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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선 획정에서 남북정상회담까지 ⑫

미국 방조와 소련 동조의 합작품, 6·25는 내전 아닌 국제전

  • 이완범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정치학 wblee@aks.ac.kr

미국 방조와 소련 동조의 합작품, 6·25는 내전 아닌 국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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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전적 상황은 작은 배경일 뿐

또한 1949년 9월 공세가 실패한 이후 북의 유격투쟁 전략은 북로당 빨치산 출신들이 주장하는 국지전 전략으로 바뀌었다. 정규군 수준의 대규모 유격대를 남파했으나 대부분 강원도 태백산 지구에서 한국군의 포위망을 뚫지 못해 실패했다. 게다가 북이 예상했던 남한 내 자생적 유격대 투쟁 및 남로당원 봉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했으므로 전쟁을 외부 지원 없이 할 수는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스탈린이 1950년 1월30일 김일성의 남침에 동의했기에 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동의하지 않았다면 국경충돌에 그쳤을 뿐 대량살상의 전면전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므로 내전적 상황은 전면전 발발의 종속변수에 지나지 않는다. 전쟁 발발의 직접적인 원인은 북방 3국, 즉 소련·중국·북한 국제공산주의자들의 공모에 있었으며 남북 간 갈등은 부차적 변수였다. 분할점령이 없었다면 좌우 갈등은 있었을지라도 전면전은 물론 내전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므로 전쟁의 근본 책임은 미·소에 있다.

따라서 국제적 규모의 갈등과 관련해 볼 때 내전적 상황은 하나의 작은 배경일 뿐이다. 이렇게 국제공산주의자들이 주도한 전쟁이었으므로 6·25전쟁은 ‘국제전적 내전’이 아니라 ‘내전적 상황을 이용한 국제전’에서 출발했다고 할 수 있다. 즉 남한의 내전상황에 북한과 소련, 중국이 개입해 결국 남북 간의 전면적인 정규전이 일어난 것이다. 미·소의 세계적 대립인 냉전체제가 한반도에도 침투해 내전적 상황으로 상승된 국면에서 국제적 전쟁으로 전화되기 위해서는 외세의 개입이 필수적이었다.

처음에는 내전으로 출발한 것처럼 보이지만 국제적 성격이 짙은 분단이 근본적 배경이었고 스탈린의 승인이라는 외적 요인이 결정적으로 영향을 끼친 복합적인 전쟁이었다. 초기에는 내전과 국제전이 복잡하게 얽힌 복합전쟁이었고 미국과 중국의 개입으로 국제전적인 성격이 강화됐으므로 국제전적 요소는 결코 간과할 수 없다.



역사에는 여러 요인이 있으며 그 요인들은 복합적으로 상호관계를 맺고 있다. 그런데 여러 요인 중에는 직접적 원인이 있고, 나머지는 배경적 요인으로 간주할 수 있다. 암처럼 원인과 배경을 분간하지 못할 때 그 요인들의 가중치를 매길 수는 있다. 이를테면 미·소의 한반도 분할점령이 한반도 분열의 외적 요인임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독립운동 시기에 이미 부각된 좌우 양 진영의 분열이 분단의 내적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지적할 수 있다.

그러나 독립운동 시기의 좌우분열은 분단의 배경이었을 뿐이다. 분단의 직접적 원인은 분할점령이었다. 민족 내부의 좌우대립(내적 요인)은 외적 규정력(외적 요인)을 강화한 배경에 지나지 않는다. 만약 외적 요인이 없었다면 프랑스나 이탈리아처럼 극심한 이데올로기 투쟁은 거쳤을지언정 분단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좌우대립이 그토록 치명적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좌우분열은 분단의 부차적 요인이었다고 할 것이다. 그렇다고 내적 요인을 무시할 수는 없다. 만약 내적 요인이 없었다면, 즉 좌우가 똘똘 뭉쳤다면 오스트리아처럼 통일됐을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외인(外因)과 내인(內因)은 분단의 필요충분조건이었다. 그렇지만 외인이 없었다면 무조건 통일됐을 것이며 내인이 없었다면 통일이 될 가능성이 있었으므로 외인이 내인보다 훨씬 압도적이고 중요했다는 말이다. 만약 내인이 없었고 미·소가 우리를 강압적으로 분단하려는 의지가 강하지 않았다면 통일이 됐을 것이다.

스탈린의 동의가 가장 중요

6·25전쟁의 개전에 관해서도 복합론을 인정하는 동시에 가중치를 두는 해석이 가능하다. 탈(脫)냉전시대 북한의 남침 사실을 확인해주는 소련의 자료가 공개돼 6·25는 김일성이 시작한 전쟁임을 부인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6·25 전쟁은 개전을 주장하는 김일성의 의지에 스탈린이 동의해 일어났다. 전쟁 발발 국면에서 결정적 요인인 김일성의 개전의지를 제외한다면 국제적 요인이 국내적 요인보다 중요했다. 국제적 요인 중 스탈린의 동의가 가장 중요하며 다음으로는 중국 공산화와 이에 따른 무력지원, 그리고 마오쩌둥(毛澤東)의 개전 동의다. 미·소 냉전체제 형성에 따른 한반도 분단체제 구축이 6·25전쟁의 근원적 기원이었으며,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벌어진 남한에서의 게릴라전과 38선 근처에서의 무력충돌은 ‘내전적 기원’이고 ‘발발 국면에서의 국내적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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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범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정치학 wblee@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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