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을 마치고 ‘다시 만납시다’를 부르며 눈물을 글썽이는 평양예술단원들.
평양예술단 멤버들은 꽉 짜여진 공연일정 때문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호주 동포들의 렬렬한 환영 때문인지 하나도 힘들지 않습네다”며 연신 싱글벙글 웃었다. 그들은 “고급예술단의 품위를 지키기 위해 공연이 끝난 뒤 무대 아래로 내려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사전의 다짐을 스스로 깨고 무대 아래로 내려와 호주 동포들과 포옹하고 함께 사진을 찍는 등 성공적인 호주 공연에 무척 들떠 있었다.
하지만 호주 동포사회 전체가 환영일색이었던 것은 아니다. 일부 보수성향 단체들은 공식적으로 행사 참여를 거부했다. 물론 회원 개인자격의 참여까지 막은 것은 아니지만, 자칫 동포사회의 환영무드에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는 대목이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보수단체 회원은 “남북 화해무드를 거스르며 시대착오적인 ‘무조건 반대’를 외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당신네들을 환영하지 않는 동포들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라며 “아울러 호주 동포사회의 순수한 환대를 저들이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자는 뜻도 있다”고 했다.
5월13일 중국 동방항공편으로 상하이를 거쳐 시드니공항에 도착한 평양예술단은 재(在)오스트레일리아동포련합회(이하 재오련) 등 호주 공연을 준비해온 한인 동포들의 환영을 받았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성단원 다섯 명과 정장 차림의 남성단원 두 명을 포함한 평양예술단 일행이 공항 입국 게이트를 빠져나와 꽃다발을 받았다. 특히 소문난 ‘꽃미녀’인 여성단원들의 아름다운 용모는 시드니공항을 환하게 만들었다.
호주주재 북한대사관을 대표해서 김창일 공사가 환영을 나왔고, 호주 동포 언론사들도 열띤 취재경쟁에 나섰다. 재오련이 마련한 환영 현수막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예술단 일행은 간단한 인사말로 환영식을 대신했다.
평양예술단 현세혁 단장(북한문화성 부국장)은 “이역만리 호주 땅에서 한 핏줄인 동포들을 만나게 되어 감개무량하다”면서 “조선민족 된 긍지와 자부심을 간직하고 민족의 륭성번영과 6·15 공동선언의 기치 밑에 자주통일을 앞당기기 위해 헌신하고 계시는 호주 동포 여러분께 우리 평양예술단은 충심으로 뜨거운 동포애적 인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공훈배우 오란희는 “러시아, 일본, 아일랜드 등에서 해외공연을 가진 바 있지만 지구 남쪽에 사는 호주 동포들을 만날 생각에 가슴이 벅차다”며 “동포들이 공화국의 예술을 통해서 고국의 향취를 맘껏 느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공항 환영식장의 분위기는 대체로 차분한 편이었다. “첫 술에 배부를 수 있습네까? 요참엔 거저 안면이나 트자는 생각입네다” 하던 북한 관계자의 말에서 평양예술단의 호주 순회공연이 호주 한인사회에서의 교두보 마련에 있다는 속내를 읽을 수 있었다.
첫 술에 불러버린 배
‘북춤은 이렇게’. 인민배우 리순녀의 춤사위.
