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호

“위기에 단합된 힘 발휘하려면 평상시 부드럽게 이끌어야”

최승우 충남 예산군수

  • 조성식│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입력2011-02-23 09: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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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공기관 청렴도 조사에서 충남도 1위 차지
    • 황새농법으로 친환경 앞장, 산업단지 유치와 교육특화로 인구 증가
    • 매년 미국에서 6·25참전용사 초청행사 개최
    • 관직에서 물러나면 양로원, 고아원에서 봉사활동 하겠다
    “위기에 단합된 힘 발휘하려면 평상시 부드럽게 이끌어야”


    “가장 기분 좋은 게 국가권익위원회에서 실시한 공공기관 청렴도 조사에서 우리 군이 충남도에서 1위로 선정된 겁니다. 뭐 자랑하려는 건 아니지만, 각종 평가에서 우수지자체로 선정돼 인센티브 32억여 원을 확보했습니다. 충남도 평균이 9억6000만원입니다.”

    키가 껑충한 최승우(崔昇佑·70) 예산군수가 입가에 엷은 미소를 띤 채 말했다. 자랑할 만하다. 요즘같이 팍팍한 세상에 지방자치단체장이 경제실적보다 더 내세울 게 뭐란 말인가. 지역경제 살려 주민들 삶을 살찌우는 게 최고의 행정 아닌가. 최 군수를 비롯해 군청 간부들은 노란 점퍼를 입고 있었다. 구제역 파동에 따른 민방위복장이다. 청정지대라고 자부하는 예산이지만 구제역을 피해가진 못했다. 최 군수는 구제역에 대해 “발생은 천재(天災)라 하더라도 이후 진행과정은 분명히 인재(人災)였다”라고 안타까워했다.

    “동물 복지 차원의 친환경 축산을 해야 동물과 자연을 살리고 사람도 살립니다. 지금과 같은 공장식 과밀 사육과 비위생적 사육환경은 앞으로 또 어떤 질병을 유발할지 모릅니다. 한 축산농민단체가 ‘지금까지 우리는 돼지가 아니라 항생제에 찌든 양심을 팔았다’라고 친환경 무항생제 축산을 선언한 것처럼 우리 모두 반성하고 자각해야 합니다.”

    최 군수는 군 장성 출신이다. 육군 소장으로 예편한 후 정치판에 뛰어들었다가 쓴맛을 봤다. 2000년 4월 예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나섰다가 떨어진 것이다. 2006년 그는 예산군 제41대(민선 4기) 군수로 취임했다. 지난해 6월 자유선진당으로 당적을 옮겨 재선에 성공했다.



    예산군은 지난해 상복이 터졌다. 기초생활권 발전계획 전국 최우수기관, 농촌활력증진사업 전국 우수기관으로 선정됐다. 또한 지방재정 조기집행 부문에서 충남도 1위를 차지하고 전국 우수지자체로 뽑히는 등 총 27개 분야에서 수상했다. 그뿐 아니다. 환경부를 비롯한 정부 6개 부처가 후원한 2010년 대한민국친환경대상 지자체 부문에서 대상을 차지하기도 했다.

    180억 투자해 황새마을 조성

    예산군이 친환경으로 유명해진 데는 황새농법도 한몫했다. 지난해 10월 예산군은 황새농법으로 처음 재배한 벼 25t을 수확했다. 일반 농법으로 재배한 쌀보다 30% 높은 가격으로 전량 판매함으로써 시장성을 인정받았다.

    천연기념물인 황새는 1970년대 초 국내에서 거의 멸종된 것으로 알려졌다. 황새농법은 황새가 살 수 있을 정도로 깨끗하고 비옥한 논을 조성해 쌀을 재배하는 것을 뜻한다. 황새살이농법이라고 한다. 농약이 전혀 사용되지 않고, 비오톱(둠벙), 어도(魚道) 및 생태수로가 설치된다.

    예산의 황새농법은 한국교원대 황새복원센터의 지원을 받고 있다. 황새 되살리기 사업을 벌이는 이 기관은 현재 96마리의 황새를 사육하고 있다. 1996년 7월 러시아와 독일에서 새끼와 어미 황새 한 쌍씩을 들여온 게 시작이었다. 2013년 가을께 10마리를 자연에 방사할 계획인데 그 후보지로 선정된 곳이 바로 예산이다. 예산군은 180억원을 투자해 황새 사육시설을 마련하고 관광 상품으로 만든다는 계획을 세워놓았다. 황새마을은 광시면 일대 12만2300㎡(3만6690평)의 부지에 조성될 예정이다. 최 군수는 “황새 자체보다 그에 따른 부가가치가 더 크다”며 “소비자 사이에 황새가 사는 고장의 농산물은 믿을 수 있다는 인식이 자리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도요오카시(황새농법으로 유명한 도시)에서도 처음엔 주민들 반대가 심했어요. 당장 수확량이 줄어드니까요. 하지만 결국 성공하지 않았습니까. 이젠 농업도 환경을 보존하지 않고는 힘들어요. 친환경 농법을 쓰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앞으론 소비자가 그걸 요구할 겁니다.”

