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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력특집 | 미완의 합의, 불안한 미래 |

단독 인터뷰 | 반기문 前 유엔사무총장

“트럼프, 상업적 거래로 비핵화 몰고 가선 안 돼”

  • |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단독 인터뷰 | 반기문 前 유엔사무총장

  • ● 냉전 해체 과정 큰 의미, 긴장하고 매의 눈으로 바라봐야
    ● ‘시간 없어 CVID 넣지 못했다’는 트럼프 말 납득 어려워
    ● 지금껏 北이 스스로 약속 백지화한 사실 잊지 말아야
    ● 구체적 비핵화 로드맵 없는 종전 선언은 선후 맞지 않아
    ● 김정은 정권 반인도적 범죄 다루지 않은 것 경악
    ● 한미연합훈련 중단 발언은 일방적, 즉흥적인 듯
    ● 드루킹 사건 정말 화나…‘악성 댓글은 양념’ 대통령 발언 옳지 않아
    ● 글로벌 시민정신 없는 지도자가 국가 분쟁 원인


[조영철 기자]

[조영철 기자]

외교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된 이벤트였다. ‘세기의 회담’으로 불린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한반도에 평화가 성큼 다가오는 듯한 느낌에 월드컵 축구 경기 보듯 밤잠을 설친 이가 많았다. 하지만 평화를 향한 큰 걸음을 내디딘 것은 분명하지만 회담 결과를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적잖다. 종전 선언과 평화체제로 가는 길은 결코 쉽지 않은 길이다. 

‘외교 달인’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의 눈으로 보면 이번 회담은 어떤 성격일까. 그동안 반 전 총장은 북한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발언을 해왔다. 일본 ‘분게이슌주(文藝春秋)’ 7월호 인터뷰에선 “지금까지 북한이 모든 약속을 스스로 백지화한 사실을 결코 잊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2월 대선 불출마 선언 이후 언론 인터뷰를 자제해온 반 전 총장은 격동의 한반도 정세를 진단해달라는 ‘신동아’ 요청을 어렵게 허락했다. 그는 “냉전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만드는 세계적 노력이 시작됐다는 면에서 역사적 의의가 크다”면서도 “북·미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내용을 좀 더 세부적으로 조율해나가야 하고, 우리 모두가 긴장해서 매의 눈으로 바라봐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더 나은 유엔을 위하여

반 전 총장은 유엔 사무총장을 은퇴하고 누구보다 바쁘고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열흘간 해외 출장을 다녀온 반 전 총장을 6월 17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아펜젤러관에서 만났다. 출장 목적은 유엔박물관 건립을 위한 행사 참석, 노르웨이 기후변화 관련 강연 등이었다. 반 전 총장은 지난해 7월부터 연세대 글로벌사회공헌원 명예원장 겸 석좌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인류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글로벌 시민으로 성장할 학생들을 교육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평소 지론에 따른 선택이었다. 지난 2월엔 사회공헌원 주최로 ‘제1회 글로벌지속가능발전포럼’을 개최했다.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이낙연 국무총리, 마윈 알리바바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이 참석해 기후변화, 건강, 교육, 기업윤리 등 당면한 과제에 대한 해법을 모색했다. 반 전 총장은 2500만 명이 접속하는 온라인 강의 플랫폼인 코세라(COURSERA)에 ‘반기문과 함께하는 21세기 지속가능발전’ 강의도 해오고 있다. 

사회공헌원 원장뿐 아니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윤리위원장,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GGGI) 이사회 의장, 중국 보아오 포럼 이사장 등 국제적으로 인정된 직책을 포함해 국내 명예직까지 합치면 18개 직책을 맡아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반 전 총장은 “유엔 사무총장 시절엔 이동하려면 수행원이 많다 보니 항공모함을 움직이는 것 같았는데 요즘은 나룻배를 타고 직접 노를 저어야 하는 처지라 그만큼 힘이 들지만 보람은 총장 시절 못지않다”며 껄껄 웃었다. 

지난해 2월 출간된 유엔 공식 백서인 ‘더 나은 유엔을 위하여’는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의 유엔 10년을 기록한 책이다. 반 전 총장은 여기서 유엔 재직 10년을 이렇게 회고한다. 

