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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했어도 야구에 미친 인생 나 같은 선수 재기 돕고 싶다”

독립야구단 ‘저니맨 외인구단’ 최익성 감독

  • 이영미|스포츠 전문기자

“실패했어도 야구에 미친 인생 나 같은 선수 재기 돕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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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만 보고 무조건 직진

그런데도 포기하지 않았다.
“비자 기간이 6개월이라 6개월마다 귀국하고 다시 미국으로 들어가기를 세 차례나 반복했다. 1년 6개월가량 미국 여기저기를 쑤시고 다니며 아마추어 야구를 자세히 들여다봤고, 독립리그에서 뛰진 못했지만 그들의 야구 문화를 간접 경험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빡세게’ 훈련하던 습관이 몸에 밴 난 그들이 하루 3시간만 훈련하고도 야구를 잘하는 게 신기했다. 그곳에서 그걸 배운 게 이후 많은 도움이 됐다. 지금까지도 말이다.”

언어 소통은 어떻게 했나.
“그걸 걱정했다면 미국에 갈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멕시코에선 선수들이 날 원숭이 쳐다보듯이 대했다. 스페인어로 얘기하면 난 한국어로 대답했으니까. 사실 선수들과 멕시코로 넘어갈 때 죽음을 각오했다. 사고로 죽는다면 한국에서 교통사고 났다고 생각하고 정신줄 붙잡고 가자는 마음뿐이었다. 정말 그때는 야구만 보고 무조건 직진했다. 다시 하라면 죽었다 깨어나도 못할 것 같다.”

최익성은 자신의 미국행에 대해 “뭔가를 이루려고 간 게 아니라 도전하러 갔다”고 설명했다. 차와 집은 돈만 있으면 다시 살 수 있지만 야구는 시간이 제한돼 있기 때문에 그때 아니면 도전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인생에 점을 찍어야 했다. 어떤 형태로든 도전해보고 싶었다. 대한민국 야구 선수 중에 몇 명이나 그런 도전을 해보겠나. 다른 선수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 미국에서 기회를 잡지 못했고, 그로 인해 실패했다고 해도 난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이건 최익성의 진심이었다.

미국 생활을 모두 정리하고 귀국해선 어떻게 보냈나.
“그때 내 나이가 서른여덟이었다. 이미 돈은 미국에서 다 썼고, 가진 것 한 푼 없는 신세였다. 사실 SK에서 나오기 전 코치 연수 제의를 받았다. 받아들였다면 먹고살 걱정은 없었을 것이다. 야구선수로 더 뛰고 싶은 마음에 모든 걸 정리하고 미국을 찾은 건데, 대가는 혹독했다. 다른 것은 다 견딜 만했지만 경제적인 어려움은 정말 버티기 쉽지 않았다. 주위에서 도와준 덕분에 잘 극복해냈다. 이승엽도 나를 도와준 한 사람이다.”





야구육성사관학교

이승엽이 어떤 도움을 줬나.
“삼성에 있을 때는 별다른 친분이 없었다. 그런데 내 소식을 들었는지 날 찾아왔더라. 승엽이는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국민타자’였고 난 실패한 떠돌이 인생이었는데 내게 ‘밥은 먹었느냐, 운동은 어디서 하느냐, 잠 잘 데는 있느냐’면서 챙겨줬다. 요미우리 코치 연수를 알아봐주기도 했다. 성사 단계까지 갔다가 막판에 틀어졌는데 나보다 더 속상해하고 흥분했던 사람도 승엽이다. 참 고마운 후배다.”

야구육성사관학교는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된 건가.
“한두 해에 계획해서 이뤄진 일이 아니다. 약 7년 동안 기획했고, 2012년 처음 설립해서 3년 만에 본 궤도에 올랐다. 이전의 나처럼 갈 곳 없는 선수들의 재기를 돕고 실력과 인성을 함께 어우르는 시스템을 통해 선수들을 발굴해내고 싶었다. 만약 야구만 가르치려 했다면 굳이 ‘학교’란 단어를 붙이지 않았을 것이다. 인성과 실력을 모두 갖춘 선수로 키우고자 사관학교란 명칭을 단 것이다. 야구만 하는 선수들은 야구로 성공하지 못하면 갈 곳이 없다. 그걸 염두에 두고 사관학교를 통해 좋은 인재를 발굴하고 성장시키려 했다.”

안 좋게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떤 이들은 ‘고액과외’라느니, 어린아이들 ‘삥’ 뜯는다느니 하며 비난을 했다. 독립구단을 만들 때는 선수들 인생을 다 망치고 있다며 날 비하했다. 설령 내가 돈을 번 게 있다면 그건 모두 재투자됐다. 내가 돈을 벌려고 했다면 굳이 이렇게 욕을 먹으면서까지 할 필요가 없지 않나. 난 야구에 미친 사람이다. 그걸 인정해주면 내게 선수들을 보내고, 믿지 못하면 안 보내면 된다. 사람들은 남 잘되는 건 절대 두고 보지 못하는 습성이 있는 것 같다.”

‘저니맨 외인구단’이란 독립리그 팀은 어떻게 만들게 된 건가.
“전혀 계획에 없었다. 야구육성사관학교를 통해 4명을 프로에 보냈다. 내가 만든 시스템에 자신이 생겼다. 어느 날 실패한 야구선수들이 눈에 들어왔다. 프로에 적응하지 못하고, 또는 저마다의 사연으로 더 이상 프로에서 뛰지 못하는 선수들이 내 주위로 몰렸다. 야구는 계속하고 싶은데 뛸 수 있는 팀이 없는 것이다. 그러다 독립리그 팀인 연천 미라클의 시스템을 연구했다.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야구인들에게 자문했고, 운 좋게 타이틀 스폰서를 구하면서 독립리그를 출범시키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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