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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 장편소설

둔주곡(遁走曲) 80년대

제1부 - 제국에 비끼는 노을 | 11회. 깊고 고요한 거리

  • 이문열

둔주곡(遁走曲) 80년대

[일러스트·박용인]

[일러스트·박용인]

1.
지난 2년 갑자기 ‘뜬’ 작가가 되어 거의 달마다 한 번씩 서울을 오르내리게 되면서, 그에게는 서울에만 오면 자신도 모르게 되풀이하는 무슨 새로운 버릇 같은 게 생겼다. 그곳이 어디든, 그리고 언제든 그가 들르게 되는 빌딩 모퉁이 또는 동네 골목 어귀에 내려서는 처음 발 디딘 곳에서 한동안 머뭇거리며 사방을 흘금거리는 게 그랬다. 

언뜻 보면 자신이 찾아가야 할 건물이나 장소를 미리 알아보고 방향을 확정하거나 그가 들어가려는 골목 또는 큰 건물 양쪽 모퉁이 구조며 진입로 형태, 동네 주거지역으로 이끄는 이면도로 따위를 먼저 살펴두는 면밀함 같기도 했다. 그런데 거듭 같은 일을 되풀이하면서 알게 된 마음속의 실상은 반드시 그렇지도 않았다. 오래잖아 그는 자신에게는 다른 사람들이 낯선 곳에 내렸을 때 잠깐 멈춰 서서 갈 길을 살펴보는 것과는 다른, 어떤 경계와 탐색의 뜻이 있음을 깨달았다. 

작년 5월 서울에 캠퍼스가 있는 대학 학생들의 연합 데모대가 이른바 ‘서울역 회군’을 한 다음 날이었다. 대구에서 열차 편으로 올라온 그는 서울역 출찰구를 나서자마자 바로 역 광장으로 달려 나가 한참이나 광장 일대와 인접 도로, 그리고 대우빌딩과 그 인근 건물 쪽을 유심히 살핀 적이 있다. 하지만 그때도 거의 습관적이었는데, 며칠 뒤 광주 5·18사태에 대한 긴급보도가 매스컴을 뒤덮고 나서야 그날 그가 서울역 광장 부근에서 보고 싶어 하거나 경계하려 한 게 무엇이었는지 불현듯 짐작이 갔다. 

‘내가 서울의 눈치를 보고 있구나. 나도 모르게 저 도시의 땅 모퉁이, 하늘 자락 어디엔가 서려 있을 어떤 기미, 또는 무슨 어림없는 조짐이나 불길한 낌새를 살피고 가늠하려 하는구나. 저 허황된 옛날 사람들처럼 그런 것들을 통해 세상의 눈치를 보려 하는구나.’ 

그리고 근년 들어서는 자신이 처음 그 눈치를 보기 시작한 날도 어렴풋이나마 가늠할 수 있게 되었다. 좀 엉뚱하기는 하지만 그가 세상 눈치를, 세태와 시속의 향방을 가늠하려는 낡은 동양적 처세 기법, 세상을 어느 한 모퉁이의 색조나 소리, 명암, 기운 따위의 이상한 조합으로 읽어버릇하는 옛사람들을 은연중에 흉내 내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습성의 뿌리는 좀 더 깊어, 20대 초반에 들은 어설픈 제3세계론 또는 종속이론의 한국적 변형과 절충이 얽은 일종의 장(場)이론적 체제 논의와 연관이 있었다. 

그가 대학교를 떠날 무렵 하여 흘려들은 그 논의 중에는 아메리카합중국과 소비에트연방을 현대적으로 부활한 동서 로마제국으로 보고, 세계는 하나의 중심과 그 주변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두 개의 제국과 두 주변(또는 변방)으로 얽혀있는 것으로 보는 시각이 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 가운데서 두 제국 사이에 끼어 원래 하나였다가 둘로 나뉜 지역을 특히 두 제국의 변경(邊境)이란 이름으로 주변과 구분해 특화시킨, 어떤 구조주의 체제론 같은 것이었다. 