    “위기에 단합된 힘 발휘하려면 평상시 부드럽게 이끌어야”

    복지회관에서 배식하는 최승우 군수.

    친환경 첨단농업의 집중 육성은 올해 예산군의 주요 군정 목표 중 하나다. 시장개방 가속화 등 농업경영 여건 악화와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농업인력의 질적 저하, 농축산물 소비패턴의 변화로 근본적인 개선책이 요구되고 있다. 친환경 농축산물의 안정적인 생산과 생산자와 소비자 간 유통체계 개선, 친환경 고부가가치 브랜드 개발이 절실한 시점이다. 이를 위해 예산군은 덕산면과 봉산면 일원에 1000ha(약 300만평) 규모의 광역친환경농업단지를 조성하는 한편 광시면에 역시 1000ha 규모의 친환경생태농업단지를 구축해 황새마을과 연계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현재 예산군의 농업 종사자는 1만5935가구 3만6221명으로 전체 인구(8만8228명)의 41%를 차지한다. 농가 인구의 90%가량(1만2127가구, 3만2439명)이 벼농사를 짓고 있다. 예산군 인구는 1970년대 초 16만명을 정점으로 매년 2000명씩 감소해왔는데, 최 군수가 취임한 2006년 이래 감소추세가 둔화됐다고 한다. 예산군은 2020년까지 예전의 16만명으로 늘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최 군수의 설명이다.

    “인구를 늘리는 방안으로 세 가지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첫째, 출생률을 높이는 것. 둘째는 교육특화. 셋째는 친환경 첨단산업단지 조성입니다.”

    국내 6번째 슬로시티 고장

    “위기에 단합된 힘 발휘하려면 평상시 부드럽게 이끌어야”

    2008년 7월 (주)보령과 투자협약체결식을 가진 최승우 군수(왼쪽에서 두 번째). 오른쪽 옆은 이완구 충남지사.

    이 중 최 군수가 가장 관심을 기울이는 분야는 교육이다. 예산군은 우수인재 양성 차원에서 올해부터 5년간 총 100억원 규모의 장학기금을 조성하기로 했다. 80억원은 군에서 출연하고 나머지는 민간성금으로 충당한다는 계획이다.

    “교육사업은 장기적인 투자입니다. 이전엔 연간 1억5000만원가량을 투자했습니다. 제가 부임한 첫해에 ‘교육이 살길’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투자액을 9억원으로 늘렸습니다. 매년 늘려 지난해까지 140여억원을 투자했어요. 지난해 동아일보 조사에서 재정 규모 대 투자비율로 따져 전국 지자체 중 11위를 차지했습니다. 기숙사는 당장 효과가 나타나고 있어요. 이전엔 학생 수가 미달이었는데 지금은 평택같이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학생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그동안 교실, 식당, 기숙사, 운동장 등 하드웨어에 투자했다면 앞으로는 학력신장 방안 같은 소프트웨어에 집중할 겁니다. 어학교육 특화 등 우수한 교육프로그램을 만들고 교사 자질을 높이는 데 주력할 겁니다.”

    친환경 첨단산업단지 조성은 올해 군정 목표에서 우선순위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자동차부품 연구개발 지원센터가 준공됨으로써 예산군은 중부권 자동차부품산업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30개 이상의 기업연구소 유치와 벤처기업 육성 및 창업지원 등의 파급효과로 일자리 제공과 소득 창출, 나아가 인구증가에도 기여할 것으로 예산군은 기대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예산군은 삽교읍과 응봉면에 148ha(45만평)의 산업단지, 고덕면 일대에 99ha(30만평)의 산업단지와 테크노밸리, 보령의약 전문농공단지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산업이 물질적인 부(富)를 일으키는 것이라면 문화는 정신적인 부를 쌓는 것이다. 예산군은 생태휴양관광도시로 거듭나 연 1200만명의 관광객을 유치한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워놓았다. 충남도청 이전계획에 따른 내포신도시 건설과 당진-대전 간 고속도로 개통도 유리한 조건이다.