‘나는 유엔 본부와 전 세계 동료들의 헌신에 항상 힘을 얻었고, 유엔 헌장의 원칙을 지키다가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희생과 그들이 남긴 유산에 깊이 감동했다. 그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평화, 개발, 인권을 위한 우리의 노력을 강화하는 일이다.’ 

평화, 개발, 인권을 위한 노력을 강화하는 일. 반 전 총장은 퇴임 뒤에도 이 지상 명제를 잊지 않고 고군분투하며 지내고 있는 것이다.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그의 관심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한반도 긴장 현저하게 줄었다’

이번 북·미 정상회담의 가장 큰 성과와 의미는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세기의 회담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지만 긍정적인 면이 많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래 유일하게 냉전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만드는 세계적 노력이 시작됐다는 면에서 역사적 의의가 큽니다. 

하지만 회담 결과 구체적 성과가 결여돼 있다는 점은 아쉽습니다. 미국 정부가 교섭 전부터 강조한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enuclearization)가 없이 ‘완전한 비핵화’라는 애매한 말로 표현된 것이 특히 그렇습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나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완전한 비핵화’라는 말에는 CVID가 포함된다고 했고, 즉시 고위급 회담에서 구체안을 마련해가겠다고 한 것은 긍정적입니다. 6·25 전쟁 이후 남북 간에 긴장이 계속 이어져왔고,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전쟁 우려까지 있었는데, 한반도의 긴장이 현저하게 줄어든 것은 큰 진전입니다. 한 가지 더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앞으로 김정은 위원장이나 북한 지도층이 남한이나 세계를 향해 자의적으로, 예측 불가능하게 도발할 가능성도 크게 줄었다는 겁니다. 북한이 좀 더 책임 있는 행동을 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그만큼 생긴 거지요. 앞으로 세부적인 합의를 더 빨리 이뤄내기를 기대합니다.” 

북·미 간뿐 아니라 남북 간에도 합의를 이뤄가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을 텐데요. 어떤 자세로 대처해야 할는지요. 

“냉전 해체 과정 자체에 큰 의미를 두고, 우리 모두가 긴장하고 매의 눈으로 바라봐야지요. 4월 27일 판문점에서 남북 간에 이룬 역사적 합의는 과거의 어느 남북 합의보다 더 중요한 합의였습니다. 우리 국민도 환호하며 평화로운 미래를 기대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반면 제가 늘 강조하듯이 가슴은 따뜻하게, 머리는 냉철하게 유지해야 합니다. 합의 내용을 이행해가는 과정이나 구체적 합의 내용 등은 냉철하게 검증하고 대비해나가야 합니다.”


한미 간 훨씬 더 긴밀한 협의체 필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맨 오른쪽)은 1991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채택 당시 교섭단체 대표 중 한 명으로 참석해 북한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왼쪽에서 네번째, 당시 소장) 등과 만났다. [반기문 제공]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맨 오른쪽)은 1991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채택 당시 교섭단체 대표 중 한 명으로 참석해 북한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왼쪽에서 네번째, 당시 소장) 등과 만났다. [반기문 제공]

앞으로 과연 비핵화를 CVID 수준으로 해나갈 수 있다고 보시는지요. 

“과거에 많은 조약이나 합의가 있었습니다. 1991년엔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1994년엔 제네바 북·미 합의가 있었지요.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2005년 9월 베이징 6자회담 합의문도 훌륭합니다. 당시 합의문을 보면 올해 판문점 선언이나 싱가포르 선언보다 훨씬 더 구체성을 띠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북한의 일방적인 위반이나 도발로 다 무용지물이 됐습니다. 그런 과거를 보면 우리가 미래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느냐를 알 수 있습니다. 어떤 합의문이든 이행 과정에서 조문을 두고 논란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더더욱 구체적으로 CVID를 명시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간이 없어서 넣지 못했다’고 말했는데, 그것은 솔직히 납득하기 어려운 말입니다. 

앞으로는 한미 간에 훨씬 더 긴밀한 협의체를 만들면 좋겠습니다.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한 것은 한미 간 군사훈련을 중단하겠다고 한 것입니다. 한미 안보동맹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이런 문제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그것도 즉흥적으로 한 것 같아 아쉽습니다. 이것은 미국과 동맹을 가진 일본 같은 나라에서도 우려 섞인 반응이 나오지 않습니까. 그런 것이 부족한 면이고, 걱정되는 면이죠.”


