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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만섭 기자의 아규먼트

칠흑 같은 한일 관계 그냥 놔두는 것도 방법

  • 허만섭|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칠흑 같은 한일 관계 그냥 놔두는 것도 방법

일본 도쿄는 2020년 하계 올림픽을 유치했다. 이웃 나라 경사에 “두 번째네” “부럽다” “축하” 이런 말이 나오는 게 인지상정. 우리나라 정부는 일본 정부에 축하 메시지를 전했다. 그러나 우리 언론 논조나 인터넷 반응은 미지근하다 못해 냉기가 돈다. 모금 캠페인까지 벌어진 2011년 동일본대지진 때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들 정도. 일본이 이렇게 멀고도 먼 나라가 돼가는 이유는 뭘까.

아베 정권은 한국인의 눈엔 ‘비호감’이다. 아베 총리는 올림픽 개최지 투표를 앞두고 “(방사능) 오염수 영향은 후쿠시마 원전의 항만 내에서 완전 차단되고 있다”고 했다. 이 말은 올림픽 유치 확정 뒤 도쿄전력의 언론 브리핑에 의해 거짓말로 드러났다.

‘고노 담화 번복’ 유머

남에게 폐 끼치지 않는 게 일본 문화라지만, 일본은 방사능 오염수를 태평양에 지속적으로 흘려 인접한 한국과 인류 전체에 피해를 주고 있다. 일본 정부는 오염수 차단 대책에 돈 쓰는 것을 아까워한 듯 2년여간 방치하고 숨겼다. 부자 나라가 이러니 얄미워 보일 법도 하다. 여기에다 총리가 표 얻으려고 천연덕스럽게 거짓말까지 하자 축하해주고 싶은 기분마저 싹 달아난 것이다.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부인하고,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하고, 침략 전쟁을 정당화하고,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것. 아베 정권은 이 레퍼토리가 식상할 법도 한데 돌아가면서 톡톡 건드려본다. ‘한국도 너무한다. 도대체 몇 번을 사과하라는 거냐’라는 일본 측 논리는 핀트가 안 맞는 이야기다. 사과했으면 그것으로 끝인데, 자꾸 “그게 아니고~” 하며 사족을 붙이니 문제가 되는 것이다. 깔끔하지 않은 쪽은 한국이 아니라 일본이다.

고노 담화, 무라야마 담화를 번복하겠다는 아베 정권의 발상은 진정 유머에 가깝다. 두 팔을 올려 “반자이(만세)!”를 외치듯 “번복했다”고 외치면 번복이 된다고 믿는 것 같다.

아베 총리의 외할아버지는 태평양전쟁의 A급 전범이고, 정권의 2인자 아소 부총리의 집안은 일제강점기 한국인 착취로 악명 높은 아소 탄광의 소유주다. 내재적 관점에서 보면, 이들에게 침략전쟁을 비판하고 야스쿠니 신사에 발길을 끊으라고 요구하는 것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말라’고 하는 것과 같은 일인지 모른다.

일본 사회는 54년 만의 정권교체로 하토야마 정권 등 전통 야당에 국정을 맡겼지만 이 실험은 실패로 끝났다. 그러자 ‘대안세력의 역량 부족’으로 군국주의 시절 지배 엘리트의 후손이 다시 탄탄한 기반 위에서 재집권한 셈이다. 이른바 자민당의 부활이자 아베의 컴백. 우리로선 조선시대 세도가의 후손이 집권하는 상황을 상상하기 힘든데, 일본은 ‘일왕’이라는 존재가 있어서 그런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 같다.

아베 정권이 과거사를 부정하고 ‘나치식 개헌’ 운운하며 우경화로 가는 것은 ‘가문의 전통’을 잇는 차원이므로 이들의 사고체계에선 자연스러운 일이다. 일본의 평범한 국민은 다른 선택지도 없거니와 먹고사는 문제에선 ‘아베노믹스’라는 그럴듯한 작품을 만들어내기도 하니 아베 정권에 기대를 하는 것 같다.

치즈케이크와 새우튀김

우리 처지에선 ‘제국주의 시절’ 회상하며 ‘사무라이 놀이’ 하는 아베 정권이 거북할 수밖에 없다. 아베 정권이 발전적 자기 극복의 모습을 보여주면 참 좋겠지만 강제할 수는 없다.

다만, 한일 간 정치의 암흑기로 인해 한국에 대한 일본 국민의 호감도가 급격히 낮아지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우리도 축구장에 ‘역사를 모르는…’ 플래카드를 내건 것은 좀 지나쳤다. 정치인과 축구선수, 일반 국민은 구분했으면 좋겠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은 모르겠으나 일왕 발언은, 지금 와서 보면, ‘전략적으로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하기도 한다.

칠흑 같은 한일 관계 그냥 놔두는 것도 방법
기자는 일본 국민이 만들어내는 디테일을 좋아한다. 하루키의 단편 ‘치즈케이크 모양을 한 나의 가난’에 공감하고, 도쿄의 한 소바 집에서 완벽한 맛의 ‘새우튀김’을 한입 베어 먹으며 “이건 새우튀김의 이데아”라고 엄지를 들어 보이기도 한다.

이런 기자의 눈에 칠흑 같은 지금의 한일 관계가 그리 정상적인 상태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별 수단이 없을 땐 덧대지도 말고 어찌해보려 하지도 말고 그냥 놔두는 게 좋은 방법일 것이다. 세월이 약이고, 불편함이 언젠가는 변화를 만드는 법이다.

그래도 도쿄 올림픽 유치, 축하는 해 주고 싶다.

신동아 2013년 10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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