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호

서울월드컵경기장

꿈과 열정이 타오르는 거대한 용광로

  • 정윤수│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입력2009-07-29 15: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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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월드컵경기장
    6만6806명. 우선 이 숫자를 기억하기로 하자. 6만6806명. 충북 영동군, 강원 고성군, 전북 부안군의 인구보다 많은 숫자다. 줄여서 6만여 명으로 쓰건대, 다름 아닌 서울월드컵경기장의 좌석 수다.

    6만여 명. 적지 않은 숫자다. 아니, 엄청난 숫자다. 6만여 명이 어떤 일로 인해 일시적으로 한자리에 모였다가 흩어진다는 것은 대단한 ‘스펙터클’이다. 더욱이 그 일이 자신의 정치적 관점이나 경제적 이익이 아니라 오로지 일순간의 강렬한 열정을 맛보기 위해 교통 혼잡과 주차 전쟁을 무릅쓰고 기꺼이 돈을 내고 바쁜 시간을 쪼개 모이는 것이라면, 이것은 하나의 사건이다. 그런 사건이 2002년 한일월드컵을 전후로 하여 지금까지 10년 가까이 계속되고 있다. 서울월드컵경기장. 현대 도시와 그 문화를 성찰하고자 한다면 틀림없는 ‘답사 1번지’가 될 것이다.

    현대적 삶은 규율과 반복이다. 규율은 유무형의 총합이다. 그 속에 법적인 구속도 있고 민간의 풍습도 있다. 어느 것이든 한 개인이 그것을 거역하면 곧 구조의 보복이 엄습한다. 현행 법체계를 부정하는 정치범이나 풍속사범이나 일정한 제재를 받지 않을 수 없다. 율법이 일일이 간섭하지 아니하는 민간의 풍습에도 무형의 가시울타리가 둘러쳐져 있다. 무력한 개인은 그 울타리를 좀처럼 벗어나지 않는다. 술기운에 취해 야밤에 교통신호를 무시하고 횡단보도를 가로지르거나 더러 소변을 참지 못해 어두운 골목의 전신주 아래 방뇨하는게 감히 범하는 일탈일 터. 그 순간에도 미력한 개인의 등에는 누가 볼까 두려운 기미가 얹혀 있다. 율법과 풍습의 제재 속에서 현대의 작은 인간은 살아간다.

    그리고 반복이 있다.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 삶이란, 오늘날에 있어 실로 위험천만한 길이다.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은 고사하고 하루가 백날같이 여일(如一)한 것이 어쩌면 축복이리라. 반복의 삶, 그 바깥은 위험하다. 테두리 바깥으로 뛰쳐나가거나 밀려나가는 것은 이 사회가 보장하지 않는 방식의 삶으로 내던져지는 것이다. 자의로 선택하든 타의로 밀려나든, 반복의 삶 바깥은 전혀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

    반복의 삶을 승인하면 무엇보다 안전이 주어진다. 개인과 그 가족의 안전은 철두철미한 반복으로 인해 얻어진다. 오전 7시20분 서울지하철 신도림 환승통로 혹은 8시35분 서울시청 앞 지하통로를 기억해보라. 엄청난 인파가 어제와 전혀 다를 바 없는 오늘의 삶을 반복하기 위해 앞 사람의 등줄기에 밴 땀 냄새를 맡으며 걷고 또 걷는다. 비루해 보여도 실로 엄숙한 생존의 행렬이다.



    사랑, 여행, 예술

    규율과 반복. 다만 이것뿐인가? 단 한 번 살고 나면 어쩌면 그것으로 그만일 뿐인 우리의 현대적 삶이 오직 이 명령에 의해 운행되는 것이라면, 이는 ‘죽은 삶’이라는 형용모순이 현실성을 얻는 기이한 상태가 되고 마는 것 아닌가.

    물론 우리는 나날이 일상의 대안을 찾는다. 사랑을 하고 여행을 하고 예술을 찾는다. 이 세 가지는 모두 일상의 관습적 틀을 벗어나게 하는 묘약이다. 사랑은 타인의 정신과 육체를 통해 나를 확인하는 존엄한 행위다. 사랑이 없는 연대기란 존재하지 않는다. 유년의 사랑이나 노년의 사랑 또한 청년의 사랑과 진배없는 엄숙한 일이다. 다만 이 사랑은 지극히 사적인 영역의 내밀한 삼투과정이다.