‘믿되 검증하라’

북·미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우리한테는 우리 발목을 잡는 과거가 있고 그릇된 편견과 관행들이 때로는 우리 눈과 귀를 가리고 있었는데 모든 걸 이겨내고 이 자리까지 왔다”고 말했습니다. 과거의 김정일 프레임에서 벗어나겠다는 의도로 분석하는 이들도 있는데요. 북한이 이번 북·미 정상회담에서 한 약속도 과연 어길 가능성이 있을까요. 

“김정은 위원장이 말한 과거의 관행이나 편견은 북한 사회 내부에서의 것이 아니라 미국이나 남한에서 갖고 있었던 편견이나 관행을 말한 게 아닐까 합니다. 그래야 자신을 정당화할 수 있으니까요.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북한이 왜 정상회담에 나오게 됐느냐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북한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려 있었다는 거지요. 그리고 북한이 체제 안전보장을 언급하는데, 그것도 역사적 맥락에서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반 전 총장은 북한이 체제 안전에 가장 크게 위협을 느낀 때가 두 번 있었다고 보고 있다. 첫 번째가 1990년대 초 공산주의 국가가 몰락하고, 독일이 통일되던 때다. 개혁·개방의 혁명적 불길이 들불처럼 번질 때 마지막 분단국가인 한반도에 세계의 이목이 쏠렸다. 

“당시 김일성 주석은 큰 불을 끄기 위해 맞불을 놓았습니다. 1990년 신년사에서 그는 ‘우리도 남북한을 가로막은 콘크리트 장벽을 제거하자’고 합니다. 남북한을 갈라놓은 것은 철조망인데, 무너진 베를린 장벽을 연상시키는 수사를 극적으로 사용한 거지요. 그래서 고위급 회담, 남북 주민의 자유로운 통행 등을 제안해옵니다. 당시 북방정책을 펴던 노태우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여서 대한민국 전체가 흥분했습니다. 이후 총리가 남북을 왕래했고,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와 비핵화 공동선언이 채택됐습니다. 노태우 대통령의 비핵화 선언도 나왔고, 1992년 3월에 남북 핵통제 공동위원회가 설립되는데요. 사실 저도 1991년 비핵화 공동선언을 위한 교섭대표 다섯 명 중 한 명으로 참석했고, 1992년 남북 핵통제 공동위원회에는 부위원장으로 참석했습니다. 그땐 정말 남북을 자주 오가며 이러다 통일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지요. 그런데 2년쯤 지나 개혁·개방 분위기가 조금 가라앉자 북한이 갑자기 모든 관계를 일방적으로 차단했습니다.”


북한 인권 문제 계속 강조해야

반 전 총장은 두 번째로 북한이 체제 위기를 느낀 때가 바로 지금이라고 진단했다. 부시· 오바마 정부에서 계속 대북압박 정책을 펴왔고, 유엔도 10년간 10개의 제재를 가했다. 

“유엔 회원국 중 이렇게 많은 제재를 받은 나라가 없습니다. 핵실험과 미사일 실험이 반복되면서 중국과 러시아도 여기에 동참했고, 북한의 경제가 완전히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지난 4월 핵·경제 병진정책을 중단하고 경제건설에 총력을 집중하겠다고 선언하는 상황이 온 겁니다. 외환도 고갈돼가고요. 지난해 12월 중국 세관 당국의 통계를 보면 북한의 중국 수출 물량이 80%나 급감합니다. 다행히 북한으로선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기회를 잘 잡아서 화해 무드가 조성됐고,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싱가포르 회담까지 이뤄졌으니 같은 민족으로서 환호하고 흥분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다만 레이건 대통령이 말했듯이 ‘믿되, 검증하라(trust but verify)’는 이 과정이 앞으로 더 중요할 겁니다. 이 문제를 다루는 대통령이나 정부의 고위 안보 외교 당국자는 늘 의심을 갖고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미래의 확실한 보장을 위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그것이 지도자의 책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번 회담에서 북한 인권 문제는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습니다. 이 이슈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돼나갈 것이라고 보시는지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인권 문제를 거론하지 않은 것에 대해 전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민주주의의 가치와 이념, 그중에서도 인권 보장을 기치로 내걸어 세계의 지도자 역할을 해온 나라입니다. 그런데 김정은 정권의 용서할 수 없는 반인도적 범죄를 정상회담에서 제대로 다루지 않은 것은 실망스럽습니다. 인권은 인류의 보편타당한 가치입니다. 솔직히 저는 이번에 매우 경악했습니다. 이에 대해선 문재인 대통령도 늘 강조해야 북한이 진정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통일부가 북한인권재단 사무실을 폐쇄한다는 소식을 듣고 또 놀랐습니다. 북한의 인권 실태조사나 관련 연구 등을 위해 필요한 기구의 사무실을 예산 부족을 핑계로 문 닫는 것이 말이 됩니까. 그러고도 우리가 인권 국가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정말 열불이 납니다.” 

