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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남북 현대사의 10대 비화-마지막회

휴전선 넘어 고폭실험 확인한 3인의 정보요원, 그러나 포착 못한 ‘관 속 원심분리기 설계도’

북한 핵 개발

  • 오세영| 역사작가, ‘베니스의 개성상인’ 저자

휴전선 넘어 고폭실험 확인한 3인의 정보요원, 그러나 포착 못한 ‘관 속 원심분리기 설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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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처럼 많은 이가 뛰어들고도 아무런 결실을 보지 못한 이슈가 또 있을까. 1990년대 초 불거진 북한의 핵 개발은 엄청난 자산과 인원을 동원한 각국 정보기관의 추적과 차단작업에도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북한 전역을 손금 보듯 관찰하는 정찰위성과 휴전선을 넘나든 정보요원들의 활약도, 상상조차 어려운 방식으로 파키스탄과의 핵 커넥션을 구축한 평양의 행보를 저지하는 데는 실패했다.
휴전선 넘어 고폭실험 확인한 3인의 정보요원, 그러나 포착 못한 ‘관 속 원심분리기 설계도’

북한 영변의 핵 단지 위성사진. 2007년 4월 촬영된 것이다.

정찰위성 키홀(Keyhole)의 카메라가 천천히 움직이며 평안북도 대관군 금창리에 초점을 맞췄다. 미국은 해상도 10㎝의 초정밀 카메라가 장착된 정찰위성 키홀을 지상 300㎞ 까마득한 상공에 띄워놓고 지구촌 구석구석을 감시하고 있다.

미국 국가안보국(NSA)이 금창리를 주목한 이유는 수일 전에 래크로스 정찰위성이 이곳에서 핵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의심이 가는 건물을 촬영했기 때문이다. 가시광선에 의존하는 키홀 위성과 달리 래크로스 위성은 합성개구면레이더(SAR)로 촬영하기 때문에 구름이 낀 날이나 밤에도 감시가 가능하다. 그렇지만 해상도가 1m에 불과해 대상물을 명확하게 식별하기 힘들다. 이 때문에 미국 국가안전국은 정확한 촬영을 위해 기상조건이 최적인 때를 맞춰 키홀 정찰위성을 평안북도 대관군으로 이동시킨 것이다.

고정밀 센서가 탑재된 2.3m의 대구경 망원렌즈가 일대를 정밀촬영하기 시작했다. 촬영된 물체들은 미국 버지니아 포트벨보어의 지상기지 중계를 거쳐 NSA와 중앙정보부(CIA)의 사진해석센터에 실시간으로 전송돼 수분 내에 판독된다.

1997년 초여름. 네 사람이 어둠이 깔린 천마산 기슭을 조심스레 전진하고 있었다. 계절은 여름으로 접어들었지만 해가 진 천마산 골짜기는 등골이 시릴 정도로 서늘했다.

“저깁니다.”

앞장을 선 조선족 길잡이가 골짜기를 가리켰다. 접근해서 살피니 골짜기 사이에 상당히 큰 건물이 자리하고 있었다. 위치와 형태로 봐서 미국 정보당국이 지목한 건물이 틀림없었다. 과연 저 건물에서 미국이 의심하고 있는 대로 고폭실험이 준비되고 있을까. 세 명의 대한민국 정보기관원은 자세를 최대한 낮추고 관측에 들어갔다.

위성정찰 결과 미 정보당국은 북한이 금창리 일대에서 고폭실험을 하고 있다고 의심했다. 확실한 정보를 수집하려면 요원을 직접 현장에 투입시켜서 증거를 확보해야 한다. 미국은 한국 정보기관에 협조를 요청했고 그에 따라 전현직 정보장교들로 구성된 팀은 위험을 무릅쓰고 천마산에 잠입했다.

북한은 정말로 고폭실험을 하고 있을까. 사실이라면 북한은 핵을 보유하고 있다는 의미다. 기폭장치 제조기술이 상당 수준에 이르렀다는 뜻이기도 하다. 핵분열을 일으키려면 기폭장치가 꼭 필요한데 기폭장치 제조에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수십, 수백 차례의 고폭실험을 거치며 시행착오를 개선해나가야 비로소 제대로 된 기폭장치를 만들 수 있다. 고폭실험에는 핵을 장착하지 않는다. 일종의 공포탄 사격인 셈이다. 기폭장치가 완성되면 그때 핵을 장착하고 핵실험을 한다. 만약 북한이 핵을 보유하고 있다면 이는 1994년 제네바합의 위반이고, 한반도에 다시 전쟁의 암운을 불러올 수밖에 없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세 명의 정보요원은 한참을 지켜봤지만 시설물을 출입하는 차량도 사람도 관측되지 않았다. 어쩌면 미국 정찰위성이 지나가는 시간을 고려해서 은폐공작을 펼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언제까지 지켜볼 수는 없었다. 주변 일대를 촬영한 요원들은 서둘러 나뭇잎을 줍고 주변의 흙을 퍼 담았다. 계절에 어울리지 않게 시든 나뭇잎들과 부근의 토양성분을 분석하면 고폭실험 여부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미사일 팔아 핵을 사다

북한의 핵이 국제사회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은 1989년 프랑스의 상업위성이 영변의 핵시설을 촬영하면서부터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이 영변에 5MW 규모의 원자로를 가동하고 있음을 진작부터 확인한 바 있고, 1984년부터 줄곧 정찰위성으로 이 일대를 감시하고 있었다. 영변의 5MW 원자로는 전력생산을 명분으로 북한이 소련에서 도입한 것이지만, 미국은 평양이 핵연료를 재처리하는 과정에서 핵폭탄 원료인 플루토늄을 추출했을지 모른다고 의심하고 있었다.

흔히 핵을 비대칭무기라고 한다. 재래식 전력이 현저히 뒤지는 나라도 핵을 보유하면 강대국과 상대할 수 있다. 당연히 약소국은 핵 보유의 유혹을 느끼게 마련이다. 골골거리는 병자도 총만 있으면 얼마든지 건장한 사람과 일대일로 맞설 수 있다.

그렇지만 핵은 비대칭무기에 더해서 주변국으로 확산되는 속성도 있다. 한 나라가 핵을 보유하면 이웃 국가들도 덩달아 핵을 보유하게 된다. 핵을 가진 상대와 맞서려면 자기도 핵으로 무장하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국과 소련, 인도와 파키스탄이 경쟁하듯 핵을 개발한 것이 그 예다. 북한이 핵을 보유하면 동북아 주변국들, 즉 대한민국과 일본, 대만도 앞 다투어 핵을 보유하려 할 것이다. 세계경찰을 자임하며 핵 확산을 적극적으로 저지하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절대로 묵과할 수 없는 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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