한인회는 교민이 많이 사는 캠시에서 가까운 벨모어 RSL클럽(재향군인클럽)에 평양예술단 환영만찬과 공연을 위해 150명분의 좌석과 식사를 예약했다. 그런데 행사 1시간 전쯤부터 동포들이 모이기 시작해 20여분 만에 좌석이 꽉 차더니 급기야 예상인원의 두 배가 넘는 300여명의 동포들이 운집, 주최측이 좌석을 추가로 마련하느라 행사가 30분 가량 지연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한인회 조양훈 사무총장은 “북한 공연단체를 처음 만나는 동포들의 기대감이 컸던 데다, 예술단을 성원함으로써 룡천역 참사에 대해 위로의 뜻을 전하겠다는 동포들의 심리가 상승작용을 일으킨 것 같다”고 말했다.이윽고 무대의 막이 올랐다. 녹색 계통의 한복을 차려입은 성악배우 신정애가 “이역만리 호주 땅에서 자나깨나 조국의 품을 그리며 살아가시는 호주 동포 여러분…” 하며 북한 여성 사회자 특유의 오프닝 멘트를 하자 좌석 여기저기에서 작은 술렁거림이 일었다. 이질적인 억양과 익숙하지 않은 용어가 생경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잠시 후 공훈배우 오란희 등 5명이 나와 동포들의 귀에도 익숙한 ‘반갑습니다’를 열창하자 분위기는 곧 반전됐다. 특히 남성고음 독창가수(테너)인 공훈배우 김익이 ‘선구자’를 힘차게 부른 데 이어 뜻밖에도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의 아리아 ‘공주는 잠 못 이루고’를 루치아노 파바로티 못지않은 기량으로 부르자 분위기가 최고조로 달아올랐다.
공연을 관람한 교민 김재원씨는 “김익씨의 기량이 놀랍다. 그가 서구에서 활동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지 궁금할 정도다”는 반응을 보였고, 테너로 활동하고 있는 교민 조종춘씨는 “창법이 러시아나 중국 스타일이지만, 타고난 성량과 열정적인 공연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평했다.
‘아리랑’ ‘양산도’ ‘도라지’ 등의 민요와 북춤 등으로 민족의 향취를 고취시킨 평양예술단은 ‘우리는 하나’ ‘다시 만납시다’를 열창하며 역사적인 호주 공연을 마무리했다. 청중들은 환호했고 공연자들은 10여차례의 커튼 콜에 응했다. 이어 한인회 인사들이 무대로 올라가 꽃다발을 전하고 공연자들과 어깨를 감싸안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목청껏 불렀다.
여기까지는 평양예술단의 한국공연을 중계한 TV 프로그램과 별로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많은 좌석을 차지하고 있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눈물을 훔쳐내는 장면까지도. 조금 특이한 광경은 그 다음에 벌어졌다. 공연이 끝난 뒤 식사가 제공되고 여기저기서 술잔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공연을 평가하는 대화들이 오갔다.
“한 자리에 하나씩 박으라우!”
“와, 테너는 정말 아깝다. 저 정도면 어디다 내놓아도 손색이 없겠는데….”
“남남북녀라더니 역시…. 꽃미녀 정도가 아니라 꽃꽃미녀로구먼.”
‘꽃미녀’가 화제에 오르자 구석진 자리를 배치받은 ‘해병전우회 호주지회’에서 농반진반의 불평이 터져나왔다.
“사무총장, 우리를 왜 이런 구석자리에 앉혀서 꽃미녀 구경도 제대로 못하게 한 거야?”
마침 한인회 조양훈 사무총장과 함께 그곳을 지나던 북한 관계자가 그 얘기를 듣고 한마디 했다.
“사무총장 선생, 한 자리에 하나씩 박으라우!”
평양예술단 호주 공연 프로그램과 티켓.
“아니,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박으라는 거야?”
환영행사가 끝날 즈음 남자청중들 사이에서 나온 우스갯소리다. 잠깐 동안의 만남이지만 그만큼 허물이 없어졌다는 의미다.
“북한이 변하고 있다”
불과 4년 전인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 참가한 북한 선수들이 철저하게 2인1조 혹은 3인1조로 움직이던 것을 기억하는 호주 동포들은 예술단원들이 각 테이블에 한 사람씩 앉아 대화를 나누는 광경을 보면서 북한의 대외적인 태도가 크게 변한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북한을 자주 왕래하는 재오련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북한이 내부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1996년 북한을 방문한 이후 북한의 대외정책에 관심을 가져온 호주노동당(ALP) 소속의 메리디스 버그만 NSW주 상원의장도 평양예술단의 유연한 태도를 ‘변화의 조짐’이라고 해석했다. 환영만찬에 참석한 버그만 상원의장은 천재홍 주호주 북한대사와 같은 테이블에 앉아 공연을 관람한 후 “북한 방문을 통해 한민족의 통일염원이 얼마나 강렬한지 잘 알고 있다”면서 “여러분의 성공적인 공연과 즐거운 호주여행을 기원한다”는 인사말을 전했다.