남북 간의 휴전 상태가 끝나게 될 종전협정, 법적 제도적 합의인 평화협정까지 가는 데는 어떤 난관이 있을 수 있는지요. 

“원칙적으로 보면 종전 선언도 좋고, 궁극적으로는 평화협정이 체결돼야겠지요. 그런데 일에는 선후가 있습니다. 아직 북·미 정상회담에서 구체적 로드맵도 나오지 않은 마당에 종전 선언부터 하는 것은 선후가 맞지 않다고 봅니다. 더욱이 평화협정은 모든 것이 합의되고 이행되는 마지막 단계입니다. 남북 간에 아직 신뢰가 완전히 생긴 것은 아니고, 이제 겨우 시작하는 단계입니다. 종전 선언 문제는 합의 진전 과정을 보면서 해도 늦지 않습니다.”


‘기회의 신’ 지나갈 때 옷자락 잡아라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9월 11일 오전 청와대 본관 백악실에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을 접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9월 11일 오전 청와대 본관 백악실에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을 접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통일은 비용이 많이 드는 일이니 남북한이 서로 다른 체제를 인정하고 평화롭게 사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역사적 소명의식이 없는 이들이 하는 안타까운 발상이라고 봅니다. 걱정스러운 것은 젊은 층 가운데 그렇게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는 겁니다. 철학자 헤겔은 ‘어떤 역사적 위업도 청년의 참여 없이는 이뤄질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청년들이 좀 더 역사적 소명의식을 가지길 바랍니다. 어떤 기회가 언제 오더라도 통일 기회는 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통일 비용은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통일이 되면 여러 국가가 도와서 북한을 발전시키는 데 기여할 겁니다. 유엔 사무총장 시절 분쟁에서 벗어난 나라의 복구 회의에 여러 번 참가했는데요. 그때 한국도 통일이 되면 사무총장으로서 재건 지원 국제회의를 소집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지나고 보니 헛된 꿈이지만 그런 생각에 공감하는 이들이 있어서 놀라웠습니다. 김용 세계은행총재도 제 말에 크게 공감하며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하더군요. 남북통일이 된다면 냉전체제가 완전히 없어지는 것이니, 전 세계가 호의를 갖고 도와줄 겁니다.” 

한반도의 외교안보에 무관심해 보이던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을 성취해낸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트럼프 대통령은 오바마 정부에 비판적이면서 자신이 다른 능력을 가졌다는 점을 보여주려 했을 겁니다.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싶은 생각도 있었을 거고요. 사실 정치인이면 누구나 그런 욕심을 가질 수밖에 없지요. 더욱이 북한이 사거리가 1만km 이상 되는 미사일을 개발하면서 미국 본토에 직접적인 위협이 될 수 있음을 깨닫고 직접 나서지 않았을까 추측합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에게 주의를 주고 싶은 것이 있는데요. 비핵화 문제를 상업적인 거래로 몰고 가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핵 문제를 외교·안보 관점보다는 미국의 이익이나 사업 관점에서 봤다는 거지요. 

“다분히 그런 인상을 줬습니다. 말이나 행동에서요.” 

8대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비핵화 등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김정은 위원장에게 조언한다면 어떤 말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김정은 위원장은 선대의 지도자들과 다른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독자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국가는 없습니다. 고립해서 주민을 더 불행하게 할 거냐, 아니면 미래의 번영을 볼 것이냐가 바로 김 위원장의 손에 달렸습니다. 이제 겨우 바른 태도를 갖고 세계로 나왔으니 변치 말고 북한 주민뿐 아니라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기여해주기 바랍니다. 누구에게나 한 번씩의 큰 기회는 옵니다. ‘기회의 신’이 지나갈 때 그 옷자락 끝을 빨리 잡고 따라가는 이만이 성공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은 김정은 위원장이 그 옷자락을 잡고 있습니다.”


