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호

강철의 도시에 첨단을 입히다

박승호 포항시장

  • 허만섭│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입력2010-10-28 15: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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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철의 도시에 첨단을 입히다
    박승호(朴承浩·53) 포항시장은 ‘유도 8단’이다. 포항고 재학 시절 하얀 도복과 검은 띠에 매료되어 유도에 푹 빠져 살았다고 한다. 대학도 용인대의 전신인 유도대에 입학한다. 그러나 꿈에 그리던 ‘국가대표’가 되지는 못했다. 대신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에 공채(1983년)로 들어갔다.

    이렇게 공직과 인연을 맺은 그는 청와대 행정관, 경북 봉화군수, 행정자치부 조사담당관과 한국지방자치단체 국제화 재단 초대 북경 사무소장을 지냈다. 정년을 12년 남겨두고 나와 2006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공천으로 포항시장에 당선됐다.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선 전국 기초단체장 중 두 번째로 높은 74.7%의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했다. 그는 중국사회과학원 법학 박사, 한국체대 이학 박사 등 2개의 박사 학위가 있고 홍조근정훈장,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부인 이하옥씨는 서울 MBC 아나운서 출신이다. 이러한 그의 이력은 잘 짜인 직물처럼 느껴진다.

    그가 펴는 시정(市政)은 어떠할까? 사실 도시행정의 총론과 각론이 빈틈없이 교차되어야 그 도시는 성장할 수 있다. 먼저 총론부터 들어보자. 그는 산업도시 포항을 글로벌 일류 도시로 도약시키고자 한다고 말한다. 관광산업은 그 과정에서 새롭게 발견한 경쟁력이다. 다음은 박 시장과의 일문일답이다.

    ▼ 지난 1월 ‘한국관광대상’을 수상했는데….

    “관광업계 CEO, 언론인 등 100여 명의 관광전문가로 구성된 한국관광클럽이 관광 인프라 구축이나 관광 마케팅에서 성과를 보인 자치단체장에게 시상하는 상입니다. 그동안 우리 포항이 전국적으로 소개가 덜 되어 있던 건 사실이거든요. 특히 관광 쪽으로는요. 여름 피서철 빼고는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아요.”



    ▼ 그런데 변화가 좀 있었나 보죠?

    “포항 구룡포에 과거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집단적으로 거주했던 촌락이 아직 남아 있어요. 230여 채 중 80여 채가 거의 원형대로 있어요. 전국에서 가장 규모가 클 거예요. 거길 일본 관광객 유치를 위한 관광상품으로 개발하고 있는 거죠.”

    구룡포의 일본인 마을

    ▼ 어떤 방식으로 개발했나요?

    “저희 쪽 기록에는 일본인들이 집단적으로 살았다는 내용만 있지 구체적으로 누가 어떻게 와서 살다가 돌아갔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전혀 남아 있지 않아요. 광복이 되자마자 일본인들이 다 떠났으니까요. 수소문 끝에 구룡포에 살던 일본인들이 ‘구룡포회’라는 모임을 만들어 만나오고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작가를 일본에 보내 이들을 만나 이야기를 취재해 오도록 했죠.”

    ▼ 한국관광공사 이참 사장이 강조하는 ‘관광상품의 스토리텔링’인가요?

    “그렇죠. 우리는 그 이야기를 책(‘구룡포에 살다’)으로 엮어 한국어판과 일본어판을 내고 도쿄에서 출판기념회를 열었습니다. 모리·아베 전 총리, 야구선수 장훈씨 등 일본의 많은 유명인사가 찾아와 성황리에 마무리됐죠. 이후 포항을 찾는 일본 관광객이 많아졌어요. 한 해 1만명이 찾기도 하죠. 앞으로 140억원을 들여 구룡포 일본인 마을을 아름답게 정비해 일본인 관광객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필수적으로 들르는 코스로 만들어볼 계획이에요.”

    박 시장은 “소문이 안 나 그렇지 포항에는 가볼 만한 관광 인프라가 많다”고 말한다. 해안가에 웅장하게 서 있는 포스코 공장은 산업관광 방문지로 각광받고 있다고 한다. 도심 한가운데로 펼쳐진 비치(beach)와 주변의 잘 정돈된 상권은 여행에 즐거움을 준다고 한다. 포항시에 따르면 ‘테라노바(새로운 땅) 포항’ 프로젝트로 도심 거리를 아름답게 정비해나가고 있다. 중앙상가는 차 없는 거리가 되고 실개천이 흐른다. 이 아이디어는 2008년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했으며 전국 여러 도시에서 벤치마킹하고 있다. 가로수 밑에 잔디를 심는 등 전체적으로 시가가 깨끗해지고 있다는 평이다.