그 뒤 오래잖아 학교를 떠난 그는 곧 어디가 어딘지 모를 자신의 길을 걸으면서 꼼짝없이 두 제국의 변경으로 지목된 이 땅에 대한 그런 논의와도 멀어졌다. 하지만 마방진(魔方陣)같이 일종의 제로섬에 바탕한 산술적 구조로 한반도 남북 변경 쌍방 간에 일어나는 득실의 교차에 마냥 무심할 수는 없었다. 특히 그 배후의 제국에는 언제나 그 득실이 두 배로 부풀려져 수용되는 ‘마(魔)의 산술’은 유신 직후 황황히 보따리를 싸서 산사(山寺)를 내려가던 그의 의식에 잠시 무슨 세찬 섬광처럼 스쳐간 적도 있다. 


둔주곡(遁走曲) 80년대
두 제국은 이 분단된 변경 체제에서 자신의 몫을 잃게 되면 하나만 잃는 것이 아니라 잃은 그 하나가 상대 제국에 보태짐으로써 두 개를 잃는 것이 된다. 따라서 같은 해 북쪽 김정일이 뒷날의 세습에 이르는 사다리에 첫발을 올려놓게 된 것이나, 남쪽 박정희가 거침없이 유신의 길로 접어들 수 있게 된 것은 바로 그 ‘마의 산술’ 때문이 아니었을까. 장(場)을 넓혀 말하자면, 소비에트제국 수상들이 동유럽 위성국의 폭압적인 장기집권자들을 언제나 ‘친애하는 동지’로 뜨겁게 포옹하고, 아메리카제국의 외교가 중남미의 군부 쿠데타 독재자들과 수십 년째 흥겹게 왈츠를 추며 돌아가는 것도. 

그러나 세상으로 돌아와 고단한 성년기를 맞이하면서 보낸 일고여덟 해는 그런 식으로 한가하게 세상을 둘러보고 어떤 조짐이나 기미를 살펴 거기에 자신을 맞춰나갈 여유가 없었다. 곧 사회적 용도를 확정해야 하는 자신의, 뭔가에 내몰리는 것 같은 처지 말고도 모셔야 할 노모와 돌보아야 할 처자를 이끌고 헤쳐나가야 할 남루한 삶이, 잡박한 세상사 너머의 미묘한 조짐이나 기미에까지 거창하지만 허황되기 그지없는 눈길을 보낼 여유를 주지 않았다. 

그러다가 평생을 머물러도 괜찮을 것 같다는 일자리를 얻고, 마침내 이제 더는 바뀔 것 같지 않은 자신의 용도가 확정되자 ‘지금, 여기’ 보다는 ‘앞으로, 저기’를 흘금거리는 이전의 습성이 되살아났다. 이제 다시 세상은 어떻게 변해갈까. 언제까지 지금의 인식 틀로 우리가 사는 세계를 이해하고 닥쳐올 변화의 기미나 조짐을 포착할 수 있을까…. 그러다가 재작년 7월 미국 대통령 카터의 방한을 전후해 다시 저만치 거리를 두고 ‘앞으로, 저기’를 가늠하고 헤아리게 되면서 예전의 그 낡은 체제론을 엉뚱하게 되살렸다. 

그가 ‘제국의 노을’이란 좀 거창한 개념을 변경 체제의 한 관점으로 삼아 변하는 세계를 읽기 시작한 것은 1975년 미국이 월남전에서 철수할 때였다. 좀 성급한지 모르지만, 그는 미국을 휩쓸던 반전운동과 히피 문화를 아메리카제국에 비끼기 시작한 노을로 예감했고, 마침내 미국이 월남에서 패퇴하고 언론조차 저 사람이 왜 대통령 선거에 나왔는지 모르겠다던 카터가 백악관에 입성하자 거기 걸린 성조기 뒤로 하기식을 재촉하는 벌건 노을을 본 느낌이었다. 

