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호

샌프란시스코 통신

실리콘밸리 전자담배 소탕작전

청소년 흡연율 상승에 생산회사 ‘줄’ 강력 규제

  • 글·사진 황장석 ‘실리콘밸리 스토리’ 작가·전 동아일보 기자

    surono@naver.com

    입력2019-04-22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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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 샌프란시스코시가 미국 최대의 전자담배회사 줄(Juul Labs)을 시에서 쫓아내려 하고 있다. 청소년의 전자담배 흡연율이 급속히 높아졌다는 이유에서다. 청소년을 포함한 미국 젊은 층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줄은 조만간 한국 시장에도 진출할 예정이다. 샌프란시스코 현지에서 전자담배 규제 정책을 들여다봤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전자담배회사 줄(Juul) 본사 전경.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전자담배회사 줄(Juul) 본사 전경.

    미국 샌프란시스코 시내 중심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동쪽 연안의 ‘70번 부두(Pier 70)’ 주변. 이곳엔 19세기 중반 골드러시(Gold Rush) 이후 선박, 철강, 전기 등의 산업체가 속속 들어섰다. 지금도 19세기 산업단지의 모습을 간직한 고풍스러운 건물이 많이 남아 있다. 

    4월 1일 낮 12시, 부두 근처 한 붉은 벽돌 건물을 찾았다. 공식적으로 ‘104호 빌딩’으로 불리는 이 건물엔 20세기 초반 이곳 산업단지를 대표하던 조선(造船)회사 유니언아이언웍스(Union Iron Works)가 있었다. 지금은 샌프란시스코 시 소유인 이 건물에 미국 최대 전자담배회사 줄(Juul Labs) 본사가 있다.

    전자담배계의 애플

    샌프란시스코 미션 스트리트에 있는 한 담배 판매점. 외부 유리창에 ‘JUUL’이란 이름이 큼지막하게 적힌 네온사인이 붙어 있다.

    샌프란시스코 미션 스트리트에 있는 한 담배 판매점. 외부 유리창에 ‘JUUL’이란 이름이 큼지막하게 적힌 네온사인이 붙어 있다.

    출입문을 열고 로비로 들어가니 마침 점심시간이라 직원들이 사내 식당으로 가고 있었다. 낡은 외벽과 달리 건물 안은 깔끔했다. 잠시 직원들을 쳐다보고 있으니 로비에서 방문자를 맞는 안내직원이 말을 건넨다. 

    “혹시 직원과 약속하고 오셨나요?” 

    그건 아니라고 했더니 그럼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전자담배 회사 건물이라 혹시 전자담배 자동판매기가 있나 싶어서 왔어요.” 

    회사를 둘러보려고 온 것이지만, 미국 최대의 전자담배 회사 본사에 전자담배 자동판매기가 있는지도 궁금했다. 사실 필자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10년 넘게 피우던 담배를 15년 전 끊었다. 직원과 약속도 없이 불쑥 찾아와 로비에서 전자담배 자동판매기가 있느냐고 묻는 불청객에게 안내직원은 친절하게 답했다. 

    “미안하지만 여기는 회사 본사 건물이에요. 자동판매기는 없습니다. 요 앞 사거리 건너편에 담배 가게가 하나 있어요. 거기에서 사실 수 있어요.” 

    회사 로고가 새겨진 로비 사진을 찍어도 되느냐고 했더니 선뜻 그러라고 한다. 사진 몇 장을 찍고 돌아 나오는데 회사 정문 앞에서 직원으로 보이는 한 남성이 전자담배를 피우며 걸어가는 게 보였다. 그는 입으로 담배 연기 대신 증기를 조금씩 뿜고 있었다. 

    ‘관광과 금융의 도시’였던 샌프란시스코는 실리콘밸리 성장 이후 정보기술(IT) 회사가 밀집한 ‘스타트업의 도시’로 거듭났다. 그리고 최근 몇 년 사이엔 세계 전자담배 산업의 본산이 됐다. 2018년 한 해 매출만 우리 돈으로 1조원이 훌쩍 넘는 전자담배 회사 줄이 있기 때문이다. 줄은 직원 1500명가량을 고용하며 샌프란시스코 일자리 창출에 적잖게 기여한 회사다. 미국 신문 윈스턴-살렘저널(Winston-Salem Journal)이 통계정보 분석 회사 닐슨 조사를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올해 3월 줄의 미국 시장점유율은 73.9%에 이른다. 조만간 한국에도 진출하는 이 회사는 2016년 본격적으로 시장에 제품을 내놓기 시작한 뒤 무서운 기세로 미국을 장악했다. 세계시장도 접수하는 중이다. 