‘탈원전 정책은 文 정부의 失政’

문재인 정부가 북한 문제 등을 두고 반 총장께 자문을 요청한 적 있는지요.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문재인 정부에 바라는 점이 있는지요. 

“지난해 6월과 9월 두 번 문 대통령을 만났습니다. 전화 통화를 한 적도 있고요. 청와대 참모나 정부 부처 고위직들과도 가끔 만나거나 전화를 주고받습니다. 문 대통령이 적절한 시기에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의 대치 상태를 풀고 화해의 분위기로 가는 단초를 만든 것을 아주 높이 평가합니다. 문 대통령의 진정성과 성의 있는 노력이 결실을 본 겁니다. 

다만 한반도 문제는 남북한 간에만 잘돼선 안 되고, 복합적으로 연계돼 있으니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주변국과도 긴밀히 협의해야 합니다. 서로 이해관계가 다르니 이를 지혜롭게 중재할 필요가 있습니다. 월드컵을 계기로 러시아를 방문하는 것도 아주 좋은 기회입니다. 미국이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는 데 더 큰 능력을 갖고 있지만, 우리가 당사자이니 그 힘을 잘 빌려서 우리가 해결한다는 마음가짐을 갖는 게 중요합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1년이 지났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실정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탈원전 정책입니다. 저는 핵 원리 등에 관해선 비전문가이지만 핵이나 에너지 정책에 대해선 관심을 갖고 직접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남북 핵 문제 협상 테이블에도 나가봤고, 국제원자력기구(IAEA) 대사도 지냈으며,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기후변화 문제도 다뤄봤습니다. 원전의 위험성은 심리적으로 과장돼 있습니다. IAEA 과학자들도 원자력이 가장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라고 합니다. 원전이 줄어들면 전력 수급이 어려워지고, 대체 발전을 해야 합니다. 태양광 등 대안 에너지는 발전량이 적고, 화력발전은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온실가스를 대량으로 내뿜습니다. 그러면 파리기후변화협약에서 한국이 상정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하는 것도 어려워집니다. 또 원전을 수출할 기회가 생겼는데, 우리나라는 원전을 폐쇄하니 그 나라에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신고리 5·6호기 원전 건설을 놓고 공론화위원회가 꾸려져서 결국 원안대로 건설 결정이 내려졌는데, 정부가 잘못된 결정으로 망신만 당한 꼴입니다. 탈원전 정책은 다시 신중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남북 경협 서두를 필요 없어’

남북 경협은 아직도 이른 감이 있는지요. 유엔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등 개발과 관련된 유엔 정책들이 북한의 개혁·개방 과정에서 기여할 여지가 있을까요. 

“북한의 경제 사회 형편이 어려우니 동족으로서 지원하는 것은 마땅한 일입니다. 하지만 아직은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제재가 대부분 묶여 있습니다. 5세 미만 영유아에 대한 인도적 지원 등 긴급한 일은 당장이라도 해야지요. 하지만 인프라 구축 등 원대한 계획이나 개성공단 재개 같은 일은 너무 서두를 필요가 없습니다. 이 분야를 서두르면 북한에 좋은 빌미를 제공하게 됩니다. 북·미 정상회담과 판문점 선언 등의 이행 로드맵이 나온 뒤 진행해도 늦지 않습니다. 유엔 차원에서는 제가 재직할 때부터 사무차장들이 북한을 여러 차례 방문해서 개발 방안을 마련해두고 있습니다. 준비는 다 돼 있는데, 유엔 제재 탓에 손을 쓰지 못하고 있는 거지요.” 

댓글 조작을 해온 드루킹 일당이 지난해 초 반 총장과 관련된 뉴스에도 댓글 조작을 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알고 계신지요. 어떻게 대응하실 계획이신지요. 