로마제국의 번성기를 신통찮은 철학자 황제가 닫더니 아메리카제국에는 어쭙잖은 도덕주의 대통령이라니…. 그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지방 신문사 편집기자로 흘금흘금 그 뒤의 변화를 살피는데, 철권통치를 일삼던 헤롯을 로마군단 철수로 위협하며 펼쳐보려던 철학자 황제의 이상주의는 관철하지 못한 채 어수룩한 헤롯의 부장(部將)만 돌게 해 앞뒤 없이 10·26을 끌어내고 12·12에서 5·18을 거쳐 오늘의 난판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그날 그가 보신각 옆에서 택시를 내려 바라보고 있는 것은 시간적으로건 공간적으로건 그런 거시적인 조망이 아니었다. 1981년 6월 중순의 대한민국 서울 종각 앞 사거리에서 사방으로 넓게 터진 거리를 아무런 선입견 없이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낮 12시 무렵이라 행인도 많고 차량 행렬도 신호등에 따라 떼 지어 밀려왔다 밀려갔다. 그러나 그의 의식에 닿아오는 어떤 변화나 이상의 조짐도 없고 사거리 모두가 그저 깊은 강물처럼 고요하게 흘렀다. 여럿이서 함께 내는 일상의 소리는 시끄럽지 않고 그 움직임도 분주하거나 번잡하지 않다. 잠시 후 그는 종각 옆 이면도로로 접어들어 출판사 건물로 걸음을 옮겼다.

2. 
중세의 성탑 같은 출판사 건물 3층 편집실로 들어가니 무엇 때문인가 방금 손을 씻고 안쪽 편집회의실처럼 쓰는 공간으로 가던 사장이 그를 반기며 자신이 가던 쪽으로 끌었다. 얼결에 끄는 대로 가서 보니 회의실에는 ‘오늘의 문학’ 편집위원 셋이 다 나와 있고, 편집부장과 홍보부장까지 모여 있었다. 

“무슨 중요한 회의가 있는 거 아닙니까? 제가 함부로 끼어 앉을 자리가 아닌 거 같은데요.” 

그를 안쪽으로 밀어 넣고 그 바깥 자리에 뒤따라 와 앉는 사장에게 그가 엉거주춤 선 채로 물었다. 

“아, 우리 출판사 회의에 이 작가가 참석 못 할 자리가 어디 있어요. 더구나 그의 시 전집을 내고 유작과 산문집 판권까지 가진 우리 출판사에서 제정하는 문학상인데. 앞으로 이 나라 제일의 권위를 가진 시문학상이 될….” 

그 말을 듣자 그 자리가 무엇 때문에 모인 자린지 알 것 같았다. 1960년대 말에 교통사고로 죽은 참여시론의 대변인이며 저항시인으로 불리기도 하는 시인의 이름을 빌려 문학상을 제정하는 회의 같았다. 출판사를 들락거리며 어깨너머로 듣기로는, 기금 일부는 유족 측에서 내고 매년 하는 시상식 상금은 그 시인의 시 전집과 산문집 판권을 가진 출판사가 인세로 충당하는 형태였다. 하지만 그 때문에 그는 더욱 다급해져 그 자리에서 빠져나가고 싶었다. 

“그런 자리라면 정말로 저는 낄 데가 아닌 자리 같습니다. 편집부로 가서 제 연작 중단편집 ‘그 귀향을 위한 영가(靈歌)’ 교정지나 훑어보고 있지요.” 

하지만 사장은 평소 같지 않은 진득함으로 그에게 쉽게 길을 내주지 않았다. 

“이 형도 문청 시절에 먼저 좋은 시인이 되고 싶었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건 옛날얘기죠. 스물도 되기 전의 훨씬 아이 시절에. 이제는 그때만큼 좋은 시를 볼 줄 아는 안목조차 없습니다.” 

그때 안쪽에 앉아있던 편집위원 민 교수가 펼쳐놓고 있던 원고와 책자를 주섬주섬 거두며 그를 보고 말했다. 

“이 작가. 이왕 온 거 그냥 거기 앉으시오. 그 문학상 얘기는 벌써 끝났어요. 이번 주말 유족 대표 만나 시상(施賞) 관리관계 협약만 마무리하면 됩니다.” 

편집부장도 치아 교정 장치를 제거한 뒤로 눈에 띄게 희고 가지런해진 이빨을 마음껏 드러내고 웃으며 민 교수를 거들었다. 

“교수님 말씀대로 일단 거기 앉으세요. 우리도 이 작가님한테 궁금한 게 많아요. 은근히 걱정되는 일도 있고…. 사장님께서 이 작가님을 코너에 몰아넣고 앉히려는 것도 이번에 제정할 시 문학상 문제를 의논하기보다는 그쪽 동네 일을 물어보시려는 걸 거예요.” 

