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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동 교수의 新經筵 ⑪

‘밥보’ 되지 않고 한마음으로 살아가기

사춘기처럼 방황할 것을 권하다

  • 이기동 | 성균관대 유학동양학과 교수 kdyi0208@naver.com

‘밥보’ 되지 않고 한마음으로 살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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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보’ 되지 않고 한마음으로 살아가기

원효대사(왼쪽)와 퇴계 이황.

태어나는 순간은 어머니와 분리되는 첫 번째 순간이다. 분리되는 것은 고독해지는 것이고, 고독해지는 것은 슬픈 일이다. 그래서 아이는 울면서 태어난다. 어머니에게서 분리되는 충격은 다시 어머니의 품속으로 들어감으로써 완화된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어머니의 사랑만으로 다 덮을 수 없는 시기가 찾아온다. 사춘기다. 사춘기는 부모의 품으로부터 정신적으로 독립하는 시점이다. 이성(異性)에 눈뜨고, 자기의 인생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는 때다. 육체적으로 거의 성인(成人)이 되었지만 정신적으로 미숙하던 사람이 사춘기를 지나며 정신적으로도 성인이 되기 위해 몸부림친다. 사춘기 때 가장 강력하게 다가오는 물음은 바로 이것이다.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사춘기 이전까지는 별생각 없이 살아올 수 있다. 모든 문제는 부모가 해결해 준다. 특별히 고민할 것 없이 순조롭게 살 수 있다. 사춘기가 되면 달라진다. 부모의 품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고 사회에 적응하려 안간힘을 쓴다. 사춘기는 홍역을 치르는 때다. 홍역을 혹독하게 앓아야 인간이 된다. 과거에는 아이가 홍역을 치르기 전에는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는 예도 많았다. 출생신고를 미리 해봤자 홍역을 치르다 죽으면 헛일이 되기 때문이다. 60대에 접어든 우리 세대 가운데 법적인 나이와 실제 나이가 다른 이가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산다는 것은…

사춘기라는 홍역을 치를 때의 특징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그러지 않았다. 부모가 시키는 대로 열심히 달려오기만 했다. 부모가 시키는 대로 열심히 공부했고, 남과 경쟁했다. 경쟁은 남에게 이기기 위해서 한다. 경쟁하면 할수록 사람들은 더 똑똑해지고 싶어 한다. 그래서 공부를 한다. 공부는 지식을 쌓는 것이다. 지식을 쌓는 것은 똑똑해지는 것이고,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다. 그러나 사춘기가 돼 생각이 많아지면 그런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돌아보게 된다.

생각 없이 살아온 지금까지의 세월을 돌아보면 그리 짧은 시간이 아니었지만, 지나고 보면 한순간이다. 그렇다면 남은 일생도 한순간일 것이다. 세월은 쉬지 않고 흐른다. 잠시도 쉬지 않고 흐르는 물처럼 한순간도 멈추는 일이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흘러간다. 흐르고 흐르다가 도달하는 곳은 죽음이라는 바다다.

죽음이란 바다에 들어가는 일은 조만간 다가온다. 그리 먼 훗날의 일이 아니다. 그 바다에 도달하면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의 차이가 없다. 이긴 사람이나 진 사람이나 매한가지다. 똑똑한 사람이나 어리석은 사람이나 다를 게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 바다에 들어가는 일은 생각지도 않은 채 남과 싸워 이길 궁리만 한다. 자기가 남보다 똑똑하다고 뽐내기에 바쁘다. 그런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까마득한 옛날에 살았던 공자도 그것을 깨닫고는 이런 말을 남겼다.

“사람들은 다 자기가 지혜롭다고 말하지만, 그들을 그물이나 덫이나 함정 속으로 몰아넣어도 피할 줄을 모른다(人皆曰予知, 驅而納諸 苦獲陷穽之中 而莫之知?也).”

참으로 그렇다. 사람들은 잠시도 쉬지 않고 죽음의 바다로 달려가고 있는데도 그것을 피할 줄을 모른다. 그물이나 덫이나 함정은 조만간 다가올 죽음의 바다다. 생전에 이뤄놓은 것이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말 바다, 그 바다가 눈앞에 와 있다. 사람들이 그 바다를 까마득한 먼 훗날의 일로 느낀다면 착각이다. 지나온 시간이 금방이듯, 남은 시간도 순간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삶이 절박해진다. 의사에게 앞으로 살날이 두 달밖에 남지 않았다는 말을 들은 말기 환자와 같은 심경이 된다. 그렇다면 지금까지와 같은 방식으로 계속 살 수는 없다. 어제처럼 내일을 살 수는 없다. 그렇게 사는 것은 의미가 없다. 결국 지금까지의 삶의 방식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다. 그것이 방황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가치 있는 삶인지 몰라 방황한다. 사춘기 때의 방황은 홍역이다. 홍역을 치러야 인간이 되듯 방황을 해야 인간이 된다. 홍역은 육체적으로 인간이 되는 과정이고, 방황은 정신적으로 인간이 되는 과정이다. 방황을 하면 세속적인 가치들에 관심이 없어진다. 인생의 의미를 알기 위해 방황하지 않고는 세속적 가치에 대해 초연할 수 없고, 세속적 가치에 초연하지 못하고서는 진리를 얻을 수 없다.

나는 사람들에게 방황을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특히 사춘기의 청소년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그렇다고 거리를 헤매고 다니라는 말은 아니다. 정신적으로 인생의 의미를 찾아가는 방황이어야 한다. 방황을 하면 세속적 가치에 관심이 없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어진다. 생명이 두 달밖에 남지 않은 절박한 환자에게는 다른 사람의 일이 관심사가 될 수 없다. 자기의 문제가 너무 다급해 누가 어떻게 성공했는지, 성공한 사람들 중에서 누가 더 훌륭한지 등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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