    그리고 여행이 있다. 모듈화한 이 도시를 벗어나는 기막힌 드라이브! 여행! 거대한 자연은 나약한 개인을 너그러이 감싸준다. 동해의 일출이나 서해의 일몰 혹은 오대산 비경 속의 깊은 숲으로 들어가는 순간, 작은 ‘나’는 큰 ‘나’의 품속에 잠이 들 것만 같다. 그러나 아쉽게도 여행은 낮은 숨소리의 적묵(寂默)이며 여전히 사적인 운행이다.

    마지막으로 예술이 있다. 예술은 규율과 반복에 얽매이면 곧바로 사망선고를 받는 예술가에 의해, 현대의 작은 개인에게 예기치 않은 충동과 활활 불타오르는 에너지를 제공한다. 그렇기는 해도 예술을 감상한다는 것 역시 한 개인이 세상의 소음과 차단된 미술관 속을 거닐거나 컴컴한 공간 안에 들어가 말없이 스크린을 응시하는 행위로 요약된다. 요컨대 사랑, 여행, 예술 이 세 가지는 우리를 규율과 반복으로부터 일시적으로나마 구출해내는 아름다운 묘약임에 틀림없으나 대단히 은밀하고 사적이며 나지막한 행위다.

    서울월드컵경기장

    그라운드는 거대한 용광로다. 대동마당이다.

    세계 10대 아름다운 경기장

    우리는 이것만으로는 부족한 시대에 살고 있다. 좀 더 강력한 것, 좀 더 드넓게 펼쳐진 것, 좀 더 많은 사람이 함께 울고 웃는 것, 좀 더 스케일이 장쾌한 것! 그것을 향해 현대의 개인은 얼마든지 시간과 비용을 지출할 용의가 있다.

    다만 대전제가 있다. 그 강력하고 장쾌한 것이 결코 개인을 억압하거나 또 하나의 충용(忠勇)한 신민(臣民)으로 추락시켜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개인적 열정으로 그것을 지향했으되 그 거대함 속에 수많은 개인이 모여 있고, 그래서 저마다의 사연으로 모였으되 결코 집단의 과잉된 열병으로 추락하지 않는 곳을 열렬히 희망한다. 과연 그곳이 어디겠는가? 6만6806명이 강요된 명령이 아니라 자발의 문화적 제의로 운집할 수 있는 곳, 바로 서울월드컵경기장이다.

    하늘공원에 올라 서울월드컵경기장을 내려다본다. 한때 이 일대가 쓰레기 산이었고 그 쓰레기더미를 뒤지며 살아가던 상암동의 낡은 거리와 판잣집들, 그리고 더 이상 갈 곳 없는 사람들을 위해 들어오던 5번 시내버스 종점을 이제 더는 상상조차 할 수 없어졌다는 사실, 곧 상전벽해의 엄연한 증좌 위에서 경기장을 내려다본다.

    거대한 스케일의 경기장이다. 현대 도시에서 이만한 스케일의 공간을 구축한다는 것은 그 사회의 내면적 합의가 전제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2002 한일월드컵을 앞두고 지어진 이 경기장 역시 1997년의 IMF 구제금융 사태로 인해 폐기될 운명이었으나 대한축구협회의 실행력과 당시 정부의 결단으로 ‘상전벽해’를 이뤘다.

    이 경기장을 설계한 건축가 류춘수는 방패연과 전통 소반 그리고 황포돛대 이미지를 설계의 기본 개념으로 활용했다. 물론 이 셋은 그 자체로는 상호 연관성이 희박하다. ‘한국의 전통 문화’라는 큰 범주에 묶이기는 하나 과거의 전통적인 일상에서 연과 소반과 돛대가 한자리에 겹쳐질 이유는 딱히 없다. 그러나 하나의 건축물을 구성하는 요소로서 이 세 가지는 적절한 공간감을 형성한다.

