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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史記)에 길을 묻다

끓는 물 식힐 게 아니라 타오르는 불을 꺼라

사정(司正)의 칼잡이 ‘혹리(酷吏)’

  • 김영수 | 사학자, 중국 史記 전문가

끓는 물 식힐 게 아니라 타오르는 불을 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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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리면 다 죽는다”

문제는 그 도가 지나쳤다는 것. 법적으로 처리해 벌금을 물리거나 감옥에 보내는 게 아니라, 죄가 다소 중하다 싶으면 집안을 통째로 몰살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걸리기만 하면 최고형으로 다스리니, 그를 보고 피해 가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한나라 개국공신 주발의 아들 주아부(周亞夫)는 매우 고귀한 신분이었으나 질도는 그를 반란죄로 죽였다. 아버지 장례식 부장품으로 무기를 무덤에 넣어주려던 것을 누군가 반란의 음모라고 밀고하자 ‘지금은 반란을 일으키지 않을지 모르지만 나중에 죽어서 저승에 가 반란을 일으키려는 의도’라며 죄를 뒤집어씌웠다. 생전에 백만대군의 총사령관이던 주아부는 백만대군보다 더 무서운 게 질도라며 혀를 내둘렀다.

경제 때는 질도가 이렇게 대쪽처럼 법을 처리해 국가 기강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이런 질도도 두태후의 인척 임강왕(臨江王)을 가혹하게 다스렸다가 괘씸죄로 태후에 의해 처형당하고 말았다.

질도는 너그러운 법 집행을 주로 했던 순리(循吏)에서 혹리로 넘어가는 전환기의 공직자 면모를 보여준다. 그리고 경제를 지나 다음 황제인 무제(武帝) 때의 혹리들과 대비되는 형상으로 혹리열전의 첫 페이지를 장식했다. 순리들과 급암, 정당시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청렴에다 사나움과 가혹함이 합쳐진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질도에게는 권력자들에 대해서도 가차 없이 법을 적용하는 엄정한 이미지도 겹쳐 있다. 약자에게는 강하고, 강자에게는 맥을 못 추는 간신형 혹리들과는 질이 달랐다. 어쩌면 지금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공직자는 이런 유형이 아닐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혹리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인물은 조우와 함께 견지법(見知法 · 일종의 불고지죄 처벌법)을 만든 장탕(張湯)이다. 혹리열전에서도 그에 관한 내용이 가장 많다. 사마천은 장탕이 혹리가 되는 데 영향을 미친 일화를 소개하는데, 어디서 이런 이야기를 채록했는지 절로 감탄하게 만든다.

끓는 물 식힐 게 아니라 타오르는 불을 꺼라
황제의 ‘의중’이 곧 법

장탕의 어린 시절 이야기다. 어느 날 아버지는 외출하면서 어린 장탕에게 ‘곡간을 잘 지키라’고 당부했다. 그런데 장탕이 곡간을 소홀히 지킨 틈을 타 쥐가 곡식을 다 먹어치웠다. 이 일로 아버지에게 매를 맞은 장탕은 온 집안을 뒤진 끝에 쥐를 잡아 꽁꽁 묶었다. 그런 다음 쥐를 탄핵하고 영장을 발부한 뒤 진술서를 작성했다. 그러고는 법조문에 근거해 고문을 가하고 끝내는 몸뚱이를 찢어 죽이는 책형을 판결했다. 장탕은 판결문을 직접 작성했는데, 그 판결문을 본 아버지는 기가 막혔다. 마치 노련한 형리가 직접 작성한 것 같았다. 이처럼 장형은 어릴 적부터 혹리로 성장할 기본 자질을 타고났던 것같다.

장탕은 아버지가 죽은 뒤 관리가 돼 혹리로서 명성을 날리기 시작했다. 그는 황제의 친인척 비리 문제를 전담했다. 하지만 황제의 친인척 문제는 황제의 의중에 따라 판결이 달라졌다. 중죄를 범했어도 황제가 봐주고 싶은 사람이 있고, 가벼운 죄를 범했어도 황제가 봐주기 싫은 사람이 있었다. 장탕은 황제의 이런 의중을 기가 막히게 간파했다.

법에 따르면 명백하게 사형감이지만 황제가 살려주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안 장탕은 무제가 좋아하는 유학 경전을 법조문 앞뒤에 배치해 황제로 하여금 구실을 삼게 만들었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장탕은 법을 왜곡하는 것은 물론, 왜곡을 위해 말도 안 되는 유가 경전을 끌어다 그럴듯하게 꾸며낸 영악한 혹리였다.

장탕의 수법 중 또 하나 기가 막힌 게 있다. 문서 보고는 한번 올라가고 나면 더 이상 돌이킬 수가 없다. 하지만 구두 보고는 나중에 황제의 검토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해 장탕은 황제에게 말로 보고할 것과 문서로 보고할 것을 교묘하게 구분했다.

장탕이 또 하나 나쁜 선례를 남긴 것은 처세술이다. 그는 다른 관료들에게 욕을 얻어먹지 않으면서 호의호식했다. 때만 되면 선물 보내고 인사하는 겉치레 처세를 너무나 잘했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관료들끼리 서로를 봐주고 서로를 이용하는 비리와 부패가 조정에 가득 차게 됐다.

그런데도 황제는 이런 그를 총애했다. 그뿐만 아니라 행정·경제·재정 등 조정의 거의 모든 문제를 장탕과 의논했다. 결국 황제는 법과 시스템으로 나라를 다스리지 않고 자신이 총애하는 이를 통해 통치하는 ‘인치(人治)’에 의존했다. 사마천은 혹리의 가장 큰 문제는 법을 가장 잘 지켜야 할 그들이 그 법을 이용하거나 왜곡해 인치의 빌미를 제공한 당사자였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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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 사학자, 중국 史記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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