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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기록, 그 진실과 왜곡 사이

개인은 개인이고 대중은 대중이다

동기(動機)의 오류

  • 오항녕 │전주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hallimoh@hanmail.net

개인은 개인이고 대중은 대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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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권 강화라는 해석

개인은 개인이고 대중은 대중이다

인간이나 동물이나 논다. 재미있게. 동물의 왕국에서 사자 식구들이 노는 것도 비슷하다. 서로 물어버릴 듯하지만 심하게 물지 않는다는 규칙을 지킨다.

그런데 다름 아닌 나 자신이 ‘관념적 오류’를 범했다. 다음을 보자.

광해군을 재평가하는 사람들이 눈을 감든지 어물쩍 넘어가는 사안 중의 하나가 광해군대 내내 계속된 궁궐 공사이다. 많은 분이 왜 그렇게 궁궐공사를 했느냐고 묻는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을 ‘왕권 강화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전시행정(展示行政)’이란 말이 있다. ‘보여주기 위한 행정’이란 뜻이다. 그걸 국왕이 한 게 궁궐공사라고 생각하면 된다. 뭔가 존재감을 보여주고 과시를 해야겠는데, 마땅한 정책도 아이디어도 없으니까 보도블록 새로 깔고, 청사(廳舍)나 짓고, 무슨 ‘축제’니 하는 이벤트를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또한 독재정권일수록 동상이나 탑 등 대형 건조물에 집착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 배경과 발상은 같다.

-오항녕, ‘조선의 힘’, 역사비평사, 2010, 208쪽



언뜻 보면 그럴듯한 설명이다. 통상 궁궐공사를 왕권 강화의 상징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나 역시 그런 편의적인 통설을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다행히 다시 이렇게 덧붙이긴 했다.

그러나 왕권은 강화하지 않아도 원래 강한 것이다. 그게 관료제든 왕조체계든 ‘위계’로 볼 때 가장 강한 권력이 제도적으로 국왕에게 부여되어 있다. 그러면 그 제도를 활용하면 된다. 인재를 널리 등용해서 정치세력을 확대하여 그로부터 군주에 대한 지지를 끌어내는 방법도 있고, 백성들의 어려움을 해결해주어 비상시에 곧 군사력이 되는 그들의 지지를 확보해두는 것도 유력한 왕권 강화의 한 방법이다. 국왕이 왕권을 강화할 수 있는 그 많은 방법과 장치를 놓아두고 겨우 선택한 것이 궁궐 공사라니…. 왕권 강화의 방법을 ‘궁궐 공사’에서 찾는 것 자체가 이미 통치력 부재를 보여주는 명확한 증거이다. 역사적으로 가장 어리석은 왕권 강화책이 바로 궁궐 공사였음은 패망을 재촉한 숱한 군주들의 사례에서 발견되는 바이다. 안타깝게도 광해군도 그중 하나의 사례를 더하고 말았다.

-앞의 책, 231쪽

실은 미쳤다?

광해군의 궁궐 공사에도 왕권 강화라는 측면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그런 대규모 공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왕권의 행사이자 상징적 표현이었다. 그런데 더 구체적인 이유가 있었다. 광해군은 새로 지은 창덕궁에선 무슨 소리가 들린다고 늘 하소연했다. 그는 기존 궁궐에서 매우 불안해했고 그 결과 풍수설에 깊이 빠져들었다.

광해군이 신뢰한 인물이 있는데, 이의신(李懿信), 성지(性智), 그리고 시문룡(施文龍)이다. 이의신은 교하(交河) 천도를 주장했으나 좌절됐다. 성지는 풍수를 하는 환속승이고, 시문룡은 풍수를 안다고 정인홍(鄭仁弘)이 천거한 중국인이다. 정인홍은 광해군이 믿은 멘토였다. 인왕산 기슭에 있는 궁궐이 바로 인경궁(仁慶宮)인데, 광해군대 핵심권력자였던 이이첨(李爾瞻)이 건설을 건의했고, 그 배후엔 성지와 시문룡이 있었다. 아예 수도를 옮기는 천도를 계획했다 반대에 부딪히자, 광해군은 대신 인경궁을 짓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랜 셈이다.

이런 광해군의 정신상태 때문에 조선시대 사람들은 그를 ‘혼군(昏君)’이라고 불렀다. ‘정신 나간 임금’이라는 뜻이다. 나도 쭉 그렇게 불러왔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의 광해군(광해가 됐던 ‘하선’이 아니라!)이 실제 광해군과 유사하다. 소심하고 불안해하며 화를 잘 내는 편이었다.

그래서 즉위년에 이미 창덕궁이 완공됐는데도 무슨 소리가 들린다며 머무르지 않았고, 계축옥사 뒤인 광해군 7년엔 “대조전(大造殿)은 어둡고 불편하여 오래 머물 형편이 못 되므로 창경궁(昌慶宮)으로 옮기고 싶은데, 선수(繕修)하라는 명이 내린 뒤로 대신과 유사 제조(有司提調)가 서로 이어 인피하고 들어가니, 지극히 한심스럽다”고 짜증을 내기도 했다. 이런 광해군을 두고 의학적으로 ‘미쳤다’고 진단하는 의사도 있다(이상곤, ‘낮은 한의학’ 광해군의 건강학②, 프레시안).

콜링우드의 오류

나는 이상곤 박사의 광해군대 역사에 대한 이해, 나아가 광해군대와 연관된 전후 시기의 이해에 동의하지 못하는 바가 꽤 있다. 그런 이유와 별도로 역사학자들은 좀체로 ‘미쳤다’는 판단을 꺼린다. 자꾸 뭔가 ‘합리적 이유’ 속에서 사건을 설명하려고 든다. 그러나 앞서도 말했듯, 이는 인간성의 측면에서 보나 합리성의 측면에서 보나 타당한 태도가 아니다. 제 정신이 아닌 인간이 얼마나 많은가?

‘신관념주의(Neo-idealism)’로 분류되는 콜링우드는 ‘관념적 오류’의 일반적 사례다. 저서 ‘역사의 관념(The idea of history)’으로 유명한 그는 다음과 같은 전제 아래 역사를 이해했다.

1) 모든 역사는 사상(생각)의 역사다. 단순한 사상이 아니라 반성적 사상의 역사다. 역사는 의식(consciousness)에 의해 수행되는 것이며, 의식에 의해 구성된다.

2) 그러므로 사상사(the history of thought)는 모든 역사다. 역사는 역사가의 마음속에서 지나간 사상을 다시 입법(立法)하는 것이다.

3) 그 결론을 증명하기 위해 호소할 데는 역사적 사상 그 자체 외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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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항녕 │전주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hallim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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