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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우의 세상읽기

서울시장 선거는 시작일 뿐이다

서울시장 선거는 시작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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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손(養孫)이라고 했다. 양자(養子)야 흔히 들어온 단어이지만 양손은 낯설다.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는 13세이던 1969년 작은할아버지 집에 양손으로 입적했다고 한다. 그해 작은할아버지의 아들이 사망해 손이 끊기자 큰할아버지가 동생 집안 제사라도 잇게 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그리 했다고 한다. 박 후보의 작은할아버지는 일제(日帝) 말기에 형을 대신해 징용을 갔다가 행방불명이 됐다고 한다. 당신 대신 아우를 징용 보내야 했던 박 후보의 큰할아버지로서는 그렇게 해서라도 마음의 빚을 덜려 했을 것이다. 양손은 “우리나라에 없는 제도”(김황식 국무총리)라고 하지만 40여 년 전 시골(경남 창녕)의 한 집안에서 양손제도가 있네, 없네, 미리 따져봤을 리는 만무하다. 큰할아버지의 결정에 아버지가 따랐고, 아버지의 어린 자식은 졸지에 작은할아버지의 손자가 됐을 터다.

박 후보가 작은할아버지 집으로 호적을 옮기면서 그와 그의 형(당시 17세)은 둘 다 외아들이 되었고, 이는 훗날 병역 혜택으로 이어졌다. 박 후보는 부선망 독자(父先亡 獨子·아버지를 일찍 여읜 외아들) 규정에 따라 보충역 판정을 받고 1977년 8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보충역으로 병역을 마쳤다. 당시 행정착오로 박 후보는 6개월이 아닌 8개월을 근무했다고 한다.

한나라당이 문제 삼고 나온 것은 박 후보의 아버지가 두 아들의 병역 면탈을 위해 차남의 호적을 옮긴 게 아니냐는 것이다. 홍준표 대표는 “(박 후보의 부친이) 큰아들의 병역 면탈을 위해 아들을 쪼개기 해 두 아들 모두 독자가 되었다. 형제를 위해 아버지가 (호적을) 쪼갠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징용을 갔다던 박 후보 작은할아버지의 행적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1941년 사할린으로 징용 갔다던 박 후보의 작은할아버지는 실제 1936년에 행방불명되었고, 그러니 큰할아버지 대신 징용 간 작은할아버지 손자로 입적했다는 박 후보 측의 양손 경위는 거짓말이라는 얘기다. 이 와중에 나경원 후보의 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을 맡았다가 ‘음주 방송’ 물의로 물러난 신지호 의원은 일본 측 사료를 근거로 박 후보의 작은할아버지는 강제 징용 간 게 아니라 자발적으로 돈벌이 간 것이라고 주장해 또 다른 물의를 빚었다. 신 의원의 말인즉 일제의 조선인 인력동원은 1939∼41년에는 기업체 모집, 1942∼43년엔 조선총독부 알선, 영장에 의한 징용은 1944∼45년에 이뤄졌으니 1941년에 사할린에 갔다는 박 후보의 작은할아버지는 강제 징용 된 게 아니라 제 발로 돈 벌러 간 게 아니냐는 것이다.

이른바 일제의 조선 식민화가 한국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뉴 라이트 식’ 역사 읽기다. 역사를 읽는 데 있어 사료는 중요하다. 그러나 승자(勝者)의 기록만으로 정확한 역사를 주장할 수는 없다. 일제야 모집과 알선, 징용으로 단계별 구분을 했다고 하더라도 당시 식민지 조선 백성들에게는 같은 징용일 수밖에 없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상대 후보를 공격하기 위해 일방의 기록(그것도 일제의 기록)을 무기로 삼아서야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박 후보는 자신의 가계사(家系史)에 대해 “아주 어릴 때 일인데, 할아버지는 징용 안 가셨고 작은할아버지가 대신 가셨고…, 사실은 그것도 정확지 않다. 아버님은 81년에, 어머님은 85년에 돌아가셨다. 들은 게 없다. 큰누님이 연세가 많으신데 누님도 정확히 기억 안 난다고 하신다”고 말했다(10월13일자 ‘조선일보’ 인터뷰).

나는 박 후보의 이 말이 거짓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13살 소년이 병역 기피를 위해 호적을 바꿨다는 얘기냐? 최소한의 합리적인 판단이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손학규 민주당 대표의 항변이 설득력 있게 들리는 이유다. 안상수 한나라당 전 대표는 절을 옮겨 다니며 고시공부를 하는 바람에 징집영장을 못 받아 제때 군에 갈 수 없었다는 취지로 자신의 병역면제 이유를 설명했었다.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해 김황식 국무총리, 원세훈 국정원장 등 현 정권의 주요 인사들도 갖가지 사유로 병역을 면제받았다. 그렇다면 한나라당이 박 후보의 병역특혜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것은 그의 말(10월13일 MBC 토론)처럼 “제 눈의 들보는 못보고 남의 눈의 티끌만 탓하는” 격이 아닐지 모르겠다.

10월11일, 국회의 대(對)정부질문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은 김황식 총리를 상대로 ‘박원순 때리기’에 집중했다.

“박원순 캠프에 가담한 한국진보연대의 행동강령은 ‘민중봉기론’이다. 박 후보가 시장이 되면 반미·반국가 투쟁의 전장이 될 것이고, 좌파의 체제 전복을 위한 투쟁기지가 될 것이다. 박 후보는 종북(從北) 좌파에 이용당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박원순 후보가) 모금한 돈 중 재벌의 등을 쳐서 모금한 금액이 300억원가량 된다. 박원순씨는 한 손으로 채찍을 들어 재벌들의 썩은 상처를 내리치면서 다른 한 손으로 ‘삥’을 뜯는 식으로 사업을 운영해왔다. 저잣거리 양아치의 사업방식이다. 그들은 시장경제를 감시하는 대신 기생하고 있다.”(차명진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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