“맞아. 그래. 그간 이 형은 별일 없었어요? 물론 별일 없으니까 이리 나타났겠지만, 정말 거기는 아무 일 없었는지 모르겠네.” 

그래도 그는 사장이 무얼 묻는지 얼른 짐작이 가지 않아 사장에게 되물었다. 

“뭘 말입니까? 저한테 무슨 일이 벌어져야 하는 건데요? 여기 계신 네 분 모두가 걱정스럽게 쳐다볼 일이.” 

“이 사람 보게. 정말 별일 없는 모양이네. 아니, 이 형, 이 작가. 근자에 누가 우중충한 건물에서 호출한다던가, 갑자기 검은 지프차가 와서 타라 소리 않던가요?” 

그런 사장의 물음에 그도 문득 꺼림칙한 기분이 들어 웃음기를 거두며 물었다. 

“왜요? 누가, 무슨 일로 저를 잡아간답디까? 어디 신문에 그렇게 나왔어요? 아니면 방송에서 그리 불어댑디까?”

그가 얼결에 덧붙인 반문 때문인지 민 교수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농담까지 하는 걸 보니 정말로 아무 일 없는 거잖아? 우리가 공연히 얼어 지레짐작으로 애먼 사람 놓고 태산같이 걱정한 거 아냐?” 

그러나 강 부장은 아직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는 듯 낮고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한해록 작가 필화 사건은 알고 계세요? 이 작가님이 지난달에 역사물 연재를 시작한 신문사에 현대물 연재를 하고 계시던 작가, 아시죠? ‘우리시대 작가상’ 수상으로 보면 이 작가보다 두 해 선배가 되기도 하는.”
 
그 물음에 그가 놀라 움찔하며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아, 그 한 선배. 잘 알지요. 여기서도 한번 만나봤잖아요. 재작년 제3회 ‘우리시대 작가상’ 수상식 때. 그날 뒤풀이 때 술 한 잔 빡세게 마시고 헤어졌는데요.” 

“그럼 그 소문은 들었소? 한 작가 필화로 남산에 끌려간 거.” 

그때 지금까지 무언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를 살피던 민 교수가 차분한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남산으로 끌려갔는지는 모르지만 어딘가 연행되어 가서 구금됐다는 소문은 들었습니다. 대구에서 사내(社內) 뉴스 통으로. 그리고 저쪽 신문사 사람들 가운데도 몇몇 보이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거까지는 멀리서도 들어 알고 있었고. 안 그래도 이따가 그 신문사 한번 가볼 작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작가, 지난 월말인가, 그 신문사에 가지 않았소? 일간 연재소설 첫 달치 반응이 어떤지 들어본다면서. 내가 아는 대로 손꼽아보니 그때 그 동네는 벌써 일이 터진 뒤가 되는데.” 

그때 사장이 영 알 수 없다는 얼굴로 그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 말에 그가 어떤 섬뜩함까지 느끼며 이제 겨우 보름밖에 안 된 지난 5월 마지막 주말을 떠올렸다. 역사물 연재 첫 한 달치 독자 반응을 듣고 싶어 신문사로 찾아갔는데, 편집국장 대리 겸 문화부장으로 와 있는 분도 자리에 없고, 멀지 않은 부서에 무슨 위원으로 옮겨 앉은 전 문화부장도 안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원고를 처리하던 연재소설 담당기자도 없어 자리에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물어 보았으나 모른다고 하며 한숨을 쉬는 쪽이 더 많았다. 누군가 하나가 어딘가 좋지 않은 곳에 불려간 것 같다는 대답을 했는데, 무언가 겁먹고 움츠러든 기색이어서 붙들고 캐묻기가 나빴다. 

좀 이상하지만 토요일이라 그러려니 여기며 이번에는 3층 계간 문예지 사무실 쪽으로 올라가 보았다. 장편분재 ‘황제 만세’는 아주 성공적으로 끝난 것 같지만, 그 계간지 쪽에서 수합한 총평도 궁금했다. 그런데 출판국 분위기는 더욱 썰렁했다. 주간도 보이지 않고, 원고 교정지 들고 다니며 신나는 듯하던 편집기자도 안 보였다. 그러다가 ‘황제 만세’ 애독자이던 편집국 기자 한 사람을 만나 더욱 알 수 없는 소리를 들었다. 

