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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환 전 인권위원장 회고록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의 악몽

‘이카루스의 날개로 날다’ ⑥

  • 안경환│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전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ahnkw@snu.ac.kr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의 악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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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70일간 이어진 2008년 촛불집회
  • ● “대통령님, 인권위원장 손도 좀 잡아주시지요”
  • ● 씁쓸했던 5·18 기념식의 기억
  • ● 인권위 의견서 발표 후폭풍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본부건물은 서울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다. 시청 바로 뒤, 무교동길과 을지로가 교차하는 모퉁이다. 상징적 의미가 크다. 일반 시민의 접근이 용이해야 한다는 인권위 설립기준에 관한 국제적 가이드라인이 있다. 수도뿐 아니라 지방에 사무소를 설치해야 한다는 내용도 있다. 모든 국민이 균질한 서비스를 받아야 한다는 민주주의의 대원칙 때문이다. 기본권, 인권은 모든 국민이 누려야할 기초 서비스다. 지방에서 벌어지는 인권유린은 주목받기 어렵다. 한동안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광주 인화원의 ‘도가니 사건’도 만약 서울에서 일어났더라면 그처럼 오랫동안 지지부진하게 조치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인권위 설립 직후 부산과 광주에 지역사무소를 열었고, 2007년에는 대구에도 추가로 사무소가 만들어졌다. 세 사무실 모두 대중교통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으로 입지를 정했다. 물리적 접근성의 관점에서 볼 때 대한민국 인권위는 최적의 요건을 갖추고 있다. 특히 서울본부의 위치에 대해서는 외국인 내방객도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방문이 용이할 뿐 아니라 각종 인권문제로 집회가 열리는 서울광장이 지척이다. 현장체험으로는 더없이 좋은 자리다.

인권위를 만들 때 후보로 검토된 장소는 여러 곳이었다고 한다. 과거 남산 중앙정보부 건물(현재 국제유스호스텔)을 사용하자는 의견도 강했다고 한다. 군사독재 시절 인권유린의 상징어가 ‘중앙정보부’였던 점을 감안하면 의미 있는 발상이다. 그러나 시대가 달라졌다. 절대권력의 독재가 사라지고 일상적 민주화가 정착되면서 인권의 범주가 넓어졌다. 이제 인권의 핵심의제도 일상에서 발생하는 것들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남산은 다소 복고적인 이미지를 풍긴다. 더구나 시민의 접근이 쉽지 않다. 지체장애인이 휠체어를 타고 남산 비탈길을 오르내리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안쓰럽다. 결과적으로 현재의 장소가 최적이다.

서울광장 옆 인권위 사무실

인권위는 서울 복판의 13층 건물 중 7개 층을 사용한다. 6층 이하에는 규모가 작은 회사들이 세 들어 있다. 유엔난민기구(UNHCR)도 한국지부를 설립하면서 이 건물에 자리 잡았다. 1층에는 오래전부터 부산은행이 입주해 있다. 현관복도를 사이에 두고 은행 반대편에는 몇 년 전부터 제과점이 성업 중이다. 상시 이동인구가 많은, 그야말로 목 좋은 곳이다. 인권위는 진정인의 편의를 위해 이 공간을 빌리려 애썼으나 비싼 임차료 때문에 포기했다. 지하층에는 각종 실비 식당이 자리 잡아 매우 편리하다.

그러나 이처럼 시민의 접근이 용이한 만큼 소란스러운 일도, 돌발사태도 잦다. 청원경찰과 경비직원의 애로가 크다. 소동을 막는 방법이 ‘인권 친화적’이어야 한다는 업무수칙이 있다. 건물주인 포스코장학재단의 숨은 배려도 있다. 각종 항의 방문, 점거 농성과 같은 어수선한 분위기 때문에 일반 사무실로는 인기가 떨어진다. 인권위가 입주해 이미지가 좋아졌는지는 모르지만 수지면에서는 적잖은 손해다. 어쨌든 인권위원장 재임 시절 이따금씩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입주자들의 시선에 불만과 원망의 불꽃이 담겨 있는 듯해 미안한 마음이 들곤 했다.

건물 7층에는 위원장과 상임위원, 비상임위원의 방과 회의실이 있다. 위원장실은 애초에 박태준 전 포스코 회장의 집무실이었다고 한다. 물론 규모는 대폭 줄였다. 그 방에는 위원장 전용 화장실이 딸려 있다. 간이 샤워시설도 있다. 집무실과 별도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작은 내실도 있다. 인권위 옥상에서는 서울광장의 전경이 환히 내려다보인다. 그래서 대규모 집회가 있을 때마다 사진기자들이 선호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2008년 5월 2일, 초저녁부터 서울광장에 인파가 밀려들기 시작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집회가 시작된 것이다. 그 후 몇 달 동안 서울의 밤은 유례없는 불꽃마당이 됐다. 그해 4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돌아온 이명박 대통령의 자랑스러운 무용담이 촛불을 점화했다. “이제 우리 국민도 맛있는 미국산 소고기를 싼값에 맘껏 들 수 있게 됐다”는 게 요지였다. 선거에서 유례없는 압승을 거둔 대통령, 실용주의 정치노선을 표방하는 경제대통령의 확신과 자부심에 찬 이 발언은 더없이 큰 정치적 실언이 됐다. 미국과 캐나다에서 광우병이 발생했다는 언론보도가 있었다. ‘병든 소의 고기가 인체에 치명적이다’ ‘아니다’를 놓고 전문가 사이에서도 논쟁이 벌어졌다. 실제로 내가 병든 쇠고기를 먹을 확률은 거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생명과 건강에 대한 집착과 우려는 확률의 문제가 아니다. 구실을 찾고 있던 정치적 반대세력이 집결했다. 평소 정치에 무관심하던 일반 국민도 동참했다. 교복 입은 여학생, 유모차를 앞세운 젊은 어머니들이 합류했다. 딱히 구체적인 투쟁 목표가 있어서가 아니다. 세상에 대한 막연한 불만을 풀 대상과 공간을 찾고 있었다. 많은 사람이 단순한 호기심 때문에 모여들었다.

‘촛불문화제’라는 이름의 집회는 시위에 대한 종전의 관념을 깼다. 재미있는 시국만담이나 여흥놀이 정도로 비치기도 했다. 정권에 대한 지지·반대를 떠나 국민 사이에 새 대통령의 국정운영 스타일에 대한 불만이 광범위한 공감대를 이루고 있었다. 특히 고위공직자 인사가 문제였다. ‘고소영’이라는 신조어가 탄생했다. 확연하게 드러나는 편중된 인적 구성이다. 널리 품어 안기보다 철두철미 ‘내 편 챙기기’로 비쳤다. 부동산 투기, 위장전입 등 이전 정부에서는 인사의 결격사유로 여기던 공직 후보자의 전력을 전혀 문제 삼지 않겠다는 말인가, 국민의 불만이 증폭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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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환│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전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ahnkw@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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