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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근의 古傳幻談 | 예로부터 전해진 기이한 이야기 |

죽은 문사들의 사회

  • 윤채근|단국대 교수

죽은 문사들의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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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주인공 김낙순의 초상화. 18세기 말~19세기 초 조선의 문인이다.[윤채근 제공]

이 글의 주인공 김낙순의 초상화. 18세기 말~19세기 초 조선의 문인이다.[윤채근 제공]

자신의 삶을 바꾸려 했던 한 젊은 유생의 실패한 문학 결사 이야기다. 고향옥서사(古香屋書社)로 불린 이 결사는 한양 자하문 밑 장의동 김낙순(金洛淳) 집에서 시작됐다. 안동 김씨 명문가 자제 낙순은 궁중의 권력 암투 외엔 어떤 흥미로운 사건도 벌어지지 않는 한양의 나른함에 진저리를 치고 있었다. 생의 절정인 10대 중반을 통과하던 그에게 노론을 이끌던 가문의 어른들은 조선이란 능을 지키는 석상에 지나지 않았다. 변화 없는 한양은 침묵 속에 즐거움을 잃었고 숨 막히는 왕국의 규율을 벗어날 길은 없었다. 

성균관에 들어간 낙순은 수업을 빼먹은 채 저잣거리를 쏘다녔다. 이화방과 운종가를 거치는 은밀한 산보는 초저녁까지 이어지곤 했고 그럴 때면 동소문 백정 거리에 들러 소 도살하는 광경을 오래도록 구경했다. 그에게 학당 공부는 무덤을 파헤치는 도굴 행위였다. 책 속 지식은 생동하는 현실이 증발된 관 속 부장품 같아서 호기심 넘치는 소년의 흥미를 끌지 못했다. 차라리 그는 반촌(泮村)의 활기를 사랑했다. 

성균관을 에워싼 마을인 반촌은 건국 초기 송도에서 이주해온 노비들이 만든 마을이었다. 본디 송도에 있던 성균관의 부속 노비들이 성균관이 한양으로 옮겨올 때 함께 이동해오며 형성한 동네였다. 말씨에서 생활 습속까지 한양 사람과 다른 반촌 노비들은 제 자식들을 학생들의 심부름꾼인 직동(職童)이나 학교 행정을 담당하는 서리로 키워냈다. 반촌은 성균관이라는 어린아이를 외부와 차단해 보호하고 돌보는 젖어미 같은 존재였다. 

한양 구석구석을 느리게 걷던 낙순은 때로 성균관의 통금법인 야금(夜禁)까지 어겨가며 밤나들이에 탐닉하게 되었다. 그는 장의동 본가로 돌아가지 않고 반촌에서 하숙하던 벗들과 밤을 새워 통음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성균관 유생과 성균관 입학을 대기하던 지방 학생이 뒤섞인 반촌 모임의 중심엔 꼭 그가 있게 되었다.


반촌, 1780

정조 재위 4년째이던 1780년 봄, 낙순과 성정이 빼닮은 소년 한 명이 성균관에 들어왔다. 같은 노론 명문가 출신 김려(金鑢)였다. 반촌의 밤 모임에서 마주친 두 사람은 급속히 친해져 권태로운 한양의 삶에 풍류를 되찾아올 궁리를 시작했다.

“엄숙하신 어르신들의 한양을 우리가 바꿔보자.”

저물녘 노을이 비치는 반촌 주점 구석진 탁자에서 김려가 속삭였다. 주자학으로 촘촘히 직조된 무미건조한 조선은 나라 밖에서 불고 있던 변화의 바람을 막기에 급급했고 예의범절에 발이 묶인 조선 젊은이들은 신문물에 목말라 있었다.

“누군가 변화를 일으켜야겠지.”

낙순이 속삭이며 푸성귀 안주를 손으로 집어 입안에 넣었다. 손가락에 묻은 양념을 입에 넣고 빠는 상대의 해맑은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김려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다면 결사가 필요해. 사람도 많이 모아야 하고.”

사람 모으는 거라면 낙순이 제일 잘하는 일이었다. 그는 노론가 자제 가운데 당대의 문장가 연암 박지원을 흠모하던 이상황(李相璜)과 심상규(沈象奎)를 끌어들였고 다섯 살 연상인 남공철(南公轍)을 좌장에 앉혔다.

결사의 이름은 낙순의 옥호(屋號)인 ‘고향옥’에서 따온 것이었다. 김낙순의 장의동 본가에서 처음 결성된 모임에서는 청나라에서 유행하던 통속 산문인 소품문(小品文)을 지어 반촌 하숙촌에 배포했다. 고리타분한 경전이나 전통 고문에 재미를 느끼지 못하던 학생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고향옥서사에서 발간한 소품집은 수없이 필사되며 퍼져나갔고 연암의 ‘열하일기(熱河日記)’의 아성에 도전할 수준에 이르렀다.

모임의 열기가 절정으로 치닫던 1783년 겨울, 김려는 낙순과 단둘이 인왕산에 올랐다. 그날따라 등산 내내 말이 없던 김려는 추위에 얼어붙은 경복궁을 내려다보며 속삭였다.

“우리 한 걸음 더 나가보자.”

의아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낙순에게 김려가 다시 속삭였다.

“연암 선생도 못 가본 곳까지 말이야. 난 그래야겠어.”

그날 밤 김려는 왕실 재산을 관리하던 내수사(內需司) 뒷골목으로 낙순을 이끌었다. 그곳엔 김려가 따로 사귀던 인물 셋이 기다리고 있었다. 먼저 강이천(姜彝天). 당색은 소북(小北)이지만 경기도 안산 명문가 출신으로 낙순처럼 어린 시절부터 임금의 각별한 총애를 입고 있어 대궐에서 여러 차례 조우했던 인사였다. 놀랍게도 그는 천주교도였다. 다음은 서른 넘도록 과거에 낙방을 거듭하고 있던 충청도 단양 선비 이안중(李安中)과 성균관 입학을 준비하던 경기도 남양 선비 이옥(李鈺). 이옥은 낙순보다 다섯 살, 이안중은 무려 열세 살 연상이었다.

김려가 세 사람을 끌어들인 이후 서사 모임엔 보이지 않는 균열이 생겨났다. 당색의 차이는 문제 될 게 없었다. 강이천이 천주교도라는 사실이 잠재된 위험요소이긴 했지만 세상은 아직 천주교에 관대했다. 모임에 불안한 긴장을 초래한 건 김려의 성적 모험심이었다. 그는 중국 염정소설인 풍몽룡(馮夢龍)의 ‘정사(情史)’를 소개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이어(李漁)가 지은 엽색소설 ‘육포단(肉蒲團)’을 한글로 개작해 반촌에 뿌렸다. 심지어 그는 스스로를 다정환희여래(多情歡喜如來)라 부르며 색욕으로 성불하겠다고 큰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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