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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에게 경영을 묻다 | 마지막회

인간적 아웃라이어가 되어라 ‘채용’되지 않고 ‘초빙’될 지니

‘88만원 세대’ 공자, 한국 청년에게 고함

  • 배병삼 영산대 교수·정치사상 baebs@ysu.ac.kr

인간적 아웃라이어가 되어라 ‘채용’되지 않고 ‘초빙’될 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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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업 걱정에 잠이 오지 않는가. 먹고사는 문제가 발등에 불인가. 그렇다면 논어를 펴라.
  • 가난하고 비천한 젊은 날을 보낸 공자는 어깨 무거운 우리 청년들에게 해줄 말이 많다. 공자는 묻는다.
  • 고작 밥벌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예처럼 ‘채용’될 것인가, 아니면 나의 자존과 자유를 확보하면서 조직과 공생하는 ‘초빙’의 길을 갈 것인가.
인간적 아웃라이어가 되어라 ‘채용’되지 않고 ‘초빙’될 지니

2010 외국인 투자기업 채용박람회에 몰려든 취업 준비생들.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 세계는 엄격한 계급사회였다. 옛 중국의 지배계급은 세 층으로 이뤄졌다. 맨 위에 왕, 그 아래에 제후, 또 그 밑에는 대부가 있었다. 이들은 모두 귀족으로서 세습하는 봉토, 직할 영지가 있었다. 다시 말해 평생 먹고사는 데 걱정이 없었다.

평민계층은 사(士)와 민(民)으로 나뉘었다. ‘민’은 주로 농업에 종사했으니, 농경사회이던 시대에 인민은 생산력의 핵심 계층이었다. ‘사’는 지배계층과 인민 사이에 위치하면서 다양한 기술을 가지고 밥을 버는 중간계급이었다.

이 가운데 공자는 사(士)계급 출신이다. ‘사’계급은 제 능력으로 밥을 벌어야 했으므로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계층이었다. 공자 역시 평생토록 생존을 염려하며 살아갔다. 맹자는 “공자는 실업상태로 석 달을 지내면 매우 불안해했으며, 직장을 얻기 위해 폐백을 싣고 집을 나섰다”(孔子三月無君, 則皇皇如也, 出疆必載質)고 증언했다. 공자가 고작 석 달 동안의 실직에 그렇게 황망해한 까닭을 맹자는 “‘사’계급에게 직장을 잃는다는 것은 제후가 영지를 잃는 것과 같은 재난이기 때문”(士之失位也, 猶諸侯之失國家也)이라고 설명한다. 여하튼 이런 증언을 통해 공자가‘사’ 계층에 속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 수 있으며, 또 공자가 생존을 걱정하며 살 만큼 곤궁한 처지였음을 엿볼 수 있다.

사실 공자는 어릴 적부터 매우 궁핍한 생활을 한 것 같다. 공자 스스로 “나는 어려서부터 비천하여, 자질구레한 일에 다양한 재능을 갖고 있노라”(吾少也賤, 故多能鄙事. 논어, 9:6)고 토로할 정도였다. 이에 덧붙여 “생전에 공자 선생님은 ‘제대로 된 직장을 얻지 못했기에 이런저런 기예에 능하게 됐노라’며 말씀한 적이 있다”라는 제자의 증언도 ‘논어’에는 실려 있다(牢曰, 子云, ‘吾不試, 故藝.’ 논어, 9:7). 공자의 청장년 시절에 관해 사마천은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공자는 어려서 가난하고 비천했다. 청년기에 이르러 세도가 계씨 집안의 창고지기(委吏)로 취업했는데, 출납을 정확하게 처리했다. 또 목장지기(司職吏)가 되어서는 온갖 가축들을 번식시키기도 했다.”(‘사기세가’)

‘논어’ ‘맹자’ ‘사기’의 기사를 종합해 현대식으로 해석하자면 공자는 ‘택시기사’(執鞭之士)로부터 ‘공장 기술자’(匠人), 그리고 ‘목장지기’ 같은 비천한 직업을 전전한 것이다(공자도 ‘88만원세대’?).

그러므로 ‘사’계급에게 취업은 중요한 이슈였음에 분명하다. 공자가 “우리 학교에서 3년 과정을 이수하고 난 뒤 취업에 연연하지 않는 녀석을 찾아보기 힘들더구나”(子曰, “三年學, 不至於穀, 不易得也.” 논어, 8:12)라며 개탄한 대목을 읽다보면 취업 문제는 2500년 전 춘추시대 청년들에게도 지금이나 다를 바 없이 심각했던 것 같다.

논어 속 ‘취업의 조건’

물론 개중에는 직장에 목매지 않는 어엿한 자세를 보여 스승을 감동시키는 제자도 있었다. 공자가 제자 칠조개(漆彫開)에게 직장을 알선해줬다. 한데 칠조개는 “저는 아직 그 자리를 맡을 만한 깜냥이 되지 못합니다”라고 사양했다. 공자가 크게 기뻐했다(子使漆彫開仕. 對曰, “吾斯之未能信.” 子說. 논어, 5:5).

옛날 춘추시대라면 직장도 변변찮을 뿐만 아니라 그 숫자도 많지 않았을 것이다. 혹 칠조개는 가난했던 것인지 모른다. 이에 스승이 나서서 직장을 알선해준 것이리라. 그런데 그 당사자가 기뻐 날뛰기는커녕 “저는 아직 그런 자리를 맡을 만한 실력이 없습니다”라고 했으니 스승의 놀라움이 어땠을까. 요컨대 칠조개는 자기 실력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만큼 ‘성찰하는 힘’을 갖고 있었다는 뜻이고, 또 외부의 편안한 자리에 목매는 소인배가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이처럼 칼칼한 칠조개의 처신에 대해 스승이 흔연한 기쁨을 표시했다는 반응 자체를 당시의 취업난을 반증하는 사례로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취업은 중요한 것이다. 작가 김훈의 말을 빌리자면, 먹고서 육신을 유지해야 한다는 점에서 “인간은 비루하고, 인간은 치사하고, 인간은 던적스럽다. 이것이 인간의 당면문제다.”(‘공무도하’) 어쩌면 이 비루하고 치사한 생존의 문제, 또는 취업의 조건을 도외시하지 않는 리얼리티에서 ‘논어’의 힘은 비롯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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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병삼 영산대 교수·정치사상 baebs@ys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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