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호

보고 만지고 즐기는 관광형 친환경 축산

‘6차산업’ 유기농 축산 선도하는 안성팜랜드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입력2013-06-21 10:03: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보고 만지고 즐기는 관광형 친환경 축산

    안성팜랜드 전경. 독일풍의 건물들이 이색적이다.

    지난해 우리 국민 한 사람의 육류 소비량은 40.5kg, 1995년에 비해 딱 2배 늘었다. 잔칫날에나 고기 구경을 하던 건 옛날이야기. 이제 축산물은 엄연히 한국인의 ‘식량보급원’으로 자리를 잡았다. 사람들은 그저 육류를 즐기는 게 아니라 좀 더 깨끗하고 질 좋은 고기를 찾는다. 하지만 축산물이라고 하면 여전히 비좁은 우리에 갇혀 꼼짝달싹 못하는 가축들, 더러운 사육장, 분뇨 냄새, 환경오염 같은 것들을 떠올린다.

    요즘 ‘친환경’이 대세다. 초등학생도 ‘환경친화적’이란 말을 예사로 쓴다. 소를 그려보라고 하면 초원부터 그린다. TV에서 본 유럽의 목장이 교본이다. 친환경 작물이 아니면 찬밥 신세가 되는 것처럼 이제 축산물 시장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어온다. 화학비료와 농약을 쓰지 않은 친환경 유기농 작물이 있듯, 항생제를 전혀 쓰지 않고 유기농 사료만 먹고 자란 소와 닭, 돼지 등 유기농 축산물이 백화점 진열장에 올라온다.

    목장이 체험관광지로 변신을 꾀하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가축과 같이 놀고 먹이도 주고 분뇨도 치워보고 고기도 먹을 수 있는 곳. 들판과 사육장이 1차산업인 농업·축산업과 2차산업인 농축산물 가공업, 3차산업인 음식업·숙박업·관광업이 서로 결합한 ‘6(1+2+3)차산업’의 현장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농정공약에도 농축산업의 6차산업 확대, 축산분뇨의 고품질 비료화, 친환경 축산물 집중육성 등이 포함돼 있다.

    축산의 뉴 패러다임

    드넓은 초원에 서 있는 미루나무 한 그루. 푸른 하늘과 맞닿은 초원 위에는 소 양 염소 말 등 가축 여러 마리가 자유롭게 뛰어다니고, 붉은 기와를 얹은 뾰족 지붕의 그림 같은 집들에선 음악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자연, 사람, 가축, 기르는 자와 길러지는 존재의 구분이 힘든 곳. 가축들은 초원의 풀을 먹고 자라고, 그 분변은 유기농 퇴비가 되어 풀을 자라게 하며, 그 풀은 다시 유기농 사료가 되어 가축을 길러내는 곳. 한 줌의 풀도 버려지지 않고 오염물도 나오지 않는 자연과 자원의 선순환이 이뤄지는 곳이 있다.



    유럽이나 호주의 한적한 시골 풍광을 떠올리겠지만, 서울에서 1시간 30분 정도만 가면 이런 공간을 만날 수 있다. 농협중앙회가 운영하는 안성팜랜드와 농협사료 경기지사다. 경기도 안성시 공도읍 일대 129만㎡(39만 평)에 자리 잡은 이곳에선 친환경 축산과 유기농 축산, 농축산 테마관광공원, 체험축산, 신성장동력 육성 등 박 대통령의 농정공약이 실현되고 있다. 6월 5일 축산업의 6차산업화와 친환경 축산 현장을 실제로 보고 느끼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각종 곡물의 파종 절기인 망종이자 ‘환경의 날’이었다.

    오전 10시쯤 경부고속도로 안성IC에서 약 10분 거리에 위치한 안성팜랜드 정문에 도착하자 단체관광을 온 사람들이 매표구 앞에 줄을 서 있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데가 있었네…”라는 말들이 들려온다. 그림엽서에서나 볼 수 있는 풍광이 눈앞에 펼쳐진다. 유럽풍 건물들과 그 뒤로 펼쳐진 초원. 얼마나 넓은지 저 멀리 있는 가축이 작은 점으로 보일 정도다. 입구에 자리 잡은 한우식당들이 출출한 기자를 유혹한다. 그래도 일단은 일이 먼저. 단호하게 돌아섰다. 정문을 통과하니 왼편과 중앙으로 독일풍 건물들이 보이고 오른편에는 분수대와 넓은 광장이 자리 잡고 있다.

