었다. 덕분에 눈썰매장을 지키는 일에서 스키 강사로 취업할 수 있었다. 주로 일반인을 대상으로 했다.” 

스키를 잘 탔고 입상도 할 정도였다면 국가대표에 도전하고 싶진 않았나. 


“어릴 때부터 스키를 탄 게 아니라 선수로는 한계가 있을 것 같았다. 스키 강사를 하면서 사람 가르치는 일에 흥미를 느꼈다. 선수로는 국가대표가 되기 힘들겠지만 공부하면 국가대표 감독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스키에 내 인생을 모두 바치려 했다. 그러다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초등학생들을 지도하다가 십자인대가 파열되는 부상을 당한 것이다. 장애 5급 판정을 받을 정도의 큰 부상이었다. 그때 엄청난 절망감에 휩싸였다. 하늘이 무너져 내린다는 걸 처음으로 실감했던 것 같다.”


국가대표의 꿈

스키 강사를 생업으로 여기고 최선을 다한 강광배. 불의의 부상으로 생업을 이어갈 수 없게 된 사실이 그를 절망으로 이끌었다. 방황을 거듭하며 피 끓는 청춘을 보내던 그에게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무주리조트에서 정식 직원으로 채용하려 한 것이다. 문제는 그가 이미 썰매 종목인 루지 국가대표 선발전 공고를 보고 국가대표의 꿈을 갖게 됐다는 점이다. 

“솔직히 루지가 무슨 종목인 줄도 몰랐다. 내 눈에는 ‘국가대표’라는 단어만 띄었다. 스키 국가대표 감독이 꿈이었는데 부상으로 그 꿈을 이룰 수 없다면 루지 선수로라도 태극마크를 달고 싶었다. 그런 와중에 무주리조트에서 날 채용하고 싶다며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정말 고민이 많았다. 내 꿈은 국가대표가 되는 것인데 무주리조트에 취업하면 그 꿈은 영영 이룰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일단 면접을 보려고 전주에서 무주까지 자전거를 타고 이동했다.” 

자전거라니, 그 먼 길을 자전거를 타고 갔다는 건가. 

“생각을 정리하고 싶어서였다. 인생의 향방을 가르는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하는 터라 자전거를 타며 내 미래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양복 담은 가방을 메고 자전거로 산길을 타고 올라갔다. 친구가 무주리조트 앞에 있는 설천이란 곳에 사는데 그 친구네 집에서 샤워를 하고 양복으로 갈아입고 리조트까지 향했다. 리조트 관계자와 면접을 보기 전 내가 먼저 이런 얘기를 꺼냈다. ‘정말 죄송합니다.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이지만 오랜 꿈인 국가대표를 위해 루지 선수가 돼 올림픽에 출전하고 싶습니다. 소중한 기회를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라고. 굉장히 어이없어하신 걸로 기억이 난다. 내가 멘토로 삼던 지도교수님에게 이런 설명을 드렸다가 ‘멍청한 놈’이란 소리를 들어야 했다. 솔직히 내가 봐도 한심했다. 루지 국가대표 선발전에 뽑힐 거란 보장도 없고, 루지 경기장도 없는 한국에서 루지 국가대표에 뽑히겠다며 취업을 포기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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