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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아·서울대 HK문명연구사업단 공동기획 - 문명의 교차로에서 ⑭

“문명의 축이 이동한다” 여전히 유효한 량수밍(梁漱溟)의 동서문화론

  • 김수연│서울대 HK연구교수·중국문학 kimsy826@lycos.co.kr

“문명의 축이 이동한다” 여전히 유효한 량수밍(梁漱溟)의 동서문화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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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문화를 발전시킨 중국, 인도, 서구

“문명의 축이 이동한다” 여전히 유효한 량수밍(梁漱溟)의 동서문화론

제1차 세계대전 발발은 서구문명에 대한 중국 내 사상 논전을 촉발했다.

량수밍에 따르면, 서구는 처음에는 종교가 자못 성행했으나 비판을 받고 세력이 약화됐다. 형이상학도 처음에는 매우 성행했으나 인식론이 성행한 이후 약화되고, 결국 인식론이 서양철학의 중심문제가 됐다. 즉 서양은 처음 내적·외적, 자연·사회, 실체·변화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했지만, 점차 외적인 자연과 고정된 실체에 보다 관심을 집중하면서 첫 번째 정향을 향해 나아가게 됐다는 것이다. 이유는 서양인, 특히 근대 서양인이 이지(理智)적 활동이 매우 강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아’에 대한 자각을 바탕으로 자연을 자기 자신으로부터 분리해 분석하고 미세하게 나누어 계산하고 통제했다.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도 경계를 긋고 타산하는 태도를 취해 기계적인 관계를 이룬다. 또 정신생활 측면에서 이지가 일체를 압도해 종교가 타도되고 형이상학이 전복됐다. 지식 방면에서도 그들은 많은 과학적 성취가 있었고, 예술도 과학화했다. 이와 같이 서양인의 생활에서 이지가 중요한 도구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 결과 인생철학은 매우 미약하다는 것이 량수밍의 결론이다.

한편 중국문명에서 가장 발전이 없는 부분은 종교와 인식론이다. 중국인은 처음부터 서양처럼 ‘자아’를 인식할 수 없었고, 서양처럼 인간과 자연이 대립적으로 분리되지도 않았으며, 서양처럼 사람 사이에 경계가 분명하게 정해지지도 않았다. 더욱이 서양과 같이 지식(과학)이 발달해 그에 의지하는 생활을 하지도 않았다. 량수밍은 이는 중국이 제2 정향(의욕과 환경조건의 조화)을 추구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대신 중국에서는 독특한 형이상학과 인생철학이 발전했다. 중국의 형이상학은 우주 본체에 대한 탐구라는 점에서 서양 및 인도의 그것과 같지만 성격은 완전히 다르다. 중국의 형이상학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변화 자체를 탐구하고, 우주 자체의 변화에 부합하기 위해 노력한다. 즉 자신을 변화시켜 대상 및 환경과 조화시키려 했는데, 량수밍은 이러한 태도가 바로 인륜(윤리)의 문제에 매우 적합하다고 봤다.

인도문명은 인생철학은 거의 없으며 주로 종교문화가 지배적이다. 그리고 그것에 수반해 형이상학이 흥기하기는 했지만 더 이상 발전이 없었고, 인식론은 자못 상세한 편이다. 이는 풍족한 자연환경으로 자연을 정복해 자신의 물질적 욕구를 채워야 할 필요성이 없었기 때문으로 분석한다. 량수밍은 인도문화가 현실세계에 대한 문제보다는 그것을 초월한 영구적인 가치를 추구하고 출세를 지향하는 제3 정향(욕망의 취소)으로 나아갔다고 보았다.



이러한 문명의 발전 방향을 인류 역사의 전개과정과 결부해 본다면, 인류 역사에서 먼저 요구되는 것은 서구문명이 추구한 제1 정향이다. 외부세계의 곤경과 도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제1 정향과 같이 진취적인 자세가 요구된다. 따라서 외부세계에 대한 과학적 연구를 통해 물질문명을 발전시킨 서구문명의 성취는 근대화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에 비해 중국문화는 일찍이 제1 정향의 문제를 해결했다고 보고, 곧바로 제2 정향으로 나아갔으며, 인도문명은 제1 정향과 제2 정향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보고 바로 인류의 고등문명에서나 의미 있는 제3 정향으로 나아갔다.

이와 같이 문화 방향의 차이로 인해 동서 간 접촉이 없었다면 중국과 인도는 여전히 각각 제2 정향과 제3 정향을 지향하고 있을 것이고, 서구적인 근대문명을 창출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량수밍은 동서문명이 접촉하면서 세 가지 정향의 문제는 각 문명 관점이 아닌 인류문명의 관점에서 새롭게 조명할 필요가 있으며, 인류 전체 역사 발전의 단계에 맞게 새롭게 자신의 태도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인류문화의 3단계와 세 가지 태도

이러한 인식에 근거해 량수밍은 인류문화의 3단계와 인류문화의 세 가지 태도를 연계해 역사철학을 구성했다. 즉 인류에게 중요한 문제는 물질적 문제, 내적생명에 대한 문제, 생사를 초월한 본체에 관한 문제인데, 물질적 문제를 연구해 적극적으로 극복하려 한 문명이 바로 고대 서구문명이었다. 물론 서구 근대에 이르러 가장 큰 성과를 이루었다. 그리고 내적생명에 대한 직각(直覺)적 연구를 통해 해결방안을 모색해 일정한 성과를 이룬 문명은 고대 중국문명인데, 이제 다시 흥하려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생사를 초월한 우주의 본질에 관한 연구는 고대 인도문명에서 가장 큰 성취를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먼 장래에 부흥하게 될 것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세 가지 문화 정향은 문제의 변화에 따라 태도도 변화한다. 량수밍은 근대에서 서양문화의 승리는 단지 인류가 직면한 문제에 적절했기 때문이고, 인도문화와 중국문화의 실패는 그 자체의 문제점 때문이 아니라 현 시기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따라서 그는 막스 베버와 마찬가지로 서구와 같은 근대문명은 오직 서구문화의 내적인 정향의 결과이며 타문화에서는 불가능했다는 결론을 낸다.

그러나 베버와 달리 량수밍은 전체 인류의 역사 발전에서 볼 때 20세기의 현 단계는 바로 제1 정향에서 제2 정향으로 나아가는 과정에 있다고 봤다. 즉 인류가 직면한 문제가 제1 정향과 같은 태도가 아니라, 제2 정향과 같은 태도를 취하도록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근거로 제시하는 것이 바로 서구문명의 변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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