    하늘공원에서 내려다보았을 때 우선 장려한 것은 경기장의 지붕, 그러니까 방패연과 황포 돛대가 어울리는 광경이다. 6만여 명이 운집했다가 빠져나가는 매머드 건축물임에도 연과 돛배의 형상은 금방이라도 떠오를 듯한 운동감을 드러낸다. 아틀라스 같은 거인이 있어 슬며시 밀어내면 한강으로 미끄러져 내려갈 듯한 경이로운 가벼움이 느껴진다. 거대하지만 압도적이지 않은, 공기의 울림을 살며시 안고 있는 볼륨감은 경기장 안팎을 둔중한 산업화의 물질적 압력이 아니라 21세기의 창의와 열정을 언제든지 담아낼 수 있을 듯 유연하다. 2003년 세계 최고 권위의 축구 전문지 ‘월드사커’가 이 경기장을 ‘세계 10대 가장 아름다운 경기장’의 하나로 선정한 까닭 역시 보는 이를 질색하게 하는 무시무시한 힘의 과시가 아니라 대단히 유연하고 상쾌한 기운을 너그러이 품고 있는 경이로운 여유 때문이다.

    전통적이며 경제적인 방식

    류춘수는 처음에 경기장을 상상할 때 원형 관람석을 몇 번이고 고려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파리행 비행기 안에서 우연히 방패연 사진을 보았다. 그야말로 등줄기에 전율이 흐르는 착상의 터닝 포인트가 되어, 가운데가 여유 있게 뚫린 방패연의 공간화를 추진하게 되었다. 기존의 설계안은 모조리 휴지통으로 던져졌다.

    전통의 소반은 경기장 안팎의 콘크리트 구조와 주요 기능을 담당하는 영역들 그리고 6만여 명을 수용하는 관중석의 밑그림이다. 전통의 소반은 그것이 일상적으로 쓰이던 때, 제철 과일이나 약식, 조촐한 술대접 용도였으나 이제 그 기능은 사라졌다. 하지만 우리 모두의 내면에 뿌리내린 그 이미지만큼은 경기장 안팎을 두루 감싸는 형상으로 6만여 명의 열정을 담아내는 상징이 되었다.

    그리하여 이 경기장은 외딴 곳에 정박한 둔중한 배가 아니라 서울 서북부의 랜드마크가 되었으며 비단 상징적인 랜드마크가 아니라 상암 지역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다. 그 자체로 복합 문화공간 기능까지 훌륭하게 소화하고 있는 이 경기장은 인근의 상암DMC를 쌍두마차로 하여 서울 서북부 부도심의 중핵이 되었다. 강변북로, 올림픽대로, 자유로, 북부간선도로, 지하철 6호선, 경의선, 신공항철도, 성산대교 등이 모두 월드컵경기장을 지향한다.

    물론 그 공사 과정은 지극히 ‘한국적’이었다. ‘신동아’는 한일월드컵 개막 3년을 앞둔 시점에 서울을 비롯한 전국 10개 도시 10개 신축 경기장의 공사 현황을 보도한 바 있다. 당시 기사의 핵심 키워드는 ‘패스트 트랙’이었다. 서울시를 포함해 대부분의 도시에서 공사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패스트 트랙(fast track·설계와 시공 병행) 방식을 채택했던 것이다. 토목공사 설계도가 나오면 곧바로 시공에 들어가는 것이다. 대규모 공사의 경우 더러 설계 오류나 시행착오 혹은 특별한 사유에 의해 설계 및 시공 과정이 변경될 수도 있는데, 서울을 비롯한 대부분의 신축 경기장은 그러한 여유 자체가 허락되지 않았다. 게다가 한국에서 대규모 건축물의 ‘패스트 트랙’ 시행은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결국 일은 ‘패스트’하게 완료됐다.

    비평적 관점에서 월드컵경기장의 시공 과정을 검토했던 건축가 함인선은 경기장 완공 이후 ‘문화일보’ 2002년 3월5일자 기고문에서 ‘경기장의 지붕은 건축가의 창의력, 시공자의 기술력, 그 나라의 부품산업 능력 등 모든 것을 말해준다’고 전제하면서 ‘관중석을 담는 기단은 소반처럼 팔각형으로 되어 있는데 통상 타원형인 여타 축구장과 형태적인 차별성을 가질뿐더러 직선화된 부품화가 훨씬 용이하여 공기와 비용을 상당히 절약시켰다’고 평가했다. ‘지붕 역시 직사각형인 방패연의 모서리를 따서 팔각형으로 만들어 기단과 형태적 일치를 이룬다. 더욱이 위로 도톰한 팔각형이기에 밑에서 보면, 기와 무게로 자연스레 처진 한옥의 추녀 선을 연상시킨다. 고도의 기술력을 요하는 공법이지만 배의 돛대가 그렇듯이 훨씬 경쾌하며 경제적인 방식’이라는 게 함인선의 평가다.

