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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했어도 야구에 미친 인생 나 같은 선수 재기 돕고 싶다”

독립야구단 ‘저니맨 외인구단’ 최익성 감독

  • 이영미|스포츠 전문기자

“실패했어도 야구에 미친 인생 나 같은 선수 재기 돕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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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정 향한 미국

“실패했어도 야구에 미친 인생  나 같은 선수 재기 돕고 싶다”

최익성 씨는 독립리그팀 ‘저니맨 외인구단’을 창단해 운영 중이다.[박해윤기자]

여러 팀을 옮겨 다니며 다양한 감독을 만났을 텐데, 꼭 만나고 싶었던 감독이 있었나.
“김성근 감독 밑에서 야구를 해보고 싶었다. 몇 번 기회가 있었는데 번번이 놓치고 말았다. 오갈 데가 없을 때 감독님께 전화를 드려 테스트 받고 싶다고 한 적도 있다. 허락을 받고 찾아갔지만 내 실력을 제대로 보여드리지 못했다. 그 후 다시는 연락하지 않았다.”

2005 시즌 SK와이번스에서 은퇴 후 미국 진출을 시도했다.
“1년 6개월가량 미국에서 고군분투했다. 갖고 있던 승용차랑 집을 모두 팔고 무작정 미국으로 떠났다. 내 야구 인생은 구단이 아닌 내가 직접 마무리한다는 생각에서였다. 선수 생활을 더 이어가고 싶었다.”

SK에서 방출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던 건가.
“전혀. 사실 2005년에 컨디션이 가장 좋았다. 그해 대타로 100타석도 못 들어간 상태에서 홈런을 4개나 때려냈다(오승환 상대 홈런 포함). 플레이오프에서는 5번을 쳤다. 박재홍, 김재현, 이진영, 조원우 등과 다음 시즌을 기약하며 시즌을 마무리했는데 보류선수 명단 제출 마감 1시간 전에 방출 통보를 받았다. 정말 황당하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12월, 추운 겨울에 해고 통보를 받은 선수의 심정이 이해되겠나. 서른 중반의 적지 않은 나이였는데 말이다.”

은퇴를 염두에 둘 만했을 텐데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미국이었나.
“더 이상 한국에선 내 자리가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냥 시간을 보내기가 아까워 무작정 짐을 싸서 미국 LA로 향했다.”

기다리는 사람이라도 있었나.
“전혀 없었다. LA 공항에 도착해 택시를 타고 한인타운으로 향했다. 거기서 하숙집을 알아봤는데 그래도 야구를 한 덕분에 알아보는 분들이 있더라. 그분들 도움으로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인연을 맺었다. 운동할 곳을 찾아봤더니 당시 미국에 와 있던 이문한 삼성 전 스카우트가 독립구단 롱비치 팀을 연결해줬다. 입단이 아닌 연습할 기회를 제공해달라는 내용이었다. 구단에서 허락한 덕분에 그곳에서 3개월가량 훈련을 함께 했다.”

그곳에서 훈련만 한 것인가.
“처음에는 나에 대해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다가 방망이만 휘두르면 계속 홈런을 쳐대니까 감독이 조금씩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나중엔 내게 기회를 줄 테니 팀에 계속 남아 있으라고 하는 게 아닌가. 조건과 대우도 아주 좋았다. 처음에는 꿈인가 생시인가 싶었다. 모텔방에서 혼자 기쁨에 겨워 소리 지르고 뛰어다녔을 정도다.”



호세 칸세코와의 악연

그래서 그 팀에서 선수 생활을 한 건가.
“참으로 안타까운 건 야구를 하면서 내가 가장 좋아했던 호세 칸세코(1980~90년대 메이저리그 최고의 슈퍼스타)가 롱비치 팀을 찾아와 선수 생활을 하고 싶다는 바람에 내게 주어졌던 기회가 하루 만에 사라지고 말았다는 사실이다. 감독은 내게 미안하다면서 샌디에이고에 있는 친구를 소개해주겠다고 말했지만 비자 문제로 귀국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관광비자로 들어갔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비자 문제로 롱비치 팀에서도 뛸 수 없었다는 얘기 아닌가.
“롱비치에서 취업비자를 내주기로 했기 때문에 칸세코만 아니었다면 난 취업비자를 받고 마음 편히 야구에 전념했을 것이다. 정말 안타까운 상황이었다.”

귀국했다가 또다시 미국을 찾은 것으로 아는데.
“미련 때문에 포기할 수 없었다. 다시 비자를 받고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고, 이후 애리조나 캠프로 넘어갔다. 그때 내 일을 봐주던 에이전트가 잠적하는 바람에 6개월가량 고아 아닌 고아가 됐다. 우여곡절 끝에 LA로 돌아와 서재응과 최희섭을 만났다. 어려운 처지에 있던 나를 후배들이 많이 도와줬다.”

그다음 여정은 어떻게 됐나.
“그때는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해 있는 것도 아니고, 에이전트가 책임감 있게 일하는 상황도 아니다보니 자칫하면 사기당하기 십상이었다. 나도 그런 경우에 속했다.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다가 백인 선수 두세 명과 함께 차를 타고 멕시코 국경을 넘어갔다. 에이전트랑 함께였는데, 어느 훈련장에 나를 내려놓고는 돌아오지 않았다. 차도, 돈도 없이 훈련장 창고에서 일주일 동안 그 에이전트를 기다린 적도 있다. 멕시코에선 좋은 기억이 하나도 없다. 돌이켜 보면 롱비치 팀에 있을 때 호세 칸세코의 등장으로 기회가 사라지는 순간부터 미국 생활이 꼬인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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