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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기록, 그 진실과 왜곡 사이

페르시아 근거 없이 비난…삐뚤어진 할리우드식 오리엔탈리즘

영화 ‘300’과 스파르타의 ‘쌩얼’

  • 오항녕| 전주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hallimoh@hanmail.net

페르시아 근거 없이 비난…삐뚤어진 할리우드식 오리엔탈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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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는 흔히 자식을 엄하게 가르치는 것을 일컬어 ‘스파르타(Sparta)식 교육’이라고 한다. 하지만 역사 기록 그 어디를 봐도 그에 대한 근거를 찾기 힘들다. 최근 식스팩 근육을 자랑하는 출연배우로 유명해진 영화 ‘300’도 마찬가지다. 스파르타가 페르시아와 싸운 테르모필레 전투가 그 배경이 됐지만, 역사적 기록과는 차이가 크다. 과연 영화처럼 스파르타인들은 이성적으로 완벽한 인간성을 가진 반면, 페르시아인들은 광포하고 미개한 종족이었을까. 그 베일을 벗긴다.
페르시아 근거 없이 비난…삐뚤어진 할리우드식 오리엔탈리즘

영화 ‘300’. 만일 ‘300’의 모티프가 기원전 480년경 페르시아와 싸운 테르모필레 전투가 아니라, 스파르타가 같은 도시국가 아르고스와 싸운 코미디 같은 전투에서 유래했다면 이 포스터의 카피는 어떻게 바뀔까?

고개를 넘어 몇 필의 말이 달려온다. 스파르타에 항복을 권유하러 온 페르시아 사신. 사신은 자신들이 정복한 나라의 왕 해골을 보여준다. 사신을 대면한 자리에서 있던 대화.

왕비 : “속임수를 부렸다간 무사할 수 없다.”

사신 : “대장부들 하는 말에 여자가 끼어들다니요.”

왕비 : “스파르타의 여자들은 대장부를 키운다.”

사신은 흙과 물을 원했다. 흙과 물은 곧 그 땅이다.

사신 : “백성들의 목숨을 소중히 여긴다면 잘 생각하십시오. 황제의 군사력은 막강해 거대한 군대가 움직이면 땅이 흔들리고 물을 들이켜면 강이 마릅니다.”

왕 : “복종? 그건 좀 힘들겠다.”

주변의 신하, 백성과 산천, 그리고 왕비의 얼굴을 보다가 이렇게 정리한다.

“네놈들은 정복한 왕의 해골을 가져왔으며 내 백성들을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왕비를 모욕했다.”

그러곤 사신을 발로 차 거대한 우물 속에 빠뜨리면서 말한다.

“이게 스파르타다!”

설정

마지막 스파르타 전사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300’의 내용이다. 이 영화의 내레이터는 “걸음마를 배우는 순간부터 검술을 배웠다. 절대 물러서거나 항복해서는 안 되며 스파르타를 위해 싸우는 것이 최고의 영광이라고 배웠다”고 말한다. 스파르타의 전사, 7세가 되면 엄마의 품을 떠나 아고게라 하는 성인식을 치른다. 스파르타의 왕은 자신의 아들과 씨름을 한 뒤 말한다.

“스파르타의 힘은 옆에 있는 전사다. 그를 존경하고 명예를 지키면 너도 존경을 받는다.” 영화는 그 시대적 배경을 “병사와 말로 이루어진 맹수가 끈기와 자신감으로 먹이를 노리고 있는 때”로 상정한다.

“노예들로 구성된 페르시아가 이성과 정의를 중시하는 작은 그리스를 노리고 있다.”

야만의 페르시아와 문명의 그리스. 그리고 데자뷰. 지난번에 살펴본 중국의 ‘능지처참’에 대한 서구의 적반하장(賊反荷杖)식 인식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어려서부터 스파르타식 교육이란 낱말로 기억하는 바로 그 스파르타의 얘기다. 태릉선수촌의 선수들도 훈련이 힘들면 스파르타식 훈련이라고 상투적으로 말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필자도, 또 그 어디에서도 스파르타식 교육이 실제로 어떠했는지 일러주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이게 오늘의 주제도 아니다.

얘기를 진전시키기 전에 두 가지 전제를 말해둬야겠다. 첫째, 그리스나 로마같이 지중해를 중심으로 벌어진 전쟁이나 여타 삶의 양식을 살펴보는 것은 본고의 관심이 아니다. 그중 아주 일부가 필자의 관심 속에서 검토될 것이다. 둘째, 영화 같이 역사적 사실을 허구화할 수 있는 장르에서 역사의 진실과 왜곡을 문제 삼는 것이 본고의 과제는 아니다. 수많은 소설과 영화, 드라마가 펼쳐 보이는 상상의 나래를 막을 수도 없거니와 또 그 장르들은 그 나름의 역할이 있는 법이다.

연설

‘300’이란 영화. 스파르타의 레오니다스 왕이 스파르타 전사(戰士) 300명을 이끌고 페르시아 크세르크세스 왕의 침략을 막아낸다는 내용이다. 식스팩 복근(腹筋)과 함께 기억되는, 아니 식스팩 복근 빼면 거의 기억할 것이 없는 영화인데, 꽤나 인기를 끌었다. 실은 이게 문제다. 그 설정이 너무 익숙하다는 뜻이니까. 그리스 ‘스파르타 대 페르시아’의 구도가 ‘문명 대 야만’의 구도로 설정되는 것이 너무도 당연히 받아들여지는 바로 그 부분. 이런 설정의 내면화야말로 정작 불쾌하게 기억되어야 할 것을 기억나지 않게 하는 기제다.

특히 영화 ‘300’은 마지막 전투를 앞둔 아침, 다른 동맹군의 병력을 철수시키고 레오니다스가 스파르타군에게 한 연설을 덧붙임으로써 ‘완성도’를 높였다. 이 연설은 마지막까지 생존했던 인물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형식을 띠면서, 마치 사실이었던 것처럼 배치됐다. 작가의 상상을 사실처럼 느끼게 하는 능력, 이러니까 할리우드 영화가 장사가 된다.

“수백 세대가 지나 사람들이 이곳에 올 것이다. 아마 바다 멀리 학자들과 여행객들은 고대에 대해 알고자 하는 열망과 과거에 대한 호기심을 품고 올 것이다. 그들은 우리의 평야를 돌아보고 돌과 파편을 보고 우리의 조국이 있었다는 것을 증명할 것이다. 그들이 우리에게 무엇을 배우겠는가? 그들의 삽은 아름다운 궁전이나 사원을 발굴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의 곡괭이는 영원한 건축이나 예술 작품을 파내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스파르타인들은 무엇을 남기겠는가? 대리석이나 청동으로 만든 조각품이 아니라 바로 이것,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서 행하는 것을 남길 것이다.”

멋있다. 나라도 듣고 가슴이 벅차오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연설은 초기 전투 뒤에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 왕이 레오니다스 왕을 설득하다가 실패한 뒤 분에 못 이겨 하는 말과 아주 선명히 대비된다. 참으로 역사학자가 아니라도 반(反)역사적, 반(反)문명적 발언이라고 느끼기에 족한 스크립트였다.

“스파르타의 역사마저 지워버릴 것이다. 그리스의 모든 문서를 불태워 없애버릴 것이다. 그리고 역사가의 눈을 뽑아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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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항녕| 전주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hallim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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