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호

20대 리포트

‘인공지능 재활용품 수거기’ 네프론 써보니

“용량 차서 들고 온 쓰레기 되가져가기 일쑤”

  • 입력2018-09-05 17:00:01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줄 서야 이용 가능”

    • “3000개 압축·저장한다더니”

    • “포인트 제도와 잦은 고장 탓”

    한 주민이 상당한 분량의 재활용품을 마대에 가득 담아와서 인공지능 재활용품수거기 네프론에 투입하고 있다. [김규훈]

    한 주민이 상당한 분량의 재활용품을 마대에 가득 담아와서 인공지능 재활용품수거기 네프론에 투입하고 있다. [김규훈]

    서울 은평구 갈현1동 주민센터 앞, 주민 김지일(65) 씨는 비닐봉지 안에서 플라스틱과 캔 재활용품을 따로 골라냈다. ‘인공지능 재활용품 수거기’ 네프론에 재활용품을 투입하고 포인트를 적립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그는 이날 단 한 개의 플라스틱과 캔도 네프론에 투입하지 못한 채 모아온 재활용품을 되가져가야 했다. 이미 네프론의 저장 공간이 가득 차 더는 들어갈 데가 없었기 때문이다. 

    네프론은 이용자가 재활용품을 투입하면 종류별로 자동 분류해 압축한 뒤 내부에 저장한다. 이어 현금화가 가능한 포인트를 이용 실적만큼 적립해준다. 2016년 11월 과천시를 시작으로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 시범 운용 중인데, 은평구는 올해 1월 30일 서울에선 처음으로 갈현1동에 2대를 설치했다. 

    은평구는 주민들에게 ‘가정에서 발생하는 재활용품은 순환될 수 있는 자원’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네프론을 설치했다고 강조하지만 주민 중 상당수는 “네프론 이용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라고 말한다. “저장 공간을 비운 직후가 아니면 대부분의 경우 저장공간이 가득 차 있는 상태”라는 게 이용 주민들의 주장. 갈현1동 주민 김씨 또한 “네프론 이용 주민이 너무 많아 속에 찬 재활용품을 수거한 직후가 아니면 이용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반면, 네프론 개발사인 수퍼빈 측은 “네프론은 기기 내부에서 재활용품을 자동으로 압축하기 때문에 최다 3000개까지 저장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2시간 만에 절반 이상 차”

    5월 24일 오후 3시경, 비닐봉지나 마대에 캔과 플라스틱을 모아 온 주민들이 네프론 앞에 줄을 서 있었다. 지금이 김씨가 말한, 네프론이 가장 잘 작동되는 시간이다. 30분 전, 네프론 관리 직원이 네프론에 모인 재활용품들 수거해갔기 때문이다. 올해 2월 중순부터 네프론을 이용한 주부 공모(43) 씨는 “일주일 동안 네프론을 이용하지 못한 적도 있다”며 “줄을 서서 기다리지 않으면 이용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네프론의 내부를 비운 지 두 시간이 지나지 않은 4시 30분경, 이미 네프론 내부의 저장 공간은 절반 이상 차버렸다. 네프론을 이용하러 온 주민들은 “곧 있으면 네프론 이용이 불가능해질 것”이라며 서둘러 자신이 가져온 캔과 플라스틱을 투입했다. 이날도 네프론 근처에는 반납하지 못한 재활용품이 쌓였다. 주민들이 네프론에 집어넣기 위해 재활용품을 모아 왔지만 네프론의 수거용량 초과로 어렵게 되자 재활용품을 남겨두고 자리를 뜬 것이다. 



    네프론에 플라스틱이나 캔을 투입하면 10포인트(플라스틱) 혹은 15포인트(캔)를 받는다. 자원순환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18년 5월 기준 압축 PET와 알루미늄 캔은 kg당 각각 249원, 1120원에 거래되는데 네프론은 이보다 비싸게 회수한다. 그러자 은평구 주민 중 몇몇은 네프론을 적극적으로 이용해 포인트를 모으기 시작했다. 자기 집에서 나오는 재활용품뿐만 아니라 길거리에 버려진 플라스틱과 캔도 모아 네프론에 투입했다. 공씨는 “은평 이외 지역에 사는 사람이 트럭에 재활용품이 든 마대를 여러 자루 싣고 와 네프론에 투입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결국 네프론은 단시간에 가득 차게 되고 많은 주민은 이용에 불편을 겪는다. 

