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호

기업은 깜깜 기부 재단은 엉망 관리

한국 기부문화 진단

  • 정현상 기자|doppelg@donga.com , 김민주 객원기자|mj7765@naver.com

    입력2017-04-06 16:2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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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회사 이미지·의무감으로 형식적 기부
    • 3000만 원 받고도 기부금 0원 공시
    • 2553개 공익법인 중 1665곳 불성실 공시
    • 냉정한 이타주의자 돼야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삼성이 미르·K스포츠재단에 204억 원을 출연한 것에 대해 ‘제3자 뇌물공여’ 혐의를 적용했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구속했다. 이 사건은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이 두 재단에는 삼성 이외에도 현대차, 포스코, 한화, 롯데, SK, LG 등 53개 대기업이 ‘사회공헌기금’이라는 명목으로 거액의 돈을 출연했다. 하지만 포스코, KT 외엔 이런 큰돈을 내면서도 내부 이사회에서 의결(현대차는 이사회 보고)도 거치지 않았을 만큼 깜깜 지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이 구속된 뒤인 2월 24일에야 삼성전자는 이사회에서 10억 원이 넘는 기부금이나 후원금, 출연금을 낼 때는 반드시 이사회의 의결을 거치도록 기준을 대폭 강화했다. SK그룹 역시 10억 원이 넘는 후원금은 이사회 의결을 거쳐 집행하도록 의무화하는 등 대기업을 중심으로 사회공헌기금 운영 투명성을 강화하는 움직임이 확대되고 있다.



    기금 사용처엔 무관심

    기업이 기부를 결정하는 과정도 투명해야 하지만, 이후 그 기금의 관리도 중요하다. 그동안 기업은 재단 등에 기부금이나 출연금을 지원하면서도 그 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공익법인 관련 정보제공·평가기관인 한국가이드스타 김병기 전문위원은 “기업이 기부금 사용처에 관심이 없고, 회사 이미지와 의무감 등으로 형식적인 기부를 하기 때문”이라며 “각 회사의 사회공헌 담당자들 역시 한시적으로 일하다가 다른 곳으로 발령 나는 경우가 많다.

    이에 기업들은 사회공헌기금의 사용처 등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기부금 사용은 공익법인의 몫이다. 돈을 받은 법인이 공익의 목적에 맞게 기부금을 사용하고, 이를 제대로 공시한다면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문제는 우리 사회에 공익법인의 불성실 공시가 너무나 만연해 있다는 데 있다.

    예컨대 나주교육진흥재단의 경우를 보자.
    이 단체는 지역의 인재육성과 지역 교육환경 개선을 위한 사업을 전개하는 교육단체다. 이곳에 LG화학 나주공장이 5년간 매년 3000만 원씩 1억5000만 원의 장학기금을 기탁했다. 나주교육진흥재단이 이 돈을 어디에 어떻게 썼는지 확인하기 위해 국세청의 ‘공익법인 결산서류 등의 공시’ 내용을 확인해봤다. 그런데 나주교육진흥재단의 2015년도 고유목적사업의 수입금액 세부 현황을 살펴보니, 기업·단체로부터 받은 기부금 항목이 ‘0원’으로 되어 있다.

    나주교육진흥재단이 LG화학에서 받은 돈에 대해 제대로 공시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기부금을 기탁한 기업 쪽에서는 돈의 사용처를 정확히 알고 있을까. 이에 대해 LG화학 관계자는 “우리는 ‘젊은 꿈을 키우는 사람 LG’라는 콘셉트로 미래의 주역인 청소년들의 꿈을 키우는 사회공헌 사업을 하고 있다”면서 “기탁한 금액은 대부분 청소년들의 장학금으로 사용되고 있고, 재단으로부터는 ‘결산보고서’를 받아 확인하면서 사후관리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기업이 사후관리를 하고 있다지만, 그것이 제대로 공개되지 않았으니 이해관계자들은 궁금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사회공헌기금을 기부한 단체에서 제대로 공시를 하지 않거나, 구설에 올라서 오히려 기업 이미지에 타격을 받은 경우가 종종 있었다. 예컨대 지난 2013년에는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사무총장이 한 민간단체로부터 받은 기부금을 개인 용도로 사용해 해임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후원자들로부터 ‘유니세프 한국위원회의 신뢰성이 의심된다’는 질책을 받은 적도 있다.



    롯데면세점 102억 내고도 지적

    지난해 4월엔 롯데면세점이 문화예술사회공헌네트워크(아르콘)와 공동으로 서울숲에 116개의 재활용 컨테이너로 구성된 ‘언더스탠드 애비뉴’를 개장하면서 102억 원을 사회공헌기금으로 내놓았다. 이 대규모 사회공헌 프로젝트는 취약계층의 자립과 성장을 돕기 위한 것으로 청소년, 경력단절 여성, 다문화가정, 청년벤처, 예술가 등이 자립하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하지만 이 사업은 시유지 운영 시 경쟁 입찰을 거쳐야 한다는 현행법을 어기고 설립됐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또 오프라인 쇼핑몰 형태의 운영으로 수익사업을 벌인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이에 대해 롯데면세점 측은 “2016년 4월 시작한 언더스탠드 애비뉴 사업에 대해서는 매월 정기적인 미팅을 통해서 보고를 받고 있다. 원래 사업을 시작하고 1년이 지난 후에 성과를 평가하고 다음 해 사업의 예산에 반영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 사업이 적정한지, 기금이 투명하게 사용됐는지에 대해 외부 업체를 선정해서 컨설팅을 진행하는 중이다”며 “우리는  아르콘에 기부한 금액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쓰일 수 있도록 강조하고 있고, 최대한 관심을 갖고 사업을 꼼꼼히 챙기고 있다”고 밝혔다.

