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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괴감에 무너졌다 바닥에서 성숙해졌다”

진화한 ‘타격기계’ 김현수

  • 볼티모어=이영미 | 스포츠 전문기자 riveroflym22@naver.com

“자괴감에 무너졌다 바닥에서 성숙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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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범경기 때 마이너리그행을 권유받던 상황을 떠올리면, 지금의 입지는 하늘과 땅 차이다. 넘어졌을 때 일어서는 법을 제대로 배운 터라 넘어지는 게 더는 두렵지 않다.
시범경기 타율 1할7푼8리(45타수 8안타), 23타석 연속 무안타. 여론은 그를 마이너리그로 내려 보내야 한다고 성화를 부렸다. 김현수를 향한 구단 측의 압력도 거셌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계약서에 적힌 마이너리그 거부권을 행사하며 버텼다. 감독이 출전 기회를 안 줘도 언제 생길지 모를 기회를 위해 타격 연습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모진 비바람을 맞았으나 생존했고, 8번 혹은 9번타자로 간간이 출전하던 그가 어느 순간부터 팀의 2번타자로 출전 기회를 보장받고 있다.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김현수(28). 메이저리그 데뷔 해에 ‘반전 인생’을 연출했다. ‘격세지감’ ‘파란만장’의 데뷔 시즌이라 하겠다.  

“마크 트럼보가 제게 뭐라고 한 줄 아세요? ‘맹구를 아느냐’고. ‘맹구랑 친하다’고. 정말 웃겼어요. 1루에 출루해서 마크 트럼보한테 (김)현수의 별명인 맹구 얘길 들을 줄 누가 알았겠어요.”



맹구가 돌아왔다

7월 1일 시애틀 매리너스의 이대호는 볼티모어 오리올스와의 경기 후 인터뷰에서 김현수의 별명인 ‘맹구’ 얘기를 꺼냈다. 안타를 치고 나가 1루 베이스를 밟았는데, 볼티모어 1루수 트럼보가 이대호에게 “현수랑 친하냐”며 ‘맹구’라고 했다는 것. 이후 트럼보는 인터뷰에서 “벅 쇼월터 감독이 그 별명을 알려줬다. 시애틀 경기 때 1루에서 이대호를 만나는 순간 그 별명이 떠올라 물어봤다”고 설명했다. 이대호는 “현수가 그만큼 선수들로부터 인정받고 있다”면서 “볼티모어 선수들이 모두 현수를 좋아하는 것 같아 흐뭇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볼티모어에서 김현수는 더 이상 ‘백업 멤버’가 아니다. 쇼월터 감독의 플래툰 시스템 운영으로 인해 왼손투수가 나올 경우 벤치를 지키지만, 대부분의 경기에서 김현수는 주전으로 출전한다. 지난 3월 메이저리그 시범경기 때 마이너리그행을 권유받던 상황을 떠올리면 입지가 하늘과 땅 차이다. 김현수는 어떻게 해서 쇼월터 감독의 생각과 볼티모어 팬의 마음을 돌려놓았을까.

“현수 잘하죠?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이젠 뭐, 걱정할 것도 없어요, 지금처럼만 해주면.”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오승환은 김현수를 만나고 세인트루이스로 넘어온 기자에게 후배의 안부를 물었다. 뉴스를 통해 김현수의 활약을 지켜보고 있다는 오승환은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고 자신의 자리를 찾은 김현수의 노력에 진심으로 마음의 박수를 보냈다. 그게 얼마나 어렵고 고단한 싸움인지 오승환도 잘 안다.



추신수, 이대호의 후배 사랑

“자괴감에 무너졌다  바닥에서 성숙해졌다”

김현수는 “추신수의 조언이 큰 위로가 됐다”고 했다. [이영미]

김현수가 시즌 개막을 앞두고 볼티모어 여론의 냉대와 무시를 받을 때 그를 감싸준 이는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선배들이었다. 다음은 김현수의 얘기다.

“여론에 밀려 마이너리그로 내려가야 할 상황이었어요. 그때 (추)신수 형이 네이버에 연재 중인 자신의 일기를 통해 마이너리그로 가지 말고 버티라는 내용의 글을 실었습니다. 물론 저랑 먼저 통화했고요. 절대 흔들리지 말고 계약대로 이행하고,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도 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당시 의지할 곳 없던 제게 신수 형의 조언은 큰 위로가 됐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해오던 야구를 잊고 있었어요. 한국에서 제가 어떤 선수였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았어요. 신수 형 글을 읽었을 때 비로소 제가 그렇게 형편없는 선수가 아니었음을 깨달았죠. 뭐라도 잡고 싶은 상황에서 큰 위로가 됐습니다.”

추신수는 당시 일기에서 ‘볼티모어는 페어하지 않습니다’란 제목으로 김현수를 마이너리그로 내려보내려 한 볼티모어 구단을 맹렬하게 비판했다. 그중 일부를 소개한다.

‘메이저리그가 모든 야구선수들이 뛰기를 소원하는 최고의 무대인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구단의 선수 관리나 태도도 최고여야 합니다. 이곳 또한 비즈니스의 세계라 감성적인 호소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걸 경험으로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그러나 새로 들어온, 그것도 태평양을 건너온 한국 선수에게 볼티모어가 보이는 태도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저는 현수가 마이너리그로 내려가는 걸 반대합니다. (…) 현수는 마이너리그에서 뛰려고 미국에 온 게 아닙니다.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려고 어려운 결정을 내리고 이곳까지 왔습니다.

현수가 구단의 압력에 굴복해 마이너리그로 내려가면 그가 아무리 홈런을 많이 쳐도, 4할대의 타율을 기록한다고 해도 메이저리그로 콜업돼 한자리를 차지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순수한 실력만으로 빅리그에 올라간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 제가 대표팀에서 본 현수는 실력이 뛰어난 선수였습니다. 그가 메이저리그에 온다면 크게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을 정도로요. 지금 현수는 이곳에서 보여준 게 아직 없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현수의 야구 능력을 시범경기로 평가한다는 건 너무 가혹한 일이 아닐까요.’

김현수에게 실질적 도움을 준 이는 또 있었다. 추신수의 동갑내기 친구 이대호다. 김현수는 5월 18일 홈에서 치른 시애틀 매리너스와의 경기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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