    강철의 도시에 첨단을 입히다

    실개천이 흐르는 포항 도심.

    6개의 해수욕장과 162㎞ 해안선을 따라 이어지는 해안도로는 드라이브 코스로 각광받는다. 포스텍, 방사광가속기연구소, 지능로봇연구소는 청소년들에게 인기가 있으며 시내 주변으로는 골프 코스도 잘 갖춰져 있다. 박 시장은 “죽도시장은 전국 최대 활어 집산지로 각종 회 등 신선한 해산물을 즐길 수 있다. 포항은 도농통합형 도시여서 수산물, 농산물 먹을거리가 풍부하다”고 했다.

    포스코가 포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이다. 1968년 포스코의 전신인 포항종합제철이 설립된 뒤 26만명이던 이 도시의 인구는 52만명으로 두 배 정도 늘었다. 그러나 포항이 더 발전하기 위해선 포스코 이외의 다른 미래 성장동력이 필요하다는 데에 시민들의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영일만 산업단지(634만1000㎡), 배후단지·자유무역지역(423만6000㎡), 경제자유구역(375만㎡), 포항블루밸리(620만3000㎡), TP2단지(277만2000㎡) 등 새로운 공업단지 조성이 추진되고 있다.

    도심 한가운데의 비치

    ▼ 지난 시장 임기에서 이어 내려오는 사업이 많은 편이군요.

    “이번 선거에서 높은 득표율을 올린 건 ‘걸쳐놓은 게 많으니 확실히 마무리하라’는 시민들의 요구가 반영된 거라고 봐요. 시민들은 충분히 실현가능하다는 점을 이해하고 있는 거죠. KTX 노선은 2014년쯤 포항과 연결될 예정이죠. 동해남부선과 동해중부선은 착공했고요. 포항영일만항에는 지금 화물만 입·출입하는데 내년엔 일본을 오가는 여객과 화물용 페리를 띄워볼 계획입니다. 국제항공노선도 들여올 예정으로 있고요. 포스코 신제강공장 사업이 2009년 7월부터 고도제한 문제로 공사가 중단되고 있는데 용역결과에 따르기로 했으므로 곧 결론이 나리라고 봐요.”

    ▼ 포항이 전국 다른 도시와 비교했을 때 도시경쟁력에선 어떠한 점이 특징적이라고 할 수 있나요?

    “포항은 우리나라의 축소판이죠. 포항이 산업화하면서 우리나라도 산업화의 길로 들어선 거죠. 세계적 철강회사가 있다는 건 도시 경제에 큰 기반이 되죠. 또한 포항은 R·D 인프라가 전국 어느 도시에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잘 갖춰지고 있어 성장가능성도 높아요. 방사광가속기 연구소, 국가나노기술센터, 지능로봇연구소, 생명공학센터, 금속소재산업진흥원, 포스텍, 한동대 등이 연구개발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습니다.”

    ▼ 대전 대덕 등지에도 국책 연구소가 꽤 있는데요.

    “포항은 대규모 산업단지가 함께 있어 바로 산업화로 전환될 수 있다는 게 강점이죠. 특히 포항은 ‘환동해권’의 중심도시가 되려고 합니다. 일본 서해안, 러시아 연해주, 중국 동북3성, 북한과의 교역이 앞으로 크게 늘 수 있어요.”

    고교 학력 전국 최상위권

    도시가 경쟁력 있는 기업을 유인해오기 위해선 그 기업에 종사하는 중산층 근로자 가족의 교육, 주거, 문화 수준에 부응하는 인프라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이와 관련, 박 시장은 “포스코라는 글로벌 기업과 여러 연구시설, 대학이 밀집하면서 포항으로 고급두뇌가 몰린다. 시민들의 학력 수준이 다른 도시에 비해 높고 교육열도 대단하다”면서 “포스텍과 한동대 등 명문대가 있고 포항고, 포항제철고, 포항여고 등 고교 학력도 전국 최상위권에 속한다”고 했다.