    서울월드컵경기장

    스태프는 한 편의 경기를 완전하게 완성하는 숨은 공신이다.

    검이불루 화이불치

    방패연과 돛배와 소반으로 시작된 이 경기장의 ‘전통 이미지 효과’는 그 내부로까지 실속 있게 이어진다. 단순히 외관에만 과거의 문화적 원형을 덧씌워놓은 게 아니라 일반인의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안전시설이나 보행시설까지 전통의 점과 선이 콘크리트 면들을 여유 있게 채우고 있다. 서쪽 주출입구의 귀빈석 로비는 한눈에도 한옥의 대청마루를 응용했음을 알 수 있다. 국내산 대리석을 유연하게 깔아놓은 짙은 색깔의 로비는 안동의 병산서원이나 지리산 화엄사의 각황전 마루를 떠올리게 한다. 그 마루 위로 성벽에서 따온 묽은 색의 벽이 흐르고 맨 위 천장을 서까래가 탄력 있게 가로지른다.

    경기장 운영을 맡고 있는 서울시설공단 서울월드컵경기장사업단 김영진 경영관리부장의 안내를 따라 경기장의 세부 영역까지 들어가본다. 축구 관련 칼럼을 10년 가까이 써온 필자로서는 10년 가까이 이 경기장을 출입하면서도 취재기자석과 관중석 외에는 현장 답사를 할 수 없었던 안타까움을 해소하는 좋은 기회였다.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삼국사기’에 나오는 말이다. ‘검소하지만 누추해 보이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는 뜻이다. 백제 온조왕 15년에 새 궁실을 지으면서 채택한 당시의 건축 이념인데, 이후로 한반도의 많은 건물은 특별한 목적이 아닌 한 ‘검이불루 화이불치’정신을 지켜왔다.

    특히 검박한 일상을 고결한 윤리적 기준으로까지 추존해온 조선의 유학 세계관에서 이 개념은 단순한 건축 포장이 아니라 사람과 공간의 관계 맺음을 통칭하는 이념으로 승격되었다. 도성의 궁뿐만 아니라 앞서 언급한 병산서원, 각황전을 비롯해 전주의 객사, 담양의 소쇄원은 물론 구한말에 지어진 익산 나바위선당(화산천주교회), 강화도 온수리 성공회성당, 당진 공세리 성당 등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의 오랜 건축 이념을 반영하고 있다.

    서울월드컵경기장 안팎에서도 ‘검이불루 화이불치’의 구현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서쪽 주출입구에서 경기장으로 이어지는 귀빈 전용 통로의 대청마루와 서까래가 그렇고 귀빈 스탠드와 관람석도 마찬가지다. 귀빈에 대한 정중한 대접과 신변 안전을 위해 따로 진출입 동선과 간이 휴게실이 마련되어 있는 정도이지 결코 ‘귀빈’이라는 말에 상응하는 호사스러운 치장은 찾아보기 어렵다. 귀빈 스탠드 역시 좀 더 ‘정중하고 안전한’ 정도이지 과장된 그 무엇은 눈에 띄지 않는다. 귀빈 안전을 위한 방탄유리 역시 무릎 정도 높이인데, 이는 신축 당시 재임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지나치게 높은 방탄유리는 권위주의의 일면’이라는 견해를 밝힌 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김영진 경영관리부장은 6만여 석의 관중석 스탠드를 가리켰다. 그 ‘무채색의 행렬’을 가리키며 “여러 경기장에서 다들 좌석에 형형색색을 입혔지만, 이 경기장에는 오직 콘크리트의 무채색에 가까운 색깔의 좌석으로 세팅했다”고 말했다. 무채색은 언뜻 특별한 개성이 없고 둔탁해 보이지만 차분하고 음전하다. 사실 엄청난 규모의 경기장에 온갖 색까지 입히면 크기만 과장되어 위압적으로 느껴질 뿐만 아니라 부분적으로는 천박해 보이기 쉽다. 그런 점을 감안해 이 경기장은 과감히 무채색으로 통일했고 지붕재로 쓰인 테프론 막이나 스탠드 그리고 경기장 안팎의 사인보드까지 자신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음전한 색을 유지하고 있다. ‘검이불루 화이불치’의 한 단면이다.