    예산엔 볼거리가 많다. 최대 관광지는 나트륨 온천수로 유명한 덕산온천. 그밖에 천년고찰 수덕사와 국내 제일의 낚시터로 꼽히는 예당저수지, 윤봉길 의사 기념관과 생가가 있는 충의사, 추사 김정희 고택(古宅), 백제 유민의 충혼이 서린 임존성 성터도 전국적으로 유명한 관광지다. 먹을거리로는 특산품으로 통하는 사과와 쌀을 비롯해 소갈비, 붕어찜, 민물어죽, 삽다리 곱창, 수덕사 산채정식 등이 꼽힌다.

    예산군의 독창적 문화를 잘 보여주는 것이 슬로시티운동이다. 1999년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이 운동의 핵심은 느림과 여유다. 자연과 전통문화를 잘 보존하면서 삶의 질 향상을 추구하는 것이다. 예산군은 2009년 9월 이탈리아에서 열린 국제슬로시티연맹 회장단 회의를 통해 국내 6번째, 세계 121번째로 슬로시티에 가입했다. 지난해 6월 슬로시티 실행계획을 수립했다.

    “군 출신답지 않게 세지 않다”

    공무원 조직은 민간 조직에 비해 자율보다 타율에 익숙하다. 알아서 하는 것보다 시키면 하는 풍토다. 최 군수는 “뭐든지 기초가 튼튼하지 않으면 쉽게 올라갔다가 금방 무너진다”며 자율성을 강조했다.

    “나는 기초를 쌓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타성에 젖은 공무원 마인드를 바꿔나가고 있습니다. 몰아치는 건 한계가 있거든요. 뭐든지 자율적으로 해야지요. 몰아치면 당장 효과를 볼 수 있을지 몰라요. 하지만 무너지는 건 금방입니다. 나는 (군수실) 문을 늘 열어놓고 누구와도 만납니다. 보고를 받을 때는 부하직원들이 긴장하지 않도록 배려합니다. 일부에서는 군 출신답지 않게 세게 하지 않는다고 불평하기도 해요. 나는 부하직원들에게 기회를 주고 인정해주고 배려하는 게 리더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봅니다. 사람은 처벌의 대상이 아니라 배려의 대상입니다.”

    일반적으로 군(장성) 출신은 군림하는 기질이 강하고 엄하다는 인상을 준다. 엄격한 위계질서와 상명하복에 기반을 둔 군의 특성 탓이다. 군 지휘관은 생사여탈권에 비교되는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다. 통솔이라기보다는 통치에 가깝다. 군 출신인 최 군수의 민주적 리더십이 눈길을 끄는 이유다.

    “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보니 장군 출신에 대한 선입관이 있었던 겁니다. 무조건 엄하게 신상필벌(信賞必罰)할 거라고 생각한 거죠. 기대심리도 있었고. 그런데 뜻밖에도 제가 부드럽거든요. 위기에 단합된 힘을 발휘하려면 평상시에 부드럽고 합리적으로 이끌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무시당해선 안 되겠죠. 상사는 가까우면서도 어려워야 합니다. 군에 있을 때 저는 윗사람에게 직언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종종 부딪쳤죠. 윗사람이라면 다 그런 상황에서 화가 나거나 속이 불편하죠. 하지만 분풀이 심정을 드러내지 않아야 합니다. 다행히 제 개성을 존중해주는 상관들을 만나 그 때문에 불이익을 당한 적은 없었습니다.”

    열린 행정을 강조하는 그는 종종 민원인의 얘기를 직접 듣는다. 민원 중에는 남을 헐뜯고 처벌을 바라는 내용이 많았다. 언젠가 어떤 민원인이 방에 들어와 ‘군수님, 이런 놈은 죽여야 합니다. 군수님 얼굴에 먹칠을 하는 놈입니다’라고 흥분해서 떠들었다. 그가 강력한 처벌을 원한 대상은 군청 공무원이었다. 사연을 들어보니 다분히 감정이 섞여 있었다. 그때 최 군수는 이런 말로 민원인을 제압했다고 한다.

    “당신 자식이 공무원으로 일한다 치자. 어떤 민원인이 다른 공무원과 붙어서 ‘그 새끼 죽여야 한다’고 난리를 치면 어떻게 할 건가. 찾아가 싹싹 비는 게 인지상정 아닌가. 내 자식 소중하면 남 자식 소중한 것도 알아야 한다.”