    광장 중앙에 비석 같은 것이 눈에 들어온다. ‘한독목장 기념비’. 그 옆에 있는 안성팜랜드 역사관에 들어가니 기념비를 왜 세웠는지 알 수 있었다. 안성팜랜드의 옛 이름은 ‘한독낙농시범목장’이다. ‘한독’은 한국과 독일을 뜻한다. 1969년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독일에서 차관을 들여와 목장을 만든 것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다. 축산업이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했고 당장 허기를 덜어줄 쌀 한 톨이 아쉬웠던 시절이었으니 축산업 발전에 대한 박 대통령의 의지를 짐작게 한다.

    보고 만지고 즐기는 관광형 친환경 축산

    안성팜랜드의 광활한 초원을 누비는 트랙터 마차.

    이후 한독목장은 무수한 낙농가를 육성하고 배출했다. 1980년대에는 낙농뿐 아니라 한우, 돼지, 닭 등 축종별 시범목장으로 변신해 농가에 축산기술을 전수했으며, 1990년대엔 한우 시범사육장, 2000년대엔 유기농 축산 시범사육장으로 탈바꿈했다. 넓은 초지에서 나오는 풀로 유기배합사료를 만들어 자체 공급했다. 사료에는 항생제나 화학물질을 전혀 첨가하지 않았다. 2008년에는 아예 유기배합사료 공장을 만들어 생산, 소비하고 남은 사료를 농가에 팔기도 했다. 안성팜랜드는 유기농 사료 물량이 늘어나자 2011년 말 ㈜농협사료에 유기배합사료사업을 통째로 이관했다. 안성팜랜드 바로 옆에 있는 농협사료 경기지사는 이렇게 설립됐다.

    한독목장이 대단위 가축사육 목장에서 벗어나 농축산테마공원인 안성팜랜드로 탈바꿈한 것은 지난해 4월이다. 지난 40여 년간 한국 축산업을 선도해온 것처럼 이번에도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지난해 안성팜랜드의 하루 최대 방문객은 2만여 명에 달했다. 안성팜랜드 전체 공간(129만㎡) 중 공연시설 관람시설 음심점 역사관 동물원 등 등 각종 시설공간 면적은 20%를 차지한다. 나머지 80%(103만㎡)엔 광활한 초원과 우사가 자리하고 있다.

    자연과 자원의 선순환

    역사관을 나와 바라보니 이 넓은 초지를 하루 만에 어떻게 다 둘러보겠나 싶었다. 황망해하고 있으려니 맞은편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트랙터 마차’였다. 말 대신 대형 트랙터가 끄는 마차로 15~20명이 앉을 수 있는 객차가 달려 있었다. 트랙터 마차는 넓은 초지 이곳저곳을 누비며 손님들을 태우고 내렸다. 안내방송을 하면서 광활한 초원 사이로 난 오솔길을 따라 덜컹거리며 달렸다. 나름 운치가 있어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느낌이었다.

    달리는 트랙터 마차 옆으로는 또 다른 트랙터가 한창 옥수수 파종을 준비하고 있었다. 마차를 모는 트랙터도 조금 전까진 초지에서 일을 하다 빠져나온 거라 했다. 마차에서 잠깐 내려 파종을 도왔다. 내리쬐는 햇볕에 절로 등에 땀방울이 맺혔다. 트랙터가 지나가는 곳마다 커다란 검은색 덩어리가 보였다. 2000여 마리의 소와 250마리의 각종 가축이 지난해 이맘때 배설한 분변을 1년간 발효해 만든 순수 천연 퇴비다. 안성팜랜드 국중현 홍보실장은 “퇴비장에서 1년간 숙성을 해 냄새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트랙터로 계속 퇴비를 뒤집어 엎는데도 정말 잡냄새가 전혀 없었다.