    한국 건축계의 오랜 화두 실천

    설계 과정의 한 에피소드로, 당시 설계팀은 기본 설계안을 제출하면서 이 경기장의 이름을 ‘우리세움(Wooriseum)’으로 짓자고 제안했다. ‘우리’가 직접 세운다는 의지의 표현이자 로마의 콜로세움이 갖는 역사적 경연장의 상징성까지 고려한 작명(作名)이다. 이 경기장을 IMF 사태 이후의 사회 심리적 상태와 아시아 최초의 월드컵이라는 대규모 행사에 응하는 자긍심의 표현으로 여기는 신념이 담겨 있다. ‘우리세움’이 채택되지는 않았으나 경기장 안팎의 크고 작은 디테일에 이 신념이 유연하게 적용되었음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21세기 글로벌 시대에 세계 곳곳의 대규모 공사 현장에서 확인되는 뚜렷한 흐름은 ‘개별 지역의 특수한 문화적 전통’을 지나치게 현실화하는 것을 꺼린다는 점이다. 단적인 사례가 2008년 베이징올림픽 주경기장 ‘버드 네스트’다. 2006 독일월드컵 개막 경기가 열린 뮌헨의 축구 전용 경기장 ‘알리안츠 아레나’를 설계하기도 한 스위스 건축회사 ‘헤르조그 & 드 므롱’이 설계한 이 베이징의 새 둥지는 가로 297m 세로 320m로 9만1000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중국 최대 규모의 경기장이다. 강철을 엮은 형상이 거대한 새 둥지를 닮아 ‘버드 네스트’라는 별칭을 얻은 이 경기장에서 ‘중국 문화’를 직접적으로 추출하기는 어렵다.

    경기장 증개축의 모범이 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올드 트래포드’나 아스널의 ‘에미레이츠 스타디움’, 잉글랜드 축구의 상징인 뉴윔블리 스타디움 등에서도 특별하게 ‘영국성’이 확인되지는 않는다. 오늘날 대규모 건축물이나 도시 공간 조성은 (두바이, 송도, 청라 등이 보여주듯이) 지역성보다 세계성을 염두에 둔다. 그에 반해 10여 년 전 지어진 서울월드컵경기장은 ‘전통의 재해석’이라는 한국 건축계의 오랜 화두를 마지막으로 실천해낸 셈인데, 일단 그 성취가 적지 않았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21세기형 복합 문화 공간

    오늘날 경기장은 ‘경기 진행’ 목적으로만 사용되지 않는다. 문화적 기능까지 훌륭하게 만족시키는 공간이어야 한다. 서울월드컵경기장은 설계 및 신축 당시 매우 낙후됐던 서울 서북부 지역을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사회적 목적을 안고 출발했다. 생태공원, 영화관, 쇼핑몰, 생활스포츠 시설 등이 ‘축구’라는 단 하나의 경기 종목으로부터 능률적으로 파생되어 상호 연관성을 이뤄야 하는 공간이다.

    이 대목은 어떤 면에서 설계자 책임 밖의 일이다. 물론 설계자는 대규모 하드웨어가 어떻게 쓰여야 하는지에 대해서까지 충분히 고려해 작업한다. 주차, 출입, 대피, 편의 등 세부 요건의 결합에 의해 경기장이라는 전체가 구성된다. 그러나 일단 그 상상이 현실이 되고 거대한 경기장과 그 부속 기능들이 완료되고 나면 그 다음은, 김영진 부장의 말을 빌리면 ‘사람의 일’이다. 사람이 발상하고 결정하고 실행하는 문화적 소프트웨어와 콘텐츠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서울월드컵경기장

    볼보이가 없다면 선수들은 90분 동안 볼을 줍다가 지쳐버릴 것이다.

    최근 유럽 축구산업의 관심은 스페인 발렌시아의 신축 경기장에 쏠려 있다.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전통 명문 발렌시아는 재정 압박 때문에 간판스타들을 방출하거나 임대하는 등 위기를 겪고 있는데, 그럼에도 완공을 앞둔 신축 경기장 ‘누에보 메스타야’의 현장은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구단 재정 위기의 원인이 된 신축 경기장이지만, 하루라도 빨리 완공해 정상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총 4억5000만유로(약 8300억원)에 달하는 구단의 재정 위기를 풀어나갈 유일한 해법이기 때문이다. 기존 구장인 메스타야의 부지를 담보로 거금을 빌려 짓기 시작한 누에보 메스타야.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에서 비롯된 세계 경제위기 후폭풍으로 인해 메스타야 부지의 감정가가 추락하고, 운용할 만한 현금과 자산도 부족해진 발렌시아 구단은 경기장 신축으로 발생한 위기를 신축 경기장 완공으로 탈출하려는 사상 최대의 작전을 감행하는 중이다.

