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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식 어법으로 다시 보는 빅 브라더 사회 2

‘ 현대인은 팬옵티콘(원형감옥)에 갇혀 상호 감시하는 죄수’

  • 이윤재 번역가, 칼럼니스트 yeeeyooon@hanmail.net

조지 오웰식 어법으로 다시 보는 빅 브라더 사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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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경찰이 항상 모든 사람을 언제나 감시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어떻든 그들은 하고 싶을 때면 언제든지 누구에게나 감시의 플러그를 꽂을 수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이 내는 소리는 모두 감청되고 캄캄할 때 외에는 자신의 모든 동작이 철저히 감시되고 있다는 전제 아래 살아가야 했다 - 아니 그 습관이 본능이 되어 살아갔다.)

현대는 상호 감시의 시대

이상은 ‘1984’의 제1장(Chapter One)에 들어 있는 내용이다. 이 내용을 팬옵티콘(panopticon)과 관련해 생각해보자. panopticon의 어원은 ‘pan(모두)+ optic(보다)’이다. 팬옵티콘(Panop-ticon)이란 개념은 근대사회의 감시체계를 설명하는 것으로 영국의 법학자이자 철학자인 공리주의자 제레미 벤담(Jeremy Bentham·1748~1832)이 착안한 죄수 교화시설인 원형감옥을 말한다. 중앙에 감시공간이 있고 바깥쪽으로 빙 둘러 죄수의 방이 있어 모든 죄수를 하나같이 감시할 수 있다.

간수는 죄수를 볼 수 있지만 죄수는 간수를 볼 수 없다. 따라서 죄수는 자신의 행동을 간수가 늘 보고 있다는 전제하에 행동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스스로 행동을 통제하게 된다. 죄수의 방은 항상 밝게, 중앙의 감시소는 항상 어둡게 시설되어 있다. 죄수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을 감시하는 시선 때문에 규율을 벗어나는 행동을 못한다.

오늘날의 사회를 보자. 감옥과 같은 특수한 공간뿐 아니라 직장이나 백화점 등 모든 곳에 감시 카메라가 설치돼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어림잡아 250만대의 폐쇄회로 감시카메라가 국민의 일상을 비춘다. 서울 시민은 보통 하루 39번씩 카메라에 잡힌다는 통계도 있다. ID카드는 일거수일투족을 회사에 보고한다. 휴대전화는 소지자의 위치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위치 오차가 몇 m 안쪽일 정도로 정확해졌다.



결국 현대인은 팬옵티콘에 갇힌 죄수와 다름없게 되었다. ‘빅 브라더가 당신을 감시하고 있다(Big Brother is watching you)’는 말이 60년 만에 전자정보기술의 발전으로 현실이 됐다. 현대인은 고도의 전자정보기술에 의한 ‘전자 감옥’에 살고 있다. 각자에 대한 모든 것이 각자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기록되고 촬영되어 저장된다. 이런 감시를 빠져나갈 수 있는 영역은 거의 없다.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미셸 푸코(Michel Foucault·1926~1984)는 ‘감시와 처벌’(Surveiller et punir, 1975)이란 저서에서 팬옵티콘이란 개념을 이용해 근대체제를 ‘한 권력자가 만인을 감시하는 체제’라고 설명했다. 각자의 정보가 모두 드러나 있고, 자신은 권력자를 또는 감시자를 볼 수 없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정보를 쥔 자에게 스스로 순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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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은 인터넷이라는 발언대를 통해 권력을 감시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현대의 ‘전자정보통신 팬옵티콘’은 벤담의 팬옵티콘과는 다른 면이 있다. 과거에는 감시자가 감시의 수단을 독점했지만, 이제는 감시자가 피(被)감시자와 수단을 공유한다. 권력자가 만인을 감시하는 팬옵티콘(panopticon) 개념은 21세기의 디지털정보화 사회에서 권력자와 대중이 동시에 서로 감시하는 시놉티콘(synopticon) 개념으로 발전 계승되고 있다. 어원은 ‘syn(동시에)+optic(보다)’이다.

감시자만 대중을 볼 수 있는 게 아니고, 피(被)감시자도 감시자를 볼 수 있다. 즉 감시하는 자가 감시당하는 ‘상호 감시’시대가 온 것이다. ‘모든 사람이 서로 관찰하는 세상’이다. 정치적으로 보면 권력자와 대중이 동시에 상호 감시하는 메커니즘이다. 다수의 대중이 소수의 권력을 감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따라서 시놉티콘은 ‘다수 시민에 의한 권력 감시체제’라는 정치적 해석이 가능하다.

인터넷이란 발언대를 확보한 대중이 도리어 권력 자체를 감시할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과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 등의 사례는 정보화의 총아라고 할 인터넷이 권력자의 의도를 무너뜨리는 도구로 사용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이것은 대중이 자신을 권력자에게 종속시키지 않고 주체적으로 정보를 다룰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됐음을 의미한다. ‘시민이 통치대상이기를 거부하는 시대’ ‘전자민주주의의 시대’가 온 것이다. 물론 전자민주주의가 국민의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피로감을 씻어주기도 하지만 ‘민주과잉시대’ ‘디지털 포퓰리즘’이란 역기능을 낳고 있다는 우려도 있다.

Ignorance is strength

어떤 신앙을 강하게 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 신앙에 대한 모든 의심을 없애는 것이다. 어떤 신앙을 의심할 이유가 없다면 그 신앙은 없어지지 않는다. 이와 같이 무한히 의심하지 않을 수 있다면 그 신앙은 역시 무한하다. 인민을 무지 속으로 빠뜨리면 의심하지 않게 되고 그 사상 속에서 강력한 힘이 창조된다. 빅 브라더는 역사를 통제함으로써 자신이 신과 같은 존재로 보이게 했다. 윈스턴 스스로도 결국에는 “God is power(신은 권력이다)”라고 인정한다. 역사를 바꾸는 힘과 모든 것을 예언했던 것처럼 보이게 하는 힘은 스스로 신이라고 선언하는 힘이다. 훨씬 더 좋은 것은 자신을 거리낌 없이 신으로 보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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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재 번역가, 칼럼니스트 yeeeyoo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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