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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아·서울대 HK문명연구사업단 공동기획 - 문명의 교차로에서 ④

삭발한 개들이 저지른 야수적 살인이 남긴 것

기독교 광신주의와 고대문명의 종말

  • 송유레 서울대 HK교수·서양고대철학 esong@snu.ac.kr

삭발한 개들이 저지른 야수적 살인이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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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15년 3월 어느 날 기독교 광신도들이 이집트 거리에서 한 여성을 옷을 벗긴 뒤 난도질했다.
  • 배후로 지목된 이는 총대주교 키릴로스, 그는 교회를 세속 권력의 중심으로 만들고자 했다. 그간 교회에는 수많은 키릴로스가 있었다.
  • ‘히파티아 살인사건’이 오늘의 한국에 뜻하는 바는…
삭발한 개들이 저지른 야수적 살인이 남긴 것

흰 망토를 두른 히파티아.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에서.

415년 3월 어느 날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거리에서 한 여성이 습격당했다. 기독교 광신도들이 근처 교회까지 그녀를 질질 끌고 간 후 그곳에서 옷을 벗기고 조개껍데기로 난도질했다. 그리고 토막 난 시체를 광장으로 가져가 불태웠다. 당시 지중해 세계를 놀라게 했던 이 살인사건의 피해자는 철학자 히파티아, 고대 알렉산드리아가 낳은 최고의 지성인 가운데 한 사람이자, 철학과 더불어 수학과 천문학을 가르친 최초의 여자 교수였다.

여교수 살인 사건

히파티아는 알렉산드리아의 수학자 테온의 딸로 태어났다. 테온은 오늘날의 대학과 견줄 수 있는 무세이온에서 유클리드의 기하학과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문학을 가르쳤다. 히파티아는 일찍이 아버지를 통해 수학에 입문했다. 그녀는 원추형에 대한 논문을 썼고 고대 수학자들의 저서를 편집하고 주석을 달았으며, 천문관측의와 물비중계 제작에도 참여했다. 이러한 활동은 고도의 추상적 사고뿐 아니라 실험과 관찰을 중시한 알렉산드리아의 학풍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히파티아는 당대 최고의 과학자였을 뿐만 아니라, 신플라톤주의 학파를 이끈 철학자였다. 그녀는 철학자의 망토를 두르고 도심을 누비고 다녔으며, 원하는 사람이면-종교와 종파를 불문하고-누구에게나 플라톤을 비롯한 고대 철학자들의 책을 해석해주었다.

히파티아 살해의 배후로 알렉산드리아의 총대주교 키릴로스가 지목받았다. 동시대 교회사가 소크라테스는 키릴로스가 살인 사건에 직접 연루됐다는 말은 피했지만, 히파티아가 ‘정치적 시기심’ 탓에 희생됐으며, 히파티아 사건이 키릴로스 개인뿐만 아니라 교회 전체에 적지 않은 불명예를 안겨줬다고 보고한다(‘교회사’). 6세기 철학자 다마스키오스는, ‘반대파’의 키릴로스가 도시 전체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히파티아에 대한 시기와 증오에 휩싸여 살해를 직접 모의했다고 주장한다(‘철학사’). 한편 7세기 니키우의 주교 요한은 히파티아의 살인을 ‘마녀’의 제거 또는 살아 있는 우상의 파괴로 정당화하며 키릴로스를 영웅으로 치켜세운다(‘연대기’).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 라파엘로는 교회의 반대를 무릅쓰고 ‘아테네 학당’의 철학자들 사이에 히파티아를 되살려놓았다. 이후 히파티아는 종교개혁자들과 계몽주의자들에게 주목받았다. 예를 들어, 18세기 개신교 신학자 존 톨란드는 ‘히파티아 또는 가장 아름답고 가장 고결하고 가장 학식이 높고 모든 면에서 완벽한 여성, 그러나 통상적으로 하지만 부당하게도 성인이라고 불리는 대주교 성 키릴로스의 자만심과 경쟁심, 잔인함을 충족시키기 위해 알렉산드리아의 성직자들에 의해서 조각조각 찢겨진 여성의 역사’(1720)라는 긴 제목의 역사 수필을 썼고, 계몽주의자 볼테르는 ‘볼링브로그 경의 중요한 조사 또는 광신주의의 무덤’(1736)에서 히파티아의 살해를 종교적 광신주의가 천재를 박해한 사건으로 규정한 뒤 “키릴로스의 삭발한 개들이 저지른 야수적 살인”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19세기 프랑스 시인 르콩트 드 리즐은 히파티아를 “플라톤의 정신과 아프로디테의 육신”이라는 표현으로 묘사하며, 그녀의 죽음과 함께 그녀가 대표하는 고대문명의 상실을 안타까워했다. 히파티아를 주인공으로 한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감독의 최신 팩션 영화 ‘아고라’(2009)는 다시금 기독교 교회의 불편한 기억을 되살렸다. 사실, 히파티아의 삶은 영화보다 훨씬 덜 낭만적이고 그녀의 죽음은 훨씬 더 잔혹했다.

히파티아의 죽음은 ‘새로운’ 기독교 문명의 눈부신 도약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접어든 고대 그리스-로마문명의 비극적 운명을 상징한다. ‘불안의 시대’로 불리는 고대 후기, 신구(新舊)-문명의 대결이 다른 어느 곳보다 치열했던 알렉산드리아에서 벌어진 히파티아의 암살극은 고대문명의 최후를 예고하는 신호탄이었다. 히파티아가 살았던 바로 그 시대에 오랫동안 고대 그리스-로마문명의 ‘등대’ 역할을 해온 알렉산드리아가 격변의 소용돌이에 휩싸인다. 전투적 지도자들이 이끈 ‘새로운’ 종교는 이교신전 사라페이온을 파괴했고, 도시가 생긴 이래 700년간 존속한 유대인 공동체를 파멸시켰다. 히파티아의 암살 이후 오래지 않아 도시의 통치권은 교회의 수중으로 완전히 넘어갔다.

이 글에서 우리는 히파티아의 극적인 삶과 죽음을 신구 문명의 교차지 알렉산드리아의 역사 속에 위치시키고자 한다. 알렉산드리아가 잃어버린 옛 문명은 어떤 모습이었나? 그리고 새로운 문명은 어떤 얼굴로 나타났는가? 어떻게 옛 문명은 새로운 문명에서 기억됐는가? 문명의 대전환을 몸소 겪었던 히파티아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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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유레 서울대 HK교수·서양고대철학 esong@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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