    거액을 기부하고도 그 사업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자, 대기업들도 공익법인에 대한 평가와 기부금 사용의 효과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롯데그룹이 지난 2016년 한 해 동안 기부금을 준 23개 재단에 대해 기부 효과와 재단에 대한 평가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면서 “앞으로 더 많은 기업이 어디에 어떻게 돈이 쓰이는지 관리를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공익법인이 개인이나 기업체로부터 받는 기부금은 ‘공익’의 목적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별도의 세금이 부과되지 않는다. 공익법인은 이런 혜택을 받는 대신, 기부금을 정말 ‘공익’에 맞게 썼는지 투명한 공시를 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따라서 미국 등 선진국은 공익법인의 재무관리가 얼마나 투명한지 꼼꼼히 따진다.

    국내에서도 이런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재단법인 한국가이드스타의 평가제도가 대표적이다. 이 단체는 국세청으로부터 공익법인 공시자료를 매년 2회에 걸쳐 제공받는 국내 유일의 공익법인으로 지난 10년 동안 공익법인의 투명성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노력해왔다. 특히, 2월 22일에는 국내 최초로 공익법인의 정보공개 투명성과 재무안전성을 조사해 평가한 결과를 공개했다.


    한국컴패션의 친절한 공시

    월드비전 역시 미국에 국제본부가 있기 때문에 한국의 월드비전에서 모금을 한 후, 미국으로 모금액을 보내는 형태를 취한다. 이는 기부자 처지에서 보면 한국에서 보낸 금액이 100% 고유목적비가 된다. 하지만 이 금액은 미국 국제본부에서 고유목적비로 다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운영비로도 지출된다.

    이에 대해 월드비전 측은 “저희는 사업장에 필요한 만큼 송금을 하고 있으며 인건비도 사업비에 포함돼 있다. 하지만 회계상·법적으로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라면서 “국세청의 공시양식이 세부적으로 나뉘어 있지 않고, 항목에 대한 정의도 나와 있지 않기 때문에 공익법인들이 다른 기준으로 해석해서 올리고 있다. 이에 정부에서 평가기준과 방법을 명확히 정하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고 전했다.

    하지만 한국컴패션은 해외로 보낸 금액을 목적사업비와 관리비로 나누어 공시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이해관계자에게 ‘친절한’ 공시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현재 국세청의 비영리법인 공시양식에는 해외사업 부분에 고유목적사업비와 관리비가 구분돼 있지 않아 양식대로 따르고도 오해를 사게 된다. 따라서 비영리법인이 더 투명하게 기금사용 내역을 공시할 수 있도록 양식이 개선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주장한다. 



    비영리법인 평가 기준 개선돼야

    국세청에 공시하는 공익법인 8585개 가운데 상위 10개 단체가 기부금 전체 금액의 75%를 받고 있다. 그 이유는 공익법인의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아 대기업들이 안정적인 단체에만 기부금을 내기 때문이다. 한국가이드스타 측은 “기부자로부터 신뢰를 받으려면 공익법인이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이 최선”이라며 “그 첫 번째 행보가 바로 ‘자세한 공시’라고 지적했다.

    반면 강철희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공익법인의 투명성을 높이는 평가는 필요하다”면서도 “평가에 대한 국가 기준이 상세하게 마련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이뤄진 평가가 공익법인에 미치는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 한국가이드스타에서 평가 결과를 공개하기에 앞서, 공익법인에 3년 정도 유예기간을 주고 평가하게 하는 게 좋았을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한국NPO공동회의 김희정 사무국장은 “외국은 분야별로 공시양식이 다르고 공익법인을 관리하는 총괄 법인이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공익법인을 총괄하는 주무부처도 없고, 각 재단의 성격에 따라 관리하는 부처도 다르다. 각 재단의 성격이 다른데 국세청의 공시양식은 똑같이 적용되기 때문에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박두준 한국가이드스타 사무총장은 “공익법인의 투명성을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 공익법인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한다”면서 “정부는 좀 더 자세한 공시양식을 만들어 국민에게 정확한 정보를 주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기업들은 기부금을 낼 때 해당 공익법인이 얼마나 공익을 위해 투명하게 활용하는지 충분히 알아봐야 한다. 그리고 공익법인들은 기업과 국민에게 신뢰성을 높일 수 있도록 최대한 많은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르·K스포츠재단 사건 이후

    김병기 한국가이드스타 전문위원은 “처음에는 공익법인들이 ‘왜 내부에서 이런 평가를 하느냐’고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있었다”며 “하지만 미르·K스포츠재단 사건 이후에는 공익법인 스스로도 이런 평가를 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시각으로 바뀌고 있다”고 전했다.

    기부문화에 대한 분석서 ‘냉정한 이타주의자’를 쓴 영국 옥스퍼드대 철학과 교수 윌리엄 맥어스킬은 “수많은 사람이 누군지 잘 알지도 못하는 모금 담당자의 말만 믿고 들어본 적도 없는 자선단체에 기부한다. 하지만 그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는 알 수 없다. 세상에 도움이 될지, 아니면 해를 입힐지, 이타적 행위가 실제로 누구에게 어떤 작용을 하는지 보여주는 적절한 피드백이 필요하다”라고 적었다. 기부하되 꼼꼼히 따져보고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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