“이상한 건요, 한 달 전에 편집국 그만둔 선배 기자 하나도 같이 달려간 모양이에요. 좀 전에 그 가족 된다는 분이 출판국장님 찾아와 그 선배가 새벽에 연행되어 간 얘기를 하며 알아봐달라고 하더라나요, 사복 입은 사람들이 검은 지프차에 싣고 갔다는데요….” 


둔주곡(遁走曲) 80년대
그가 잠깐 말을 끊고 보름 전의 일을 퍼뜩퍼뜩 돌이켜보고 있는데 사장이 알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이 형, 뭐 집히는 게 없어요? 하다못해 문화부 분위기라도 이상했을 텐데.” 

“글쎄요, 만나보려 했던 사람 여럿이 안 보이고, 신문사 분위기도 어딘가 좀 어수선한 데가 있기는 하지만 워낙 은밀하고 신속하게 이루어진 연행이라 모두들 황당해하고 있는 것 같다는 정도….” 

“대리 딱지가 붙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 나라 3대 일간지에 든다는 신문사 편집국장급에다 무슨 위원으로 자리를 옮긴 전(前)현(現)직 두 문화부장에 전현직 기자 넷을 더하고 덤으로 제법 관록 있는 시인까지 하나 얹어 일곱이나 잡혀갔는데, 그 신문사가 겨우 그러고 있더란 말이지? 더구나 전직 기자로 신문사 그만두고 집에 가서 쉬다가 잡혀간 친구는 허왕산(許旺山) 종손(從孫)이라던가.” 

“관록 있는 시인? 그 소리는 처음 듣는 데요. 그건 누굴 말하는 겁니까? 거기 직원 중에 누구 관록 있는 시인이 있어 또 이번 필화사건에 걸려든 것입니까?” 

“그건 아니고, 한 작가와 학과는 다르지만 대학 동기동창이고, 여러 해 전에 시로 등단한 적이 있는 박 아무개라더군. 어떤 작은 출판사 편집장으로 일하는데, 하필이면 이번에 말썽 된 그 작품을 얻어 출판해보려고 한 작가를 자주 만났던 모양이야.” 

“거기다가 난데없는 허왕산 종손은 또 뭡니까?” 

“허왕산 몰라요? 구한말에 동대문 밖까지 진격해 왔다던 팔도의병장 허위(許爲) 말예요.” 

편집부장이 가볍게 웃으며 받았다. 그 대수롭지 않아 하는 말투가 공연히 그를 후끈하게 만들었다. 

“하, 이거 정말 대구 촌놈 열등감 생기게 만드네. 거기서는 소설가 한 아무개가 필화로 잡혀가 오지게 터지고 있다는 소리도 수군거리며 말하는데, 여기서는 별의별 말이 다 새나와 찧고 까부는 모양이네. 사표 내고 집에 가 쉬다가 잡혀갔다는 전직 기자 얘기에 난데없이 구한말 의병대장 족보까지 나올 정도로. 그런데 말입니다. 한 선배 글 어디가 어때서 필화를 입었답니까. 지난 한 달 같은 신문에 소설을 연재하다 보니 내 역사물 ‘요서지(遼西志)’ 보고는 앞에 있는 한 선배 ‘욕망의 거리’도 함께 읽어볼 때가 많았는데, 보안대 안기부 나서서 그렇게 펄펄 뛸 얘기는 별로 없던데요.” 

그가 자신도 모르게 삐딱한 말투가 되어 그렇게 편집부장의 말을 받자 이번에는 그의 등단과 문학상 심사에 두 번이나 심사위원을 맡은 적이 있는 출판사 편집위원 민 교수가 짐짓 차분히 일러주듯 말했다. 

“뭐, 내가 유심히 읽어보니 전형적인 신문 연재용 대중소설에 여기저기 끼워 넣은 사설이 딱 자는 범 수염 쥐어뜯는 소리더만. 제복 좋아하는 놈, 군대추억 자랑하는 놈 빈정거리다가, 갑자기 탄광촌 찾아가서 돌아가는 길에는 까맣게 잊어버릴 광부 아낙들과 살갑게 악수하는 고위 관리는 또 왜 씹어? 그 소설 실린 지면 가까운 사회면 어디에는 포장마차 찾아가 서민들과 어울리는 새 대통령 동정이 사진으로 커다랗게 나가고. 연애하는 여자 만나 그렇게 할 소리가 없어?” 