    줄의 창업자는 스탠퍼드대학원에서 만난 친구 두 명이다. 이들은 흡연자가 몸에 해로운 연기를 마시지 않고 니코틴 자체만 흡입하게 해주는 담배 대체재를 만들고자 의기투합해 액상전자담배를 개발했다. 흡연자 건강을 해치는 건 니코틴보다 담배를 태울 때 나오는 연기에 포함된 타르 같은 물질이라는 게 이들의 문제의식이었다. 

    줄이 제품 출시 3년 만에 미국 시장을 제패할 정도로 인기를 끈 건 젊은 층의 취향을 저격했기 때문이다. 줄은 간결하고 매력적인 USB 형태의 디자인에 망고, 크림, 과일, 박하 등 여러 가지 향이 나는 다양한 맛의 전자담배제품을 내놓았다. 그래서 이 회사는 ‘전자담배계의 애플’로도 불린다. 

    지난해 12월 말보로 담배로 유명한 알트리아(Altria)사는 줄의 가치를 380억 달러로 평가하고 지분 35%를 128억 달러에 인수했다. 4월 4일 현재 환율로 보면 회사 가치가 약 43조2000억 원, 알트리아가 지분 일부를 사는 데 쓴 돈은 약 14조5000억 원에 이른다. 담배 시장의 전통 강자가 ‘전자담배 시장의 신흥 강자’ 지분을 인수하고자 막대한 투자를 한 것이었다.

    샌프란시스코의 줄 쫓아내기

    그런데 최근 샌프란시스코는 이렇게 잘나가는 회사 줄을 도시에서 쫓아내려 하고 있다. 데니스 헤레라 샌프란시스코시 검사장과 셔먼 월튼 시의원은 3월 전자담배 규제안을 발표했다. “법에 따라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담배제품의 시장 판매 전에 일반 대중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검토해 발표하게 돼 있다. 그런데 아직 하지 않았으니, 일단 시 차원에서 전자담배 판매를 금지하겠다”는 내용이다. 이들은 조례를 개정하는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FDA 검토 결과가 나올 때까지 샌프란시스코시 전역의 일반 매장에서 전자담배 판매를 금지하려고 추진하고 있다. 규제안에는 샌프란시스코 내 주소의 온라인 판매를 금하고, 시 소유 건물을 전자담배 회사에 임대하지 않는 내용도 담겨 있다. 

    이 규제안이 ‘주적’으로 삼은 건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줄이다. 월튼 시의원은 규제안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콕 집어 이 회사를 언급했다. 

    “많은 사람의 니코틴 중독에는 줄 같은 회사의 책임이 있습니다. 젊은 층을 니코틴과 담배 중독으로 이끄는 전자담배 제품을 금지하는 것만이 청소년 안전(건강)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최근 미국 청소년의 전자담배 흡연이 크게 늘고 있는 건 분명하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지난해 11월 16일 발표한 ‘질병률 사망률 주간보고서(MMWR)’에 따르면, 전자담배를 피우는 미국 고등학생은 2011년 22만 명(미국 전체 고등학생의 1.5%)에서 2018년 305만 명(전체의 20.8%)으로 증가했다. 특히 2017~2018년 1년 사이 그 수가 78%나 증가하는 등 최근 들어 급격히 늘고 있다. 

    전자담배를 피우는 중학생도 급증세다. 2011년 6만 명(미국 전체 중학생의 0.6%)이던 중학생 전자담배 흡연자는 2018년 57만 명(전체의 4.9%)으로 늘었다. 이 수 역시 2017~2018년 1년 사이 48%나 급증했다.

    향 첨가한 전자담배 판매 금지

    샌프란시스코 미션 스트리트의 한 담배 판매점. 각종 담배 관련 상품이 진열돼 있고, 줄 제품이 별도로 한 코너를 차지하고 있다(왼쪽). 감각적인 디자인과 맛으로 젊은 층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줄.

    샌프란시스코 미션 스트리트의 한 담배 판매점. 각종 담배 관련 상품이 진열돼 있고, 줄 제품이 별도로 한 코너를 차지하고 있다(왼쪽). 감각적인 디자인과 맛으로 젊은 층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줄.

    줄 본사를 나와 걸어서 2, 3분 거리에 있는 구멍가게를 찾았다. 그곳에서는 일반 담배 제품과 더불어 몇 종류의 전자담배도 팔고 있었다. 청소년을 포함해 젊은 층이 선호한다는 과일맛 전자담배 제품이 있는지 물었다. 중국계 미국인으로 보이는 주인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답했다. 