    팜랜드는 단 하루도 땅을 놀리지 않기 위해 2모작을 한다. 늦가을에 호밀을 파종해 5월에 수확을 하면 6월에 옥수수를 심는 식이다. 다른 한쪽에는 다년생 목초도 심어놓았다. 오차드그라스, 알팔파 등 4종. 유채도 심는다는데 이미 꽃은 지고 대는 사료로 쓰여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봄이나 가을에 팜랜드에 오면 볼거리가 더 많을 것 같았다. 다년생 목초는 한 번씩 잘라서 사료로 주면 또다시 잘 자라는 특징이 있다. 뿌리가 살아 있기 때문이다. 모든 작물은 소의 분변으로 만든 퇴비에서 자양분을 받고 자란다. 풀→발효 사료→가축→분변→퇴비→풀의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트랙터 마차를 다시 타고 조금 더 가니 MBC 드라마 ‘마의’의 촬영장이 나왔다.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을 찍은 곳인데, 팜랜드는 실제로 말도 키우고 있으며 승마 체험장도 있다. 요즘 가수 이승기가 주인공으로 나와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 ‘구가의 서’도 이곳에서 촬영 중이다. ‘빠담 빠담’ ‘공주의 남자’ 등도 이곳에서 촬영했다. 드라마 세트장이 곳곳에 아직 보존돼 있다. 광활한 초지와 미루나무가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그림 같은 배경은 앞으로도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볼 수 있을 것 같다.

    보고 만지고 즐기는 관광형 친환경 축산

    드라마 ‘마의’촬영 세트장.

    트랙터 마차에서 내려 가축들이 있는 목장으로 들어갔다. 이곳에선 농림부가 지정한 37종의 가축을 모두 키우고 있다. 소 돼지 말 닭 양 염소 공작새 타조 등 흔히 보는 동물도 많은데 직접 먹이를 주고 만질 수 있으며 함께 뛰어다닐 수도 있었다. 다만 타조는 낳은 알을 인공부화하기 위해 빼냈기 때문에 아주 민감한 상태라 만져보지 못했다. ‘방역’ 팻말을 걸어놓고 외부인의 출입을 차단하는 여느 농장이나 일반 동물원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도회에서 성장한 기자는 가축들을 만지고 직접 사료를 줘본 것이 처음이었다. 사료통을 들고 가까이 가니 염소와 양들이 눈치를 채고 우르르 몰려온다. 처음엔 당황했지만 조금 지나니 염소와 양이 혀로 손바닥을 핥을 만큼 친해졌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겐 경험하게 할 만한 교육적 가치가 충분할 것 같았다. 한쪽에선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견학 온 유치원생들이 함성을 질렀다. 보도콜리라는 품종의 강아지가 프리스비 묘기를 선보이고 있었다. 매일 2~3차례 공연을 하는데 방문객들이 직접 원반을 던지며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기자도 도전했지만 생각만큼 쉽지는 않았다. 원래 개하고 안 친해서 그런 걸까.

    보고 만지고 먹고 즐기고…

    목장 한가운데 방목한 소들에게 다가갔다. 뒷다리에 차이지 않을까? 머리에 받히면 어쩌지? 하고 걱정했지만 소들은 사람들에게 정말 무관심했다. 풀을 주면 꼬리를 흔들고 큰 눈을 껌뻑거리며 받아먹을 뿐이었다. 색깔이 다양했다. 누런 소(한우), 검은 소(칡소), 여러 가지 색깔이 섞인 소(젖소)…. 흰색 한우도 있었다. 백사자, 백호는 봤어도 흰색 소는 처음 봤다. 누런 한우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일종의 알비노 현상 때문이라는 것. 국중현 홍보실장은 “조선시대 문헌에 한우는 지금의 누런색 외에 청색, 흰색, 흑색, 갈색 등 다양한 무늬가 있었다고 나온다. 일제강점기 누런 소 육성정책에 의해 다양한 색의 한우들이 도태됐다”고 설명했다.

