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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세욱 교수의 新열하일기 마지막회

천재 연암, 홀로 맹렬히 달렸노라 사랑했노라

  • 허세욱 전 고려대 교수·중문학

천재 연암, 홀로 맹렬히 달렸노라 사랑했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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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년 4월 시작된 연재물 ‘허세욱 교수의 新열하일기’가 여정을 다했다. 약 130년 전 붓 2자루와 공책 4권만 달랑 이고 떠난 3700리 이국길. 연암의 궤적을 따라간 지난 1년은 그와 함께 호흡하는 과정이었다. 홀로임을 즐기되 넉넉한 품으로 세상을 끌어안은 당대 천재 문필가의 꿈, 열정, 우정, 그리고 사랑을 읽어가는 과정이었다.
천재 연암, 홀로 맹렬히 달렸노라 사랑했노라
연암의 ‘열하일기’는 끝이 났다. 1780년 6월24일부터 8월20일까지, 56일분의 일기 그 대미에 점을 찍은 것이다. 오직 ‘열하일기’만을 텍스트로 삼은 필자의 ‘신열하일기’도 마땅히 붓을 놓을 때가 왔다.

책을 덮고 눈을 감았다. 중국 단둥(丹東)시 동북쪽에 위치한 호산(虎山)장성 그 꼭지에서 길게 목을 빼고 가물가물 굽어보았던 ‘열하일기’의 기점-의주 통군정으로부터 북경의 덕승문까지 장장 3700리가 활동사진처럼 숨 가쁘게 돌아갔다. 그 길, 그 벌판, 그 고원을 서너 차례 답사했다. 구간에 따라 세 번 간 곳도 있고 네 번 간 곳도 있었다.

그 먼 길을 필자는 연암과 동행했다. 연암의 문학에 반한 날부터 계산한다면, 동행의 세월도 꽤 깊다. 그런데 떠오르는 연암의 상은 외로웠다. 열하의 연행 동안 많게는 300여 명, 적어도 70여 명의 떼거리와 함께 대단원과 대장정 속에 어울렸지만 연암은 늘 외로웠다. 그러나 당당했다. 밤낮의 잠행일지언정 혼자서 불을 태웠다. 방랑이 아니라 새로운 탐구욕, 정확히 말해 호기심에 불을 태운 것이다. 딴마음을 먹은 늑대라기보다 어디고 불쑥불쑥 머리를 내밀고 혼자서 땅을 뒤집는 멧돼지의 형상이었다.

그렇게 독왕독래(獨往獨來)하고 독작독음(獨酌獨飮)했다. 혼자 있는 곳에서 본성을 회복한다는 이치에서가 아니라, 어쩌면 연암의 본성이 그랬는지 모른다. 그 자아를 풀어놓기 전, 연암은 어느새 혼자 서 있었다. 옛날 스물아홉 살 때 그가 동경하던 금강산 총석정 구경부터 그랬다. 연암의 시 ‘총석정에서 일출을 보며’는 가느다란 파리 소리처럼 떨리는 첫닭의 울음과 마을에서 짖다 만 개 소리, 그 오싹하리만큼 쓸쓸한 적막을 먼저 깔아놓았다. 연암이 요동 벌판에서 멀리 백탑을 바라볼 때, 어른거리는 시계에 갑자기 한 덩이 흑구가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곤 비로소 머리로 하늘을 이고 발로 땅을 밟은 채 떠도는 한낱 고독한 존재임을 깨닫고 “여기서 한바탕 울 만하구나” 독백한 것이다. 고가자(孤家子)에서 백기보(白旗堡)로 가는 요서벌판에서 수레바퀴 같은 해가 수수밭으로 뜨고 지는 그 지평선 위로 오고 가는 말과 수레, 그리고 납작 엎드려 있는 집들이 깃털처럼 보이는 고적에 그는 전율했다.

연암의 뜨거운 피

다시 연암이 북경, 27만 칸을 헤아리는 시끌벅적한 유리창 어느 다락에서 “세상에 단 한 사람이라도 자기를 알아주는 이 있다면 여한이 없을 것”이라며 갑자기 발견한 절대 고독을 읊은 것이나, 고북구(古北口)의 밤, 그가 만리장성 아래에 섰을 때 “달은 지고 물은 울고 반딧불이는 날아 세상이 섬뜩하지만 겁이 나긴커녕 되레 신이 날 대로 났다”고 한 역설적인 설명, 그리고 열하에 도착하던 밤, 찢어지도록 밝은 달빛 아래 세상은 모두 코를 골면서 깊은 잠으로 고꾸라질 때 그 혼자서 마당을 거닐며 뛰어도 보고 그림자 동무 삼아 노닐며 “닯다, 이토록 좋은 달밤을 같이 놀 사람이 없노라”고 탄식한 것은 모두 고독을 즐기는 표현의 극치다.

그의 고독은 상대적이었다. 무한대의 지평선이나 절대의 풍요, 극도의 고요나 극도의 긴장 속에 만나는 정서였다. 그러나 연암의 고독은 극반(極反)현상이었다. 그 바탕은 쌀쌀한 냉골이라기보다 뜨거운 도가니였다. 냉철한 머리라기보다 뜨거운 가슴 쪽이었다. 어쩌면 연암의 고독증이나 한동안 앓았던 우울증의 원인조차 연암의 넘치는 인간애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의 전신에 흐르는 피가 뜨거웠는지 모른다.

‘열하일기’ 전편, 처음부터 그의 노복인 창대와 장복에게 베푼 자상함이나 만리타국에서 만난 중국인 친구에게 베푼 우정, 그리고 노상에서 시시각각 고국의 친구를 그리는 절절한 정과 여행 중 견문했던 사물에 대한 사랑과 연민 등이 그랬다. 연암이 의주의 통군정을 떠나던 날, 장복이가 주머닛돈을 털어 사 온 술로 창대와 장복의 장도를 빌기 위해 둘째 기둥에 술을 부었다는 얘기로부터, 북경에서 장복이를 떼어놓고 열하로 떠날 때 “세상에서 한 사람은 가고 한 사람은 남는 생이별이 가장 슬픈 거”라고 울부짖던 일, 그리고 백하를 건너던 밤, 창대가 말발굽에 밟혀 말편자가 창대의 맨발 살을 뚫었을 때 창대더러 기어서라도 따라오라고 냉박하게 강요하다가도 다시 합라하(哈喇河)에서 재회할 땐 자신의 흰 담요를 꺼내어 창대의 전신을 싸주고 띠로 꽁꽁 묶어 마두의 부축을 받게 한 장면 등을 읽노라면 콧날이 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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