    이회창 대표에 대한 신의

    최 군수가 보기에 공무원 조직의 경직성은 군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았다. 그는 “공무원들 의식 바꾸는 게 참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지난해 재선에 나섰을 때의 일이다. 관 주도 선거에 익숙한 공무원들이 ‘선거는 조직’이라며 마을마다 조직책을 만들 것을 건의했다. 예산군엔 12개 읍면과 350개 리가 있다. 최 군수는 단 한 명의 조직책도 임명하지 않았다. 주변에서 공무원들을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선거 때는 으레 ‘꾼’들이 등장한다. 흔히 말하는 브로커다. 선거를 이용해 한몫 보려는 자들이다. 그는 “누구누구는 어디를 어떻게 챙기는데, 우리 군수님 큰일 났다”며 호들갑을 떠는 이들의 접근을 차단했다. 물론 자신감이 있어서였다.

    “여론조사를 몇 번 했는데 다 제가 이기는 걸로 나타났습니다. 법을 지키면서 청렴하게 군수직을 수행한 것을 사람들이 알아준 덕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4년간의 성과에 대한 자부심도 있었고. 시장통과 경로당에서 만난 노인들이 다 저를 알아봐서 감동했습니다. 저보고 청렴한 군수라고 하더군요. 사실 연세가 많은 분들은 군수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잖아요. ‘우리는 군수님 밀기로 했다’는 말에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그는 정치보다 행정이 적성에 맞는다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2000년 16대 총선에서 낙선한 것은 그에게 보약이 됐다.

    “그때는 정말 뭣도 모르고 나섰어요. 정치인은 말로 먹고사는 직업입니다. 말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선거운동을 하면서도 생리에 안 맞는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행정직인 군수는 달라요. 일하고 봉사하는 자리지요. 고향 땅을 발전시키겠다는 사명감을 갖고 일하고 있습니다.”

    그는 지난해 재선 때 자유선진당으로 당적을 바꾼 데 대해 “이회창 대표에 대한 신의를 지키는 뜻에서였다”고 설명했다. 예산은 이 대표의 고향이다. 몇 차례 선거결과에서 나타났듯 충남 민심은 자유선진당에 우호적이다.

    그가 군을 떠난 것은 하나회 파동과 관계있다. 1993년 정권을 잡은 김영삼 대통령은 육군 사조직인 하나회를 제거했다. 항간의 소문대로 ‘황태자’ 김현철씨가 권영해 국방부 장관과 손잡고 새로운 군인맥을 형성하기 위해서였건 아니건 하나회 숙청은 군에 엄청난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군 최고 실세이자 하나회 대표 격인 김진영 육군참모총장이 하루아침에 날아간 것이 신호탄이었다. 군부 요직을 차지하고 있던 하나회 소속 장성들은 옷을 벗거나 한직으로 밀려났다. 영관장교들은 이후 여러 정권에 걸쳐 인사상 불이익을 받았다.

    육사 21기로 하나회 소속이던 최 군수도 전도유망한 장성이었다. 하나회 파동 당시 그는 핵심보직인 육군본부 인사참모부장(소장)이었다. 군부의 새 실력자들은 그를 한직인 교육사령부 참모장으로 밀어냈다. 그해 가을 그는 육본 정책위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하나회 멍에가 씌워진 장교들은 진급과 보직인사에서 계속 물을 먹었다. 그도 예외가 아니었다. 1995년 그는 소장으로 전역했다.

    ‘최승우 장군의 날’

    김영삼 대통령의 하나회 해체는 많은 국민의 지지를 받았다. 세월이 지난 후 군 일부에서 하나회에 대한 동정론이 일었다. 소수의 정치군인이 문제였지 회원 중에 아까운 인재가 적지 않았다는 평이다. 물론 그 말이 맞더라도 하나회 단죄의 역사적 당위성이 훼손되지는 않을 것이다. 상처를 헤집는 것 같아 미안했는데, 그는 하나회와 관련된 질문에 순순히 대답했다.

    “군에 헌신봉사하자고 만든 모임입니다. 무슨 정치를 하려는 게 아니라. 물건은 네 것 내 것이 있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잖아요. (하나회 회원의) 절대다수는 국가를 위한 충성심이 남달랐던 군인입니다. 아까운 인재들을 다 내친 것은 역사적 과오라고 봅니다. 그렇지만 그때 그런 일이 없었다면 오늘날 예산군수 못했겠지요(웃음). 그런 점에서 누구를 원망하거나 후회하지 않습니다. 저는 미래지향적인 사람입니다. 뭐든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포기는 곧 끝입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절대 포기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될 거라는 확신으로 밀고나가죠. 미래지향적인 인간은 어려운 일이 생기면 잘 극복해서 아름다운 추억으로 만듭니다. 큰 목표를 세워두고 자잘한 근심이나 편협한 증오심 따위는 거기에 묻히게 합니다. 작은 일로 밤새워 한숨짓는 일이 없어요. 나는 그런 감정이 생기면 빨리 털어버립니다.”

