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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의 역사

소작농민의 사회적 안전망 대부모(代父母) 제도

  • 백승종|한국기술교육대 대우교수 chonmyongdo@naver.com

소작농민의 사회적 안전망 대부모(代父母)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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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에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을 재산이 전혀 없는 사람이 많다. ‘상속’이란 말 자체가 그들에게는 서러움을 불러일으킬 법하다. 과거 서양에서는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19세기까지도 서양의 지주와 소작농민들은 기독교의 ‘대부모(代父母)’ 제도를 이용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렇다 할 국교가 없는 한국사회와는 달랐다.
소작농민의 사회적 안전망 대부모(代父母) 제도

과거 서양에서는 대부모 제도를 통한 ‘의사가족’ 관계가 생활의 중심축이었다.[REX]

할리우드 액션영화 중에 ‘대부(Godfather)’라는 작품이 있다. 전후 3편이 제작돼(1972~1990)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대도시를 무대로 활동하는 범죄조직 ‘마피아’에 관한 이야기였다.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 지방 출신들로 구성된 악명 높은 범죄조직 마피아는 돈과 권력을 위해 ‘피의 복수극’을 반복한다. 각 파의 두목과 부하들은 ‘대자’와 ‘대부’ 관계로 얽힌 끈끈한 관계다. 부하는 두목에게 절대 충성을 맹세하고, 부하들은 두목으로부터 생존을 보장받는다. 서양 중세의 봉건제도를 떠올리는 ‘의사가족(疑似家族)’ 관계다.

대부모의 관계는 정말 그처럼 대단한 것인가. 이 제도의 근간은 기독교다. 고대 로마시대부터 기독교의 세례식에는 아이 곁에 부모와 나란히 대부모란 존재가 등장했다. 남자아이에게는 대부, 여자아이에게는 대모가 세례식에 참여한다. 본래 대부모는 대자 또는 대녀의 영적 보호와 신앙 강화에 책임이 있다. 대자와 대녀는 대부모를 믿고 따라야 할 의무가 있다. 이로써 그들 사이에는 일종의 부모자식 관계가 성립한다. 가톨릭교회는 아직도 대부모 제도를 중시한다. 가톨릭이 국교로 기능을 하는 여러 나라, 특히 남유럽과 남아메리카 각국에서는 이 제도의 기능이 뚜렷하다.

‘대부모’ 제도는 ‘의사가족’ 관계

대부모 제도는 역사를 통해 변화를 거듭했다. 사람들은 이 제도를 통해 사회경제적 이익을 추구해왔다. 그러나 16세기 독일의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1483~1546)는 대부모 제도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는 이 제도야말로 신자들의 자유를 억압하는 미신적 수단이라고 공격했다. 종교개혁 이후 유럽 사회는 나날이 세속화됐고, 대부모 제도 역시 관습의 일부가 됐다.

지난 수백 년 동안 유럽의 농촌 사회에서는 ‘의사가족’ 관계가 일상생활의 중심축이었다. 유럽의 ‘의사가족공동체’는 대부모 제도를 비롯해 친족 및 의형제 관계가 하나로 결합한 것이다. 그 명칭은 지역마다 다양했다. 대표적인 것이 ‘오스탈(Ostal)’ 또는 ‘카사(Casa)’였다. 현대 프랑스 역사가 에마뉘엘 르 루아 라뒤리는 15~18세기 프랑스 남부의 몽타유 마을을 심층적으로 연구해 명성을 얻었다. 그에 따르면 몽타유 마을에도 ‘도무스(domus)’라 불리는 의사가족공동체가 존재했다.

그 활동은 다방면에 걸쳤고, 마을 사람들의 삶에 큰 영향을 주었다. 빈곤 문제의 공동 해결을 비롯해 고아의 양육, 청소년의 직업훈련, 마을에서 발생한 분쟁의 처리 및 집단적인 복수까지 그 공동체의 기능에 포함됐다. 의사가족공동체가 살인과 집단 폭행 등의 ‘집단 복수’까지 일삼았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지방마다 차이는 있었으나 유럽 각지에 의사가족공동체가 있었다. 그들은 대부모와 대자녀 집안을 친족집단으로 인식해, 내부의 결혼관계를 기피하는 현상도 보였다. 심지어 세례를 주관한 담당 사제의 집안과도 결혼을 금했다.

근대국가의 등장과 더불어 의사가족공동체의 위상에 변화가 나타났다. 국가권력이 확대일로에 있었고, 그에 따라 사적 영역의 축소가 불가피했다. 대부모 제도는 약화됐다. 이후 도시화와 산업화가 속도를 내자, 가족은 직계가족 위주의 단출한 조직으로 재탄생했다. 이런 판국이라 친부모도 아닌 대부모의 역할은 더욱 축소됐다. 큰 틀에서 보면 ‘대부모 제도는 서양 중세의 유물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제기될 정도였다.

그러나 역사란 복잡 미묘한 것이다. 일정한 방향을 따라 직선적으로 발전해가는 역사는 어디에도 없다. 19세기까지도 가톨릭국가 스페인의 식민지, 곧 아메리카 대륙의 여러 나라에서는 대부모 제도가 외려 강화됐다. 대자녀의 일생에 분기점이 되는 중요 행사마다 대부모가 반드시 입회했다. 그들은 대자녀의 양육 또는 교육에도 관여했다. 대자녀는 대부모에 대한 존경심을 가져야 하며, 그들의 지시에 복종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종교심이 거의 사라진 것으로 간주되는 유럽의 사정도 현미경을 들이대면 달리 보인다. 가령 1845년경 프랑스 동부 지역에서도 마을 사람들이 대부모를 통해 의사친족관계를 형성했다. 아마 유럽 각국의 사정도 비슷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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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종|한국기술교육대 대우교수 chonmyongd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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