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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연재 | 잃어버린 근대를 찾아서

‘나라는 망하여도 도시엔 봄이 오고’

1920년대 서울

  • 박윤석│unomonoo@gmail.com

‘나라는 망하여도 도시엔 봄이 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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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지 창간 80주년을 기념해 한국 근대의 풍경을 새로운 시선으로 살펴보는 연재를 시작한다. 이 글은 한국 근대의 한복판에 해당하는 1920년대의 역사적 사건과 사실을 소재로 한 논픽션이면서, 신문기자이자 늦깎이 문학도인 한림 (韓林)이라는 허구의 화자(話者·narrator)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가는 독특한 다큐멘터리다. 지금 우리 삶의 근대적 형태는 80~90년 전 서울과 당시 사람들에 많이 기대고 있다. 이 글은 그 뿌리를 더듬는 흥미로운 여행이 될 것이다. 이 글은 당시 동아일보 기사를 주로 활용했으며, 기타 참고자료와 서적은 잡지 기사 형식상 연재 말미에 실을 예정이다. <편집자>
#제1장

‘나라는 망하여도 도시엔 봄이 오고’

1919년 서울 숭례문 일대 거리.

겨울의 개울이 얕게 흘렀다. 서린동(瑞麟洞)을 지나던 신문기자 한림(韓林)은 걸음을 멈추었다. 축대 아래 개울에서 아낙들이 빨래를 하고 있다. 흰 치마저고리와 쪽찐 머리들 뒤로 하천부지는 흙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청계천은 장마철 아니면 물이 온전히 차는 일이 드문 건천(乾川)이다. 범람 아니면 가뭄. 개천은 두 모습 중 하나다. 한 길 높이의 석축 벼랑에는 아이 키만 한 가마니들이 빨랫감을 가득 채우고 줄지어 섰다. 광주리 한두 개씩으로는 부족한 모양이다. 빨래터는 엊그제부터 풀린 날씨로 활기를 띠고 있다.

이상한 겨울이다. 얼마 전 12월 중순에는 봄날 기온 같고 여름 장마 같은 날씨가 일주일이나 이어졌다. 그러다 동지(冬至) 녘에 사나흘 평년 기온을 되찾는 듯하더니 요 며칠 또 기온이 올라갔다.

이상 난동 현상은 12~13일부터 전국에 수해를 몰고 왔다. 평안북도 선천(宣川)군에서는 3일간 내리 비가 내려 여름 장마를 방불케 했다. 거기다 산과 들에 쌓인 눈, 개천에 한 척(尺) 이상 얼었던 얼음까지 다 녹아내렸다. 수로는 죄다 범람하고 육로는 모조리 잠겼다. 평양과 신의주를 잇는, 이 전통의 교통 요충은 마비됐다. 바로 위 용천(龍川)도 폭우로 말과 자동차 통행이 두절되고 우편물 배달이 중단되었다. 겨울의 물난리에 노인들은 처음 보는 기후라고 수군댔다. 때 아닌 비와 포근한 날씨로 초유의 엉뚱한 겨울이 나타나고 있다고 한림은 기사에 썼다. 전국의 지국(支局)에서 올라오는 소식을 사회부 선임 기자 한림은 사흘째 종합하고 있었다.

몇 개월 동안 계속된 가뭄에 눈도 비도 구경 못하고 새벽마다 물 길어 나르던 함경남도 홍원(洪原)군 주민들은 때늦은 겨울 폭우에 어이없어 했다. 3일 동안 퍼붓는 빗속에 도로는 진흙바다가 되어 통행두절이었다. 충청남도 공주(公州) 지방은 온난화로 보리농사에 해를 입지 않을까, 전염병이 돌지는 않을까 우려가 높았다. 동해안에는 예년보다 명태가 많이 올라와 상인들은 가격 폭락을 걱정했다. 남해안에는 따뜻해진 바닷물로 대구가 종적을 감췄다. 농작물이 전멸한 데 이어 어장까지 망쳤다고 인심이 흉흉했다.

봄부터 비가 오지 않아 혹독한 가뭄 피해를 본 경상남도 밀양(密陽)에서는 올 시기에는 안 오더니 오지 않아야 할 시기에는 온다고 원망이 쏟아졌다. 경상북도 성주(星州)에서는 닷새 동안 그치지 않는 비로 연못이 넘치고 가옥이 잠겼다. 김천(金泉)에서는 흙비가 내렸다. 3일 연속 그야말로 한시도 쉬지 않고 뿌린 빗줄기에 보리 이삭은 마구 패었다. 수십 년 이래 처음 보는 겨울 장마였다. 올 벼농사를 가뭄으로 망쳐버렸는데 보리까지 전멸 지경이니 내년 보릿고개 넘기는 더욱 힘들게 됐다. 주요 항구마다 화물은 쌓여 있고 하역 못한 배들로 만원이었다.

이상 기후·음산한 비

오래 내리는 궂은비에 전국은 음산하게 젖어들었다. 마치 갑오(甲午)년 기후 같다는 둥 온갖 음산한 풍설이 돌아다녔다. 갑오년이라면 1894년을 말한다. 동학(東學)교도와 농민들이 관군(官軍)과 청군(淸軍) 일군(日軍)과 부딪치며 내전(內戰)을 벌였던 해, 청나라와 일본이 조선의 땅과 바다에서 대전(大戰)을 벌인 해다. 35년 전이다. 그로부터 시작된 15년간의 아수라 세월을 거치고서 조선은 일본에 병합되었다. 그리고 다시 20년이 더 지났다. 갑오년 같은 아수라장이 더 남아 있기라도 하단 말인가. 올해 봄과 여름은 혹독한 가뭄이었다. 가뭄 끝에 단비는 끝내 오지 않았다. 한바탕 홍수가 짧게 지나갔을 뿐이다. 그렇게 한 해 내내 말라 시든 산천에 겨울의 폭우가 세밑을 쓸고 간다.

지방 각지에서 올라오는 상황들을 보면서 한림은 ‘가뭄 끝의 쓴 비’라는 제호를 떠올렸다. 하지만 주제넘게 나서지 말자고 생각했다. 자네 소설에나 쓰지. 부장(部長)은 분명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날 기사의 제목은, ‘처음 보는 이상 기후-음산한 비(陰雨)’로 나왔다. 두 주 전의 일이다.

조선왕조에서라면 이쯤 되면 기청제(祈晴祭)를 지냈을 일이다. 1418년 8월7일의 태종실록은 전한다.

지진(地震)이 나고 큰비가 내리고 천둥 번개가 쳤다. 도성 밖은 물이 넘쳐서 말이 빠져 죽고 곡식이 크게 손상되었다. 기청제를 행하였다.

왕이 직접 제단에 나서는 기청제를 지내는 대표적인 곳은 도성 바깥의 경우 남단(南壇)이었다. 남산에서 서남쪽으로 뻗어 내린 낮은 구릉의 끝자락에 위치한 남단은 이제 조선주둔군사령부의 영내로 편입돼 자취를 찾기 힘들게 되었다.

경성(京城)은 비 피해가 그리 크지는 않았다. 그래도 이상한 기후이긴 했다. 올해 12월은 비 온 날이 안 온 날보다 많았다. 사진기자는 어디서 개나리 움트는 사진을 찍어왔다. 음침한 장안에 개나리의 때 아닌 봄빛. 사진은 그러한 설명을 달고 신문의 사회면을 채웠다. 겨울비와 이상기온은 하순 들어서야 겨우 주춤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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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석│unomono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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