    포항시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경기 시흥의 D사는 공장을 포항으로 옮길 계획을 세웠다. 이 때문에 D사에 근무하는 직원 가족 90여 명이 포항을 방문했다. 포항으로 이사 올 것인지, 말 것인지를 직접 보고 결정하기 위해서였다. 그 결과 이들은 흔쾌히 포항으로 이주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교육여건이 좋은데다 산·바다 조망 등 주거환경이 쾌적하고 상업·문화 시설도 잘 갖춰져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강철의 도시에 첨단을 입히다
    박 시장은 “포스코로 인해 전국 각지의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포항으로 왔다. 호남 출신도 많이 산다. 이 때문에 포항은 상당히 개방적인 도시풍이다. 전국의 향우회가 다 조직되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당장 이주해 오더라도 정서적으로 문제를 겪을 일이 없다”고 했다. 포항시에 따르면 시와 포스코의 관계는 우호적인 편이고 시의 큰 현안이 있으면 포스코가 재정을 출연해주기도 한다. 포항시가 외국에서 시를 홍보할 때도 ‘포스코가 있는 도시 포항’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 그러나 도시 경제가 특정 기업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도 문제겠죠?

    “그런 점 때문에 포항시의 산업구조를 첨단산업 등으로 다변화하는 중입니다. 지난 임기 때는 경제 문제에 초점을 맞춰 산업단지 등 하드웨어의 건설에 집중했다면 이번엔 시민들 삶의 질을 높이는 교육, 문화, 복지, 환경 여건을 더 개선할 예정입니다. ”

    ▼ 그러나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경제적, 문화적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게 현실인데요.

    “우리는 환동해권의 중심도시, 글로벌 도시로 성장하겠다는 뚜렷한 목표가 있기 때문에 수도권을 쳐다보면서 무언가 해주기를 기다리지는 않습니다. 2008년 환동해 거점 도시회의를 포항에서 개최한 데 이어‘2012년 아시아·태평양 주요도시 시장회의’를 유치한 것도 이런 맥락이고요. 시의 품격을 높이기 위해 선진일류도시추진위원회를 설치해 관련 사업을 차근차근 해나가고 있어요.”

    ▼ 교육에 대한 투자와 관련해선 어떤 계획인가요?

    “교육 문제에선 기초단체의 지위가 좀 어중간한 측면이 있습니다만 지난 임기 땐 학교 경비 지원 조례를 만들어 시 지방세수의 3%를 학교에 지원했습니다.”

    ▼ 3%라면.

    “연 100억원 내외가 되던데요, 앞으로는 5%로 상향 조정할 예정이죠. 필요하면 더 할 수도 있어요. 교육환경이 좋아야 명품도시가 되는 것이니 교육투자가 가장 확실한 투자죠. 돈 없어 공무 못 하는 학생이 없도록 300억원 규모로 장학금을 모금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153억원가량 걷혔어요.”

    자전거 출퇴근 운동

    친환경은 도시경쟁력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 예를 들어 콘크리트 건물들만 빼곡히 있는 주거지역과 숲과 나무, 호수가 어우러진 주거지역은 그 평가를 달리한다. 도시 녹화뿐 아니라 수질오염, 대기오염의 정화도 친환경을 평가하는 핵심적 잣대가 된다. 포항시가 대기를 획기적으로 정화하기 위해 생각해둔 방안은 자전거 출퇴근 운동이다. 박 시장은 이 일에 열성적이다.

    ▼ 자동차의 배기가스가 사실 대기오염의 큰 원인이 되죠.

    “자동차 운행을 줄이는 게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고 대기오염을 낮추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그래서 자동차 출퇴근을 자전거 출퇴근으로 대체하는 운동을 생각하고 있는 겁니다. 자전거 타기가 레저 차원일 때는 대기오염 문제 해결에 효과가 미미해요. 그러나 자전거가 출퇴근용으로 널리 사용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 자전거 타기가 건강에도 좋은 일이기는 하지만 자전거로 출퇴근하기에는 우리나라 도시 여건이 잘 안 맞는 측면이 있다는데….

    “여론조사를 해보니 일반 도로에서는 위험해서 자전거로 출퇴근하기 어렵다고 해요. 결국 자전거 전용도로망의 구축이 시급하다고 할 수 있죠. 그러나 내가 보기에 자전거 전용도로망만으로는 활성화에 한계가 있을 거예요.”