북한을 방문한 몇 안 되는 호주 정치인 중의 한 사람인 버그만 상원의장으로부터 북한에 관한 견해를 들어보기 위해 6월4일 의사당으로 전화를 걸어 인터뷰했다.
“종교가 무슨 상관입네까?” 시드니 한인성당에서 교민들과 함께한 예술단원들.
“1995년 시드니에서 호주의 한 노동조합 그룹 회의가 열렸다. 그때 회의에 참석한 북한대표단을 만났고, 그들의 초청으로 그 이듬해에 북한을 3일간 방문해 회의를 가졌다. 북한의 관광명소 몇 곳도 관광했다.”
-당시 북한에 대한 인상은?
“주로 평양에 머물렀고 안내원을 따라다녔기 때문에 내가 받은 인상을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지나칠 정도로 질서정연하고 조직에 의해 움직이는 사회라고 느꼈다.”
-북한 주민들을 직접 만날 수 있었는가.
“한 여성단체의 안내로 여러 곳을 방문했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것은 만나는 사람마다 간절한 ‘북남통일의 열망’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극소수 주민을 만났을 뿐이지만, 모두가 ‘통일’ 한 가지만 소망하는 것 같아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의 소망을 의심하는 건 아니다”
-그 당시 본 북한예술단의 공연과 시드니에서 본 평양예술단의 공연을 비교한다면?
“둘 다 훌륭한 공연이었다. 공연자들의 기량이 아주 뛰어나고 프로그램의 독창성이 느껴져 흥미로웠다. 언어 때문에 공연 내용까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선율과 춤동작 등에서 부분적으로나마 북한의 정서를 느낄 수 있었다.”
-호주의 존 하워드 총리와 자유-국민 연합당 정부가 미국, 영국과 더불어 북한, 이라크 등에 대해 강경책을 이어간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한동안 그랬다. 하지만 북한과 이라크는 다르다는 게 내 생각이고, 최근엔 호주 정부도 생각을 조금씩 바꾸는 것 같다. 특히 북한에 대해서는 강경책 일변도는 아니다. 일반론이지만 외교는 상호주의 원칙을 무시할 수 없다. 그동안 북한이 많이 변했고 지금도 변하고 있으니 호주 정부도 그에 상응하는 정책을 펼 것이다”
이번 행사를 주최한 재오스트레일리아동포련합회는 단체의 명칭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호주 동포사회의 대(對)북한 관련단체다. 평양예술단의 호주 순회공연도 재오련의 초청으로 이뤄진 것이다. 재오련은 그 외에도 북한 관련 행사를 지속적으로 개최해오고 있다. 그렇다면 친북 성향의 재오련이 주최한 평양예술단 호주공연을 대한민국 정부와 관련을 맺고 있는 시드니한인회가 지원하고 ‘평양예술단 환영의 밤’까지 마련한 이유는 무엇일까.
벨모어 RSL클럽에서 열린 ‘환영의 밤’에서 한인회 백낙윤 회장은 환영사를 통해 “남북간 합의로 이루어진 6·15 공동성명을 시작으로 남북교류가 다방면에서 이뤄지고 있다”며 “통일을 위해 북한에서 오신 평양예술단 여러분을 따뜻한 동포애로 환영하자”고 말했다.
