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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홍근 기자의 세상 속으로 풍덩~ ③

말 많고 탈 많은 한약 믿고 먹어도 될까?

세 번째 르포 : 서울약령시

  • 송홍근│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carrot@donga.com│

말 많고 탈 많은 한약 믿고 먹어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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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많고 탈 많은 한약 믿고 먹어도 될까?
눈이 흩날린다. 낡은 소파 옆 난로가 열기를 내뿜는다. 이대서(69) 할아버지가 쌍화차를 내왔다. 숙지황 천궁 계피 감초를 탕기에 넣고 뭉근하게 달였다. 기혈이 허하고 찬 것을 다스리는 탕약(湯藥)이란다. 노신사의 몸에서 약재 냄새가 난다. 그는 이 골목에서 12년째 ‘한약방’을 지킨다.

서울시장은 이 골목을 지금껏 세 번 찾았다. 그때마다 시장은 ‘한의학의 세계화’를 외쳤다. 이 골목은 2005년 ‘한방산업특구’로 지정됐다. 덕분에 ‘서울약령시’라는 현판을 내건 대문이 올라서고, 전신주가 땅 밑으로 들어갔다. 마구 널려 있던 간판도 나무재질로 바뀌어 거리가 말쑥해 보인다.

서울약령시는 동대문구 제기1동 제기2동 용두동에 걸쳐 있다. 경동시장은 한약재를 파는 서울약령시와 농산물을 파는 경동신시장, 경동구시장으로 나뉜다. 1960년대 한약재를 파는 보따리상이 모여들면서 자연스럽게 한약거리가 조성된다. 보따리상은 귀향 열차를 기다리면서 ‘전농동 588번지’에서 몸을 풀었다.

길 건너엔 18층 높이 ‘동의보감타워’가 서 있다. 이 한방백화점은 2007년 망했다. 수지를 못 맞춰 사람이 떠난 건물은 텅 비어 있다. 싸구려 등산복을 파는 노점상이 건물 앞 광장을 점령했다. 한약업계는 세계화는커녕 생존을 걱정할 만큼 불황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릴 즈음이 마지막 호시절이었다고 상인들은 말했다.

“경동시장만 욕먹어”

지하철1호선 제기역 2번 출구로 나와 1분 남짓 걸어가면 서울약령시 대문을 만난다. 노점상이 펼쳐놓은 구기자 산수유에 눈이 내려앉는다. “잘 팔리느냐”고 묻는 게 면구스러울 만큼 손님이 없다. 노점상 아주머니가 “기골이 약하면 남자 노릇 못한다”면서 소주병에 담긴 홍화씨 농축액을 권했다. 홍화씨는 뼈를 튼튼하게 한다.

콧물이 흐르고 재채기가 나오던 터라 감기 몸살에 좋다는 살구씨 농축액을 한 병 샀다. “살구씨 가루를 넣어 죽을 쑤어 먹으면 감기가 낫는다”고 아주머니는 말했다. 이틀 동안 살구씨 기름을 먹었더니 감기가 뚝 떨어졌다. 이대서 할아버지가 내준 쌍화차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할아버지는 ‘송현한약방’ 원장이다. 모직코트와 중절모가 잘 어울리는 이 노신사는 금융감독원 분쟁조정국장을 지냈다. 1971년 재무부에서 공직을 시작해 금융감독원에서 잔뼈가 굵었다. 1999년 은퇴한 뒤 이곳에 한약방을 냈다. 할아버지는 “요즘 젊은이들은 한약의 효능을 잘 안 믿는다”면서 씁쓸하게 웃었다. 그는 할 말이 많아 보였다.

‘성제약업사’의 ‘50대 남자’가 서울탁주에서 만든 장수막걸리를 반주로 밥을 먹는다. 찌개 속 돼지고기 목살과 김치를 보자 군침이 돌았다. 박정환(57)씨가 동석했다. 그는 ‘고려식품제분소’란 간판을 내걸고 오미자 같은 식품을 갈아 판다. “돈벌이가 잘 되느냐”고 묻자 ‘50대 남자’가 열변을 토한다.

“특구는 무슨…. 얼어 죽을. 특구만 지정한다고 사람이 오나. 시스템을 바꿔야지. 무슨 일만 나면 경동시장이 욕을 먹어. 가짜 한약재니 농약이 나왔다니 하면서 방송에서 떠드는데….”

서울약령시 가게들은 대로변에 위치한 곳을 제외하면 대부분 권리금이 없다. 보증금 2000만원, 월세 50만~60만원 수준. 그만큼 벌이가 안 된다는 거다. 새로 오는 사람은 없고 떠나는 사람은 많다. 10년 전 1500곳에 달하던 업소 수는 반으로 줄었다. ‘50대 남자’는 ‘보사부’ 탓이라고 했다.

서울약령시 사람들은 보건복지가족부를 옛 이름인 ‘보사부’라고 했다. ‘보사부’ 시절 일을 시작했기 때문일 게다. 그리고 ‘보사부’ 얘기만 나오면 역정을 냈다. 아는 건 많은데 할 수 있는 일은 적어서다. 박정환씨는 “경동시장서 약 만지는 사람 중 약 못 짓는 이는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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