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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향한 열정과 도전 - 송상현 회고록

美·英·佛에서의 악전고투 1963~1972

장인인 남재 김상협의 조언… “대한민국은 바다로 나가야”

  • | 송상현 유니세프 한국위원회장·제2대 국제형사재판소장

美·英·佛에서의 악전고투 1963~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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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25전쟁을 경험한 내가 어떻게 하면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을까 하는 평소의 생각이 웅대한 해법체계의 건설로 서서히 바뀌어갔다. 검찰과 법원에서는 조심스럽게 임관 의향을 타진해 왔지만 나는 확신이 서지 않아 막연한 대답으로 일관했다.
내가 대학 4학년이던 1962년 고등고시 사법과 15회, 16회를 반년 간격으로 실시하는 바람에 1년에 2차례 사법시험 합격자가 배출됐는데 이들이 한꺼번에 1963년 3월 서울대 사법대학원에 진학했다. 나는 대학 재학 중인 1962년 10월 고등고시 행정과를 통과했고, 졸업 직전인 1963년 2월 사법과에 합격해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사법대학원에 진학했다. 사법대학원은 사법연수원의 전신으로 내가 입학하기 1년 전 신설된 판·검사 및 변호사 훈련기관이다. 

얼마간 출석해 강의를 들어보니 교수진 대부분이 서울대 법대에서 가르쳐주신 은사여서 마음이 편안했으나 강의 내용은 법대 2~3학년 때 배운 내용과 별반 차이가 없는 무책임한 반복이었다. 사법대학원의 준비 부족과 무책임함을 경멸하면서 이곳에서 열심히 공부할 생각을 접었다. 건방진 말이지만 별로 새롭거나 배울 만한 것이 없다는 인상이 강하게 들었으며 일본 판례에 경도되는 현실에도 불만이 있었다. 

사법대학원 운영에 실망한 나는 행정부 관료로 진출하는 것도 괜찮겠다고 여기고는 총무처에 임관 신청을 했다. 나이가 어리더라도 고등고시 행정과 제1부 합격자는 내무부 지방국에서 수습을 마치면 곧바로 군수(사무관)로 나가고 치안국에서 수습 딱지를 떼면 경찰서장(총경)으로 임명하던 시절이다. 이것이 일제강점기부터 내려온 관계 진출 정석이었다. 나는 당시 내각사무처 사무관으로 발령이 났다.


대리석으로 지은 중앙청으로 출근

1965년 군법무관 복무시절. 맨 왼쪽이 나다.

1965년 군법무관 복무시절. 맨 왼쪽이 나다.

나는 사법대학원은 시험 때만 나가고 지금은 헐리고 없는 우람한 대리석 건물인 중앙청으로 출근했다. 지금 같으면 사리에 어긋나는 겸직을 했다고 비난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법적으로도 불가능한 일이다. 단기간의 조건부 임용을 마치고 1964년 초 총무처 직위분류과 제5계장의 보직을 받았다. 내 계에는 직원이 10명 넘게 있었는데 나를 보좌하는 두 명의 주사(6급)는 나보다 나이가 한참 많은 보통고시 출신과 서울대 행정대학원을 졸업해 주사로 공직 생활을 시작한 분이 각각 버티고 있었다. 계원으로는 경무대(현 청와대)에서 보초 서던 경력자, 보통고시 합격자, 다른 부처에서 밀려서 넘어온 분 등 실로 출신과 경력이 다양한 사람들과 타자수 미스 오가 있었는데 모두 나이가 나보다 많았다. 5·16 군사정변 이후 얼마 안 됐을 때여서인지 혁명 주체라고 할 수 있는 육사 8기생이 군복을 입은 채 직속 국장으로 부임하는 등 긴장된 분위기에서 근무했다. 

하루는 아버님이 나를 불러놓고 공무원은 박봉 탓에 자제하려고 해도 유혹에 넘어가기 쉬운 데다 부정부패에 빠져 신세를 망치는 수가 있으므로 매월 내 월급액과 동일한 액수를 용돈으로 줄 테니 절대로 유혹에 빠지지 말고 되도록이면 부하 직원에게 베풀면서 살라고 단단히 말씀하셨다. 나는 아버님이 준 돈으로 당시 거의 유일한 대중용 술인 카바이트로 발효시킨 막걸리를 직원들에게 자주 샀고 비싸서 잘 못 찾는 무교동 보신탕집에 데리고 가 보신을 시켜줬다. 사법대학원 동료들과는 종로5가 쌍과부집에서 두부찌개를 안주로 막걸리를 마시곤 했다. 

사법대학원은 원래 2년 과정인데 3기생인 우리는 1년 반 만에 수료했다. 1964년 9월 수료 직후 광주 상무대에 있던 전투교육사령부 산하 보병학교에 군법무관 훈련을 위해 입대했다. 2대 독자에 해당되므로 사병으로 입대하면 6개월로 병역을 마치는데도 법무관 요원이 극도로 부족하던 시절이기에 법무관으로 징집돼 3년간 복무했다. 전국에서 군기가 가장 세다는 전투교육사령부에 준사관후보생과 동시에 입소했다. 같은 날 입소한 간부후보생들이 우리를 기합 주고 못살게 굴었다. 같은 날 함께 입소했지만 입소시간이 우리보다 약간 먼저이므로 선배로 대접하라는 것이었다. 더구나 우리는 2개월의 훈련을 마치면 중위 계급장을 다는 데 비해 그들은 1년간의 고된 훈련을 받은 뒤 소위 계급장을 다는데도 우리를 아주 힘들게 들볶아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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