한인회장에 이어 환영사를 한 재오련 임용모 회장은 “재오련이 평양예술단을 위한 환영행사를 부탁했을 때 기꺼이 응해주신 한인회에 감사한다”며 “이번 기회에 같은 역사와 문화를 가진 북부 조국에 대하여 더 많이 알게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재오련은 ‘친북단체’?
이쯤에서 독자들은 두 단체가 반목과 대결로 이어져온 일본 민단·조총련의 관계와는 사정이 다르다는 사실을 눈치챘을 것이다. 호주 전역을 통틀어 6만명 정도밖에 안 되는 한인사회 규모, 그리고 길지 않은 호주 한인역사에 그 이유가 있다.
우선 한인회 백낙윤 회장과 재오련 임용모 회장은 둘 다 교회 장로다. 오랜 친분도 있는 터라 임 회장은 그간 한인회 일을 많이 도왔다.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이 한인회 회원이다. 이는 일본 한인사회와 호주 한인사회를 도식적으로 비교할 수 없다는 단적인 예가 된다. 다시 말해서 한인회와 재오련 간에는 반목과 대결의 역사가 전혀 없었고 지금도 별 갈등 없이 서로 협조하고 있다.
재오련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단체를 과연 친북단체라고 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크리스천 일색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재오련 이문철 부회장은 장로, 문상수 사무국장은 목사다. 박용하 평양예술단 호주공연 준비위원장은 ‘북한 선교’의 신념을 지닌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고, 김용만 평양예술단 호주초청 후원회장도 장로 신분이어서 재오련 주축멤버의 면면만 놓고 보면 무슨 기독교단체의 명단을 보는 것 같다.
특히 박용하 준비위원장은 평양예술단 일행에게 ‘하느님의 세계’를 보여주기 위해서 시드니 한인성당 공연까지 주선해 성사시켰다. 그의 뜻대로 선교 목적이 이뤄졌는지는 모르지만, 성당에서 평양예술단의 공연이 열렸다는 사실은 매우 이채로운 대목이다.
시드니에서 비행기로 다섯 시간이나 걸리는 서부 호주의 퍼스에서 성공적인 공연을 마치고 다시 비행기로 이동, 멜버른 공연을 끝낸 평양예술단은 5월30일 시드니 어번에 있는 한인성당에서 공연을 가졌다. 흰색 예수 성상과 마리아 성상이 서 있는 한인성당에 도착한 평양예술단의 표정은 담담했다. 성당 공연도 다른 공연과 마찬가지로 ‘반갑습니다’로 시작해서 ‘다시 만납시다’로 끝났다.이날도 자리가 모자라 관객이 다 입장을 하지 못하는 대성황을 이뤘다. 신도들의 호응도 뜨거웠고, 공연 후 예술단원들이 관객들과 함께 어울리는 정경도 다른 공연장에서와 다르지 않아 성당이라는 장소를 거의 의식하지 않는 듯했다. 다만 점심식사 후 일부 신도들이 예수 성상이나 마리아 성상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자고 제의하자 이를 슬쩍 거절하고 건물 앞에서 기념촬영을 해 종교적 분위기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려는 속내를 내보이기는 했다.