    “올해 1월부터 향이 첨가된 전자담배 제품은 샌프란시스코에서 판매가 금지됐습니다. 못 팔아요.” 

    왜 못 팔게 하느냐고 물었더니 “애들이 못 피우게 하려는 것 같은데, 어차피 담배는 애들한테 못 판다. 왜 이런 조치를 시행하는지 이해를 못 하겠다”고 투덜거렸다. 

    미국 연방법의 흡연 연령은 18세 이상이지만, 캘리포니아 주법은 21세 미만 흡연을 금한다. 전자담배도 마찬가지다. 담배 판매점 주인이 푸념한 건 “어차피 담배를 21세 이상한테만 파는데 대체 왜 이런 규제를 하느냐”는 얘기였다. 게다가 향이 첨가된 전자담배 제품을 웹사이트에서 신분 확인을 거쳐 구매하는 건 가능하다. 매장 판매만 금지된 상태다. 

    자동차로 10분쯤 떨어진 다른 담배 판매점을 찾아갔다. 담배 제품을 전문적으로 파는 곳이라 훨씬 다양한 제품이 있었다. 매장 밖 유리창엔 ‘JUUL’ 로고의 네온사인이 큼지막하게 설치돼 있었다. 매장 내부 진열대 중앙에도 줄 제품이 놓여 있었다. 키가 190cm는 돼 보이는 건장한 중남미계 남성 주인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다. 

    “혹시 과일맛이나 망고맛 전자담배 파나요?” 

    이번에도 “작년까지는 팔았는데 1월부터 금지해서 이젠 못 판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게 제일 잘 팔리는 제품이었는데 못 팔게 돼 타격이 커요. 아니, 회사 웹사이트에서는 팔게 두면서 왜 매장에서만 못 팔게 하는 거죠? 그건 그렇고, 여기 니코틴이 없으면서 과일맛 나는 제품은 있어요. 그건 어때요? 뭐 정확히 말해 담배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요.” 

    이처럼 소매점의 반발이 있지만, 향을 첨가한 전자담배 판매 규제는 점차 확대되고 있다. 계획대로 진행될 경우 이르면 5월 중순부터 미국 전역의 일반 상점에서 이런 제품을 살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온라인 판매는 계속 허용된다. 담배는 온라인 구매 시 엄격한 성인 인증을 거쳐야 한다. 이 장치로 청소년 구매를 제한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전자담배 피우는 중학생들

    전자담배 규제에서 샌프란시스코는 미국에서도 선두에 있는 도시다. 규제가 강화되는 상황에서 지난해 11월 줄은 페이스북 계정 운영을 중단했다. 이 회사는 시장 진입 초기엔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한 광고를 잇달아 내놓았다. 하지만 시장을 어느 정도 확보한 뒤부터는 청소년 흡연 방지에 적극 나서는 모습이다. ‘우리는 성인 흡연자의 건강을 위해 전자담배 제품을 만든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과학계에서는 전자담배가 일반 담배보다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도 나오고 있다. 데이비드 에이브럼스(David Abrams) 뉴욕대(NYU) 글로벌공공의료대학원 교수처럼 전자담배의 효용성을 강조하는 학자도 있다. 에이브럼스 교수는 방송 인터뷰 등을 통해 담배를 태울 때 나오는 연기를 제거하고 니코틴 자체만 흡입하도록 하는 전자담배 제품이 성인 흡연자의 건강에 이롭다고 밝혔다. 물론 청소년 흡연은 별개 문제다. 

    한편 전자담배가 발작 위험을 갖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는 등 반대 의견도 있다. 전자담배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는 아직 일반 담배에 비해 부족한 게 사실이다. 2010년경부터 전자담배가 본격적으로 팔리기 시작한 걸 감안하면 아직까지 장기 연구도 이뤄지지 않았다. 

    필자는 중학생 딸에게 종종 학교 얘기를 듣는다. 지난해 여름, 딸은 전자담배를 학교에서 피우다 적발돼 징계받은 아이들 얘기를 처음 들려줬다. 지역 방송에서 청소년 전자담배 흡연의 위험성을 고발하는 프로그램을 내보낸 것도 그즈음이었다. 당시 한 고등학교에서 교사가 학생들로부터 압수한 전자담배는 대부분 USB 형태의 줄 제품이었다. 이 제품이 젊은 층에서 어느 정도 인기를 끄는지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전자담배를 더는 그냥 두지 않겠다고 채찍을 들고 나선 샌프란시스코. 과연 이 도시에서 전자담배는 증발하게 될까.



    잇츠미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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