“그렇다고 전현직 문화부장, 원고 들고 양쪽을 왔다 갔다 한 담당기자에 이웃 출판국 계간지 주간과 전직 기자며 놀러 다닌 시인까지 모조리 잡아가 초주검을 만들어놔요? 며칠 끌려갔다 왔는데, 모두 한두 주일 병원에 입원했다 나왔다면서요.” 

미소를 띠기는 해도 계간 문예잡지 편집위원이자 대학교 은사이기도 한 민 교수를 출판사 편집부장이 하얀 자위가 많은 눈으로 살짝 흘기며 받았다. 

그때 그가 문득 궁금해지는 게 있어 편집부장에게 물었다. 

“그렇다고 대학 은사님 째리실 건 없고. 민 선생님께서 시키신 일도 아니고. 그런데 나는 또 왜 걱정했소? 조금 전에 모두 나를 걱정했다고 한 거 같은데.” 

“그러고 보니 이 작가님은 눈치가 없는 거야? 뭐 믿는 게 있는 거야? 한쪽에 이 난판이 벌어졌는데 정말 걱정도 안 됐어요?” 

“뭘요?” 

“생각해보세요. 여기저기 검열 쪽에서 말썽 된 것만 벌써 몇 번이세요? 등단작 ‘전선의 노래’ 때부터 ‘휴가병 열차’ ‘사과와 다섯 병정’만 해도 2년에 세 번이에요. ‘남민전’ 사건에 5·18사태까지 그 살얼음판 같은 2년 동안에…. 거기다가 이번 연작 중단편집 ‘영가’도 성치 못할 것 같아요. 10·1폭동, 6·25 전후의 시골 좌익 이야기. 해서 한 200~300매는 잘려 나갈 각오하라던데요.” 

그때까지만 해도 그 필화사건을 남의 이야기로만 들었는데. 편집부장의 말을 듣고 나니 갑자기 으스스했다. 그동안 말없이 앉아 있던 광고부장이 불쑥 끼어들었다. 

“군대식으로 시범 케이스지. 이참에 오지게 본때를 보여 공연히 깐족거리는 문인들 겁 한번 준 거 같은데.” 

그때 사장이 문득 시계를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자, 밥 먹고 합시다. 벌써 1시가 다 돼가네.”

3.
“지금 이 시간 이전에나 지금 이 시간 이후에나 영원히 살아있는 것은 오직 우리의 신뿐이며, 설령 아무도 느끼지 못할지라도 그 고독한 신성(神聖)은 언제나 당신들의 머리 위에서 빛날 것이오.” 

살해당한 주인공의 안타고니스트가 비통하면서도 장엄한 목소리로 그렇게 소리치며 몸을 비틀고 경련하다 푹 쓰러진다. 그의 대역인 나이 든 창녀가 정수리에 떨어지는 강렬한 조명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듯 미동도 없이 그런 안타고니스트를 바라보고 있었다. 안타고니스트를 쓸어안듯 부축하고 있던 형사가 귀기(鬼氣)를 풍기면서 미동조차 없는 그녀를 흘기며 나무라듯 물었다. 

“도대체 이 사람이 무슨 짓을 한 거요? 당신은 왜 가만히 보고만 있소?” 

“그분께서 이리 원하셨습니다. 모든 것은 그분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사이 천천히 조명이 꺼지고 무대가 어두워졌다. 그리고 오래잖아 막이 내리면서 다시 불이 켜졌다. 허약하고 인색하게까지 느껴지는 박수 소리가 객석 여기저기서 마지못한 듯 수줍게 몇 번 울리는가 싶더니 갑자기 자지러지듯 극장 안을 메웠다. 그가 태어나 난생처음 들어보는 사심 없는 갈채였다. 그리고 누가 일러주지 않았는데도 그게 무엇보다도 자신이 창조한 어떤 새로운 세계를 향한 갈채라는 것이 세찬 전류처럼 온몸으로 느껴졌다. 

