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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세욱 교수의 新열하일기 10

겨자씨 하나 주고받아도 필시 정당한 까닭이 있어야…

  • 허세욱 전 고려대 교수·중문학

겨자씨 하나 주고받아도 필시 정당한 까닭이 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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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80년 8월15일부터 20일까지 일기는 ‘열하일기’ 전집 중 아직도 중반이지만, 일기만 놓고 따지면 종장(終章)에 접어들었다. 레이스로 치면 반환점에 선 셈이다. 반환점인 8월15일 이후의 일기를, 연암은 ‘환연도중록(還燕道中錄)’이라고 했다. 연경(지금의 베이징)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보고 겪은 일을 기록한 것이다.
겨자씨 하나 주고받아도 필시 정당한 까닭이 있어야…

쌍탑산 주변 지도.

연경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연암은 속이 있는 대로 뒤틀렸다. 물론 갑작스러운 일은 아니고, 연행을 시작하면서 못마땅했던 점들이 쌓인 결과다. 당초 청나라 고종 황제의 칠십 축수(祝壽)를 위해 길을 나서긴 했으나, 어느 날 어느 곳으로 오라는 것인지가 불분명했다. 산전수전 다 겪고 북경에 도착하기까지 축수 지점을 몰랐다.

북경에서 닷새째 되던 날, 갑자기 열하로 오라는 황제의 지시를 받고 곧장 밤낮 가리지 않은 채 ‘나는 말을 믿고 말은 제 발을 믿고 발은 땅을 믿으며’ 열하로 향했다. 그리고 열하에 도착한 지 엿새 만인 8월14일 어스름 저녁, 또 한 번 북경을 거쳐 조선으로 돌아가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오고 가는 것이 조선 사절 마음대로가 아닌, 청나라 황제의 지시에 따라 결정된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속이 뒤틀리는 판인데 조선 사절과 예부 사이에 오가는 ‘상주(上奏·임금에게 말씀을 아뢰던 일)’와 ‘칙유(勅諭·임금의 말씀)’에 터무니없는 ‘잠개(潛改)’, 그러니까 몰래 개필하는 짓이 자행되고 있음에 연암의 분노가 폭발했다. 3000리를 발섭(跋涉)했다가 겨우 엿새 만에 되돌아가는 것만으로 분통이 터지는데 하물며 예부와 역관의 농간이라니!

그래서 8월15일자 일기는 조선 사신이 예부에 항의하는 정문(呈文)에 대한 잠개 문제로부터 시작된다. 일기 전후로 보아 우리 사절의 상주에 모호한 부분이 있었던 것도 같으나 북경으로 귀환하라는 결정은 전적으로 예부의 단독 결정이거나 잠개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우리 사절은 강경하게 항의했지만 서로 책임을 전가하고 도리어 예부와 각을 세우는 결과만 초래했다. 따질 수도 참을 수도 없는 곤경을 연암은 따로 ‘행재잡록(行在雜錄)’에 털어놓았다.

오랑캐 본성은 골짜기 같아

‘행재잡록’은 황제가 여행 중인 곳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을 기록한 글이다. 8월4일부터 14일까지 청나라 예부와 조선사절 사이에 올리고 내린 주유(奏諭) 외에, 연암이 나라를 걱정하고 겨레를 걱정한 나머지 허심탄회하게 피력한 국가관이 있다. 주유 내용에는 예부가 역관(譯館)의 대사를 통해 조선 사절로 하여금 열하로 오게 하라는 분부를 비롯해 경축 사절의 규모를 알리는 유시, 그리고 8월9일까지는 꼭 도착하라는 칙유가 포함돼 있다. 또한 황제가 조선 사절을 2품, 3품의 반열에 세웠으니 거기에 감사하는 주문을 올리고 차스룬부(札什倫布)를 찾아 반첸을 배알하고, 조선의 국왕은 조공을 하되 번잡한 허례허식은 그만두라는 내용의 칙유가 있었다.

그뿐 아니다. 읽어 내려가는 필자의 이마에 땀이 맺힐 정도다. 청나라 황제는 조선 사절의 일거일동을 시시콜콜하게 지시했다. 오늘날 국제간의 외교 관례나 의전 절차가 복잡다단하다지만 이렇게 일방적일 수 없다는 생각에 분이 치밀었다.

연암은 진보적인 현실 절충론자였다. 그는 여기서 18세기 당시 조선인이 겪은 고뇌를 대변했다. 그때 청나라가 들어선지 140년이 지났건만 성리학파들의 존명(尊明)·호청(胡淸)론이 기승을 부릴 때였다. 그럼에도 청황의 초청으로 만수절에 열하까지 간 것이 당시 조선의 현실이다. 그래서 연암은 ‘행재잡록’ 첫머리를 이렇게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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