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史記에 길을 묻다

천하를 독점하려는 자 천하를 잃는다

민심은 곧 권력

  • 김영수 | 사학자, 중국 史記 전문가

천하를 독점하려는 자 천하를 잃는다

2/3
천하를 독점하려는 자 천하를 잃는다

숙향은 정치가와 위정자들을 향해 ‘득국오난(나라를 얻기 위한 다섯 가지 어려움)’을 설파했다.

그런데 또 한 사람, 진(晉)나라 대부 순식(荀息)은 헌공이 죽기에 앞서 어린 해제와 탁자를 잘 보살펴 이들을 진나라 군주로 옹립해달라며 뒷일을 부탁하자 목숨을 걸고 이들을 지키겠다고 맹세했다. 하지만 해제와 탁자에 이어 이극에게 피살됐다. 순식은 목숨으로 절개를 지켰지만 해제와 탁자를 죽음으로부터 구해내진 못했다.

사마천은 이 두 사건을 함께 다뤘다. 사건의 성격이 서로 비슷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마천은 ‘정세가’ 논평에서 두 사건의 본질을 다음과 같이 갈파했다.

권세와 이익으로 뭉친 자들은 권세와 이익이 다하면 멀어지기 마련이다(以權利合者, 權利盡而交疏). 보하가 그랬다. 보하는 정나라 군주를 겁박하여 여공을 맞아들였지만 여공은 끝내 그를 배신하고 죽게 했다. 이것이 진나라의 이극과 뭐가 다른가. 절개를 지킨 순식은 자신의 몸을 버리고도 해제를 지키지 못했다. 형세의 변화에는 다양한 원인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천하를 얻는 길

어떤 일의 상황이 시시각각 달라지는 데는 많은 원인이 작용하게 마련이라는 사마천의 지적은 참으로 핵심을 찌른 말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인간사 변화와 변질의 가장 강력하고도 추악한 요인은 사마천이 첫머리에 지적한 권세와 이익일 것이다.



맹자는 자신의 어록이자 대화록이라 할 수 있는 ‘맹자(孟子)-이루(離婁)’ 상(上)편에서 “걸 임금과 주 임금이 천하를 잃은 것은 그들의 백성을 잃었기 때문이며, 그들의 백성을 잃었다는 것은 그들의 마음을 잃었다는 것이다(失其民者, 失其心也)”라고 썼다. 그러면서 “천하를 얻는 길이 있으니 그 백성을 얻는 것이고, 백성을 얻는 방법이 있으니 그 마음을 얻는 것이다. 그 마음을 얻는 방법이 있으니 하고자 하는 것을 모아주고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도 했다.

맹자는 천하의 책임을 위정자 한 사람의 덕으로 돌리면서도 위정자의 존재를 극단적으로 격하했다. 그래서 “백성이 가장 귀하고, 사직(나라)이 다음이고, 군주는 가볍다”라고 말한다. 맹자는 백성의 권익을 맨 위에 놓았다. 그렇기 때문에 천하를 얻으려면 백성들이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음으로써 백성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는 의식이 가능했던 것이다.

한편 ‘회남자(淮南子)’(병략훈)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여러 사람을 위해 일하면 많은 사람이 돕지만, 자신을 위해 일하면 사람들이 떠나간다(擧事以爲人者, 衆助之 ; 擧事以自爲者, 衆去之). 여러 사람이 도우면 약해도 강해질 수밖에 없고, 사람들이 떠나면 강해도 망할 수밖에 없다(衆之所助, 雖弱必强 ; 衆之所去, 雖大必亡).”

맹자의 말과 같은 맥락이다. 사심 없이 백성을 위해 일하는 것이야말로 민심을 얻는 길이란 의미다. 민심이야말로 통치의 좋고 나쁨은 물론 옳고 그름을 가늠하는 절대 기준이다. 그래서 민심을 얻는 자가 천하를 얻는다고 하는 것이다.

춘추시대 남방의 초나라 평왕(平王)은 속임수로 두 왕을 시해하고 스스로 왕이 된 인물이다. 즉위 후 그는 백성과 제후들이 반발할까 겁이 나서 은혜를 베풀었다. 주변국인 진(陳)나라와 채(蔡)나라에는 빼앗은 땅을 돌려주고 예전처럼 그 후손을 국군으로 세웠으며, 빼앗은 정나라 땅도 되돌려줬다. 나라 안을 잘 다독거리고, 정치와 교화를 정돈했다.

당초 평왕의 아버지 공왕(共王)에게는 총애하는 아들 다섯이 있었지만 적자를 세우지 않았다. 귀신들에게 제사를 올려 귀신이 결정하면 그에게 사직을 맡기려 했다. 그래서 몰래 실내에다 벽옥을 묻어두고는 다섯 공자를 불러 목욕재계시킨 뒤 안으로 들여보냈다.

훗날 강왕(康王)이 되는 맏아들은 벽옥을 뛰어넘었고, 영왕(靈王)이 되는 둘째 위는 팔로 벽옥을 눌렀으며, 셋째와 넷째인 자비와 자석은 벽옥에서 멀리 떨어졌다. 가장 어린 평왕 기질(棄疾)은 다른 사람 품에 안긴 채 절을 했는데 벽옥의 한가운데를 눌렀다.

得國五難

결과적으로 강왕은 장자로 즉위했으나 그 아들에 이르러 자리를 빼앗겼고, 위는 영왕이 됐으나 시해당했고, 자비는 열흘 남짓 왕 노릇을 했고, 자석은 왕위에 오르지도 못하고 모두 죽임을 당했다. 네 아들이 모두 후손이 끊겼다. 유독 기질만이 훗날 자리에 올라 평왕이 돼 초의 제사를 이어갔으니 마치 신의 뜻에 부합한 것 같다.

영왕이 시해당한 뒤 자비가 진(晉)나라에서 돌아오자 한선자(韓宣子)가 숙향(叔向)에게 “자비가 성공하겠습니까?”라고 물었다. 숙향은 “못할 것입니다”라고 했다. 선자가 “저들이 같은 증오심을 가지고 서로를 필요로 하는 것이 마치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것 같은데 어째서 안 된다는 것입니까?”라고 묻자 숙향은 이렇게 답했다.

“함께 어울려 잘 지내는 사람도 없는데 누구와 함께 미워합니까. 나라를 얻는 데는 다섯 가지 어려움(得國五難)이 있습니다. 총애하는 자는 있는데 인재가 없는 것이 그 하나요, 인재는 있는데 지지세력이 없는 것이 그 둘이요, 지지세력은 있는데 책략이 없는 것이 그 셋이요, 책략은 있으나 백성이 없는 것이 그 넷이요, 백성은 있으나 덕이 없는 것이 그 다섯입니다.”

천하를 독점하려는 자 천하를 잃는다

중국 산시(陝西)성 바오지(寶溪)시에 남아 있는 강태공 사당 조어대(釣魚臺)의 강태공상.



2/3
김영수 | 사학자, 중국 史記 전문가
목록 닫기

천하를 독점하려는 자 천하를 잃는다

댓글 창 닫기

2019/07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