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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선 획정에서 남북정상회담까지 19

한국경제 도약의 지렛대, 박정희의 수출 드라이브

  • 이완범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정치학 wblee@aks.ac.kr

한국경제 도약의 지렛대, 박정희의 수출 드라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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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사정부는 집권 초기 자주경제 건설을 위해 자립화정책을 추구했다. 하지만 미국의 원조 감소에 따른 외자도입 부진과 국내의 열악한 저축상황에 직면한 후 수출과 외자 유치로 방향을 틀었다. 비록 지나친 대외의존적 경제구조로 IMF 외환위기를 배태한 폐해도 있지만, 박정희 정권의 수출지향적 산업화 전략은 낙후된 한국경제를 일으켰다는 점에서 대성공이었다.
한국경제 도약의 지렛대, 박정희의 수출 드라이브
2006년 12월5일 대한민국은 세계 11번째로 수출 3000억달러를 달성했다. 수출 1억달러 초과 달성일이 박정희 시대인 1964년 11월30일이므로 43년 만에 빛나는 성과를 이룩한 것이다.

이 목표는 실적 지상주의에 의해 달성됐으며 그 성과에는 외화내빈, 속빈 강정인 측면이 있고 그 파이가 모두에게 돌아가지 못했으므로 어두운 면이 없지 않다. 그렇지만 수출이 우리 경제의 버팀목이라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우리의 수출지향적 발전 전략은 박정희 시대에 처음 추진됐는데 지금 우리의 위치를 돌아보기 위해서도 이를 살펴보는 것은 그 의미가 크다 할 것이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박정희에게 수출드라이브를 걸게 했다는 주장도 제기하고 있다. 당시 한국경제가 미국의 원조로 지탱되고 있었고, 미국이 한국경제의 효율적 운용을 위해 한국 정부에 장기적인 계획을 세울 것을 종용한 것은 맞다.

하지만 미국이 유도한 것은 대외지향적 발전전략이 아니라 미국의 원조가 줄어도 버틸 수 있는 자립형 경제체제였다. 즉 미국의 주문은 수입대체 산업화를 통한 경제안정이었으며 이를 수출지향으로 방향을 바꾼 것은 한국 정부였다.

1961년 5·16으로 정권을 틀어쥔 군부세력은 거사일 새벽에 방송된 혁명공약 4장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절망과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하고 국가 자주경제 재건에 총력을 경주한다.” 이에 따라 경제개발계획을 입안하고 추진했다.

1962년 1월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시행할 때에는 혁명공약에서 표방한 바와 같이 자주경제 재건을 위해 ‘자립화정책’을 추구했다. 5·16군사정변 세력이 국회를 해산하고 만든 국가재건최고회의의 유원식 최고위원(쿠데타 당시 대령, 1961년 8월10일 준장 진급)이 최고회의 의장 자문위원이던 민간 경제학자 박희범 서울대 상대 교수와 함께 ‘내포적 공업화 전략’을 마련했다. 이들 자력갱생파이자 ‘급진파’의 경제 살리기 방안은 ‘자립경제를 지향하는 자주적 공업화 전략’이었다.

박희범식 내포적 공업화 전략은 외향적이며 개방적인 수출지향적산업화전략과는 대비되는 개념이다. 그렇지만 자본이 부족했던 한국 정부가 이러한 내포적 산업화 발전 전략을 추진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으며 기업가와 관료가 반대한 탓에 계속 추진하는 것이 불투명해졌다.

이러한 위기 상황을 타개하고 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유원식 준장 등은 1962년 6월 통화개혁을 단행했다. 그러나 미국의 반대로 개혁은 곧 실패로 끝났다. 그에 따라 자력갱생파는 밀려나고 대외개방적 공업화를 추구하려던 이병철 등의 기업가와 박충훈·김정렴·천병규 등 신진엘리트 관료 그룹, 미국 경제고문단 3자가 연합한 ‘실용주의’ 노선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 발표 당시 소외됐던 미국과 기업가들이 1962년 7월부터 서서히 전면에 등장할 조짐을 보인 것이다.

결국 한일회담을 본격 추진한 1964년 후반 이후 자립화정책과는 반대 방향으로 전환했다. 즉 외향적 개방방식인 ‘개방정책’으로 전환될 조짐을 보여 결과적으로는 개발 자금을 외부에서 구하는 외자의존형 개발 모델을 채용한 셈이다.

정부 주도의 경제자립화를 포기하면서 경제개발에서 민간기업의 주도권을 보장하고 개방체제를 지향해 외국자본을 적극 도입하는 정책으로 전환했다. 한국정부는 제철 등의 기초적 생산재 공업을 육성해 자립적인 공업화를 추진하려 했으나 1963년까지의 경제정책이 실패하고, 미국이 이러한 경제성장방침에 압력을 넣자 1964년 미국 고문관에게 자문을 구해야 했다. 그렇지만 상대적으로는 독자적인 판단에 따라 보완정책을 작성했는데, 이로써 외연적 성장을 위주로 한 외자의존형 성장정책으로 전환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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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범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정치학 wblee@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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