    팜랜드에는 정액을 생산하는 씨수소도 있다. 다른 소의 2배는 돼 보이는 우람한 몸집과 다부진 근육은 한눈에도 씨수소처럼 보였다. 따로 큰 우리를 차지한 채 상전 대접을 받고 있었다. 우리 한우와 젖소는 99% 인공수정으로 탄생한다. 좋은 고기와 우유를 생산하기 위해 품질을 계속 개량하려면 인공수정을 할 수밖에 없다. 그중에서 가장 우수한 정자를 가진 수소가 선택되는데 바로 이 씨수소였다. 이 씨수소는 지금껏 전국 12만 두의 암소에게 정액을 공급했다. ‘전국의 수많은 송아지의 조상이 이놈이구나’ 하고 생각하니 다시 한번 눈길이 갔다.

    팔자 좋은 씨수소를 보고 나와 더 큰 동물을 보러 갔다. 말이었다. 29필이 팜랜드에서 태어나 길러지고 있다. 실내승마장도 있는데, 젖소를 키우던 우사를 리모델링한 것이다. 미리 언질을 받았지만 막상 실제로 말을 타려 하니까 겁이 덜컥 났다. 이 말이 100kg에 달하는 내 몸무게를 과연 지탱할 수 있을까? 온갖 고생(?) 끝에 안장에 올라탔고 트랙을 돌았다. 조련사가 “의외로 자세가 아주 좋습니다. 꼿꼿하네요. 목이 성감대이니 만져주면 좋아해요”라고 했다. 용기를 내 목을 만져주니 콧방귀를 뀌며 좋아했다. 그런데 3바퀴를 돌고 나서는 걷는 속도가 눈에 띄게 줄었다. 조련사가 “마차 모는 큰 말을 준비할 걸 잘못했다. 말도 똑똑해서, 무거운 사람을 태우면 게으름을 피운다”고 했다. 결국 5바퀴만 돌고 하차. 내려서도 목을 만져주니 좋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보고 만지고 즐기는 관광형 친환경 축산

    초지 위에 방목된 한우들. 흰색 한우가 특이하다.

    말 사업은 농협이 큰 관심을 갖고 있는 축산업의 신성장동력이다. 팜랜드가 그 주축이자 시작점 노릇을 하고 있다. 승마장은 체험코스와 회원제로 운영되고 있다. 올 3월 시행된 말산업육성법도 농협의 행보에 박차를 가했다. 농협중앙회 축산경제기획부 이용하 과장은 “말은 레저뿐 아니라 축산물, 미용, 약품으로도 활용가치가 뛰어나다. 먹는 양과 분뇨량이 소의 3분의 1밖에 안 돼 경제성도 좋다”고 말했다.

    팜랜드는 넓은 공간을 이용해 방문객들이 농촌을 실제 보고 느끼고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체험공간을 마련했다. 초가집, 민속박물관, 놀이터, 바람개비언덕, 조류관 등이 그것이다. 국궁(國弓) 체험장도 갖췄다. 신궁(神弓)의 나라 한국의 농촌체험관광 코스에 우리 활이 빠질 수 없는 노릇. 10개의 화살을 받아 열심히 시위를 당겼다. 몇 번 빗나가던 화살이 끝내 제 과녁을 찾아 한가운데 꽂혔다. 국궁 지도사는 “오랜만에 보는 모습”이라고 칭찬했고, 주변에선 “역시 무인 집안 후손답다”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기분이 좋다.

    오전 내내 돌아다니며 땀을 흘렸더니 배가 여간 고프지 않았다. 벌써 오후 1시. 정문 쪽으로 돌아와 팜랜드 식당을 찾았다. 독일풍 건물 안에 팜팜식당과 목원식당이 있다. 팜팜식당은 옆에 있는 마켓에서 유기농 한우를 비롯한 전국 브랜드 축산물을 저렴한 가격에 사오면 상차림 가격만 받고 직접 구워 먹을 수 있도록 해놓았다. 목원식당은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를 갖추고 직원이 모든 서빙을 해줬다. 그래도 도회지의 일반 한우식당과 비교하면 가격이 훨씬 쌌다. 목원식당에서 한우를 먹었다. 입에 넣기 무섭게 살살 녹는 맛.

