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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 파리 사이 101장면

속도 조절하며 남 배려하는 사회 돼야

24시간 활기 넘치는 다이내믹 코리아

  • 정수복│사회학자·작가

속도 조절하며 남 배려하는 사회 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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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물 밖으로 나가 새로운 풍경과 문물을 보고 오면 우물 안의 풍경을 지금까지와는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된다. 그러면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고 매일 보던 것들이 다르게 보인다. 신선한 문화 충격이 자취를 감추기 전에 얼른 붙잡아둬야 한다.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더 나은 삶을 살고자 한다면.
정저지와(井底之蛙). 우물 안 개구리라는 말이 있다. 자기가 살고 있는 좁은 울타리 안을 세상의 전체라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을 말한다. 어느 날 그 개구리가 우물 밖으로 튀어나오게 되면 하늘은 작은 동그라미가 아니라 끝없이 펼쳐진 무한의 공간이며, 광활하게 펼쳐진 대지 위에는 온갖 동식물이 살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때 개구리의 입에서는 “어이구! 이런 세상이 있었네!”라는 탄성이 튀어나온다.

여름이 다가오고 있다. 바캉스와 여행의 계절이다. 여행은 매일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 듯 오가는 집과 학교, 집과 직장이라는 고정된 장소를 벗어나 가보지 못한 곳, 가보고 싶은 곳을 다니며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요즘 한국인은 가까운 중국과 일본은 말할 것도 없고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유럽 그리고 미국과 라틴아메리카에 이르기까지 세상 곳곳을 돌아다니며 새로운 문물을 접하고 있다.

우물 밖으로 나온 개구리가 처음 보는 세상 앞에서 망연자실한 채 좌충우돌하며 갖가지 새로운 경험을 하듯이 우리도 낯선 곳에 가게 되면 일단 지금까지 살던 곳에서는 보고 듣고 느끼지 못한 것들을 경험하게 된다. 18세기 초 몽테스키외가 쓴 ‘페르시아인의 편지’는 페르시아 사람이 프랑스를 여행하면서 자기 나라와 다른 문물에 감탄하거나 경악하면서 바라본 풍경을 161편의 편지로 전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행의 목적

19세기 말 은둔국 조선 땅에 발을 디딘 영국의 지리학자이자 여행가인 이사벨라 버드 비숍, 미국의 선교사 언더우드 부부, 프랑스의 여행가 샤를 바라 등이 쓴 조선 여행기에는 서구인의 눈에 신기하게 보인 조선 풍경들이 그려져 있다. 그로부터 약 한 세기 후 한국 사람들도 해외를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게 되었다. 너도 나도 세계 방방곡곡을 여행하고 있으며 텔레비전을 비롯한 대중 매체들은 세계 곳곳의 신기하고 진기한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요즈음 서점에 가보면 진열대의 한 부분이 아예 해외 여행기로 꽉 차 있다. 어디 그뿐인가 우리나라 방방곡곡의 가볼 만한 곳을 소개하는 국내 여행기나 답사기도 만만치 않게 많은 양으로 출간되고 있다.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노래했던 영국의 시인 TS 엘리엇은 “모든 현지답사와 여행의 목적은 새로운 장소에 대해 아는 것이 아니라 처음 출발했던 일상의 장소로 돌아와 그곳을 새롭게 바라보는 데 있다”고 말했다. 우물 밖으로 나가 새로운 풍경과 문물을 보며 새로워진 눈은 우물 안의 풍경을 지금까지와는 다른 시각으로 보게 한다.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고 매일 보던 것들이 다르게 보인다. 그렇게 해서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삶을 살 수 있게 된다면 그게 바로 여행의 효과이고 여행의 선용이다.

그런데 우물 밖으로 여행을 다녀온 이후 얼마간 시간이 흐르고 나면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새롭게 보이던 풍물들이 다시 빛을 잃고 당연하게 거기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까 여행이 가져다준 신선한 시각을 가끔씩 상기하기 위해서는 새롭게 보이는 풍경들이 당연하게 보이기 이전에 그 신선한 느낌을 자세하게 기록해두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몇 주일이나 몇 달이 지난 뒤 새로움은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당연의 세계가 되돌아온다. 그 다르게 보이던 생생한 풍경들이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고 만다. 다시 말하지만 내가 이 글을 연재하는 이유는 바로 그것들이 자취를 감추기 전에 붙잡아두기 위해서다.

