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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와 미술관

스톡홀름 항구의 화려한 ‘문화 등대’

스웨덴국립미술관

  • 최정표|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jpchoi@konkuk.ac.kr

스톡홀름 항구의 화려한 ‘문화 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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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웨덴 미술의 자존심, 스톡홀름의 스웨덴국립미술관은 현재 공사 중으로 2018년 새롭게 개관한다. 다만 시내 다른 공간에 주요 작품이 전시되고 있으니 재개관 전에 찾아가더라도 아쉬움을 달랠 방편은 있는 셈이다. 설립 200년이 넘은 이 오랜 미술관에선 서유럽과 견주어 밀리지 않는 스웨덴 화가들의 대표작들을 감상할 수 있다. 이 미술관의 또 다른 볼거리는 바로 앞에 펼쳐진 푸른 바다다.
한창 공사 중인 스웨덴국립미술관. 2018년에 재개관한다.[사진제공·최성표]

한창 공사 중인 스웨덴국립미술관. 2018년에 재개관한다.[사진제공·최성표]

처음 가는 미술관에 대해서는 항상 기대에 부풀기 마련이다. 미술관 건물은 어떻게 생겼을까? 무슨 그림이 어떻게 전시돼 있을까? 호기심이 마구 인다. 나름대로 이런저런 상상도 하게 된다.

그런데 미술관에 도착해서 황당한 일을 겪을 때도 있다. 꼭 보고 싶던 소장품이 다른 미술관에 대여 중이거나 공사 중이라 전시장 일부가 폐쇄돼 아주 적은 작품만 볼 수 있을 때엔 실망이 클 수밖에 없다. 나는 스웨덴국립미술관(Sweden Nationalmuseum)에 큰 기대를 안고 스톡홀름을 찾아갔는데, 미술관이 아예 폐쇄돼 있었다. 2013년부터 대대적인 리노베이션 공사가 시작돼 2018년에 새롭게 개관할 것이라고 한다. 미리 확인하지 않은 내 잘못이 크지만 당황스럽기 짝이 없었다.

스톡홀름은 파리나 런던과는 달리 작정하지 않는 한 방문하기 쉽지 않은 곳이다. 그래서 국립미술관을 보지 못하고 스톡홀름 시내만 둘러보려니 매우 허전했다. 그러한 중에도 다행스러웠던 건, 미술관의 중요 작품이 시내의 다른 건물에 전시돼 있다는 점이었다.

미술관 건물은 공사를 위해 가림막이 설치돼 있긴 했으나 건물 전체의 윤곽을 파악할 수는 있었다. 웅장하고 아름답게 지어진 대리석 건물이다. 미술관 바로 앞은 툭 트인 바다라 풍광도 매우 아름답다. 어차피 그림은 없는 미술관. 아름다운 주위 풍광이나 실컷 보고 가자는 생각에 건물 앞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이 미술관 건물은 처음 지어진 후 150여 년 동안 거의 수리하지 못했고, 이번 공사를 통해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할 것이라고 한다. 미술관으로서의 기능이 한계에 다다라 대대적인 공사가 불가피했다는 것이다. 공사 후엔 안전성, 온·습도 조절, 방화시설, 미술품의 운반과 보관, 전시 공간 등에서 국제적 수준의 시설을 완벽하게 갖출 것이라고 한다.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은 항구도시이자 14개 섬으로 구성된 바다의 도시다. 인구는 220만 명 정도. 가까운 섬끼리는 다리로 연결돼 있고, 거리가 먼 섬은 배를 타야 한다.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와 같은 분위기다. 국립미술관은 다운타운에서 걸어갈 수 있는 위치라 찾아가기는 편했다. 미술관 옆 부둣가에서 맥주 한잔으로 미술관을 보지 못한 씁쓸한 입맛을 달랬다.

오늘날 스웨덴은 거의 모든 면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의 앞 순위에 꼽힌다. 그에 비해 미술관은 뒤처진 편이다. ‘미술관 척도’로는 결코 선진국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 그래서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이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왕의 컬렉션에서 출발

스웨덴국립미술관의 역사는 꽤 오래됐다. 국가 전성기인 1792년 구스타프 3세 왕(Gustav III·1746~1792)이 사망하자 그를 기념하기 위해 왕립미술관(Royal Museum)을 만들었다. 스톡홀름의 궁궐에 마련된 왕립미술관이 이곳의 출발이었다. 현재 건물은 독일 건축가의 설계로 북이탈리아 르네상스식 양식을 따른다. 1844년 공사가 시작돼 1866년 완공됐다. 이때부터는 왕립 대신 국립미술관(Nationalmuseum)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19세기 후반에는 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 왕권이 약해졌고 ‘왕립’이 ‘국립’으로 바뀌는 현상이 나타났는데, 이 미술관도 그 흐름 안에 있었던 것이다. 계몽주의 사상과 시민혁명의 영향이었다.

미술품 컬렉션은 16세기부터 시작된 스웨덴 왕립 컬렉션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컬렉션을 처음 시작한 왕은 구스타프 바사(Gustav Vasa·1496~1560)다. 17세기 스웨덴은 주변 국가와의 전쟁에서 상당한 승리를 거두는데, 이때 전리품으로 미술품을 많이 확보할 수 있었다. 18세기에는 테신(Carl Gustaf Tessin·1695~1770)이라는 아주 중요한 컬렉터가 등장한다. 그는 파리 주재 대사를 지낸 영향력 있는 정치인으로, 파리에서 많은 그림을 수집했다. 그의 컬렉션은 곧 왕립 컬렉션에 합류되었고 훗날 국립미술관의 중요한 소장품이 되었다.

19세기 후반부터는 스웨덴 출신 화가의 작품이 집중적으로 수집됐다. 그 덕분에 국립미술관은 스웨덴 미술사의 중요 작품을 많이 소장할 수 있게 됐다. 네덜란드와 프랑스 작품도 많은데, 렘브란트 작품은 이 미술관의 자존심이다. 18세기 작가인 프랑스의 부세(Francois Boucher)와 샤르댕(Jean-Baptiste-Sime′on Chardin) 작품도 중요 소장품으로 분류된다. 미술관은 프랑스 인상파 작품도 남부럽지 않을 만큼 소장하고 있다.

미술관은 중세부터 1900년대까지의 판화 및 드로잉 50만 점을 보유한다. 여기에는 테신이 수집한 2000점 이상의 걸작도 포함돼 있다. 회화와 조각 작품은 1만6000여 점이다. 중세에서 20세기 초까지의 작품인데, 18·19세기 스웨덴 그림이 매우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17세기의 네덜란드 작품과 18세기 프랑스 작품은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것들이다.

디자인 등 응용예술 분야에선 14세기부터 현재까지의 작품 3만여 점을 소장한다. 3분의 1이 세라믹이고, 나머지는 섬유·유리·금속·가구·서적 등이다. 스웨덴 포함 노르딕 작품에 우선권을 두고 수집한다. 여타 국가 작품은 디자인 발달사에서 중요성을 고려한 작품들로 구성돼 있다. 미술관은 예술도서관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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