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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재의 Total English

상대방의 마음을 얻는 지름길

‘내 탓’ (‘I’ Statement) 화법 vs. ‘네 탓’(‘You’ Statement) 화법

  • 이윤재 번역가, 칼럼니스트 yeeeyooon@hanmail.net

상대방의 마음을 얻는 지름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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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로 의견이 맞지 않을 때 효과적으로 자신의 뜻을 전달하기 위해 흔히 ‘감정 섞인 말(loaded words)’을 사용한다. 잘만 사용하면 이런 화법이 아주 유용하다. 정치인이 돌아선 여론을 되돌리기 위해 자신이 책임을 지겠다고 말하는 것도 그렇고, 심리와 신념을 파고드는 광고 언어와 종교 언어도 그런 ‘파워 언어’다. 지나치면 ‘독’이 되지만, 적절한 수위에선 ‘약’이 된다. 영어로 익히는 현명한 커뮤니케이션 기법.
상대방의 마음을 얻는 지름길

5월23일 부시 미국 대통령이 한국 파나마 등과의 자유무역협정을 지지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곧잘 ‘loaded words’를 사용해 청중의 마음을 움직인다.

우리말에 ‘잘되면 내 덕, 잘못되면 네 탓’ 또는 ‘잘되면 제 잘난 덕이고 잘못되면 조상 탓’이라는 말이 있다. 이와 똑같은 의미의 말을 미국 케네디 대통령이 한 적이 있다.

“Victory has a hundred fathers, but defeat is an orphan.”(승리했을 땐 자기 덕(德)이라고 나서는 사람이 100명이지만, 실패했을 땐 나서는 사람이 없다.)

그 말이 나온 배경을 살펴보자. 그의 재임 기간(1961~63)에 ‘피그즈 만(灣) 침공(the Bay of Pigs Invasion)’과 ‘쿠바 미사일위기(the Cuban Missile Crisis)’가 있었다. 1959년 1월 쿠바에서 정권을 잡은 카스트로(Castro)는 개인 재산을 몰수하고(그 대부분은 미국기업이 쿠바에서 소유하고 있던 자산) 국유화했다. 그 결과 1960년 5월부터 미국 CIA는 쿠바 침공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계획이 최종적으로 실행에 옮겨지기 직전 새로 취임한 존 F. 케네디 행정부 내에서 침공을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졌다.

1961년 4월16일 쿠바 혁명정권 카스트로가 사회주의 국가를 선언하자 다음날인 4월17일 미 중앙정보국(CIA)이 주축이 돼 쿠바 망명자 1500명으로 쿠바를 침공했으나 100여 명이 숨지고 1000여 명은 체포됐다. 침공은 쿠바에서 민중봉기가 일어날 것이라는 정보에 근거를 두고 시행됐으나 아무도 봉기에 동참하지 않았다.

1961년 5월 케네디 행정부는 죄수들의 몸값을 치르고 그들을 석방시키기 위해 카스트로와 비공식적인 접촉을 시도했다. 힘겨운 협상 끝에 마침내 카스트로는 5300만달러에 해당하는 식량·의약품을 받고 죄수를 풀어주는 데 동의했다. 1962년 12월부터 1965년 7월에 걸쳐 생존자들이 미국으로 돌아갔다. 이때 케네디는 미국 역대 대통령이 내린 ‘10가지 최악의 결정’ 중 하나로 꼽히는 피그즈 만(灣) 침공사건에 대해“Victory has a hundred fathers…”라는 명언을 남기고 자신이 실패 책임자라고 인정했다.

“I am the responsible officer of the government.”(정부의 책임자는 나다.)

그러나 케네디는 1년 후 더 어려운 결정에 직면한다. 1962년 10월14일 중거리탄도미사일 발사대가 쿠바에 건설 중임을 공중촬영으로 확인하고, 참모들과 함께 대안을 강구했다. 그는 초기 단계에서 참모들이 자신의 눈치를 보지 않도록 일부러 회의에 불참하기도 했고, 자신의 생각과 다른 군사적 해결책을 주장하는 군 수뇌부를 별도로 불러 설득하기도 했다.

10월22일 케네디는 쿠바에 대해 해상 봉쇄조치를 취하고, 소련의 흐루시초프 서기장에게 공격용 무기를 철거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흐루시초프는 28일 미사일의 철거를 명령하고, 쿠바로 향하던 16척의 소련선단(船團)의 방향을 소련으로 돌림으로써 위기는 사라졌다. 이에 대해 ‘미국의 대통령들(American Presidents)’을 전공(specialism)한 저명한 역사학자인 로버트 댈럭(Robert Dallek·1934~) 보스턴대 교수는 이렇게 분석했다.

In brief, JFK had a visceral distrust of the American military. It began during WWII when he was in the Navy and was increased by his experience over the Bay of Pigs. It was further deepened by his experience during the Cuban Missile Crisis. There′s a wonderful tape at the JFK library in which he said “these fellows in the foreign service have no cojones. Now these fellows in the military have cojones, but they don´t have any brains”. So he had big doubts about the military.

(간단히 말해서, 케네디는 미 군부에 대해서 노골적인 불신을 갖고 있었다. 이 불신은 그가 해군에 있던 제2차 세계대전 동안에 시작되었으며 피그즈 만 경험으로 증가되었다. 그것은 쿠바 미사일 위기 동안의 경험으로 더 한층 심화되었다. 케네디도서관에 테이프가 보관되어 있는데 여기에 보면 “외교(재외 공관을 통괄하는 미국 국무부)부 이놈들은 불알(용기)이 없어. 요새 군부에 있는 놈들은 불알(용기)은 있으나 두뇌가 없어.”라고 되어 있다. 그런 걸 보면 그는 군부에 불신을 갖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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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재 번역가, 칼럼니스트 yeeeyoo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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