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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연재 | 허세욱 교수의 新열하일기

“압록강 건넌 지 사흘, 이 문에 한 발자국 옮기면 중국 땅이다”

  • 허세욱 전 고려대 교수·중문학

“압록강 건넌 지 사흘, 이 문에 한 발자국 옮기면 중국 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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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암 박지원은 평생 벼슬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말과 글로 표현했다. 그의 글은 중국의 소동파나 한유의 재주에 견줄 만큼 뛰어난 것으로 평가된다. 1780년 사절단의 일원으로 중국 땅을 처음 밟은 연암이 쓴 ‘열하일기’는 18세기 후반의 청나라 문물에 대한 묘사가 세밀해 조선 3대 연행록(燕行錄) 중 하나로 꼽힌다. 연암의 뛰어난 관찰력, 방대한 지식, 배꼽을 잡게 하는 유머, 조선의 앞날에 대한 염려, 그리고 따스한 인간애가 잘 직조된 기행문이다. 허세욱 전 고려대 교수가 지난해 겨울부터 ‘열하일기’를 들고 연암의 발자취를 쫓기 시작했다.
“압록강 건넌 지 사흘, 이 문에 한 발자국 옮기면  중국 땅이다”

허세욱 교수가 뒤쫓게 될 연암 박지원의 연행도.

마침내 압록강 푸른 물을 베고 자리에 누웠다. 오리 대가리처럼 퍼런 물이라서 압록(鴨綠)이라는 강. 한 걸음이라도 더 가까운 자리에서 강 건너 내 조국 땅의 닭 우는 소릴 듣고자 압록강 철교에서 가장 가까운 주막집에 여장을 풀었다.

거기 9층의 동쪽 다락방, 밤이 내리자 동창 아래로 압록강 철교와 단교, 그 두 다리가 휘황한 불빛에 내달리는 열차를 방불케 한다. 저 철교를 건너면 내 반쪽 몸뚱이 같은 조국이 있다. 거기 내 겨레 내 형제가 사는 신의주가 곤히 잠들어 있는데, 커튼을 젖히고 또 젖혀도 그곳은 칠흑이다. 난생 처음 북한 땅을 굽어보는 잠자리에서 나는 심신의 착란은 물론 시간과 공간의 도착(倒錯) 현상으로 애를 먹고 있다.

내가 압록강 하구에 있는 단둥(丹東)에 온 것은, 1780년 청나라 건융의 고희(古稀) 경축 사절을 수행한 연암(燕岩) 박지원(朴趾源)의 연행(燕行) 전 코스를 220여 년 만에 뒤쫓기 위해서다. 연암은 1780년 6월24일, 용만(龍滿·지금의 의주)의 구룡정을 떠나 압록강을 건너고, 그 해 8월20일까지 중국 열하에 다녀와 ‘열하일기’를 남겼다.

기왕에 ‘열하일기’ 전 코스를 답사키로 목적했으니 나는 비록 대한민국 국민으로 2006년 11월19일을 살고 있지만 시계를 226년 뒤로 돌려 연암과 동행키로 한다. 그때 연암은 8촌 형인 사은겸진하정사(謝恩兼進賀正使) 박명원(朴明源)의 수행원 자격으로 중국 여행길에 올랐고, 마부 창대와 하인 장복을 대동했는데 내가 그 무리에 끼어들기로 한 것이다.

출국 전야인 6월23일 밤, 연암은 통군정이 있는 의주에서 잠을 설칠 수밖에 없었으리라. 동경하던 청나라에 내일이면 들어간다는 설렘과, 의주에서 열흘이나 장마와 홍수에 갇혀 있었던 지루함이 이제 끝난다는 흥분 때문이리라. 지금쯤 창대와 장복을 곁에 두고 행장을 챙기며 시시콜콜 야단을 칠 게고, 벼루와 석경, 붓 두 자루에 먹, 그리고 공책 네 권과 한 축의 이정표는 따로 꽁꽁 챙겨놓았겠지.

그날의 연암과 나의 생각은 엇갈린다. 당시 연암은 당쟁의 나라이자 정체의 나라인 조선을 홀가분하게 탈출해 요동벌로 북진하는 격정 속에 있었고, 나는 압록강변서 머리를 남쪽으로 두고 동강난 조국의 문턱을 못내 아쉬운 마음으로 조망하고 있다.

홀딱 반해 두 손 들다

내가 연암을 처음 만난 것은 1950년대 초, 대학 입학 시험을 준비할 때 ‘허생전’ ‘호질전’ ‘열하일기’ 등을 외우면서다. 그러나 혀끝에 오르다 만 정도였다. 두 번째는 1970년대 초, 이가원 선생이 번역하고 주석한 ‘국역 열하일기’(민족문화추진회, 1968)를 읽으면서다. 그때 연암의 사상과 문장, 그 재주에 탄복했지만 여전히 먼 거리감이 있었다. 그로부터 30년이 훨씬 지난 금세기 초, 홀로 ‘열하일기’를 정독했다. 글의 구성과 문장력, 중국 고전을 인용하는 방대한 지식, 그 모든 것에 흠뻑 심취했다. 시쳇말로 홀딱 반해 두 손을 들고 말았다. 나 또한 중국의 고전과 현대문학을 업으로 삼은 지 오래고, 내 나이 연암보다 많은데 말이다.

연암은 나이 마흔넷에 연행(燕行)했고, 그 이듬해부터 3년에 걸쳐 ‘열하일기’를 완성하고, 예순아홉 되던 해 세상을 떠났으니 그 재주에 하늘이 몹시 인색했다. 더구나 내 나이 마흔네 살 때, 예순아홉 살 때와 견주면 땀이 날 만큼 부끄럽다. 나는 이토록 편리한 세상에 온갖 혜택을 죄 누리며 기껏해야 바늘구멍만큼 작은 주제를 맴돌다 마는데 연암은 건축, 토목, 의약으로부터 천문, 종교, 음악에 이르기까지 종횡무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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