    배를 든든하게 채우고 나오니 철 이른 태양이 뜨거웠다. 차가운 물에 뛰어들어 수영이나 했으면 금상첨화겠거니 했는데, 국중현 실장이 “6월 21일부터 물놀이장을 개장한다. 목가적인 풍경을 즐기고 가축들과 다양한 체험을 한 뒤 수영을 하면서 몸을 식히라는 취지”라고 전했다. 함혜영 안성팜랜드 사장은 “안성팜랜드는 44년 동안 늘 우리 축산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먼저 도입하고 전파하는 선구자 구실을 했다. 이젠 축산업의 6차산업화를 현실화하고 모델로 만드는 데 앞장서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유기농 사료의 메카 농협사료

    안성팜랜드를 나와 농협사료 경기지사로 향했다. 차로 채 5분도 안 걸리는 거리. 사료공장이라고 해서 볼품없는 조립건물에 거대한 기계장치들만 잔뜩 있을 줄 알았는데 웬걸, 이 건물도 독일풍으로 지어져 있었다. 안성팜랜드 경치와 어울리게끔 배려한 것이다. 이동하는 5분 동안 대형 차량소독기의 살균제 세례를 받았고, 도착해서도 개인 방역기에서 소독을 한 뒤에야 공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곳에서도 유기농 사료를 먹는 소들을 키우고 있어 위생에 신경을 많이 쓰는 듯했다.

    농협사료 측은 안성팜랜드가 2003년부터 운영해온 유기배합사료 사업을 2011년 말 이관받은 후 지난해 12월 유기사료 공장을 신축하고 경기지사를 따로 만들었다. 이 공장은 국내 유기사료 공장 중 최대 규모. 유기사료공장이란 유기농 원료를 사용한 사료를 제조하는 공장을 말한다. 소나 돼지, 닭(달걀 포함) 등이 유기축산물 인증을 받으려면 친환경농업육성법에 의해 100% 유기농 원료로 만들어진 유기사료만 먹여 키워야 한다. 유기물질 외에는 단 0.1%의 화학물질이나 항생제도 허용되지 않는다. 축산 선진국 미국의 화학물질 및 항생제 허용기준이 3%인데 우리는 더 까다롭다. 미국으로부터 유기사료 또는 그 원료의 수입이 일절 금지되는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다.

    국내 유기축산 농가는 106곳. 2012년 한우사육 농가 수가 14만2000가구인 것에 비하면 매우 적은 숫자다. 국내에서 유기축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0.1%도 안 된다. 유기농 축산물에 대한 소비자 인식이 선진국을 못 따라간다는 의미다. 김용국 농협사료 경기지사장은 “유기축산이 급성장하지 못하는 데는 무항생제 축산물을 유기축산물과 똑같이 생각하는 소비자의 잘못된 인식이 큰 몫을 한다. 그럼에도 농협이 유기사료 사업에 뛰어든 것은 축산업의 미래가 유기축산에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보고 만지고 즐기는 관광형 친환경 축산

    1. 승마 체험. 2. 소에게 사료를 주다. 3. 국궁으로 과녁을 맞히다. 4. 농협사료 경기지사에서 사료를 포장하다. 5. 양과 친해지다.

    “국내 유기사료의 약 80%는 중국에서 수입해 씁니다. 나머지 20% 정도가 국내에서 생산한 것인데, 농협사료는 농가에 유기사료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유기축산물 시장을 선도하기 위해 이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농협사료는 지난 3월 국제유기농업운동연맹의 국제유기인증(IFOAM)을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취득했다. 또한 HACCP(식품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에 유기농 관리를 접목한 개념의 OCP(유기 및 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Organic Points)를 마련해 시행하고 있다. 이곳에서 생산된 사료는 제주도를 비롯해 전국으로 공급된다. 전 공정이 컴퓨터로 제어되고, 원료의 투입과 운송을 제외하면 모두 기계에 의해 이루어진다.

