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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의 종횡무진 공간 읽기 ⑤

서울 광화문광장

소음과 차와 국가상징물에 갇힌‘통제의 섬’

  • 정윤수│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서울 광화문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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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우로 차량이 매연을 뿜으며 쏜살같이 달리고 거대한 국가 상징물이 압도하는 가운데, 크고 작은 조형물 사이를 걷거나 혹은 피하면서, 때로는 계단에 앉아 영원히 이어질 것 같은 서울시의 홍보영상을 바라보면서, 과연 연인들은 사랑을 나누고 시민들은 사색할 수 있을까.
서울 광화문광장
우리는 지금 광장으로 간다. 어디로? 광장! 그곳은 어디에 있는가? 어디에 광장이 있는가? 광장으로 가는 길은 어디인가? 광화문광장? 그곳이 광장인가? 아무튼, 그런 질문들을 짊어지고, 지금 우리는 광장으로 나간다.

광장이라는 공간 개념은 100여 년 전의 한반도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공간이다. 이 한반도의 오랜 농업기반 시스템은 광장이라는 도심형 공간을 조성하지 않았다. 우물가나 마당이나 장터가 광장의 기능을 대신하였고 옛 왕조 시절의 한양이라고 해도 오늘날 손쉽게 떠올리게 되는 광장의 형식에 걸맞은 공간이 달리 조성되지 않았다.

광장은 유럽의 개념이다. 근대 이후 엇비슷한 생체리듬의 역사를 살아온 미국만 해도 도심 한복판에 광장이 들어서기보다는 공원이 조성되는 경우가 많다. 뉴욕? 그곳에 광장이 있던가. ‘아무것도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본다면 타임스스퀘어를 비롯하여 록펠러, 메이시 헤럴드, 워싱턴스퀘어 등을 ‘광장’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엄밀히 말해 그 공간은 도심지 개발 과정에서 파생된 널찍한 공간이거나 시와 건물주가 의도적으로 조성해낸 공원이지 광장은 아니다.

광장, 그 개념과 역사

그렇다면 광장이란 무엇일까. 유럽의 수많은 도시마다 그 한복판에 오랜 역사를 거쳐 형성된 바로 그 광장이란 무엇일까. 그들의 광장이 우리가 반드시 표절까지 해야 할 전범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공간의 조성원리와 개념 그리고 이에 기반을 둔 형태와 기능의 실현이라는 측면에서 아무래도 유럽인의 광장, 그 내면부터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토마스 만은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에서 아래와 같이 쓰고 있다.

그는 이들이 미사에 참석하느라 산마르코 광장에 있을 거라고 짐작하고 서둘러 그곳으로 갔다. 그리고 이글거리는 광장의 열기에서 빠져나와 어스름한 황금빛 성전에 들어서서 그는 자신이 그리워하며 찾아다니던 소년을 발견했다. 소년은 기도용 탁자에서 몸을 굽힌 채 기도하고 있었다.… 그러고 나서 사람들이 열린 정문을 통해 비둘기떼가 우글거리는 밝게 빛나는 광장으로 우르르 쏟아져 나오자, 매혹당한 자는 현관에 몸을 숨기고, 몰래 숨어서 소년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는 폴란드인들이 성당을 떠나는 것과 남매들이 격식을 차려 어머니와 헤어지는 모습을 지켜보았고, 어머니가 몸을 돌리고 작은 광장 쪽으로 돌아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는 아름다운 소년과 수녀 같은 자매들과 가정교사가 오른쪽으로 접어드는 것을 확인했다. 그는 그들이 어느 정도 앞서도록 하고 그들 뒤를 따라갔다. 베네치아 거리를 산책하며 두루 돌아다니는 그들 뒤를 몰래 따라다닌 것이다.

뛰어난 산문 서사시 작가 구스타프 아센바흐의 죽음을 통해 근대 유럽 교양 문명의 붕괴를 다룬 이 중편에서 토마스 만은 베네치아의 산마르코 광장을 간결하게 그리고 있다. 소설 속에서 광장은 베네치아 사람들과 그곳에 잠시 여행하러 온 사람들의 생활의 일부가 되고 있다. 사람들은 광장으로 나간다. 그런데 그곳이 목적지가 아니다. 광장을 보러 광장에 가는 것이 아니다. 미사를 드리거나 산책을 하거나 장을 보거나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광장을 나가는 것이다. 적어도 이 소설에 국한한다면, 산마르코 광장은 단순히 널찍한 공터이거나 그 자체가 관광 이벤트가 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수많은 수로가 흘러나오는 곳이자 다시 서로 다른 삶으로 다양한 수로가 열리는 수렴과 확산의 공간이다.

광장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아고라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란 뜻을 갖고 있다. 고대 그리스 도시 국가에서 아고라는 도심의 한복판에 자리 잡되 그 주변으로 사원, 가게, 공공시설, 사교장 등이 자연스럽게 둘러싸고 있는 형태다. 물론 분수도 있고 나무도 있어 휴식공간이 되기는 하지만 그것은 부수적인 장치일 뿐이다. 널찍하게 비어있으되 사람들의 삶에 의해 보이지 않게 채워지는 공간, 그곳이 광장이었다.

이러한 광장의 개념은 르네상스 이후 유럽의 여러 제후에 의해 의식적인 도시 조성의 핵심이 된다. 중세의 겨울과 근대의 봄에 이르는 시기에, 유럽의 도시는 자연스럽게 발전해온 광장을 좀 더 의식적으로 조성하기 시작한다. 도시를 설계하면서 가장 먼저 광장의 위치와 넓이와 기능을 고려했다.

유럽의 도시와 광장 문화를 연구한 프랑코 만쿠조는 저서 ‘광장’에서 유럽의 역사가 곧 광장의 역사라고 말한다. 그들에게 광장은 일상생활의 통행과 회합과 교환의 장소이자 동시에 권력과 그 의지의 실현의 장이며 이에 저항하는 자들의 연대와 소통의 장이다. 물리적인 형태는 다를지라도 우리의 역사적 경험에서도 광장(도시산업화 이전에는 마당이나 장터)은 그와 같은 공간이었다.

광장은 인류의 모든 활동이 수렴되고 확산되는 공간이며 장터이자 문화마당이고 예술이 구현되는 장이며 더 많은 자유를 향한 열정이 집결하는 장이었다. 특히 근대사회 이후 광장의 이 같은 기능과 열망은 확연한 시민권을 갖게 됐다. 권력의 의지가 무지막지하게 발현되는 공간이면서 동시에 그것을 넘어서고자 하는 자유의 열망이 바로 광장에서 빚어졌다. ‘만남, 의견교환, 산책, 휴식이 이루어지는 장소가 있다면 그곳이 바로 광장이다.’ 프랑코 만쿠조의 말이다.

거대한 중앙분리대

다시, 광화문광장으로 나간다. 이미 서울시청 앞의 서울광장과 청계천에 의해 광화문에서 세종로, 태평로를 지나 복원작업 중인 숭례문에 이르는 서울 한복판의 중심축이 대대적인 변화를 겪고 있지만, 역시 그 화룡점정의 백미는 광화문광장의 변화다.

서울시는 광화문광장을 조성하면서 ‘국가 상징 가로의 역사성 회복’이라는 테마를 맨 앞에 내세웠다. 이 일대가 국가 상징 가로임은 틀림없는데, 그것의 ‘역사성 회복’이라는 테마는 상당한 논의와 토론이 필요한 대목이다. 어떤 역사성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그야말로 ‘국가 상징 가로’를 오브제로 삼는 작업이기 때문에 매우 절실한 토론과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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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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