    “위기에 단합된 힘 발휘하려면 평상시 부드럽게 이끌어야”

    6·25 참전 미국인들에게 메달과 감사장을 수여하는 최승우 군수.



    “위기에 단합된 힘 발휘하려면 평상시 부드럽게 이끌어야”
    김영삼 정부에서 군의 최고 실세는 국방부 장관과 안기부장을 지낸 권영해씨였다. 국방부 장관으로서 하나회 척결을 주도했던 권씨는 정권이 바뀐 후 대선 때 북풍공작을 주도한 혐의로 구속됐다. 하나회 출신들이 그에게 악감정을 품지 않으면 이상한 일일 게다.

    “권씨가 안양교도소에 있을 때 나한테 사죄편지를 보내온 적이 있어요. 사실 그와 나는 군에서 매우 가까운 사이였습니다. 그가 (국방부) 차관일 때 내가 육본 인사참모부장이 되자 ‘육군과 국방부의 밀월이 시작됐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으니. 그가 뒷날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자 다들 가식이라고 비난했습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참회의 눈물이었어요. 사람이 가진 걸 다 잃으면 진심으로 참회하지요. 편지에 이렇게 답장을 보냈어요. 나는 용서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고 당신의 처지를 다 이해한다고. 지금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요.”

    군수 일 못지않게 그가 애착을 갖고 있는 것이 바로 6·25 참전기념행사다. 그는 10년째 미국의 각 주를 돌며 이 행사를 열고 있다. 매년 6월25일 6·25전쟁에 참전했던 미국인들을 불러 모아 기념메달과 감사장, 선물을 준다. 한 번 행사할 때마다 2000만원 안팎의 비용이 드는데, 뜻있는 사람들의 지원을 받는다고 한다. 이 행사가 처음 열린 건 2000년 테네시주에서였다. 그해 테네시주 클락스빌시는 7월26일을 ‘최승우 장군의 날’로 선포했다. 2008년 6월 그는 ‘켄터키 커넬’이라는 명예직함을 얻었다. ‘켄터키의 대령’이라는 뜻의 이 직함은 지역사회, 주, 또는 국가에 대한 특별한 공헌이 있는 사람에게 켄터키 주지사가 수여하는 것이다.

    “미국인들에게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어요. 미국 신문에 여러 차례 보도도 됐습니다.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7시간 동안 차를 몰고 왔다는 참전용사도 있었어요. 적게는 500명에서 많게는 3500명까지 몰렸습니다. 미국인은 선물이 얼마짜리인지 따지지 않아요. 선물 자체를 좋아합니다. 단 몇 달러짜리라도 마음의 정성을 중시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피 흘려 지켰던 한국이 오늘날 이토록 발전한 것에 대해 큰 보람을 느끼고 있어요. 행사 마지막에 내가 연설을 하는데 그때마다 ‘여러분의 고귀한 희생에 한국 국민은 가슴 깊이 감사한다’는 말을 빼놓지 않습니다. 연설이 끝나면 줄을 서서 기념메달을 받습니다.”

    그가 이런 일을 하게 된 데는 6·25 전사(戰史)를 연구한 것이 영향을 끼쳤다.

    “육군대학에서 전사를 공부하면서 6·25 때 미군이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 알게 됐습니다. 민간인 학살에 대한 비난도 있지만 이는 전쟁의 특수성을 외면하는 얘기입니다. 전쟁터에선 적을 안 죽이면 내가 죽습니다. 6·25 때 민간인으로 가장한 적(敵)이 많았어요. 노근리 학살사건도 그래서 일어난 겁니다. 우리도 월남전에서 그런 시행착오를 겪었잖아요. 죽느냐 사느냐의 현장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한 사고였죠. 은혜에 대한 감사는 삶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입니다. 가장 큰 욕이 ‘은혜를 모르는 놈’이잖아요. 미국 보훈병원에 누워 있는 참전용사들을 면회한 적이 있는데 ‘코리아’라는 말에 눈물을 흘리더군요.”

    그는 “국회의원에 다시 도전할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에 “생리에 안 맞는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군수로서 만족한다고 했다. “3선을 생각하느냐”고 묻자 “자기 분수를 알아야 한다”며 미소를 지었다. “사람은 진퇴를 잘 선택하는 것이 중요해요. 욕심이 많으면 추해집니다. 관직에서 물러나면 지역에서 봉사활동을 할 겁니다. 양로원과 고아원을 돌며 불우한 분들에게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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