풍경 #19 세종대로와 테헤란로

속도 조절하며 남 배려하는 사회 돼야

서울 강남의 번화한 테헤란로 일대.

세계 여러 나라의 도시를 여행하다보면 그 도시를 상징하는 건물, 조형물, 대로를 만나게 된다. 파리 하면 에펠탑, 노트르담 대성당, 몽마르트르 언덕과 더불어 샹젤리제 거리가 떠오른다. 서울 하면 남산타워, 63빌딩, 무역센터빌딩, 그리고 세종대로가 떠오른다.

세종로 한복판에 서면 내가 서울 사람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다시 느끼게 된다. 광화문과 경복궁을 지나 청와대의 푸른 기와가 보이고 그 뒤로 북악산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광화문광장 입구에 큰 칼을 옆에 찬 이순신 장군이 의자에 앉아 있는 세종대왕을 지키고 있다. 그곳에서 한강 쪽을 향해 남으로 내려가면 서울시청과 숭례문이 나오고 이내 서울역에 도달한다.

남산 1호 터널을 지나 한남대교를 건너면 강남이다. 강남대로를 지나 지하철 강남역 앞에서 좌회전을 하면 그곳은 강남의 세종로라고 할 수 있는 테헤란로다. 청와대와 정부중앙청사가 있는 세종로가 대한민국 정치의 중심지라면 테헤란로에 있는 대기업의 초현대식 사옥들은 이곳이 경제의 중심임을 말해준다. 하루 날을 잡아 오전에는 세종로 주변을 걸어보고 오후에는 테헤란로 부근을 다녀보라. 이제 서울은 어느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세계적인 도시가 되었음을 실감할 수 있다. 서울 사람들의 외모가 나날이 세련되듯이 서울이라는 도시의 외형도 이제 글로벌 스탠더드에 뒤떨어지지 않게 되었다. 10년 전의 서울과는 완전히 달라진 새로운 모습이다. 그곳에서 나는 대한민국 서울에 사는 한국 사람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게 여겨진다. 문제는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다.

풍경 #20 어느 버스 운전기사

파리에서 서울로 돌아온 지 6개월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 자가용 승용차 없이 살고 있다. 파리에서 자동차 없이 살던 10년의 습관이 몸에 배어 있기 때문이다. 버스를 타면 운전기사가 알아서 운전을 해주기 때문에 운전에 신경 쓸 일이 없다. 가끔씩 택시를 타기도 하지만 주로 버스를 이용한다. 택시의 협소한 공간은 마치 운전기사의 개인 공간과 같아서 낯선 남의 집에 들어간 느낌이 든다. 그래서 주인의 눈치를 봐야 한다. 주인의 몸 냄새가 나고 주인 마음대로 틀어놓은 라디오 방송 소리가 요란하다.

그러나 버스에서는 익명성이 보장된다. 버스는 마음 놓고 걸어 다니는 보행로의 연장선상에 있다. 거기에는 운전기사의 개인성이나 쓸데없는 소리가 없다. 넓은 버스 공간에서는 운전기사와 공간적 심리적 거리감을 유지할 수 있다. 버스에 탄 다른 승객들의 모습을 바라볼 수도 있다. 게다가 버스는 어두운 지하로 달리는 지하철과는 달리 밝은 지상으로 달리기 때문에 거리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이점마저 있다. 밤에는 전광판과 네온사인으로 장식한 화려한 서울의 야경을 감상할 수도 있다. 버스의 좌석은 승용차 좌석보다 시점이 높고 시야가 넓어 바깥 풍경을 감상하는 데 훨씬 유리하다.

어느 날 오전 10시경 지하철 합정역에서 내려 파주 출판단지로 가는 좌석버스를 탔다. 버스 앞문으로 올라타서 제일 앞좌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버스는 이내 복잡한 시내를 떠나 한강변에 들어섰다. 한가한 마음이 되어 하늘을 배경으로 한 한강의 흐름을 바라보고 있는데 버스는 생각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파주 출판단지 입구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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