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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의학, 죽은 뇌세포를 살리다!

이제 ‘죽음의 기준’조차 바뀌나

  •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

현대 의학, 죽은 뇌세포를 살리다!

  • 육류 가공 공장에서 나온 돼지 머리는 이미 부패가 시작된 상태였다. 사후 4시간이 지난 그 머리에서, 의료진이 뇌를 꺼내 되살려냈다. 죽은 돼지 동맥을 통해 특수제작한 액체를 흘려 넣자 뇌세포 일부가 다시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그리고 이 ‘성공’은 앞으로 인류 문명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게 될까.
현대 의학, 죽은 뇌세포를 살리다!
“줄기세포를 이용해 뇌세포 수백만 개로 구성된 미니 뇌를 만들었다. 이 뇌가 빛 등 자극에 반응하거나, ‘의식’을 갖게 된다면 어떨까. 치료 목적으로 환자로부터 뇌 전체나 일부 조직을 몸 밖으로 떼어낸다면 이 뇌 조직의 소유권은 누구에게 있을까. 뇌를 다른 동물에게 이식해 자라게 하면 이 존재는 사람일까 동물일까.” 

지난해 4월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실린 미국 생명과학자와 법학자 17명의 발표문 내용이다. 당시 학자들은 “인간 뇌 복제가 점점 현실로 다가오는 상황에서 답하기 어려운 문제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 질문들에 대해 미리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질문 가운데 하나는 “만약 손상된 뇌 기능을 회복시킬 수 있다면 ‘뇌의 죽음’이 과연 의미를 갖게 될까”였다. 당시만 해도 상상에 그쳤던 이 질문이, 불과 1년 만에 현실이 됐다. ‘네이처’ 4월 18일자에 따르면, 네나드 세스탄 미국 예일대 의대 교수팀은 죽은 지 4시간이 지난 동물의 뇌에 인공 액체를 주입해 뇌세포 일부를 6시간까지 다시 활성화하는 실험에 성공했다. 사상 초유의 일이다. 

연구팀은 사후 4시간이 지나 육류 가공 공장에서 나온 돼지 32마리의 사체로부터 뇌를 분리했다. 이것을 ‘브레인엑스(BrainEx)’라고 이름 붙인 장치에 하나씩 넣었다. 이후 보존제와 안정제, 조영제, 산소 등을 넣은 ‘벡스(BEx)’라는 일종의 인공 혈액을 만들어 체온과 같은 섭씨 37도 정도로 데운 뒤, 이것을 뇌로 향하는 동맥에 주입했다. 연구팀은 벡스 주입량과 성분 등을 정교하게 조절해 실제 뇌 속에 혈액이 흐르는 것처럼 통제한 뒤 돼지 뇌를 관찰했다.


죽은 뇌에서 되살아난 뇌세포

죽은 지 10시간 된 돼지 뇌를 분리해 해마 부위를 형광물질을 이용해 관찰했다. 왼쪽은 보통의 뇌, 오른쪽은 미국 예일대 연구팀이 ‘브레인엑스’ 기술로 액체를 주입해 일부 뇌세포의 기능을 회복시킨 사진. 신경세포(원 안) 등의 분포 차이가 확연하다. [예일대 의대 제공]

죽은 지 10시간 된 돼지 뇌를 분리해 해마 부위를 형광물질을 이용해 관찰했다. 왼쪽은 보통의 뇌, 오른쪽은 미국 예일대 연구팀이 ‘브레인엑스’ 기술로 액체를 주입해 일부 뇌세포의 기능을 회복시킨 사진. 신경세포(원 안) 등의 분포 차이가 확연하다. [예일대 의대 제공]

그 결과, 사후 4시간이 지났음에도 세포 사멸이 멈추고 뇌의 해부학적인 형태와 세포 구조가 생전처럼 유지되는 걸 발견했다. 뇌 속 혈관은 정상 구조를 되찾았고, 뇌 속 면역세포인 글리아 세포도 면역반응을 재개했다. 심지어 신경세포 사이의 접점인 시냅스에서 신호 반응도 포착했다. 한마디로 뇌 일부가 세포 차원에서 정상 활동을 했다는 뜻이다. 이런 상태는 사후 10시간째인 실험 6시간 뒤까지 지속됐다. 연구팀은 “제약 조건 때문에 6시간 뒤 실험을 중단했다. 실험을 계속했다면 좀 더 긴 시간 지속됐을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다만 연구팀은 이 뇌에서 의식이나 지각의 징후는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뇌세포는 살아 있지만 뇌는 죽은 상태’라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이번 연구를 의학과 기초 뇌과학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먼저 사고 등에 의한 충격으로 손상된 뇌를 의학적으로 연구하는 데 응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세스탄 교수는 “이번 연구 결과는 뇌졸중 등 뇌 손상에 의해 발생하는 증세에 대한 치료법을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아직 세포 차원의 기능만 활성화된 게 한계다. 뇌 전체를 활성화할 수 있을지 여부는 긴 논쟁과 연구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연구팀은 또 브레인엑스 시스템을 뇌의 3차원 연결망 기능을 연구하고 시험할 때 일종의 테스트베드로 사용할 것도 제안했다. 약물에 의한 뇌세포 반응 등을 연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뇌가 활동을 멈춰도 죽은 게 아니다?

