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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리더십 ②

과학적 지식, 상상력, 통찰력을 갖춘 창조적 ‘비전 메이커’

  • 김광웅│서울대 명예교수 kwkim@snu.ac.kr

과학적 지식, 상상력, 통찰력을 갖춘 창조적 ‘비전 메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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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허황된 비전과 실재
  • ● 과학 아는 리더가 필요한 이유
  • ● ‘꿈꾸는 지도자’가 일군 두바이의 성공
  • ● 미래를 동경하게 하라
위대한 리더는 내일을 예견하고 나라가 어떤 방향으로, 또 어떤 방법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인물이다. 리더는 현재를 잘 관리해야 하기도 하지만 내일을 준비하는 일이 훨씬 값지다. 상상력과 통찰력을 바탕에 두고 제시하는 비전은 한 나라의 내일을 내다보게 하는 바로미터다. 1979년 총선거에서 보수당의 승리로 집권한 대처 전 영국 총리는 원칙과 신념의 정치인으로 노동당 정부가 고수해온 각종 국유화와 복지정책 등을 포기하고 민간의 자율적인 경제활동을 중시하는 경제개혁을 추진한다. 공기업을 민영화해 시장경제를 강화하고, 조세를 인하해 노력의 대가를 개인과 기업이 제대로 누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대처는 또 ‘영국병’의 원인이 강경한 노조에 있다며 노조 개혁을 추진하겠다는 입장도 분명히 했다. “나는 평소 우리가 살길은 기술 개발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번 연구소 사업만은 내가 직접 돌봐주어야 하겠습니다. 그 옛날 세종대왕께서는 학자들을 집현전에 모아놓고 한글을 만드셨지만 우리도 이제 이 연구소에 유능한 과학자들을 모아서 연구하고 기술을 개발해야겠어요.” 1966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을 설립하면서 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기념사다. 한홍택 전 KIST 원장은 “먹고살기도 어려운데 먼 미래를 보고 과학기술에 투자한다는 것은 지도자로서 대단히 어려운 결단이었을 것”이라며 “박 대통령은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 근대 과학기술체계를 훌륭하게 구축한 과학기술대통령”이라고 회고했다.위의 두 이야기는 한 나라의 지도자가 어떤 비전을 갖고 나라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지식과 통찰력

비전이 바르려면 상상력과 통찰력이 남달라야 한다. 그렇게 되려면 공부를 잘 해 지식을 충분히 갖춰야 하는가? 아니면 지식이 충분하지 않아도 비전이 바를 수 있는가? 룰라 다 실바(Lula da Silva) 전 브라질 대통령은 후자의 좋은 예다. 초등학교에 다닌 것이 학력의 전부인 그는 나라의 당면 문제를 해결할 정책을 제시해 국가의 부를 이뤘다. 1945년 브라질 북동부 페르남부코 주의 빈농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다 일곱 살 때 상파울루 주 산토스로 이주한 뒤, 거리에서 땅콩과 오렌지 등을 팔아 가족의 생계를 도우며 초등학교에 다녔다. 1960년 정부가 운영하는 국가산업기술연수원 선반공 자격증 과정에 등록해 3년간 교육을 받은 뒤 금속공장에서 일했다. 그가 주목받기 시작한 건 1980년 금속노조 위원장으로 선출되면서부터다. 브라질 역사상 최대 규모의 파업을 성공적으로 이끌면서 단숨에 국민영웅으로 떠올랐고, 2002년 대통령에 당선된 뒤 재임했다. 그는 퇴임 때인 2010년에도 지지율이 87%에 달할 정도로 사상 유례없는 인기를 누렸다. 비록 지식은 모자랐을지 몰라도 주변에 훌륭한 참모가 있고 문제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력이 있었기에 바른 비전과 정책을 제시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을 종합지(綜合知)라고 한다면 그렇지 않은 것을 ‘손 지식(hand knowledge)’이라고 한다. 손 지식만 갖고도 얼마든지 논리적인 사고와 행동을 할 수 있다. 아프리카의 부시맨이 그렇다. 철학자 레비 스트로스도 저서 ‘야생의 사고’에서 이런 면을 인정했다. 문제는 리더들이 지식과 더불어 이의 기반이 되는 실재(reality)를 얼마나 알고 비전을 세우느냐 하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매우 부정적인 견해가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실재는 대부분 허상이라는 주장이다. 아일랜드 출신의 성공회 주교로, 철학자였던 조지 버클리는 “만물은 마음이 만들어낸 허상”이라고 했다. 우주의 진리를 밝히려는 이들도 실제 존재를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영국의 천체물리학자 스티븐 호킹과 ‘멀티 유니버스(원제 The Hidden Reality)’ 등을 펴낸 미국 컬럼비아대 물리학과 교수 브라이언 그린 등이 그렇다. 호킹은 실재라는 것은 모두 우리가 개념이나 모델을 만들어 그것이 실재라고 믿도록 만든 것에 불과하다고 했다. 집이나 나무 등을 예로 들면서 ‘모델 의존적 실재(model dependent reality)’라는 표현을 썼다. 그린도 “실재는 우리의 존재를 초월해 있으며 어떤 식으로든 우리가 만들어낸 개념에 의존하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는 아직도 민주주의나 정의를 만져보지도 냄새 맡지도 못했다.