작년 말 대구의 어떤 개봉관에서 유 감독이 만든 영화 ‘인간의 대지’를 보았을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그때도 특별한 기대 없이 들어가 보기는 이번 연극과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연말 개봉이었고, 서울 개봉이 신통치 않았기 때문이었는지 무대 앞쪽으로 객석이 절반도 차지 않은 극장 안은 썰렁하기 그지없었다. 거기다가 관객이 적어선지 난방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아, 극장 안의 한기는 차츰 추위의 수준으로 올라가, 영화가 절반도 상영되기 전에 관람을 포기하고 극장을 나가는 사람까지 있었다. 

그는 이런저런 이유로 그 영화를 끝까지 보아야 할 사람 가운데 하나가 되어 빈 객석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것으로 추위를 달래가며 영화를 보았다. 마침내 ‘제7의 봉인’을 연상시키는, 사람 사는 세상의 비통과 절망 속에 클라이맥스를 지난 영화는 안타고니스트가 주인공을 무참하게 살해하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암전(暗轉)되면서 끝이 났다. 상영을 마치는 벨소리가 잦아들면서 갑작스러운 적막에 빠졌던 극장 안이 다시 알아들을 수 없는 불평 같은 것으로 수런거리다 조용해졌다. 그러다가 이내 희미한 그림자들처럼 관객들이 하나둘 극장을 빠져나가는 것을 보면서 그는 묘한 허탈감을 느꼈다. 그런데 이제 관객과 함께 연극을 보고 그들 사이에서 갈채를 받는 느낌은 그때와 아주 달랐다. 

어떤 의미에서 그는 독자의 갈채에 이미 익숙해진 사람이었다. 각종 문학상 심사위원들의 심사평에서, 신문과 잡지의 시평 월평에서, 각종 문화해설 위원들의 구독 추천과 권유를 통해. 그러나 그것은 대개가 문자를 통한 전문(傳聞)이었고, 많은 경우 멀리 떨어진 곳에서 보낸, 알지 못하는 이의 추상적인 신호였다. 베스트셀러 순위나 판매 부수같이 구체적인 숫자로 드러나는 경우도 있지만, 연재료나 게재료 또는 인세라는 이름으로 환금되어도 독자의 감동이나 갈채를 전하는 수단으로는 여전히 추상이고 간접적이었다. 

하지만 관객 사이에서 자신의 원작을 스스로 각색한 연극을 보고 그들이 보내는 박수와 갈채 소리를 듣는 것은 또 색다른 경험이었다. 희곡작가들이 그 독자들로 받는 보상과 격려는 소설가와는 또 다른 것이로구나. 거기다가 문자와 관념으로 엮은 세계가 실제 무대 위에 사람의 행위와 생생한 존재감을 구비한 현실로 살아 움직임을 보는 것은. 그런 무대 위의 실존에 열광하며 보내주는 갈채와 박수는. 

그가 세상에 나서 처음 경험하는 감동으로 잠시 자신을 잊고 취해 객석에서 일어나기는 했지만, 관객과 함께 박수를 치고 환성을 내지를 숫기는 없어 한동안 엉거주춤 서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가 아직도 몽롱한 취기 같은 느낌에 빠져 있는 사이에 관객들은 어느새 자기 몫의 환호와 박수는 다 마쳤다는 듯 하나둘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그리고 처음 일어나기 시작할 때처럼 폭발적이고 급속하지는 않았지만 천천히 극장을 빠져나가, 마침내는 그도 극장 안이 한산해짐을 느낄 무렵 낯익은 조연출이 다가와 그를 일깨우듯 말했다. 

“이젠 우리 관객들도 많이 세련되고, 예절 발라졌어요. 가시죠. 저쪽에 선생님께서 기다리고 계세요.” 

“아, 예. 내가 좀….” 

그가 무슨 무안한 일을 하다 들킨 사람 같은 기분이 되어 그렇게 더듬거리며 조연출이 가리키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그가 무대 뒤로 올라가는 계단에 이르기도 전에 막이 걷히며 연출이 출연 배우들과 함께 무대 옆쪽으로 나왔다. 

“어땠어? 연습 때하고는 다르지?” 

연출이 언제나처럼 자신만만하게 물었다. 동갑내기임을 내세워 언제부턴가 그쪽에서 말을 트기 시작했지만, 서른이 넘어서 만난 사이라 그런 일에 낯을 많이 가리는 그는 대강 말끝을 흐리며 얼버무려왔는데, 그날은 웬일인지 그도 쉽게 말을 놓을 수 있었다. 