    이처럼 ‘무모한 도전’이 되기 쉬운 경기장 신축(혹은 증개축)은 현재 유럽 축구산업의 필사적인 목표다. 유럽 각국의 축구장은 대체로 1980년대에 지어진 ‘올드 모델’이다. 긴 타원형의 관중석 아래에 푸른 잔디, 보도석과 귀빈석, 라커룸과 간이매점 그리고 협소한 주차장이 전부다. 그러나 도심 외곽 허허벌판에 신도시 건설과 맞물려 공사하는 일종의 ‘국책 사업’이라면 모를까, 일개 구단이 도심지의 한정된 영역에 신축이나 증개축을 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기는 해도 모두들 축구라는 고전적인 ‘상품’에 더해 영화와 쇼핑과 레저가 복합적으로 연출되는 21세기형 대규모 스포츠타운을 상상한다. 극장의 팝콘처럼 이 부대시설들이 축구 그 자체보다 훨씬 더 짭짤한 수익을 올릴 뿐만 아니라, 역시 극장이 그러하듯이 이러한 시설의 완비 여부에 따라 경기장 입장료를 인상할 요인도 발생하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의 TSG 1899 호펜하임 구단이다. 이 구단은 수용인원이 6350명에 불과하던 기존의 디트마르 홉 스타디움 대신 3만여 명 수용 규모의 카를벤츠 스타디움을 각고의 노력 끝에 성취해냈다. 이 경기장은 구단의 수익이나 성적에 결정적으로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지역 경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1990년 월드컵 개최를 계기로 1980년대 후반에 신축된 이탈리아 세리에A의 각 지역 구단들(팔레르모, 피오렌티나, 라치오 등)도 구장 신축에 앞장서고 있다. 신축 구장이 수익을 올리는 방법 중 대표적인 것이 구장 명칭권 판매다. 미국 프로스포츠에서는 흔한 일이다. 1993년 미국 메이저리그 콜로라도 로키스 홈구장 이름이 맥주회사 쿠어스에 10년 계약으로 1500만달러에 팔렸다. 지금도 이 야구장은 ‘쿠어스 필드’로 불린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홈구장의 이름도 5000만달러에 통신회사에 팔려 ‘팩벨 파크’로 불린다. CNN 회장의 이름을 딴 ‘터너 필드’처럼 기부자의 이름으로 불리는 구장도 많다.

    2006 독일월드컵 개막 경기가 열린 뮌헨의 신축 경기장 명칭은 ‘알리안츠 아레나’다. 독일의 세계적인 보험회사 알리안츠가 4200억원의 공사비를 투입한 대가로 자사 로고를 15년 동안 내걸 수 있게 됐다. 잉글랜드 명문 아스널의 신축 경기장 명칭 역시 중동 항공사를 스폰서로 하여 ‘에미리츠 스타디움’으로 불린다.

    서울월드컵경기장은 대규모 경기장 신축이나 증개축 이후 효율적인 운영에 있어 모범으로 꼽힌다. 그 무렵 동시에 지어진 대규모 경기장이 다목적 운영은커녕 원만한 축구경기 진행 면에서조차 기본 점수 이하에 머물고 있는 반면 서울월드컵경기장은 조기 흑자 전환 및 다층적 수익 창출이라는 선례를 남겼다. 이는 기본적으로 지하철에서 올라오면 곧바로 광장 및 출입구로 이어지는 놀라운 접근성과 ‘수도’의 부도심권에 신축했다는 이점 그리고 국가대표팀 주요 경기 유치 및 프로구단 서울FC의 연고지 이전 같은 기본적인 요소가 충족됐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중요한 ‘관전 포인트’는 이 경기장의 부대 수익 시설을 일정한 기준에 따라 선정하고 간판의 색과 크기 같은 작은 부분에 이르기까지 확실한 지침을 세워 운영함으로써 경기장 전체의 깔끔한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벅찬 감동, 긴장의 연속

    무엇보다 경기가 펼쳐진다. 이 점이 중요하다. 이 경기장은 한편으로 ‘복합 문화공간’이지만 기본적으론 축구장이다. 한겨울에도 푸르스름한 빛을 내는 축구 전용 양잔디 켄터키 블루그래스가 알맞게 생육하고 있는 축구 전용 경기장이다. 22명이 공을 차고 달리는 것을 보기 위해 6만여 명이 자발적으로 시간을 내고 돈을 들여 찾아오는 창의와 열정의 공간이다.

