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4차 핵실험은 2009년 2차 핵실험으로 북한이 ‘파키스탄 모델’에 진입한 것으로 평가된 이후 핵 능력을 더욱 강화했음을 보여주고, 이 같은 흐름은 한국 정부의 대북·대중 정책과 중국의 대(對)한반도 정책 등과 맞물려 동북아 정세를 심각하게 변동시키고 있다.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따른 한반도 정세의 변화를 몇 가지 측면에서 분석, 평가해보면 다음과 같다.
노동신문 1월 11일자 1면.
이는 북한의 4차 핵실험 실행 과정에서 잘 드러난다. 중국은 북한을 통제하지도 못했고, 북한으로부터 사전 통보도 받지 못했다. 박근혜 정부가 추구한, 중국을 지렛대로 한 북한의 변화가 ‘주관적 바람(wishful thinking)’에 불과함을 분명하게 보여준 것이다. 그리고 8·25합의 등 내용보다는 형식적 보여주기에 치우치는 이른바 ‘원칙 있는 남북 신뢰 구축 이벤트’들은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속 빈 강정’이었음이 드러났다. 또한 국가정보원은 핵실험 관련 정보, 북한 내부 정보 파악에 거듭 실패하고 있다.
중국의 한반도 정책도 실패
둘째, 중국의 대(對)한반도 정책이 실패했음을 보여줬다. 북한의 4차 핵실험은 북한이 ‘파키스탄 모델’로 확고하게 진입한 것이라는 의미가 있는데, 이는 국제사회에서 북한이 공식적으로 핵무기 보유국임을 인정받지 못해도 실질적으로는 핵무기 보유국가로 인정받아갈 것이라는 뜻이다. 결국 북한이 중국을 포함해 어느 국가와의 관계에서도 자주성을 세워나갈 확실한 근거를 갖추게 됨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한국과 국제사회에서 중국이 북한에 개입할 수 있다는 소위 ‘북한 레버리지’는 약화될 것이다.북한의 4차 핵실험 실행 과정에서 드러난 북중관계의 실상은 박근혜 정부의 ‘중국 환상론’과 친중정책을 약화시킬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한중관계는 1949년 신(新)중국 건국 이후 최고라고 칭송됐고, 지난해 9월 중국 전승절에 민주주의 국가 지도자 중에서는 유일하게 박 대통령이 참석하면서 그 정점을 찍었다. 당시 미국 등 서방세계와 국내 일각에서 ‘도를 넘어선 친중정책’이라고 비판할 때 핵심 방어논리로 등장한 것이 북핵 문제, 북한 문제 해결과 관련한 중국의 결정적 역할론이었다.
북한의 4차 핵실험 과정은 이 같은 인식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확인시켜 줬다. 따라서 박근혜 정부의 대중정책도 재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북한의 4차 핵실험 직후 대북정책에 대한 공산당 내부의 혼선을 보여줬다. 중국 공산당은 2009년 5월 북한의 2차 핵실험 이후 한반도공작소조(조장 시진핑)를 구성, 집중 토의 끝에 북핵 문제와 북한 문제에 대한 분리정책을 취하게 된다. 북핵은 악화되지 않도록 관리하고 북한 문제에 대해서는 중장기적으로 친중정부를 세우게 하자는 것이었다. 이후 북중관계는 당시 주석 후진타오와 김정일의 화해 과정을 통해 핵실험 직후 악화된 관계가 우호적인 분위기로 바뀐다.
그러나 2011년 12월 김정일 사망, 2013년 2월 북한의 3차 핵실험, 2013년 3월 시진핑 체제의 등장과 2013년 2월 시작된 박근혜 정부의 친중정책을 배경으로 북중관계는 변화한다. 시진핑은 박근혜 정부의 친중화를 유도하기 위해 김정은 체제와 거리를 두면서 친중파 장성택을 지원하는 정책을 택했다. 하지만 장성택의 숙청, 중국 경제 침체 및 양극화, 공산당 내 권력투쟁 등의 문제로 북한에 대한 개입이 약화됐다.
그 결과 북한의 4차 핵실험과 관련해 통제도 못하고, 통보도 못 받게 된 것이다. 나아가 4차 핵실험 직후 중국공산당 기관지 ‘런민일보’의 자매지 ‘환추시보’엔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체제를 지키기 위한 전략으로 이해해야 한다’라는 대단히 이례적인 내용의 논평원 기고문이 나왔다. 이 기고문은 중국 당국뿐만 아니라 북핵에 대한 환추시보 사설의 강한 비판적 태도와는 상반된다. 지난해 10월 방북한 정치국 상무위원 류윈산이 이 기고문의 배후로 추정된다.