    이처럼 네프론이 본래 목적을 벗어나 수익을 위해 이용되고 있으나 이를 제한하기는 어렵다. 갈현1동 주민센터도 이러한 문제점을 인지하고 있다. 그러나 최슬기 주무관은 “네프론을 지나치게 적극적으로 이용해 수익을 거두는 사람을 제재할 명목이 없다. 다른 지역에서 오는 사람을 막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네프론에 모아 온 재활용품을 투입하는 것이 불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적당히 이용해달라”

    서울시내에 설치된 네프론. [김규훈]

    서울시내에 설치된 네프론. [김규훈]

    주민센터 측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발사인 수퍼빈 측에 포인트 제도를 수정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그러나 수퍼빈 측은 포인트 제도를 바꿀 생각이 없어 보인다. 이 회사의 은평구 네프론 담당자는 “홍보 차원에서 현 포인트 적립 제도를 유지할 계획”이라고 했다. 장기적으로 네프론을 확대해나가려면 홍보가 필요하고, 홍보를 위해선 높은 포인트 적립금이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현재 포인트 제도를 바꾸지 않은 채 주민들에게 “적당히 이용해달라”고 부탁만 하는 실정이다. 그러나 네프론을 수입원으로 삼는 주민들에겐 이러한 부탁도 소용이 없었다. 

    네프론 이용이 어려운 다른 이유는 잦은 고장인 듯하다. 재활용품을 한 개씩 순서대로 투입하지 않고, 한 번에 여러 개를 투입하면 재활용품이 투입구 칸막이에 걸려 오작동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럴 땐 네프론 관리 직원이 네프론을 다시 부팅해야 한다. 그러기 전까진 네프론에 재활용품을 다시 투입할 수 없는 것이다. 

    재활용품을 모아 온 주민들은 뒤에 줄을 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기에 빠르게 투입하려고 한다. 그러다 재활용품이 투입구에 걸려 오작동이 일어난다. 한 주민은 “49만 명이 사는 은평구 전체에 네프론이 두 대밖에 없어 네프론이 자주 과부하에 걸리는지 모른다”고 말한다. 

    지난해 11월 서울시내 어린이대공원에도 3대의 네프론이 설치됐다. 이 기계들은 은평구와 달리 이용률이 매우 저조하다. 네프론이 버젓이 있음에도 공원을 찾는 시민들은 사용한 플라스틱과 캔을 네프론 옆 쓰레기통에 버린다. 

    어린이대공원 네프론을 관리하는 양모 씨는 “이 3대의 경우 일주일에 1회 정도만 저장 공간 안의 재활용품을 회수한다”고 말했다. 은평구에서 하루 2회 수거해도 주민들이 이용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과는 대비된다. 양씨는 어린이대공원 네프론의 이용이 저조한 이유로 홍보 부족을 꼽는다. 공원을 찾는 사람들이 네프론이 무엇을 하는 기계인지 잘 모른다는 것이다.

    “플라스틱·캔만 모으는 사람 생겨”

    5월 말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사거리와 장안벚꽃로에도 각 2대씩 네프론이 설치됐다. 전농동사거리 네프론에선 은평구 네프론과 유사한 문제점들이 나타나고 있다. 환경미화원 고모 씨는 “길거리 쓰레기 중에서 플라스틱과 캔만 모으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주민 진모(45) 씨는 “주말 동안 네프론을 이용하지 못해 저장 공간이 빈 다른 날을 기다려 재활용품을 들고 다시 나왔다”고 말했다. 이곳에서도 저장 공간이 금세 가득 차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주민 김모(65)씨는 “기계가 인식하지 못하는 재활용품을 집어넣는 등 많은 사람이 아직 네프론의 정확한 이용 방법을 제대로 모르는 것 같다”고 했다. 예를 들어 네프론은 일회용 컵을 인식하지 못하는데 일부 시민들이 이를 집어넣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개발사 네프론측은 “프로그램을 두차례 업데이트해 기존에 발생한 고장이 대부분 발생하지 않는다. 네프론 저장공간 문제는 은평구에서 추가설치를 위한 예산편성이 진행중”이라고 말했다.

    ※ 이 기사는 고려대 미디어학부 ‘탐사기획보도’ 과목 수강생이 박재영 교수의 지도로 작성했습니다.



    사바나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