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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다큐 | 잃어버린 근대를 찾아서

일본 소년 손으로 운반된 독립선언문

1920년대 서울

  • 박윤석│unomonoo@gmail.com

일본 소년 손으로 운반된 독립선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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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소년 손으로 운반된 독립선언문

1933년 하늘에서 본 경성 시가지 모습.

부산발 급행열차 안에서 검은 모닝코트 차림의 적지농(赤池濃) 내무국장은 매일신보 기자의 질문을 받았다. 총독, 정무총감, 식산국장, 학무국장, 경무국장과 더불어 새로 부임하는 길이다. 신임 내무국장은 줄무늬 바지와 조화를 맞춰 줄진 넥타이를 맸다. 한눈에도 고급품임을 알 수 있다고 기자는 썼다. 장거리 여행에도 피곤한 기색 없이 환영 내려온 아도(兒島) 헌병사령관과 한창 이야기를 주고받던 중이었다.

“조선에 부임한 후 첫인상? 그것은 산야가 푸르게 된 것이다. 대정 4년에 이곳을 통과할 적에 비교하면 생기가 발랄하다. …원래 조선은 구미 각국이 가지고 있는 식민지와는 다르다. 다른 나라의 식민지들은 그곳 토인들의 지식도 낮을 뿐 아니라 인구도 별로 많지 못하고 본국사람이 이주하면 자연히 그 세력에 눌려서 점점 수효도 줄어가는 것이지만 …조선을 통치할 때는 결코 외국에서 식민지를 다스리는 것처럼 하여서는 불가하다.”

자결

기차가 수원을 지날 때 신임 총독은 양복을 벗고 해군제복으로 갈아입었다. 기모노 차림의 총독 부인의 가는 손가락에 다이아몬드 반지가 반짝였다. 부산까지 1박2일로 마중 내려온 이완용도 열차에 동승했다. 조선의 귀족 노릇 하기도 쉬운 일은 아니다.

관악산 자락을 끼고 안양천을 따라 오르던 북행 열차는 경인선과 만나며 급우회전한다. 영등포역을 지날 때 총독부 토목국 관리들의 환영을 받았다. 영등포역이 1899년 9월 경인선 철도와 더불어 생긴 지도 꼭 20년이 되었다. 너른 평야의 비옥한 토질에서 나오는 채소와 기와를 나룻배에 실어 마포 용산 서울에 공급하던 영등포의 논밭과 포구는 급속히 사라지고 있다.



기차는 시흥군 영등포면을 지나 북면의 노량진리로 접어든다. 왼편 여의도 백사장 너머 육군 야외 연병장과 간이 비행장이 보인다. 세계대전 중에 촉발된 각국의 비행장 건설 경쟁으로 일본과 조선, 대만에 비행장이 서둘러 지어졌다. 조선에서의 첫 작품으로 여의도에 간이 비행장이 완료된 것이 꼭 3년 전인 1916년 9월이었다. 작년 1918년까지 4년에 걸쳐 사상 최대의 전쟁이라 할 세계대전이 세계를 뒤흔들었다. 1910년대의 절반가량이 이 신종 괴질과도 같은 국제전쟁의 소용돌이에 파묻혔고 일본도 거기에 명함을 들이밀었다. 조선반도는 그 전란의 흙먼지 바깥에 있었다.

다 끝난 나라 밖 전쟁에 조선 사람들이 뒤늦게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한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전쟁 끝마무리의 처리과정에서 기술적 필요에 의해 윌슨 미국 대통령이 꺼낸 제안 중 ‘민족 자결’이라는 구절이 복음과도 같이 다가온 것이다. 윌슨 대통령의 염두에 없었던 조선인들은 그 한 마디를 금과옥조로 여기며 큰 희망을 걸었다. 일본이 미국과 대등한 전승 연합국의 일원이라는 사실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희망은 머지않아 실망으로 바뀌었다.

판단과 믿음이 설혹 착각이고 오인이었다 하더라도 거기서 나온 행동은 그 나름의 힘으로 새 길을 열어가게 된다. 나라를 둘러싼 세계의 기운이 스스로 일어서라 독려하는 것 같고 나라를 짓누르는 임금의 붕어(崩御)가 울분을 토하게 하는 시점에 기미년 만세는 일어났다. 200만 명 이상이 참가한 전국적인 집단 봉기에서 적어도 7500명이 떼죽음을 당했다. 부상자는 그 두 배가 넘었다. 희생의 대가는 무엇인가. 그 희생자들이 지금 새 총독과 그의 양복 입은 신사들을 불러온 것이다.

강물에 비친 인도교의 장식등

노량진역을 통과한 기차는 한강을 향해 좌로 방향을 틀며 강가 언덕 위 초라한 묘소를 비켜 지난다. 친족 간의 왕위 찬탈에 항거하며 원 상태로 돌려놓기 위해 그 이듬해 무력정변을 꾀하다 극형을 당한 사육신이 묻힌 곳이다. 최고급 관직에 있던 그 여섯 명은 참혹한 죽음으로도 부족해 가족까지 연좌되어 남자는 사형, 여자는 종으로 팔려갔다. 일족을 멸한 것이다. 이것이 조선의 국법, 곧 왕의 법이다. 왕이 곧 국가고 법인 것이 왕조국가다. 463년 전의 일이다. 이민족의 왕위 찬탈에 항거해 국권을 돌려달라고 9년간의 침묵 끝에 태극기 휘날리며 비무장으로 만세 부르다 집단 피살된 것이 6개월 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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