“그래. 정말 잘 봤어, 원작 소설가로서뿐만 아니라, 신통찮은 각색자로서도 아주 고마워하며 봤네.” 

그때 역시 동갑내기인 주연배우가 연출과는 다르게 그의 말을 받았다. 

“저희들이 선생님의 좋은 작품을 제대로 표현했는지 모르겠네요. 오리지널 아이디어를 정확하게 읽어내려고 애썼는데, 워낙 성경 공부가 안 돼 있어서.” 

“저는 창녀와 성녀 사이를 오락가락하느라 냉탕 온탕을 번갈아 들락날락하는 기분이었어요.” 

남자 주인공의 대역(對役)을 한 20대 후반쯤의 여배우까지 그렇게 맞장구를 치자 연출이 다시 언제나처럼 자신만만한 어조로 그들 한 쌍을 일깨워주듯 말했다. 

“너희 둘 모두 그러는 거 아니다. 자칫하면 저 숙맥 같은 친구가 이 연극 몽땅 제 것인 줄 안단 말이다.” 

그 말에 경찰 수사관으로 주연급 조연을 한 또 다른 동갑내기 하나가 연출을 편들었다. 

“그래도 연극판이 되면 연출의 작품 해석권이 우선이지. 안 그래? 연출가 선생.” 

그러고는 주연배우에게 농담 같지만 어딘가 가시를 감춘 듯한 한마디를 던졌다. 

“텔레비전에서는 시나리오 작가가 대빵이라고 하더라만 그래도 아이들 앞에서는 연출 권위 좀 세워줘라. 아무리 잘나가는 안방극장 스타가 됐다고 해도, 이 판에 와서는 연출가 선생 체면이 우선이지.” 

“내가 연출가 선생에게 무슨 똬리라도 붙였다고 시비야? 나 연출한테 아무 말도 안 했다. 왜, 뭐, 너 요새 ‘갈매기’ 걔하고 잘 안 되는 게 있냐?” 

그렇게 악의 없이 주고받는 둘은 같은 대학 연극영화과 동문이었다. 연출이 씩 웃더니 무슨 깃발이라도 흔드는 사람처럼 단원들에게 소리쳤다. 

“자, 이러지 말고 모두 길 건너 코너 생맥줏집에나 가지. 7시 공연이 있으니, 술은 못 마실 거고 통닭 안주로 목이나 좀 축이다가, 6시쯤 돌아와 저녁 공연 들어가는 거지 뭐. 맥주 싫으면 거기 커피 진하게 한 잔 마셔두는 것도 괜찮고.” 

그러더니 문득 그를 돌아보고 물었다. 

“너는 어쩔래? 오늘 공연 끝내고 한잔 제대로 마셔봐?” 

“아니, 안 될 것 같아. 황 선배하고 저녁 약속 잡혀 있어. 7시에 한국일보 근처 한식집에서. 아마도 거기서 술도 한잔 곁들일 것 같은데. 하지만 술판 벌일 거면 어딘지 장소는 알려줘. 나중에라도 합칠 수 있으면 찾아가지.” 

“하긴 마신다 해도 나 또한 밤새워 퍼마실 형편은 못 돼. 내일모레 이틀이 첫 번째 주말 공연이잖아? 그런데 황 뭐라는 그 양반, 청와대로 들어갔다는 그 사람 아냐? 기자 출신, 왜 그 동네 너 무슨 볼일 있어?” 

그러면서 어딘가 눈길이 실쭉해졌다. 그런데 그 순간 그는 엉뚱하게도 서른이 넘어 만난 사이면서도 1년도 안 돼 그리 큰 거부감 없이 그 연출가와 말을 트게 된 까닭을 문득 알 것 같았다. 대학 동창인 한촌(寒村) 말로 끌어다 붙이면, 서른도 안 돼 죽은 그의 아버지는 (남로당) 도당(道黨) 간부는 아니지만, 도당 간부의 처남은 되었다. 시골 읍에서 개업한 의사로 도당 간부인 처남의 부탁을 뿌리치지 못해 다친 야산대(野山隊)를 몰래 받아 치료해주다 경찰 토벌대에게 들켜 총살당한. <계속>


신동아 2018년 6월 호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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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주곡(遁走曲) 8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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