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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연재 | 김석균 해양경찰청장의 ‘해적 이야기’

해양의 역사는 해적의 역사 기원전 14C 소아시아 해적이 원조

고대 해양국가와 해적의 기원

  • 김석균│해양경찰청장 sukkyoon2001@yahoo.co.kr

해양의 역사는 해적의 역사 기원전 14C 소아시아 해적이 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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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세기 이후 자취를 감춘 듯했던 ‘낭만 해적’이 ‘현대 해적’으로 부활했다.
  • 선박 납치와 인질극을 서슴지 않는 현대 해적은 해양 평화를 깨트리는 주범이다. 해적질은 인류가 바다에 진출하면서부터 시작됐다. 해양의 역사는 곧 해적의 역사다. 김석균 해양경찰청장의 해적 이야기엔 해양의 역사에 대한 인문학적 고찰이 담겨 있다.<편집자>
해양의 역사는 해적의 역사 기원전 14C 소아시아 해적이 원조

2011년 1월 21일 해적에게 납치됐던 삼호주얼리호를 완전히 장악한 청해부대 UDT 대원들이 조타실 주변을 지키고 있다. 생포된 채 무릎을 꿇고 있는 해적들도 보인다.

해양 질서가 확립되고 해상 안전이 강화된 오늘날에도 세계 곳곳의 바다에서는 해적질이 계속되고 있다. 국제상공회의소 국제해사국(IMB) 자료에 따르면 1998~2012년 15년간 전 세계에서 5112건의 해적 공격이 발생했다. 동남아 해역에서 1735건(34%), 소말리아·아덴만·나이지리아 해역을 비롯한 아프리카 해역에서 1862건(36%)이 발생했다. 두 지역의 발생건수가 3분의 2에 달한다. 1990년대 초부터 증가한 해적 공격은 2000년대 중반 연평균 350∼450건으로 정점에 달했다. 2007∼2012년에는 매년 260∼450건이 발생했다.

해적의 공격으로 국제사회가 겪는 인적·물적·경제적 피해는 막대하다. 무엇보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이 인명피해다. 2011년에만 선원 1118명이 인질로 잡혔고 이 중 24명이 살해됐다.

해적 공격에 의한 경제적 피해는 몸값, 선박·화물 피해, 화물 운송 지연, 선박 보험료 증가, 군사적 비용 등으로 나눠볼 수 있다. 지난해 2월 발표된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국제사회가 지금까지 소말리아 해적에게 지불한 몸값만 3억 달러에 달하고, 보이지 않는 경제적 피해는 70억~120억 달러에 달한다.

해적질은 여러 나라의 해상무역에 큰 피해를 끼치고 있다. 선박들이 해적의 공격을 우려해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지 않고 운항일수가 늘어나더라도 희망봉으로 우회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에 따라 운하 소유국인 이집트는 커다란 재정적 손실을 입고 있고 선사들의 운송비용도 크게 증가했다. 희망봉으로 우회할 경우 대체 항로의 거리는 3500마일 더 길고 항해기간은 12∼15일이 더 소요됨에 따라 하루에 2만∼3만 달러의 추가비용이 들어간다. 우회하는 비용은 2011년 기준으로 4억8000만∼6억8000만 달러에 달했다.

해적이 기승을 부리면서 보험료도 가파르게 인상되고 있다. 보험업계는 소말리아 해적이 활개 치는 인도양을 ‘전쟁 위험지역’으로 분류하고 2008년 후반기에 아덴만을 통과하는 선박의 보험료를 10배나 올렸다. 이 때문에 아덴만을 통과하는 전체 수송비용이 상승하는 결과를 낳았다.

선박보험료 10배 껑충

보험료와 해상 수송비용의 증가는 결국 중동산 유가를 올리고, 중동산 석유에 의존하는 국가들은 그만큼 더 높은 유가를 지불해야 한다. 이것은 연쇄적으로 모든 산업의 비용을 상승시키고 세계 무역비용도 증가시킨다. 소말리아 해적이 중동산 석유가격을 올리고 그 비용이 고스란히 전 세계 경제에 전가되는 구조다.

해적 피해가 커지면서 선사들은 자구책으로 보안 장비를 강화하고 무장요원을 승선시키고 있다. 선사들은 보안장비를 설치하고 사설 무장요원을 고용하기 위해 10억∼11억6000만 달러의 비용을 쓰고 있다. 30여 국가가 해적 퇴치 활동에 군대·장비·함정을 지원하는 데 10억2000만 달러를 썼다. 해적을 체포할 경우 이들을 사법처리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2011년 20개국이 해적을 체포했는데 이들을 기소하는 비용만 1600만 달러가 들어갔다.

현대 해적은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다. 19세기 말 이후 해적질이 확연히 줄면서 바다에서 해적이 자취를 감춘 듯했다. 역사 속 낭만적인 이미지의 해적이 ‘현대 해적’이라는 무서운 이름으로 다시 바다로 돌아왔다. 현대 해적에겐 대항해시대 해적에게서 엿보이던 낭만과 환상이 없다. 뱃사람들의 목숨을 위협하고 재물을 탈취하며 해양 질서를 파괴하는 ‘바다의 악당’이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은 채 현대의 첨단 정보통신 기술과 무기를 활용해 더욱 지능화하고 흉포해져서 돌아왔다.

사멸된 해적이 다시 살아난 게 아니다. 해적의 명맥은 어디에선가 이어져왔다. 소규모로, 산발적으로 있었던 해적행위는 국제사회 전체가 신경 쓸 정도가 아니었고 지역적 문제에 불과했다. 그러나 병원균이 활동할 수 있는 적당한 온도와 습도가 만들어지면 일시에 확산되듯이 해적도 발호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지자 ‘낭만’에서 뛰쳐나와 잔혹한 폭력을 자행하는 현대 해적으로 부활했다. 현대 해적의 기원은 해적활동이 정점을 찍은 근세 대항해시대를 지나 고대 해양국가, 그리고 훨씬 이전의 신화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크레타人이 꽃피운 해양문화

항해는 바다를 주로 사람의 이동과 물자의 수송을 위해 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인류가 행한 최초의 국제적 사업’이라 할 수 있는 항해의 기원은 전설과 신화의 세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전설과 신화는 역사가 아니기 때문에 사실적으로 증명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항해의 역사가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됐다는 것이다.

항해는 주변 세계를 소유하려는 인류의 의지와 수평선 뒤에 존재하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탐험심을 반영한다. 수천 년을 지나는 동안 배를 이용한 운송은 육상의 어떤 운송수단보다 우월했다. 노에서 돛, 연안 스케치에서 해도, 자석에서 나침반, 천체 관측에서 천문항법, 태양 운행에서 시간 측정으로 발달한 천문지식과 항해술의 발전은 더 많은 사람과 화물을 싣고 더 먼 바다로 항해할 수 있게 했다.

초기엔 지중해가 항해의 중심이었다. 지중해로 가장 먼저 진출한 사람들은 오늘날 레바논 해안에 살았던 페니키아인들이었다. 기원전 2000년대 전반기 페니키아인들은 지중해의 남부, 중부를 중심으로 항해와 무역을 했고, 해상전투를 위해 전선을 처음으로 제작했다. 페니키아인들은 지중해 연안에서 무역에 종사하면서 사르데냐 섬, 코르시카 섬과 같은 곳에서 여러 식민도시를 건설했는데 기원전 6세기에 오늘날 튀니지의 수도 튀니스 근방에 세운 카르타고도 그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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