한국에 대한 미국의 의구심
이처럼 엇갈린 주장이 나오는 배경은 류윈산을 중심으로 한 마오쩌둥 사상 부흥운동과 양극화 비판 등 좌경그룹의 활동과 연관돼 있으며, 이들은 전통적 혈맹인 북한의 핵개발 관련 태도를 이해해야 한다는 견해를 갖고 있다. 대북정책에 대한 중국 공산당 내부의 이 같은 혼선은 북한에 대한 시진핑 체제의 개입력을 더욱 약화시킬 것이다.셋째, 한미동맹이 균열되고 있음을 보여줬다. 북한의 4차 핵실험과 관련해 국군과 정보당국은 아무런 사전 정보도 파악하지 못했다. 그런데 미국 NBC방송은 1월 6일(현지시각) 미군 고위 관계자가 ‘(북한의) 핵실험 준비 사실을 인지하고 앞선 2주 동안 핵 실험장 인근에서 기준치가 될 공기 시료를 채취하기 위해 무인기를 띄웠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 밖에도 미국과 일본이 사전에 북한의 핵실험 징후를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정보들이 드러나고 있다. 지난해 12월 초에는 윌리엄 페리 전 미국 국방부 장관이 ‘수개월 내에 북한이 핵실험을 할 것으로 보인다’고 예측하기도 했다. 그는 현 국방부 장관인 애슈턴 카터와 친분이 두터운 인물로, 미국 국방부가 파악한 정보를 귀띔받았을 개연성이 작지 않다.
한미 당국은 겉으로는 ‘빛 하나 샐 틈이 없을 정도로 한미동맹은 튼튼하다’고 주장해왔는데, 이면에 어떤 문제가 누적됐고, 그 문제들이 얼마나 심각하기에 핵심 공유 사항인 핵실험 관련 정보를 공유하지 못하는 것인가. 이는 본질적으로 박근혜 정부의 친중정책과 연관된다.
먼저 동맹의 신뢰 정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원자력협정의 경우 2014년 초 체결한 미국-베트남 간 원자력협정과 2015년 4월 타결된 한미원자력협정을 비교해보면 베트남에 대해서는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를 암묵적으로 인정한 반면 우리의 경우 재처리 조건을 더 까다롭게 해서 허용하는 내용으로 정리됐다. 이는 21세기 미국의 세계전략에서 핵심 기준의 하나인 중국 문제에 대해 베트남이 친중으로 갈 가능성은 거의 없는 반면 한국은 친중으로 기울 가능성에 대해 미국이 깊은 의구심을 갖고 있는 것과 연관된다.
‘봉쇄’ 버리고 ‘진화’ 촉진해야
다음으로, 미국이 중국의 아시아 지역 헤게모니를 위한 2AAD(Anti-Acess Area-Denial). 즉 반(反)접근, 지역거부 전략이 현실에서 나타난 중요한 사례로 박근혜 정부가 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도입을 미루는 것을 꼽은 것과 연관된다.또한 미국 오바마 정부의 대(對)아시아 핵심정책인 TPP(환태평양경제협정)에는 참여하지 않은 채, 중국이 주도하는 AIIB(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에 참여하고 한중FTA에 적극적인 한국을 보면서 중국 경사론이 현실화한다고 미국 조야가 평가하는 것으로 읽힌다. 이 같은 관점에서 보면 한미동맹은 균열돼 있고, 이는 한국 안보에 심각한 위기를 야기할 수 있다.
그렇다면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분명해진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 및 대중정책의 실패, 중국 역할론의 한계, 한미동맹의 균열이라는 상황 속에서 북핵 문제, 북한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나갈 수 있을까. 햇볕정책, 대북봉쇄, 중국역할론을 넘어선 새 정책이 필요하다.
첫째, 한미동맹을 재정립하고 더욱 강화해나가야 한다. 한미동맹이 균열된 상태에서는 북한 핵실험 등과 관련한 핵심적인 정보도 제대로 공유하기 힘들 뿐만 아니라 남북관계는 불안정한 상황으로 치달으면서 기본적인 한반도의 평화적 관리도 힘들어질 것이다. 나아가 평화적 통일을 이루려면 독일의 통일 과정 등을 볼 때 미국의 협력과 지원이 우선적이고 핵심적 사안임을 명심해야 한다.
둘째, 북핵 문제와 북한 문제를 분리해 투 트랙으로 대응해야 한다. 북핵 문제는 우선 6자회담과 북미협상 등을 통해 동결과 비확산 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그리고 북한 문제는 맞춤형 개입정책(optimized engagement policy)을 통해 남북경협을 활성화함으로써 북한의 개혁·개방을 확대하고, 북한 내 개혁·개방 선호 세력을 지원·육성해 정권 진화(regime evolution)를 추진해야 한다. 이는 많은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는 정권붕괴 또는 체제교체(regime change)와는 분명히 구별된다. 북한 정권이 진화하면 북핵의 평화적 해결과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을 성취할 수 있을 것이다.
※ 필자는 박근혜 정부의 국가정보원에서 북한담당 기획관(1급)으로 일하면서 북한 문제에 깊이 관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