    멀고 험한 유기농 축산의 길

    보고 만지고 즐기는 관광형 친환경 축산

    철저한 소독. 뒤편의 농협사료 경기지사 건물이 이채롭다.

    사료는 가루(mash)와 펠릿(pellet) 형태로 생산되는데 포장을 하지 않은 상태로 전문차량(벌크차)이 농가까지 운송한다. 소규모 농가는 지대(종이 포대)로 포장해 운송한다. 기자는 소규모 농장에 공급될 사료를 지대에 담는 작업에 참가했다. 각각의 원료들은 큰 탱크의 꼭대기까지 올라가 자동공정을 거쳐 맨 아래쪽으로 내려오는데, 지대를 살짝 벌려 끼워주면 정량이 자동으로 채워졌다. 지대에는 ‘유기농’이라는 글씨가 큼지막하게 쓰여 있었다. ‘피 같은’ 사료를 조금이라도 옆에 흘릴까봐 신경을 곤두세웠더니 안 그래도 더운 날씨가 더 덥게 느껴졌다. 사람도 비싸서 잘 못 사 먹는 유기농 농산물을 가축이 먹는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기자가 직접 포장한 유기농 사료를 싣고 차로 1시간여를 달려 경기도 모처에 있는 A농장에 도착했다. 유기농 사료만 먹는 유기농 산란계(계란을 생산하는 닭)를 사육하는 곳이다. 방목한 닭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일반 양계장은 조그만 케이지에서 어미닭을 가둬놓고 계란을 부화시키지만 이곳은 닭들이 곳곳을 누비고 돌아다녔다. 땅을 파내고 흙 목욕을 하는 닭, 울타리를 따라 걸어 다니는 닭,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구애를 하는 수탉도 보였다. 여기저기서 암탉을 올라타는 모습이 옛 민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했다.

    A농장은 유기농 계란과 무항생제 계란을 생산한다. 김모 A농장 사장은 “유기농 계란은 유기농 사료만 먹고 큰 유기농 닭이 낳는 계란이라 일반 사료를 먹고 자란 닭에서 나온 계란보다 사료 값만 2배가 든다. 그럼에도 판로가 부족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무항생제 계란에서 낸 수익으로 유기농 계란의 적자를 보전하고 있는 형편”이라고 답답해 했다. 김용국 농협사료 경기지사장이 말한 ‘소비자의 잘못된 인식’과 ‘판매점의 마진 폭리’가 농장에선 ‘비용폭탄’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보고 만지고 즐기는 관광형 친환경 축산

    닭에게 유기농 사료를 주고 있는 기자.

    마트나 백화점에서 유기농 계란은 개당 700~800원에 팔린다. 150원쯤 하는 일반 계란보다 5배 이상 비싸다. 문제는 낮은 납품가. 마트나 백화점 같은 판매자가 농장에선 싼 가격으로 유기농 계란을 납품받은 뒤 팔 때는 구매가의 2배 이상을 받고 파니 웬만큼 지갑이 두둑한 소비자가 아니면 유기농 계란을 살 엄두를 못 낸다. 2배나 비싼 사료 값에 제 가격은 못 받지, 닭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다보니 일반 양계장보다 관리비용은 훨씬 많이 들지, 그렇다고 판매점에 제 가격을 쳐달라고 호소하다간 납품을 거절당할 판이니 옴쭉달싹 못하는 형편이다. 하지만 김 사장은 “유기농 축산물 유통시장이 제자리를 잡을 날을 기다리며 묵묵히 유기농 닭을 키우고 유기농 계란을 생산하겠다”고 다짐했다.

    “사업을 접으려고 몇 번을 고민했죠. 하지만 그동안 키운 닭들과 우리 계란을 계속 찾아주는 고객 때문에 포기할 수가 없어요. 농협에서도 여러모로 도움을 주고 있으니 언젠가는 모든 소비자와 판매점들이 유기농 축산물의 가치를 이해하고 찾는 날이 올 겁니다.”

    김 사장이 쥐여준 유기농 사료를 닭에게 뿌려주면서 새삼 ‘유기농 축산이 우리 축산의 미래 신성장동력임엔 분명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고 험하다’는 생각을 했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