박준환 스테파노 주임신부는 “평양예술단이 성당에서 공연하는 것을 보고 변화하는 북한을 실감할 수 있었다”며 “일부 신도들의 반대가 있었지만 이런 방식을 통해서라도 북한에 가톨릭을 전해주고 싶어서 북한 선교에 열심인 박용하 준비위원장의 제의를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성당 공연을 마치고 돌아가는 북한 관계자에게 소감을 물었더니 “별거 아닙네다. 북조선에도 성당이 있습네다”라고 짧게 답했다. 북한을 드나드는 한 교민에게 확인했더니 “북한에 성당이 있기는 하지만, 미사를 집전할 신부님이 없어서 성당이라기보다는 공소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보수적 한인사회가 보여준 동포애
197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비교적 역사가 짧은 호주 한인사회의 두드러진 특성은 한국보다 보수 성향이 더 강하다는 것이다. 물론 호주 도착 시점이나 세대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하지만, 한인사회의 주축을 이루는 이민 1세대의 성향이 보수 쪽으로 기울어 있다는 평가에 대해선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1989년 8월15일 평양에서 열린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전대협 대표로 참석한 임수경씨의 북한행을 비밀리에 도운 호주 교민 김진협(치과의사)·김승일(사회사업가)씨, 평양축전에 참가한 권기범(변호사·스트라스필드 시의원)·박은덕(변호사)·강병조(호주건설노조)씨 등이 동포사회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던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그러나 호주 한인사회가 북한을 항상 냉대한 것은 아니다. 1987년 시드니에서 열린 세계아이스하키선수권대회에서 한국과 북한 대표팀의 대결이 벌어졌다. 당시 한인 동포들은 당초 예상과는 달리 남북한을 똑같이 응원하고 지원해 호주와 한국언론에 크게 보도된 바 있다. 선수들도 몸으로 부딪치는 격렬한 경기 도중에 상대 선수가 넘어지면 일으켜 세워주는 등 동포애를 발휘해 한인 동포뿐만 아니라 호주 관중들까지 감동시켰다.
당시 호주주재 한국공관은 한인사회의 그 같은 반응에 크게 당황해 대책 마련에 나섰다. 북한인을 처음 대하는 호주 동포들이 그들도 한 핏줄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동포애를 발휘하자 한인사회에 친북단체가 등장할지 모른다고 우려했기 때문. 하지만 이번 평양예술단 공연에 대해 시드니총영사관의 방선규 공보담당 영사는 “관여하지는 않지만, 남북 문화교류 측면에서 좋은 공연이 되기를 바란다”며 관망하는 입장을 견지, 남북관계가 그동안 많이 변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대북교류 물꼬 튼 북한관광단
호주 한인사회의 북한 관련 발자취를 더듬다 보면 1983년부터 시드니에 정착한 롯데여행사 승원홍 사장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을 지켜본 후 ‘북한여행 프로젝트’를 만들어 꾸준히 북한 방문의 길을 모색했다.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러낸 한국 정부의 자신감을 바탕으로 한때 북한여행 프로젝트의 실현 가능성이 엿보이기도 했으나, ‘임수경 사건’ 이후 공안정국으로 접어들면서 모든 게 물거품이 됐다. 남쪽과 북쪽 모두 불가 입장으로 돌변한 것.
북한 프로젝트를 사실상 포기했던 승 사장은 대신 1990년 9월 베이징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중국 관광의 물꼬를 텄다. 1990년대 초 소련과 동유럽 체제가 붕괴하면서 그나마 북한의 외화벌이에 도움을 주던 이들 지역의 관광객이 급감하자 북한은 서방 관광객들을 적극 유치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북한 당국은 중국관광공사에 도움을 요청했고, 서울대에서 중국문학을 전공한 승 사장과 친분이 있던 시드니주재 중국관광공사 지사장을 통해 승 사장에게 “북한여행 프로젝트를 추진해보지 않겠느냐?”는 뜻을 타진해왔다. 승 사장은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마침내 1991년 6월 호주 한인사회에서는 처음으로 ‘북한 및 중국 단체관광’이라는 획기적인 관광상품을 내놓았다. 북한에 7박8일간 체류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북한관광단의 여행 목적은 순수한 관광이었으나, 북한 해외동포원호위원회 김영수 참사에게 적극 건의해 북한에 머무는 8일 동안 평양, 묘향산, 원산, 금강산 등지의 관광은 물론 몇몇 이산가족들은 가족상봉의 기쁨을 맛보았고, 북한에 관심을 갖고 있던 교민 사업가들이 북한을 방문하는 전기도 마련됐다. 관광단은 대부분 실향민 출신이어서 후에 재오련이 탄생하는 산실이 됐다. 역대 재오련 회장단과 현 회장단이 거의 모두 승 사장의 북한방문단에 합류했던 인사들이다.
