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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동 교수의 新經筵 ②

최치원의 ‘현묘한 도’는 언제 찾을까?

  • 이기동| 성균관대 유학동양학과 교수 kdyi0208@naver.com

최치원의 ‘현묘한 도’는 언제 찾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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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의 ‘현묘한 도’는 언제 찾을까?

최치원 초상.

눈이 녹으면 무엇이 될까? 이 물음에는 두 가지 답이 있다. 물이 된다는 것과 봄이 된다는 것, 그것이다. 물이 된다는 것은 현상을 말하는 것이고, 봄이 된다는 것은 흐름을 말하는 것이다. 흐름을 아는 사람은 눈이 녹을 때 봄을 준비하지만, 현상만을 아는 사람은 봄 준비를 하지 못한다. 봄 준비를 하지 못한 사람은 봄이 왔을 때 살아남지 못한다. 그러므로 흐름을 알고 미래에 대비할 수 있는 지혜를 가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데 눈이 녹으면 봄이 된다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눈이 녹을 때 봄이 왔고, 그전 해에도 눈이 녹을 때 봄이 왔으며, 그 전전 해에도 눈이 녹으면 봄이 왔다. 봄이 지나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지나면 가을이 오고, 가을이 지나면 겨울이 온다. 그리고 겨울이 지나면 다시 봄이 온다. 이처럼 세월은 사계절이 끝없이 순환하며 진행한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사계절을 끌고 가는 두 힘은 더위와 추위다. 봄은 더위가 끌고 가는 계절이고, 가을은 추위가 끌고 가는 계절이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하면 사계절은 더위가 끌고 가는 봄과 추위가 끌고 가는 가을뿐이다. 여름이란 봄에서 가을로 바뀌는 전환기일 뿐이고, 겨울이란 가을에서 봄으로 가는 전환기일 뿐이다. 그러므로 어른의 나이를 물을 때 “춘추(春秋)가 얼마입니까”하고 묻기만 하면 된다. 굳이 “춘하추동이 얼마입니까”라고 물을 필요는 없다.

사이클을 가지고 순환하는 것이 사계절뿐만은 아니다. 모든 진행은 사이클을 가지고, 파형을 이루며 진행한다. 화살이나 총알처럼 직선으로 바로 가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은 파형을 이루며 날아간다.

역사의 진행도 그렇다. 인류의 역사도 사계절처럼 순환을 하며 진행한다. 그런데 역사의 진행은 사이클의 범위가 크다. 500년 단위로 진행할 수도 있고, 그보다 더 클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역사의 사이클을 경험할 수 없다. 역사의 봄이 올 때는 봄을 대비해야 하고, 가을이 올 때는 가을을 대비해야 하지만, 사람은 역사의 흐름을 경험할 수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

그러나 사람은 역사의 흐름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기록에 남아 있는 다른 사람의 경험을 통해서다. 역사학의 중요한 의미는 여기에 있다. 역사학의 목적은 과거에 있었던 사건을 파악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공자는 “옛것을 익혀 다가올 미래를 알아야 스승이 될 수 있다(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고 했다. ‘논어’ 위정편에 나온다. 스승은 오늘날 말로는 ‘리더’다. 리더는 미래의 시대를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역사의 사이클 모르는 인간

역사는 유유히 흐르는 강물처럼, 하나의 흐름을 이루며 진행한다. 그 흐름은 하나이기 때문에 과거의 흐름을 알면 미래의 흐름을 알 수 있다. 역사적 사실은 강물에서 튀어 오르는 물방울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일정할 수 없다. 과거에 일어난 역사적 사실은 알 수 있어도, 미래에 일어날 역사적 사실을 예측할 수 없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나 그 역사적 사실의 밑바닥에 흐르는 역사의 흐름 그 자체는 하나이기 때문에 과거의 흐름을 알면 미래의 흐름을 알 수 있다. 리더는 이런 흐름을 살펴야 한다.

역사의 흐름을 끌고 가는 두 힘은 몸과 마음이다. 이 두 요소가 역사를 끌고 가는 견인차다. 역사는 몸을 중시하는 시대와 마음을 중시하는 시대가 번갈아가며 진행된다. 지금 세상은 서구 문화가 중심이 되어 있는 시대이고, 마음보다 몸을 더 중시하는 시대다. 우리의 젊은이들이 ‘몸짱’ ‘얼짱’ 등의 말은 쓰면서, ‘마음짱’이란 말을 쓰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몸은 물질이고, 몸에 가장 필요한 것이 돈이므로, 지금은 물질주의 시대이고 자본주의 시대다.

몸 중심의 시대에 나타나는 가장 큰 특징은 치열한 경쟁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물질적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무한 경쟁을 한다. 물질문명의 발달은 경쟁할 때보다 더 빠른 때가 없다. 그래서 지금은 물질문명이 극도로 발달했고, 그 때문에 물질이 풍부해졌다. 그러나 경쟁이 너무 치열해지면 정신적으로 여러 문제가 생겨난다.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사람들에게는 친구 개념이 사라진다. 친구도 경쟁자일 뿐이다. 나에게 좋은 일이 있을 때 많은 친구가 겉으로는 축하를 하지만 속으로는 배 아파한다. 나에게 나쁜 일이 있을 때 겉으로는 위로하지만, 속으로는 기뻐한다. 친구들의 말도 잘 새겨보면 나를 저주하는 것 같은 내용이 들어 있다. 그래서 오늘날 사람들은 차츰 사람을 싫어하게 된다. 사람과 어울리기보다는 개하고 노는 사람이 자꾸 늘어난다.

몸을 중시하는 시대, 마음을 중시하는 시대

미국의 한 병원에서 ‘누가 환자를 간병하는 게 가장 효과적일까’하는 조사를 했다.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가족이 간호하는 경우도 아니고, 전문 간병인이 간호하는 경우도 아니었다. 개 한 마리씩 붙여주는 것이 가장 효과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사람보다 개에게서 더 많은 위로를 받는다는, 사람보다 개가 더 좋은 시대로 접어들고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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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동| 성균관대 유학동양학과 교수 kdyi020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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