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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다큐 | 잃어버린 근대를 찾아서

종로 네거리에 해가 저물고 스커트 짧아져 에로 각선미

1920년대 서울

  • 박윤석│unomonoo@gmail.com

종로 네거리에 해가 저물고 스커트 짧아져 에로 각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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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회 이야기>
  • 압수 소동이 지나간 편집국에서 한림은 1930년 신년호 기사를 준비하며 밤을 새운다. 기자들은 그 나름 조선사회의 분신인 양 보이고 기사는 제각각 한 해의 일기처럼 느껴진다. 보이지 않는 독립의 길을 따라 인도는 소처럼 걸어간다. 왕조를 멸하고 민국을 건립한 중국은 삼국지의 난세로 되돌아갔다. 조선은 어디로 가는가. 합법이 매국이 되고 불법이 애국이 되는 식민지의 일상은 늘 정신분열과 대면한다.
(제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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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즈음 조선총독부와 광화문통 일대.

신년호 신문은 무사히 나왔다. 새해에 인사이동 하는 총독부 관리와 판사들 명단이 1면에 그득하다. 그 사이사이 조선인 이름도 보인다. 사회면에는 인사동의 조선극장에 격문이 살포된 사건 이후 검거인원이 속속 불어난다는 소식이 눈에 띈다.

광주학생사건의 진상을 발표하라, 검거 학생들을 무조건 석방하라-이런 내용의 유인물이 극장에 뿌려진 것은 12월13일이었다. 금요일 저녁, 1·2층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은 유니버설사 제작의 할리우드 희극 영화 한편을 보고 나서 가슴이 다 시원해졌다는 표정이 되었다. 그리고 화장실을 다녀와서 다음 차례인 연극에 심각히 빠져들고 있었다. 극단 토월회(土月會)가 공연하는 레프 톨스토이 원작의 ‘부활(復活)’-일명 ‘카튜샤’였다.

번역 각색 연출을 도맡은 박승희(朴勝喜)는 대한제국의 초대 주미공사 박정양(朴定陽)의 아들이다. 동경 유학시절 김기진·복진 형제와 이서구 등 제각각 전공이 다른 학생들과 어울려 1923년 토월회를 만들었다. 귀국해 이 조선극장에서 첫 공연을 한 것이 6년 전이다. 이후 창립 동인들은 일찌감치 각자의 길로 흩어졌고 학생극단은 직업극단으로 개편해 해산과 재건을 거듭해왔다. 막대한 유산을 쏟아 부으며 부침을 겪어온 박승희의 토월회는 지난달 11월부터 조선극장에 겨우 다시 자리를 잡고 상설 공연을 해오던 참이었다. 흥행을 위해 활동사진 사이에 연극과 무용을 끼워 넣었다. 연극은 일주일 안에 새것으로 교체된다. 토월회의 재기 공연작은 박승희 각본의 ‘아리랑 고개’였다. 토지를 잃고 북간도로 가는 실향민 가족의 궁핍상을 감상적으로 묘사한 이 연극은 배우와 관객이 함께 울음판을 이룰 정도로 큰 반응을 이끌어냈다.

13일 밤 8시45분, ‘부활’의 무대에 19세기 후반 러시아 복장을 한 배우들 앞으로 조선식 양복을 입은 30세가량의 남자가 튀어나왔다. 그리고 삐라를 뿌리며 일장 연설을 했다. 그는 배우가 아니었고 그가 하는 것이 연기가 아님을 관객은 곧 알게 되었다. 남자는 2층 객석을 향해 고개를 쳐들고 마치 배우처럼 우렁찬 소리로 격렬한 대사를 쏟아내었다. 50전을 주고 2층에 입장한 관객과 30전 내고 1층에 입장한 관객 모두 한마음이 되어 일제히 기립 박수와 함성을 보냈다. 극장에 배치되어 있던 경찰관 몇 명이 달려들어 그를 체포했다. 극장만큼 다중이 집합하는 시설도 드물기 때문에 객석 뒤편 요지에는 경찰이 상주하는 임검석(臨檢席)이 마련돼 있다. 자리를 못 찾은 관객들은 가끔 이곳에 앉아 있다가 혼쭐이 나기도 한다.

한꺼번에 요동치는 관객들로 극장 출입문이 부서지는 소란이 벌어졌다. 종로경찰서에서 자동차로 출동한 경찰이 극장을 엄중 경계했다. 광주학생사건 발생 40일이 지난 때였다. 그동안 서울에서는 학생들의 가두시위로 1200명 이상의 학생이 체포된 뒤였다. 불합리한 사회구조와 인간애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하는 대문호 톨스토이의 사상에 심취해가던 관객은 도중에 자리를 털고 일어서야 했다. 예정대로라면 연극관람 뒤에는 떠오르는 현대무용가 조택원(趙澤元)이 미녀 무용수와 듀엣으로 이뤄내는 댄스를 감상하고 이어서 미국 FBO영화사의 초특작 영화 한 편을 더 보게 되어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이날은 새 프로그램으로 교체된 첫날이었다.

한 주 전에도 조선극장에는 큰 소동이 있었다. 무대에는 최승희(崔承喜)가 올라와 있었다. 3년간의 일본 유학과 공연을 마치고 이번 여름에 귀국한 이래 처음으로 서는 국내 무대였다. 평소 조선극장의 프로그램에다 ‘무용, 극, 영화의 밤’이라는 타이틀을 붙여 최승희의 무용을 특별공연하는 행사였다. 영화담당 신문기자단이 후원했다. 12월5일 목요일 저녁 일찌감치 매진된 극장 앞에는 몰려드는 손님과 되돌아가는 인파로 대만원을 이뤘다. 금요일까지 이틀간으로 계획되었던 공연은 토요일 하루를 더 연장해 주야 2회를 추가하기에 이르렀다.

“오랫동안 침묵을 지키고 예술완성에 정력을 쓰던 조선무용계의 총아 최승희 양이 어여쁜 자태로 출연”하고 “조선극단 초유의 환영을 받은 토월회의 아리랑고개 상연에는 많은 팬을 가진 여배우 김연실(金蓮實) 양도 출연한다”는 기사가 미리부터 도하 신문에 실렸다. 신문들은 ‘독자 우대권’이라 해서 관람료 할인 쿠폰도 지면에 발행했다. 입장료는 평소보다 비싸 2층 80전, 1층 50전이었다.

종로 네거리에 해가  저물고 스커트 짧아져 에로 각선미

정통극을 국내에 처음 도입한 극단 ‘토월회’ 창립동인들. 맨왼쪽이 박승희다. 무용가 최승희(오른쪽 사진)는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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