    ▼ 그건 왜죠?

    “포항을 비롯해 우리나라 대부분의 도시에는 평지, 오르막, 내리막 지형이 고루 있기 때문이죠. 결국 이런 지형조건이 자전거 출퇴근을 방해할 거예요.”

    강철의 도시에 첨단을 입히다

    포항은 첨단R&D산업의 메카로 자리 잡고 있다. 포스텍 전경.

    ▼ 그러면 해결 방안이 있나요?

    “전기모터가 달린 자전거는 오르막에선 전기모터의 도움을 받아 올라가요. 도시에 자전거 전용도로망이 잘 갖춰져 있고 이런 자전거가 널리 보급된다면 자전거 출퇴근이 크게 늘어날 수 있죠. 시에 전기모터 자전거 3대를 가져다놓고 공무원들에게 타보게 하고 있는데 반응이 좋아요. 아주 안전하고 편리해요.”

    ▼ 실제로 전기모터 자전거 출퇴근이 보편화된 곳이 있습니까?

    “중국 도시에 가보니 성공적으로 이용되고 있더라고요.”

    ▼ 그렇다면 우리도 도입해볼 만하겠군요.

    “우리나라 법은 자전거 전용도로에는 자전거만 다니도록 하고 있어요. 전기모터를 장착하면 못 들어오게 하죠. 시속 30㎞ 이내의 전기모터 자전거는 자전거 전용도로를 이용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야 해요. 그러지 않고선 문제가 풀리지 않습니다.”

    ▼ 만약 법이 개정된다면 시장께선 어떻게 할 생각인가요?

    “포항시내 차선 중 하나를 다이어트 해서 자전거에 완벽히 내주는 거죠. 포항시, 포스코, 산업단지 등 직원 수가 많은 기관에 자전거 출퇴근 생활화 추진위원회 같은 것을 만들어 적어도 1만명 이상이 자전거 출퇴근을 하도록 유도해야겠죠. 정부가 자전거 용어를 정리하는 중인데 좀 마음을 열고 접근해야 해요.”

    포항시는 이명박 대통령의 고향으로, 최근 정치권의 영포회(영일 포항 출신 공직자 모임) 논란으로 주목을 받은 바 있다. 박 시장은 “대통령의 고향이어서 정부로부터 다른 대접을 받는 건 사실”이라면서 “그 이유로 역차별을 받고 있는 편”이라고 했다.

    “공직은 지나가는 자리일 뿐”

    ▼ 영포회 논란에 대해 시민들은 대체로 어떤 반응이었나요?

    “정치권에서 일거수일투족을 정치적으로 해석하고 이야기도 안 되는 걸 자꾸 갖다 붙이고 있다는 시각인 것 같았어요.”

    ▼ 역차별이 무슨 의미인가요?

    “정부 부처가 다른 도시에 예산을 주면 아무 말도 나오지 않는데 포항에 주면 ‘대통령 고향 동네니까 주는가 보다’라는 식으로 말이 나오니까요. ‘형님 예산이다’ 하면서요. 야권에서 자꾸 뉴스화하니 중앙 부처는 몸을 사리는 상태가 되었어요. 이런 상황이 저도 불만이고 시민들도 불만이죠.”

    ▼ 대통령의 고향이어서 이익이 된 점은 전혀 없었나요?

    “이득 본 점도 있죠. 대통령 배출도시라는 점 때문에 도시 홍보가 많이 됐다는 거죠. 예산 확보에선 역차별이고요. 사례가 많지만 일일이 이야기는 못해요.”

    ▼ 영포회는 뭔가요?

    “나도 영포목우회 4대 회장 했던 사람인데 중앙부처 근무하는 지역 출신들 모여서 밥 한번 먹는 정도고, 라인이고 뭐고 없어요. 어느 지역 출신이든 그런 모임 안 하는 데가 거의 없어요. 정치권에서 이걸로 (영포게이트) 신조어 만드는 걸 보고 ‘참 대단한 분석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영원히 그 자리에 있을 것처럼 아옹다옹할 건 아니다. 모든 공직은 지나가는 자리일 뿐이다. 마음을 비우고 국민과 시민에게 무엇이 도움이 되는 일인지만 생각하면 된다”는 말로 인터뷰를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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