    6월10일 수요일 오후 8시. 이 경기장에서는 2010 남아공월드컵 최종예선 대한민국 대 사우디아라비아의 경기가 열렸다. 경기 결과는 0대0으로 무승부였으나, 이미 월드컵 직행을 결정지은 한국팀이 일부의 예측과 달리 베스트 11을 풀가동하며 치른 막상막하의 경기였고, 더욱이 북한 대표팀의 월드컵 본선 진출에 햇살이 비치는 ‘가외의 효과’까지 거둔 중요한 일전이었다.

    이 경기를 위해 수많은 사람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고를 했다. 한 편의 경기가 완성되기 위해서는 코치진과 선수 그리고 심판과 감독관이면 충분하다. 그러나 언제든지 6만여 명이 운집할 수 있음을 예상하여(실제 당일 관중 수는 3만2566명) 수많은 행사요원이 움직인다. 국내에서 열리는 대표팀의 각종 A매치 현황을 총괄하는 대한축구협회 경기국의 이해두 부장은 ‘한 편의 드라마 총연출’을 맡는다. 그의 손에 쥐어진 당일 경기 운영표에는 오후 2시 정각에 모든 행사요원이 모여 점검회의를 갖는 것을 시작으로 4시 사전 리허설과 경기 시작 15분 전의 공식 세리머니, 그리고 경기 실제 진행 및 하프타임과 경기 종료 후의 세밀한 운영사항이 꼼꼼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 표를 왼손에 틀어쥔 이해두 부장은 오른손에 들고 있는 무전기로 연신 송수신을 거듭하며 경기 진행을 위한 모든 사항을 점검한다. 본부석 현황 진행과 선수 안전은 물론 전광판의 글씨체와 색깔까지 그의 무전 송수신은 쉬지 않았다. 경기 운영 경력 20년의 이해두 부장은 “2002년 남북 친선 통일축구대회가 가장 인상에 남는다. 남북의 미묘한 긴장 속에서도 축구 하나로 잠시나마 일체감을 갖는 중요한 경기였다. 하지만 그 벅찬 감동의 순간에도 선수 안전, 관중 안전, 귀빈 안전에 만전을 기해야 했고 그래서 더욱 더 인상 깊은 경기였다”고 회고한다.

    경기 진행 이외의 행사 안전 사항은 전문 경호회사 TRI 인터내셔널이 맡는다. 경호, 안내, 진행, 의전 등을 책임진다. 박미나(명지대 청소년지도학과 재학) 씨는 진행 및 안전 담당 2년차의 실력파. ‘보이지 않는 그림자 진행’이 이 분야의 대원칙인데, 박씨는 시종 깔끔하면서도 신중한 진행 실력을 선보였다.

    경기장은 도서관이나 사찰이 아니다. 누구라도 맘껏 제 기운을 펼쳐보고 싶은 공간이다. 선수나 관중은 물론이고 귀빈이나 기자들 모두 눈에 보이는 통제를 꺼린다. 맘껏 소리치고 싶은 곳이며 박지성 같은 대스타에게 하나라도 더 질문을 던지고 싶은 곳이다. 그 때문에 박씨 같은 현장요원의 깔끔하면서도 슬기로운 진행이 필요하다. 관중에게는 더없이 친절하면서도 합리적인 조치를 해야 하고 축구 관계자나 기자들에게는 정중하면서도 단호한 권유가 필요하다.

    박씨는 4월1일, 김치우의 골로 한국이 북한에 1대0 승리를 거둔 날을 기억한다. 그날 패배한 북한팀의 분위기는 극도로 가라앉은 상태였다. 북한의 김정훈 감독은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질의응답을 거절하고 짧은 코멘트만 남긴 채 일어섰다.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서 예정됐던 북한 선수 인터뷰도 취소되는 긴장의 순간에 박씨가 가장 신경 써야 했던 것은 북한 선수단의 동선 확보와 이 무거운 행렬을 향해 기어코 질문을 던지는 다수의 기자에 대한 통제다.

