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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연재│송홍근 기자의 세상 속으로 풍덩~ ①

역사의 뒤안으로 스러질 소금땀, 구슬땀의 흔적

첫 번째 르포 : 가리봉동

  • 송홍근│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carrot@donga.com│

역사의 뒤안으로 스러질 소금땀, 구슬땀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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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은 헐리고 새로 지어지면서 근대를 맞았고, 다시 헐리고 새로 지어지면서 탈근대를 살아간다. 2010년 상반기 가리봉시장이 철거되면 ‘가리봉동’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도시를 내버려둬 자라게 하는 일은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다.
역사의 뒤안으로 스러질 소금땀, 구슬땀의 흔적
수도권 전철 1호선은 구로역에서 둘로 갈린다. 3, 4번 승강장서 천안행 열차, 인천행 열차가 제가끔 불을 밝힌다.

가산디지털단지역 4번 출구는 서울디지털산업단지로 향한다. 4번 출구로 나가면 ‘밸리’ ‘타워’라고 이름 붙은 고층건물군을 만난다. 가리봉동, 가산동엔 밸리 타워가 유난히 많다. 아파트형 공장인데 겉모습, 속살이 아름다운 건물은 별로 없다.

가리봉동은 구로구에서 옛 정취가 가장 많이 남은 곳이다. ‘가리봉’에서 ‘가리’는 갈라졌다는 뜻. 야트막한 봉우리가 이어붙어 고을(谷)을 이뤘다 해서 가리봉이란 명칭을 얻었단 말도 있다.

가리봉시장으로 가려면 3번 출구로 나가야 한다. 3번 출구의 가파른 계단을 오른 뒤 공단오거리 쪽으로 걷는 서민(庶民)의 뒷모습은 급강하한 수은주처럼 얼어붙었다. 가리봉동은 해보다 일찍 아침을 연다. 새벽부터 일용직 노동자로 북적인다. 막품팔이 자리를 찾기 위해 나온 사람들이다. 구직자들은 폐목(廢木)을 태우면서 추위를 피한다.

‘노가다’ 시장엔 한국인, 중국동포가 섞였다. 비율로 보면 8대 2로 한국인이 더 많다. 외국인이 일용직으로 일하는 건 불법이다. 한국 저소득층을 보호하려는 국가의 조처.

가리봉동은 촌스러움의 대명사다. 동남아 순회공연을 마친 가수가 노래를 불렀고, ‘다방 레지 미쓰김’은 커피를 나르면서 웃음을 팔았다. 지금도 공인중개사 사무소보다 ‘중부인력’ ‘남부인력’ 같은 간판을 내건 인력회사가 더 많은 저개발 지역.

가리봉동의 소금땀, 구슬땀이 한국을 키웠다. 1970, 80년대엔 운동권 학생들이 위장취업을 해 치열하게 노동운동을 벌였던 곳이다.

가리봉시장에 밤이 익으면

피가 마르게 온 정성으로

만든 제품을

화려한 백화점으로

물 건너 코 큰 나라로 보내고 난

허기지고 지친

우리 공돌이 공순이들이

싸구려 상품을 샘나게 찍어두며

300원어치 순대 한 접시로 허기를 달래고

이리 기웃 저리 기웃

구경만 하다가

허탈하게 귀가길로 발길을 돌린다

박노해 시인이 1984년 지은 시 ‘가리봉시장’의 한 대목이다. 산업역군→가출청소년→중국동포 순서로 거리의 주인은 바뀌었지만, 시장골목엔 지금도 몸 비벼 밥 버는 이들의 땀냄새, 발냄새가 가득하다.

‘산업체 야간학교 뒤늦은 에이 비이 씨이 배우던 옹골찬 누이들’(정세훈 시 ‘물새’ 중에서)은 ‘겨레의 슬기와 땀방울을 하나로 모아 수출산업의 터전을 닦고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서울디지털산업단지 선포기념 표지석 비문) 이곳에서 가족을 먹이고, 대한민국을 키웠다.

‘가리봉동’은 가리봉균형발전촉진지구개발사업에 따라 2010년 상반기 가리봉시장이 철거되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밥벌이의 고단함을 위로받고 싶거나, 고무줄처럼 질긴 사람 냄새를 맡고 싶다면, 더 늦기 전에 가리봉동에 가보라! 누이, 형, 어머니, 아버지의 흔적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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