“뉴스를 보고 그 사실을 접했는데, 정말 화도 나고, 황당합니다. 저뿐 아니라 다른 정치인들도 피해를 봤을 텐데요. 이런 일은 민주 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드루킹 특검’이 곧 출범하니 철저하게 수사해서 처벌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교훈을 줘야 한다고 봅니다. 언론자유라는 미명하에 다른 사람의 인격을 파괴하는 일은 국민의 마음과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합니다. 유엔 사무총장으로 10년 지내면서 비판도 많이 받고 댓글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우리나라에서처럼 파렴치하게 댓글이 퍼진 곳은 없습니다. 우리 사회의 교육이 잘못돼 이런 상황이 됐습니다. 문 대통령이 과거 조직적인 악성 댓글을 ‘양념’이라고 평가한 적이 있는데, 그것은 옳지 않은 견해라고 봅니다. 신뢰할 수 있는 사회가 돼야 경제도 잘됩니다. 이 문제를 경제개혁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고 봅니다.”


세계시민정신 길러야 나라가 산다

2016년 11월 30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유엔본부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 북한의 5차 핵실험에 대한 제재를 앞두고 연설하고 있다. [유엔 제공]

2016년 11월 30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유엔본부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 북한의 5차 핵실험에 대한 제재를 앞두고 연설하고 있다. [유엔 제공]

한국 사회는 정치적 분열뿐 아니라 경제적 양극화, 청년 실업 등 과제가 산적해 있는데요. 우리 사회에 던지고 싶은 고언이 있는지요. 

“정치 지도자와 교육 지도자의 책임이 매우 중요합니다. 대통령이나 장관 이상의 지도자들이 모범을 보이고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특히 대통령이 국론을 통일시키기 위해 각계각층의 여론을 들어보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 물론 초심을 잃지 않는 것도 중요하고요. 또한 우리 사회에서 무엇보다 교육제도가 너무 갈팡질팡합니다. 이념화된 교사들이 너무 많고요. 교육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 있습니다. 교사는 학생에게 영어 단어나 수학 공식 외우는 것보다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인성을 어려서부터 길러줘야 합니다. 

사무총장 10년 하면서 대부분의 분쟁이 세계 시민정신이 없는 정치 지도자들 때문에 생겼다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지도자들이 열정을 갖고 있지만, 남을 배려하는 정신이 없어요. 패션(passion·열정)은 있지만 컴패션(compassion·동정심)이 없습니다. 나도 중요하지만, 이웃도 중요하고, 이웃이 잘돼야 우리도 같이 잘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세계 시민정신을 가져야 평화와 인류의 보편타당한 가치가 보전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에 유엔 SDGs를 따르겠다는 말 한 마디 없습니다. 이렇게 해서 어떻게 세계 시민정신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이번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압승을 했습니다. 보수의 참패라고 볼 수 있는데요. 혹시 보수진영에서 정계 복귀를 요청해 온다면 어떻게 하실는지요. 

“전혀 관심 없습니다. 지나간 얘기인데요. 지난해 1월 12일 귀국해서 20일간 정치적으로 움직였지요. 그런데 2월 1일 정치는 제가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사이 고민을 많이 했어요. 1월 12일 대한민국과 국민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라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얘기하고, 죽 생각을 했죠. 사실 그때 제가 정식으로 출마 선언을 한 것은 아니었으니까요. 그리고 당시 제 발표문을 보면 저 나름대로 고민을 많이 한 것이 나옵니다. ‘국민의 의견을 들어보는 기회를 갖겠습니다, 그리고 결정하겠습니다, 결정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정치를 하지 않기로 결심한 겁니다. 제가 이제까지 평생 몸담아온 분야가 외교 분야였으니까, 앞으로도 정치에 관여할 생각은 없습니다. 아마, (제가 다시 정치를 한다면) 제 집사람도 펄펄 뛸 겁니다, 허허. 그때 둘이 고민을 많이 했거든요.” 

2016년 12월 유엔 사무총장 퇴임을 앞두고 해외 언론과 인터뷰하면서 “무엇이 나의 조국을 위해 일하는 최선의 방법인지에 대해 생각하겠다”고 말했던 그다. 이후 1년 반이 지났고, 지금 그는 나름대로 최선의 방법으로 조국을 위해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자신이 가진 경험과 능력을 다른 이들에게 들려주고 교육하는 일, 그리고 세계가 좀 더 지속 가능한 발전을 해나가도록 방향을 제시하는 일이다.


신동아 2018년 7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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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인터뷰 | 반기문 前 유엔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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