    박씨는 “그 예민한 순간에도 냉정함을 잃지 않고 침착하게 임하려 했다”고 기억한다. 고백하자면 필자 역시 묵묵부답으로 빠져나가는 북한 선수단에 한 발짝이라도 더 바짝 붙으려 한 사람 중의 하나다. 사전에 허가된 사진기자 외에는 카메라 셔터를 누를 수도 없는 상황이라 필자는 여러 차례 ‘몰래 카메라’를 시도했고 그때마다 박씨의 정중하면서도 단호한 제지를 받은 기억이 있다. 아무튼 그런 ‘보이지 않는 진행’에 의해 한 편의 경기가 안전하게 완성되는 것이다.

    꿈의 구장, 꿈의 향연

    기억해야 할 사람들이 또 있다. 경기장의 볼보이들이다. 만약 볼보이가 없다면 선수들은 90분 동안 공을 줍다 지쳐버릴 것이다. 위대한 축구스타 중에는 볼보이 출신이 많다. 거의 모든 나라에서(우리나라 역시) 해당 지역 어린이에게 볼보이 역을 맡겨 경기를 도우며 뛰어난 경기를 관전토록 해준다. 안정환은 남서울중학교 재학 시절 동대문운동장에서 볼보이를 했고, ‘날쌘돌이’ 서정원도 효창운동장에서 볼보이를 하며 선수의 꿈을 키웠다. 데이비드 베컴(잉글랜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포르투갈), 웨인 루니(잉글랜드) 등도 어린 시절 볼보이를 하면서 미래의 그라운드를 상상했다. 지네딘 지단 역시 ‘유로 1984’(당시 명칭은 유럽축구선수권대회) 때 볼보이로 대스타 미셸 플라티니를 가까이서 지켜보았다.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지는 대표팀 경기의 볼보이는 은평구 구산중학교 축구부 선수들이 맡는다. 경기 직전 세리머니 때 페어플레이 깃발과 양국 국기를 들고 나오는 것도 이들 몫이다. 축구 명문 수원대 출신으로 구산중학교 축구부 코치를 맡고 있는 박현일씨는 “어린아이들이 볼보이를 함으로써 높은 수준의 축구를 바로 곁에서 보고 배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미래의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는 기회를 갖는다”고 말한다. 그야말로 ‘꿈의 구장’이다.

    그렇게 수많은 사람이 이 경기장에서 꿈을 꾼다. 코치와 선수, 축구 관계자와 귀빈, 진행요원과 볼보이들. 그리고 수만 관중이 저마다의 꿈을 꾼다. 조리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남미로 떠나는 ‘붉은 악마’ 백상현씨 역시 이 경기장에서 창의와 상상의 꿈을 꾼다.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경기가 열리던 날 백상현씨는 ‘서울 강남 붉은악마’ 소속으로 북쪽 스탠드 맨 앞 줄에 서서 90분 내내 응원용 북을 두드렸다. 경기가 소강상태에 빠졌을 때는 ‘대~한민국!’을 유도하는 박자로 두들겼고 우리 팀 선수가 흥분했을 때는 적절한 템포로 분위기를 진정시켰다. 상대 팀의 공격을 차단해 얻어낸 속공 찬스 때는 북이 산산조각 날 만큼 강렬히 연타했다. 그 연타는 선수를 향한 열렬한 성원일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의 아름다운 미래를 향한 격려의 난타였다. “경기장에 올 때마다, 북쪽 스탠드에서 응원 준비를 할 때마다, 이윽고 휘슬이 울려 경기가 시작될 때마다 내 자신이 살아 있다고 느낀다”고 백씨는 말한다.

    경기장은 그런 곳이다. 6만여 명이 강제 동원돼 일사불란하게 구호를 외치고 돌아가는 연병장이 결코 아니다. 6만여 명이 운집하지만 그 숫자는 저마다 아름다운 꿈을 꾸는 6만여 개의 열렬한 사랑의 행렬인 것이다. 현대 사회의 거대한 메트로폴리스에 이 아름다운 열정의 용광로가 없다고 상상해보자. 그 얼마나 삭막한 콘크리트 더미이겠는가. 경기장은 세계에 대한 사랑과 열정을 회복하려는 현대인의 합창 무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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