비전과 실재

그렇다면 실재가 뭔지도 모르면서 지식을 쌓고 비전을 제시해도 되는 것인가? 대부분의 리더가 주장하는 정책 내용, 그리고 비전이 얼마나 속이 찼는지 우리는 일단 의심해야 하는 게 아닐까. 만유인력의 원리를 발견한 물리학자 아이작 뉴턴은 “나는 세상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모른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나는 해변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노는 철없는 소년이었다. 가끔은 매끄러운 조약돌이나 예쁜 조개껍데기를 발견하고 기뻐했지만, 내 앞에 펼쳐진 거대한 진리의 바다는 완전한 미지의 세계였다”고 고백했다. 실재를 헤아리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내일이 궁금하다. 또 얼마나 내 것이 될 수 있는지를 알기 위해 리더의 비전을 외면하지 못한다. 이를 알기 위해 정책공약을 들여다보게 된다. 대사기극으로 끝나긴 했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747 공약’으로 17대 대선에서 승리했다. 경제성장률 7%,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시대를 열어 우리나라를 세계 7대 경제 강국으로 만들겠다는 이 공약은 나라의 내일을 열려는 비전이었다. 불행하게도 현실은 3.5% 경제성장에, 2만 달러를 약간 상회하는 소득에, 13위 경제 강국을 유지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비전은 상상력과 통찰력을 바탕으로 내일을 보고 약속하는 것인데, 이 대선 팀은 세계 경제에 위기가 올 것이라는 ‘내일’을 볼 줄 몰랐거나, 아니면 알고도 국민을 속였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배세력을 바꾸겠다는 뚜렷한 비전을 갖고 국정에 임했다. 카를 마르크스가 말한 대로 ‘부를 가진 집단(propertied class)’이 국가 권력을 전횡하니 이 구도를 바꾸지 않으면 나라가 제대로 갈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는 서울대를 졸업했거나 삼성그룹에서 일하거나 서울 강남에 사는 사람은 지배집단에 속하는 것으로 상정했다. 수도를 세종시로 옮기려 한 것도 지배세력을 바꾸려는 계획의 일환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남북 화해와 공존에 대한 의식이 강했다. 이 땅에 민족상잔의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집념으로 6·15공동선언을 만들어냈다. 직전 정부가 세계경제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해 진 빚을 그대로 떠안은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데도 온갖 정성을 쏟았다. 신지식인을 고무해 기존의 계급의식에 수정을 가하려고 하는 의도도 뚜렷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세계화 기치를 내걸었다. 눈을 나라 밖으로 돌리자는 것이었다. 아직 여건이 성숙하지 않았다는 일부 반대 의견에도 불구하고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 가입한 것은 이 비전의 일환이었다. 또 금융실명제 도입에서 알 수 있듯 국정을 투명하게 운용하려 했다. 선진국이 되려면 정부가 투명해야 한다고 본 그의 이 결단은 지금까지 좋은 평가를 받는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확실하게 미래를 조망하고 선진 공업국 도약의 비전을 제시한 인물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그는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을 시대적 명제로 삼았다. 산업구조를 농업에서 공업으로, 그것도 중화학공업으로 전환하면서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꾸준히 이행한 성과가 오늘 한국에서 나타나고 있다.

어느 나라 최고 지도자건 백성이 가난에서 벗어나고 불평등한 대접을 받지 않게 하며 나라를 선진국 반열에 오르도록 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하지 않은 이는 없었다. 그러나 경제며 정치가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경기에도 흐름이 있어 곤두박질할 때가 있다. 이때 나라를 살리기 위해서는 리더의 적절한 비전과 타당한 정책 제시가 필수다. 1930년대 세계공황이 덮친 미국의 예를 보기로 한다. 1933년 취임한 제32대 대통령 루스벨트는 경제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정부가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겠다고 선언하고, 빈민구제 및 실업 해소를 위한 대규모 공공사업, 이른바 뉴딜(New Deal) 정책을 추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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