승원홍 사장은 첫 북한관광 후 ‘북한여행 사진전’을 통해 북한의 현실을 교민사회에 알렸고 더 많은 교민이 북한을 방문할 수 있도록 북한 당국자와도 협의를 계속했다. 그러나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문제로 남북관계는 또다시 경색됐으며, 그 와중에 승 사장은 여러 가지 이유로 북한여행 프로젝트를 중단했다. 하지만 그는 보수적인 호주 한인사회에서 대북 교류의 물꼬를 텄다는 자긍심을 간직하고 있다.2000년 시드니올림픽은 호주 한인사회의 대북교류를 자연스런 일로 받아들이게 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그동안 수면 아래에서 조심스레 활동하던 재오련이 남북선수단 동시입장 등으로 화해 무드를 본격화했기 때문이다.
그후 6·15 남북공동선언 등이 이어지면서 호주 한인사회의 대북교류는 더 이상 비밀이 아니게 됐다. 특히 북한관련 사업을 하는 기업인들은 수시로 북한을 드나들면서 새로운 아이템을 개발하느라 분주하다.
다시 만납시다
꿈결같이 만났다 우리 헤어져 가도 / 해와 별이 찬란한 통일의 날 다시 만나요 / 잘가시라 다시 만나요 / 목메어 소리칩니다 / 안녕히 다시 만나요
평양예술단이 공연을 마칠 때마다 부르는 ‘다시 만납시다’의 2절 전문이다. 노래말이 다소 감상적이고 문학적으로 형상화되진 않았지만, 헤어지는 사람들의 안타까운 마음을 절절이 담아내고 있다.
출연자 전원이 무대에 올라 손을 흔들며 부르는 ‘다시 만납시다’는 노래말이 담고 있는 헤어짐의 정서와는 달리 극적인 멜로디로 처리되어 있어 어찌 보면 선동적이기까지 하다. 더러는 눈물까지 훔쳐내며 노래를 부르는 공연단에게서 진한 연민이 느껴지고 마음 한구석에서 “우리가 왜 저런 사람들과 철천지 원수처럼 지내왔을까” 하는 자성과 함께 그간 북한과의 교류를 막아온 한국 정부에 대해 의혹을 품게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고도로 치밀하게 계산된 선전선동의 결과라고 보는 시각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의심이 기우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일이 6월2일 시드니공항에서 벌어졌다. 호주를 떠나는 평양예술단 단원들이 눈물을 흘리며 이별을 아쉬워한 것. 특히 여성단원들은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 때문에 서둘러 출국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속울음을 우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산가족인 재호주 과학자 진양일 박사(호주 정부기관 연구원)는 두 차례나 공연을 관람하면서 이산의 아픔을 달랬지만, 소감을 묻는 질문에 대해선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한 표정으로 묵묵부답이어서 가족과 헤어진 고통이 얼마나 큰가를 여실히 보여줬다.
평양예술단의 호주공연을 준비하면서 가장 애를 태웠던 것은 비자 발급 문제였다. 북한과 호주의 외교관계는 점차 개선되고 있지만, 호주 국민은 여전히 북한을 ‘핵’과 ‘테러국가’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하다. 특히 아직까지도 호주에서 봉수호 마약관련 사건 재판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호주 당국은 북한 공연단의 비자 발급 여부를 신중하게 검토할 수밖에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하맥스그룹 김용만 사장의 공이 컸다. 이번 공연의 후원회장이기도 한 김 사장은 국제라이온스 시드니 웨스트클럽 회장으로 라이온스 클럽을 이번 공연의 초청 스폰서로 삼았다. 시드니 웨스트 라이온스 클럽은 호주에서 가장 규모가 큰 단체다. 그는 ‘평양예술단의 공연일정, 체재비용 부담, 보안문제 등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는 각서를 써서 호주연방 이민성에 제출, 어렵사리 비자를 받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