실험실에서 줄기세포를 배양하면 지름 수mm의 미니 뇌인 ‘뇌 오가노이드’를 만들 수 있다. 미니 뇌가 의식을 가질 경우에 대비하려면 사전에 윤리적 논의가 이뤄져 있어야 한다. [싱가포르게놈연구소 제공]

실험실에서 줄기세포를 배양하면 지름 수mm의 미니 뇌인 ‘뇌 오가노이드’를 만들 수 있다. 미니 뇌가 의식을 가질 경우에 대비하려면 사전에 윤리적 논의가 이뤄져 있어야 한다. [싱가포르게놈연구소 제공]

이번 연구는 즉각 윤리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논쟁 가운데 하나는 “손상된 뇌 기능을 회복시킬 수 있게 된 시대에 ‘죽음’의 정의가 달라질까”였다. 언뜻 죽음은 설명이 필요 없는 현상 같지만, 실은 정의를 내리기가 쉽지 않다. 심장이 멎으면 죽음인지, 뇌가 활동을 멈추면 죽음인지 등 기준이 모호하다. ‘의식이 사라진 시점’같이 다른 사람이 영원히 파악하기 힘든 기준이 제시될 가능성도 있다. 여러 여건을 감안해 1960년대 이후에는 뇌의 죽음이 사실상 죽음의 기준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인공적으로 뇌를 되살릴 수 있다면, 죽음의 정의 자체가 변할 수 있다. 이 질문은 네이처에 발표문이 실린 1년 전만 해도 가정이었지만, 이번에 세스탄 교수의 연구로 현실이 됐다. 

생명윤리학자인 현인수 미국 케이스웨스턴리저브대 교수는 나아가, 의학 현장에서 죽음을 결정하는 기준이 달라지면서 환자를 위한 이식용 장기 수급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제기했다. 현 교수는 세스탄 교수의 논문이 발표된 날 네이처에 발표한 논평에서 “대부분의 나라가 뇌 기능이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상실된 경우나 순환기가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상실된 경우 법적으로 죽음을 선고한다”며 “수십 년 동안 환자들은 뇌사 선고 환자로부터 장기를 이식받았고 최근에는 심장과 폐 기능이 중단된 환자로부터도 장기를 이식받아왔다. 그런데 뇌에 회복 능력이 없다는 가정에 도전하는 연구가 나오면 뇌를 살리려는 환자가 늘고 이식용 장기 기증은 줄어드는 결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관련 과학의 발달은 뇌 회복을 더 합당한 일로, 장기 기증을 덜 합당한 일로 여기게 할 것”이라며 “두 조치 사이에서 (혼란을 줄이고)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게 하려면 정책결정자, 신경과학자, 환자 등이 참여하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윤리 논란에서 자유로울 것 같은 기초의학 분야에서도 논란거리가 있다. 연구팀은 죽은 동물의 뇌세포 일부를 브레인엑스로 활성화한 뒤 약물이나 의학 실험에 쓸 수 있다고 밝혔다. 누구나 먼저 떠올릴 ‘뇌사자 회생’보다 이 목적을 더 강조한 것으로 보아, 상대적으로 윤리 논쟁에서 자유로운 목적을 좀 더 강조해 논란을 극복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과학계에서는 이 대목조차 과연 윤리적으로 정당하냐는 질문을 던진다. 이번 연구를 지원한 미국국립보건원(NIH)의 크리스틴 그레이디 임상센터 생명윤리학과장은 연구가 발표된 날 네이처를 통해 “브레인엑스가 뇌 손상이나 질병의 비밀을 풀고자 만든 강력한 도구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사용하는 데는 윤리적 책임이 따른다”며 “기초과학의 새로운 장을 여는 과정에서 만날 수 있는 잠재적 윤리 이슈를 연구자와 신중히 탐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술 발달에 따른 윤리적 논의 진행해야

류영준 강원대 의대 교수는 “기존의 윤리 프레임으로 설명할 수 없는 뇌과학 연구 사례가 늘고 있다.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뇌 오가노이드(미니 인공장기), 뇌 영상을 통한 마음 읽기, 사지마비 환자를 걷게 하는 기술, 머리 이식 등의 중요한 윤리적 쟁점을 다루고 있다”고 말했다. 

신경윤리학자들은 뇌 분야 쟁점이 서로 긴밀히 연관된 만큼 긴 안목에서 폭넓게 다뤄야 한다고 주장한다. 류 교수는 “예를 들어 몸을 원하는 인공지능(AI)의 등장이나 인공 자궁을 통한 출산, 인간 복제, 기억 저장, 신체 대체 등은 모두 복잡하게 서로 얽혀 있다”며 “이를 고려해 기술 발달에 따른 윤리적 논의를 함께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동아 2019년 6월호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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